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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화 창과 방패 (3) (165/226)

165화 창과 방패 (3)202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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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감을 애써 별일 아니라고 넘기려고 할 때였다. 흥신소 직원에게 다시 전화가 와서 받았다.

16560298860715.jpg[이사님. 낙찰 취소한 그림…… 이수지 관장님이 사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소문을 내면 말이 먹히지 않을 것…….]

설명을 끊고 김승재가 날카롭게 말했다.

16560298860721.jpg“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어떻게 수지가 그 그림을 사요! 낙찰이 철회됐는데!”

16560298860715.jpg[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사가 그렇게 나서…….]

16560298860721.jpg“가짜 뉴스예요!”

16560298860715.jpg[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한두 개가 아니라서…….]

16560298860721.jpg“알았으니까 일단 끊어요!”

당장 인터넷으로 들어가 ‘이기환 산’을 검색했다. 그러자 흥신소 직원이 말한 대로 이수지가 그림을 구매했고, 곧 현성 미술관에 전시 예정이라는 기사가 도배되어 있었다.

16560298860721.jpg“무슨 이런 가짜 뉴스가……!”

씩씩거리면서 가장 상단에 있는 뉴스를 클릭했다. 어제 낙찰된 그림이 낙찰된 사람의 변심으로 인해 취소되어, 그림이 결국 이수지에게 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민감한 내용을 굳이 외부로 공개하는 이유는 이수지 관장에 대한 고마움과 이런 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옥션회사들의 사정을 공유하기 위해서라며, 응찰에는 신중할 것을 거듭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세세한 내용을 보니 가짜 뉴스 같진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어 멍해졌다. 그때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여니 한지감이 서 있었다.

16560298860721.jpg“뭐야?”

날선 반응에도 한지감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16560298860762.jpg“잠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허락한 적이 없는데도 한지감은 밀고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16560298860721.jpg“뭐하는 짓이야!”

버럭 김승재가 소리를 지르는데도 한지감은 별일 아니라는 듯 편안하게 소파에 기댔다.

16560298860762.jpg“당신이 했던 짓, 똑같이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내 영역에 와서 분탕질 쳤잖아요. 그런데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았어요?”

순간 한지감의 눈초리가 흠칫할 정도로 날카로워졌다.

16560298860721.jpg“너 이 자식, 돈 좀 벌었다고 세상 무서운 게 없어?”

16560298860762.jpg“아니요. 무서운 것 많습니다. 가진 게 없을 때는 그 상태로 인생이 끝날까 봐 무서웠는데, 가진 게 많아지니까 잃을까 봐 무서워요.”

싸한 미소를 지으며 한지감은 말을 이어갔다.

16560298860762.jpg“그런데 무서워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내 걸 위협하는 사람이 있으면 싸워서 지켜내야죠.”

16560298860721.jpg“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말해!”

흥신소 직원이 김승재와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길은 없었다. 수사기관이면 모를까, 일개 스페셜리스트 따위는 돈의 흐름을 알 수 없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한지감이 저벅저벅 걸어오자 김승재는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쳤다. 벽에 닿아 더 이상 뒷걸음 칠 수 없게 되었을 때, 한지감은 큰 키로 그를 위에서 내려다봤다. 높이가 주는 위압감에 김승재는 겁을 먹었다.

16560298860762.jpg“계속 알아듣지 못한 척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이런 식으로 내 영역을 더럽힌다면, 그땐 나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 말을 마친 한지감은 그대로 호텔에서 나갔고, 다리에 힘이 풀린 김승재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고작 옥션 회사 직원 따위가 자신을 위협했다는 수치심에, 그의 앙심은 더 깊어졌다. * 룸에서 나오자마자 초조한 얼굴의 다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6560298890775.jpg“어떻게 됐어요?”

16560298860762.jpg“경고만 해줬어. 따라올 것 없다니까. 내가 김승재를 죽일 것도 아니고.”

16560298890775.jpg“걱정돼서 그렇죠. 어서 가요.”

한시라도 여기 있는 것이 싫은지 다영은 나를 잡아 끌었다. 그 손에 이끌려 주차장까지 갔다. 차에 올라 호텔을 벗어나고 나서야 다영은 눈치를 보면서 물었다.

16560298890775.jpg“김승재한테 뭐라고 했어요?”

16560298860762.jpg“앞으로 이런 식으로 나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16560298890775.jpg“자기가 했다고 순순히 인정해요?”

16560298860762.jpg“안 하지. 인정 안 해도 상관없다고 했어.”

이수지와 달리 김승재는 옥션의 시스템을 잘 모르고 있었다. 경매가 끝나고 난 뒤에도 판매는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이 반격이 가능했던 이유였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16560298890775.jpg“사람까지 사서 왜 오빠한테 그런 짓을 한 걸까요?”

16560298860762.jpg“나도 궁금하다. 왜 강정휘랑 붙어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어.”

16560298890775.jpg“설마…… 오빠랑 이수지의 관계를 아직도 오해하고 있는 것 아니에요?”

이런 대화를 다영과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

16560298860762.jpg“너랑 나 사귄다는 것,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 나도 처음에는 이 관장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생각해 보면 업무 외에 만나지를 않는데 오해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

16560298890775.jpg“그건 그렇네요.”

이수지가 이유가 아니라면 남는 건 이것밖에 없었다.

16560298860762.jpg“아무래도 강민수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어. 지방대 출신이 미술계에서 설치고 나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거지.”

16560298890775.jpg“웃기지도 않아. 자기는 능력으로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팔짱까지 낀 다영의 얼굴이 제법 앙칼져 웃음이 났다. 그런 나를 보고 다영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16560298890775.jpg“지금 웃을 때예요?”

16560298860762.jpg“네 표정이 너무 웃겨서 그렇지.”

16560298890775.jpg“웃기다뇨!”

너무하다는 듯 입을 오물거리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16560298890775.jpg“그런데 낙찰 받은 사람이 김승재가 고용한 사람이란 걸 어떻게 알았어요?”

16560298860762.jpg“강정휘하고 김승재가 만났다는 걸 알고, 태하 형이 김승재 주변 사람을 조사했어. 그 사람이 주로 여자 정리시키는 일을 맡았다고 하더라구.”

다영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16560298890775.jpg“원래 그런 일은 개인 비서나 수행원이 맡지 않아요?”

16560298860762.jpg“그렇지. 그런데 김승재는 비서를 두지 않아서 따로 흥신소에 맡긴 모양이더라구.”

16560298890775.jpg“일반적이지 않네요.”

16560298860762.jpg“정리해야 할 여자가 워낙 많았나 보지.”

가만히 생각하던 다영이 무언가 떠오른 듯 물었다.

16560298890775.jpg“잠깐만, 낙찰 받은 사람이 김승재의 고용인이란 걸 알아도, 취소할지는 어떻게 알았어요?”

16560298860762.jpg“세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면 김승재는 전화 응찰을 했을 거야.”

16560298890775.jpg“대리인을 통해서 일을 처리하려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16560298860762.jpg“아트 딜러도 아닌 흥신소 같은 비전문 대리인을 통해서? 이런 경우라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지.”

다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16560298890775.jpg“시커먼 속내를 가지고 무언가를 계획했을 때죠.”

16560298860762.jpg“강정휘랑 만난 거 보면 그 화살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그럼 낙찰을 해서 뭘 하려는 걸까 생각해 보니까, 과거에 경매 회사들이 장난쳤던 일화가 떠오르더라고.”

런던이나 뉴욕, 미술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곳에서 과거 특정 화가의 그림을 띄우기 위해서 경매 회사와 아트딜러가 모의해서 화가의 작품을 경쟁적으로 응찰해 높은 가격에 낙찰되게 했다. 이러다 보면 시장에서 특정 화가의 작품의 니즈가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이 몇 번 반복되다보면 화가의 몸값은 자연스레 올라갔다.

16560298890775.jpg“어떻게 나쁜 쪽으로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갈까요?”

16560298860762.jpg“그러게 말이다.”

16560298890775.jpg“그래서 낙찰 철회될 걸 알고 이 관장에게 연락을 한 거죠? 만약 철회된다면 구매 의사가 있는지.”

16560298860762.jpg“응.”

마지막까지 낙찰 받은 이와 경합을 벌인 것이 이수지였기에 나는 곧바로 연락했다.

16560298890775.jpg“이 관장, 엄청 깎으려고 들었죠?”

16560298860762.jpg“왜 아니겠냐? 추정가 아래로 깎으려고 드는 걸, 다른 쪽하고도 접촉하는 척 밀당 좀 했지.”

16560298890775.jpg“값 올릴 만큼 올리고, 살짝 깎아줄 테니 기사 낼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구한 거구나?”

16560298860762.jpg“응. 그런 조건이면 위탁자에게 이 관장에게 파는 것이 백번 낫다고, 잘 말해주겠다고 했지.”

원체 이수지는 치켜세워주는 걸 좋아할 뿐더러, 최근 들어서는 관장으로서 두드러지는 외부 성과가 적었으니 때마침 이미지 메이킹을 할 좋은 수단을 얻은 것이다. 한마디로 윈윈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다영이 나를 보았다.

16560298860762.jpg“왜 그렇게 봐?”

16560298890775.jpg“여우같아서요.”

16560298860762.jpg“남자한테 여우가 뭐냐?”

16560298890775.jpg“하는 행동이 딱 여우니까 그렇죠.”

16560298860762.jpg“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그렇게 격하시키지 말아 줄래?”

16560298890775.jpg“네네. 알았습니다.”

싱긋 웃는 다영을 보니 안 좋은 감정이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 토요일 오전. 다영과 만날 준비를 하면서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갔다. 부엌에 홀로 앉아있는 경환이 보여 슬쩍 지나치려는데, 그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16560299032417.jpg“이수현 작가인지 뭔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 또 시작이다. 이수현 작가가 채령과 미팅을 한 이후 석 달이 넘도록 연락이 없어 저런다. 벌써 9월인데 말이다. 그동안 바쁘신 것 같다는 말로 상황을 모면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16560298860762.jpg“너무 연락이 안 오는 것 같아서 나도 은근슬쩍 채령이 이야기를 꺼내 봤는데, 말을 돌리시더라구.”

16560299032417.jpg“그러니까 그 말은, 우리 채령이를 깠다는 거지!”

벌떡 일어난 경환은 당장이라도 가인 갤러리로 쳐들어가 이수현의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16560298860762.jpg“깠다기보다…… 가인 갤러리하고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나 보지.”

16560299032417.jpg“그게 그 말인 거잖아! 내 이 인간을!”

황소처럼 현관으로 향하는 경환을 막아섰다.

16560298860762.jpg“네가 이러면 채령이 입장이 뭐가 돼?”

16560299032417.jpg“내가 지금 거절한 것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잖아. 안 되겠으면 안 되겠다고 제대로 거절하면 되지. 석 달 넘게 아무 연락 없이 이러는 건 너무하는 거 아니야? 거절을 제대로 안 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도 채령이는 계속 연락 기다리는 눈치란 말이야!”

나는 두 손을 내밀며 경환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16560298860762.jpg“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알겠어. 결과를 명확하게 말해달라고 내가 전화할게. 그러니까 제발 가진 마라. 그러다 채령이 소문 이상하게 나.”

사랑꾼 경환은 채령이를 위해 화를 삭였다.

16560299032417.jpg“알았어. 대신 꼭 다음 주 안으로 연락 주는 걸로 해. 연락 기다리면서 불안해하는 거, 더 이상 못 보겠단 말이야!”

16560298860762.jpg“알았어.”

그때 경환의 핸드폰이 울려 전화를 받았다.

16560299032417.jpg“채령아.”

수화기 너머 채령의 흐느끼는 소리가 전해졌다.

16560299032417.jpg“왜 울어? 무슨 일 있어?”

16560299060496.png[네……. 있어요.]

16560299032417.jpg“무슨 일인데?”

16560299060496.png[저…… 이수현 작가님에게 연락받았어요.]

서러운 듯 채령이 엉엉 우는 소리가 전해졌고, 경환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아마 이수현이 앞에 있었다면 당장 주먹을 날렸으리라. 그는 분노했지만 채령과 통화 중이었기에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

16560299032417.jpg“괜찮아. 더 좋은 갤러리가 있을 거야. 그 사람 참 보는 눈 없다. 어떻게 네 작품을 직접 보고도 그런 결정을 내려.”

16560299060496.png[그런 것 아니에요…….]

16560299032417.jpg“응?”

16560299060496.png[이수현 작가님이 전속 계약 하고 싶다고 연락 주셨어요.]

16560299032417.jpg“정말?”

흔들리는 목소리로 채령이 답했다.

16560299060496.png[정말이에요……! 오빠한테 제일 먼저 알려주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16560299032417.jpg“채령아……. 그동안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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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격스러운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나가려는데, 이수현 작가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방 안에 들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16560298860762.jpg“작가님. 좋은 소식 잘 들었습니다.”

16560298860715.jpg[먼저 전해드리고 싶어서 연락드렸는데, 이미 들으셨군요.]

16560298860762.jpg“네. 좋은 결정 감사드립니다.”

16560298860715.jpg[감사는요. 안 작가 같은 좋은 작가를 소개시켜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문득 왜 이렇게 결정이 늦어졌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16560298860762.jpg“고민이 늦어지시는 것 같아서 저는 답이 부정적일 줄 알았어요. 제가 여쭤 봐도 답을 피하셨잖아요.”

16560298860715.jpg[일부러 그랬어요.]

16560298860762.jpg“일부러요?”

이수현이 차분하게 답했다.

16560298860715.jpg[네. 안 작가 그림 처음 봤을 때부터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확실히 시장에서 추구하는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계약하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이야기가 늦어진 걸까?

16560298860762.jpg“왜 결정이 이렇게 늦어졌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16560298860715.jpg[안 작가의 그림이 인정받으려면 저처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오랜 시간 답을 주지 않아도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랐어요.]

16560298860762.jpg“그렇군요.”

한마디로 채령의 인내심을 시험해 본 것이다. 통화를 마치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가려는데, 갑자기 확 방문이 열렸다.

16560299032417.jpg“형! 채령이 전속 작가 된 기념으로 파티하자!”

16560298860762.jpg“파티는 좋은데, 다영이랑 약속 있는데?”

16560299032417.jpg“당연히 다영 씨도 와야지!”

16560298860762.jpg“알았어. 물어볼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니 다영은 크게 기뻐하며 파티에 응했다. 만약 그날 파티에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채령의 그림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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