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0화 뒷조사 (170/226)

170화 뒷조사202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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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비서는 대표실 문에 귀를 밀착시켰다.

16560300562319.jpg“그래서 어떻게 한다는 거지?”

‘그럼’이라는 황덕현의 희미한 말만 들리고 그 뒤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16560300562324.jpg“알았어. 그렇게 할게.”

김도균의 대답이 들리더니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져 얼른 책상으로 돌아가 앉았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김도균이 나오자, 이 비서는 계속 거기 있었던 것처럼 차분하게 일어섰다.

16560300562319.jpg“말씀 다 나누셨습니까?”

16560300562324.jpg“네.”

김도균이 가려 하자 초조해진 이 비서가 물었다.

16560300562319.jpg“어떻게 결정하셨습니까?”

침울한 표정을 짓는 김도균을 보면서 이 비서는 괜한 것을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 다른 것이었다.

16560300562324.jpg“커뮤니티 투표 하라고 하네요.”

16560300562319.jpg“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16560300562324.jpg“일정 차질 없이 진행하라고 해서요. 한 주 늦추는 것도 안 된답니다. 오늘부터 야근해야 해요.”

16560300562319.jpg“아……. 그렇군요.”

16560300562324.jpg“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싱긋 웃는 김도균을 보면서 이 비서도 따라 웃었다.

16560300562319.jpg“축하드립니다!”

16560300562324.jpg“고마워요. 앞으로 숨어서 듣는 건 좀 참아줘요. 대표님이 이 비서님 의식해서 자꾸 목소리를 낮춰요.”

16560300562319.jpg“죄……죄송합니다.”

16560300562324.jpg“저한테 죄송할 건 없구요.”

가볍게 대답한 김도균이 다시 걸어갔고, 그의 뒤통수에 대고 이 비서가 말했다.

16560300562319.jpg“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

괜찮다는 듯 김도균은 손을 올려 보였다. * 서정선과 김도균은 나의 존재를 잊은 듯 말했다.

16560300583053.jpg“총괄님, 어떻게 일정을 그대로 할 수가 있어요. 오늘 공지 올리고 일주일 후에 투표하면 3주밖에 안 남아요!”

16560300562324.jpg“바로 홍콩 경매 있어서 그렇죠.”

16560300583053.jpg“한 주 정도 늦추는 건 괜찮잖아요. 2주 후에 있는데.”

16560300562324.jpg“홍콩 경매도 중요하니까 그건 양보하실 수가 없나 봐요.”

16560300583053.jpg“하아……. 그럼 3주 꼬박 야근해야겠네…….”

울상이 된 서정선을 보며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16560300606632.jpg“저…… 팀장님. 저는 왜 부르셨는지……?”

16560300583053.jpg“아……. 한 책임이 있었지.”

그제야 그녀는 나의 존재를 기억해낸 듯했다. 그러더니 이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16560300583053.jpg“한 책임 때문에 이게 뭐야! 3주 동안 격무에 시달리게 생겼잖아.”

16560300606632.jpg“죄송합니다…….”

일정이 갑자기 바뀌게 된 것은 내 탓이 컸다. 서정선이 불만스럽게 입술을 내밀었다.

16560300583053.jpg“그렇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빨리 빨리 이야기하란 말이야!”

이건 칭찬일까, 욕일까? 당황해서 보는데 김도균이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었다.

16560300562324.jpg“그건 칭찬이에요? 욕이에요?”

16560300583053.jpg“둘 다예요! 좋은 생각이 있으면 빨리 공유를 해야지!”

16560300606632.jpg“회의 때 막 난 생각이라…….”

16560300583053.jpg“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넘어가는 줄이나 알아.”

아니면 국물도 없었다는 듯 서정선은 새침했다.

16560300606632.jpg“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부르신 거예요?”

16560300583053.jpg“아니.”

16560300562324.jpg“9월, 12월 메이저 경매 때문에 불렀습니다.”

아, 그거! 진작에 말하지!

16560300606632.jpg“6월에 메이저 경매를 제가 경험하기도 했고, 이제 팀장님이…….”

댕강 나의 말을 자르고 서정선이 말했다.

16560300583053.jpg“난 괜찮아. 한 책임이 둘 다 진행해.”

16560300606632.jpg“네……?”

16560300583053.jpg“6월에 보니까 잘하던데 뭐. 경험을 쌓기 위해서 당분간은 한 책임이 계속 하는 게 맞지.”

으응……? 이게 아닌데…….

16560300606632.jpg“겨……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장님은 탑 옥션의 얼굴 아닙니까. 고객들 입장에서는 팀장님이 경매대에 서는 것이 안정감을…….”

단호하게 서정선이 고개를 저었다.

16560300583053.jpg“안정감도 좋지만 신선함도 무시 못 하지. 또 고객들에게 새로운 얼굴을 각인시키려면 당분간은 한 책임이 하는 게 좋아.”

16560300606632.jpg“……신인 작가 경매도요?”

16560300583053.jpg“당연하지.”

16560300606632.jpg“경매대에 서는 것이 그립지 않으세요?”

마지막 잎새를 보듯 애틋한 눈빛을 서정선에게 보냈지만 단호했다.

16560300583053.jpg“그립지만 어쩌겠어.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야지. 다른 사람이 아닌 한 책임이라서 마음이 푹 놓여!”

16560300606632.jpg“아…….”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서정선은 그럴 것 없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16560300583053.jpg“뭐야. 한 책임. 감동 받았어? 그래. 이런 기회 다른 데서는 안 주긴 하지. 은근히 경매사끼리 경쟁도 붙이고 하니까. 하지만 나는 한 책임이 탑 옥션의 또 다른 얼굴이 되길 누구보다 기대해! 그러니까 너무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서정선은 회의실에서 나갔고, 나는 중얼거렸다.

16560300606632.jpg“고마워하는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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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한 나를 보며 김도균이 웃음을 터트렸다.

16560300606632.jpg“총괄님……!”

16560300562324.jpg“아. 미안. 너무 웃겨서 말이야!”

그 웃음을 보니 현재 상황이 조작된 결과가 아닐까 하는 강한 의혹이 생겼다.

16560300606632.jpg“저한테 말씀하시기 전에 이미 팀장님이랑 이야기 되신 거죠?”

16560300562324.jpg“전혀 아닌데.”

천연덕스럽게 김도균이 고개를 저었다.

16560300606632.jpg“맞잖아요.”

16560300562324.jpg“정말 아니야. 그저 서 팀장이 열에 아홉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했을 뿐이지. 후배 경매사가 생기길 고대하고 고대했으니 말이야.”

16560300606632.jpg“고대했다면서 이렇게 막 굴리는 게 어딨어요!”

16560300562324.jpg“막 굴리다니! 경험 쌓을 기회를 주는 거지. 서 팀장한테 고마워해. 진짜 흔치 않은 기회야.”

16560300606632.jpg“……네.”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기회라는 이름으로 노력을 가로채가는 일들이 다분한 요즘 보기 드문 진짜 기회인 것은 사실이다. 경매의 경험을 쌓으면 더 좋은 경매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니 흔치 않은 이 기회를 잘 활용해 봐야지. * 나는 퇴근하자마자 가인 갤러리로 가서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이수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1656030069937.jpg“그렇게 됐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신인 작가 후원 경매 결정이 미루어져서 본의 아니게 붕 뜬 상태가 되었다. 다음 주에 메이저 경매가 있어서, 다음 주까지 투표를 홍보하고 그다음 주 월화에 투표가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수현이 계획한 아트페어가 다음 주에 진행된다는 데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신인 작가 후원 경매 작가 선정이 그 전에 결정됐을 것이다. 선정이 되었다면 아트 페어에서 좋은 작품 10점을 빼면 됐고, 선정이 안 되었다면 아트 페어에서 좋은 작품 10점을 선보이면 된다. 하지만 지금 정해진 일정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16560300606632.jpg“10점에 대해서는 아트 페어에서 따로 선보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 대신 안 작가가 선정되지 않는다면 제가 10점의 그림을 한 점당 오천만 원에 사겠습니다."

오천만 원이라는 숫자에 이수현의 눈이 커졌다.

1656030069937.jpg“한 점당 오백만 원도 받기 어려운 신인 작가에게 오천만 원이라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16560300606632.jpg“아닙니다. 저 때문에 안 작가를 아트 페어에서 제대로 선보일 기회가 없지 않습니까.”

1656030069937.jpg“아무리 그래도…….”

16560300606632.jpg“이래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안 작가의 그림이 많은 표를 받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어 이러는 겁니다.”

이수현의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떠올랐다.

1656030069937.jpg“안 작가를 그렇게 좋게 봐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16560300606632.jpg“잘 생각하셨어요.”

1656030069937.jpg“매번 신세만 지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16560300606632.jpg“신세는 제가 대표님께 졌죠. 신인 작가 후원 경매에서 좋은 작품 주셨고, 지금은 전속 작가의 그림을 이렇게 주시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다 이내 조심스레 물었다.

1656030069937.jpg“그런 것 보면 한 책임님은 참 작가에 대한 애정도 높으신 것 같습니다.”

16560300606632.jpg“스페셜리스트들이 다 그렇죠.”

1656030069937.jpg“글쎄요. 제가 많은 스페셜리스트를 뵌 건 아니지만, 그래도 느낌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신인 작가 경매를 맡고 계셔서인지 이미 시장에 인상을 남긴 작가의 작품보다는 새로운 작가에 흥미가 있으신 것 같아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신인 작가 경매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하나의 직업병이 되었달까?

16560300606632.jpg“원래 그랬던 것은 아닌데,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내친김에 나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16560300606632.jpg“옥션에 있다 보니 작가를 만날 기회가 적어서 아쉬워요.”

신인 작가 경매를 진행해도 주로 갤러리와 일을 진행하기에 작가를 만날 기회는 적었다. 김세안을 만나고 작가란 사람들에 대해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직접 만나지 않는다는데 안도함을 느꼈건만 어느 순간 아쉬웠다. 이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막연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물끄러미 나를 보던 이수현이 픽하고 웃었다.

16560300606632.jpg“왜 웃으세요?”

1656030069937.jpg“한 책임님이 갤러리에서 일해도 잘하셨을 것 같아서요.”

16560300606632.jpg“궁금하긴 하네요. 갤러리에서 일하면 어떤 느낌이었을지.”

1656030069937.jpg“래리 가고시안 같은 엄청난 갤러리스트가 되었을 거예요.”

16560300606632.jpg“과찬이지만 기분은 좋네요.”

기분은 좋았지만 갤러리에서 일하는 내 모습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 초인종 소리를 듣고 김승재가 몸을 일으켰다. 기다라는 사람이 왔는지 그는 빠르게 문을 열어 주었다. 흥신소 직원이 그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1656030069937.jpg“안녕하세요.”

16560300757235.jpg“어서 와요.”

그는 소파로 안내했고, 이곳에 온 것이 처음이 아님에도 스위트룸의 고급스런 풍경에 직원은 두리번거렸다. 이혼을 하고 나서도 김승재는 A호텔 스위트룸에 머물렀다. 얼마 전 두 사람의 이혼 기사가 났을 때 JP대표와 배우 지연희의 불륜 사실이 언론에 공개됐고, 덕분에 큰 잡음 없이 넘어갔다. 브랜디로 목을 축인 그가 흥신소 직원을 보며 물었다.

16560300757235.jpg“뭐 좀 건졌어요?”

1656030069937.jpg“건졌다고 하긴 뭐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돈을 아낌없이 줬는데 고작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애써 덤덤한 척 굴었다.

16560300757235.jpg“말해 봐요.”

1656030069937.jpg“강정휘와 한지감의 인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버지의 가게, 명품 골동상에서 일하던 한지감을 강정휘가 개인 감정사로 고용한 것이죠.”

16560300757235.jpg“다 아는 이야기를 하자는 건가요?”

꿈틀거리는 김승재의 눈썹을 보고 직원은 흠칫해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1656030069937.jpg“그런데 그 전에 조금 특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16560300757235.jpg“특이한 일이요?”

1656030069937.jpg“네. 강정휘가 명품 골동상에서 물건을 구입하기 바로 전에 가게에 도둑이 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관심을 보이던 김승재가 미간을 찌푸렸다.

16560300757235.jpg“그게 여기서 왜 나오죠?”

1656030069937.jpg“그 전에는 한지감이 골동상으로 일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16560300757235.jpg“거부했다구요?”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1656030069937.jpg“네. 한지감은 편의점에서 일하면서도 골동상은 되고 싶지 않아 했습니다. 그런데 도둑이 들어서 물건이 깨졌다면서, 빚을 갚으며 일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고 합니다.”

16560300757235.jpg“돈이 없어서 그랬나 보죠.”

1656030069937.jpg“하지만 그의 아버지조차 이 부분에 대해서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부동산 박 씨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16560300757235.jpg“그것만으로는 너무 약하지 않아요?”

1656030069937.jpg“약하긴 하지만 여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한지감은 골동상으로 일하기로 한 이후, 날개를 단 것처럼 승승장구했습니다. 강정휘와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도강그룹 강 회장, 화이트 백화점 권 사장 등 재벌가와 연도 맺었습니다.”

16560300757235.jpg“골동상으로 살기 거부했던 사람이 도둑이 든 이후 갑자기 능력을 발휘했다는 거네요?”

자신의 말이 바로 그거라는 듯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1656030069937.jpg“네.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재밌는 부분이 또 있습니다. 그 당시 강정휘의 비서를 했던 김태하라는 사람이 현재는 한지감 건물의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16560300757235.jpg“비서가 강정휘를 떠나서 한지감에게 붙었다?”

1656030069937.jpg“네. 그리고 그 비서가 원래 주먹을 쓰던 사람인데, 한지감의 가게에 도둑이 들기 전 알고 지냈던 동생들을 통해 서동효의 뒤를 캐고 다녔다고 합니다.”

16560300757235.jpg“서동효라면 부동산 부자로 유명하잖아요?”

재벌들 사이에서도 그 능력이 소문났을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1656030069937.jpg“맞습니다. 아직 분명한 건 없지만, 분명히 뭔가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16560300757235.jpg“계속 조사해서 반드시 알아내세요. 두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 뭔지.”

김승재의 눈이 싸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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