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9월 경매 (171/226)

171화 9월 경매202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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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메이저 경매의 아침이 밝았다. 30분 일찍 나와 다영과 리틀 포레스트에서 핫초코를 마셨다. 함께 회사로 가면서 나는 다영에게 말했다.

16560300911824.jpg“윤이서 사모님, 오늘 오신대.”

1656030091183.jpg“요새 메이저 경매도 거의 매번 오시는 것 같아요.”

16560300911824.jpg“낙찰 받는 재미에 푹 빠지신 것 같아. 아. 권 사장님도 오시기로 했어.”

1656030091183.jpg“화이트 백화점 권미애 사장님이요?”

눈을 동그랗게 뜬 다영이 걸음을 멈췄다.

16560300911824.jpg“응. 좀 의외지?”

1656030091183.jpg“현장에 오신 적 거의 없잖아요.”

16560300911824.jpg“그러니까. 나도 좀 놀랐어.”

1656030091183.jpg“누가 맞이하기로 했어요?”

나는 경매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권미애를 맞이할 수가 없었다.

16560300911824.jpg“팀장님. 자신의 고객으로 만들겠다고, 아주 야망 넘치는 눈으로 일을 가져가셨지.”

1656030091183.jpg“이러다 진짜 고객 뺏기는 거 아니에요?”

16560300911824.jpg“그럴 수가 없지. 권 사장님과의 내 긴 인연을 알잖아.”

1656030091183.jpg“너무 자신하니까 확 뺏어가 버렸으면 좋겠네요.”

입술을 삐죽이던 다영이 이내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16560300911824.jpg“왜?”

1656030091183.jpg“이제 별로 긴장 안 하는 것 같아서요.”

16560300911824.jpg“그래도 세 번째라 그런지 긴장이 좀 덜 되네.”

그런 나를 보고 다영은 기자가 된 듯 장난스레 투명 마이크를 잡아 내 입에 댔다.

1656030091183.jpg“한지감 경매사님, 오늘 경매 목표가 어떻게 됩니까?”

나는 정말 인터뷰하는 사람처럼 장단을 맞춰 진지하게 답했다.

16560300911824.jpg“낙찰률 88%를 목표로 합니다.”

1656030091183.jpg“낙찰률 80% 넘기기도 힘든데, 88%를 하겠다구요?”

16560300911824.jpg“네. 그렇습니다.”

나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답했다. 다영은 미심쩍어 하면서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1656030091183.jpg“흠……. 그렇군요. 메인 작품인 전명자 화가의 ‘나비와 여인 Ⅵ’는 얼마를 목표로 잡으셨나요?”

16560300911824.jpg“19억입니다.”

큰 눈을 다영이 깜박였다.

1656030091183.jpg“나비와 여인 내정가가 높아서 내부에서는 유찰 위험이 높다고 말하는데요. 알고 계십니까?”

16560300911824.jpg“네. 알고 있습니다.”

내정가 16억이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보다 높아서, 메인 작품이지만 모두 유찰을 예상했다. 하지만 나는 메시지에서 본 최고가가 19억이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내정가를 넘어 최고가 19억에 그림을 파는 것이 내 목표였다. 약간 걱정스런 얼굴로 다영이 나를 바라봤다.

1656030091183.jpg“목표가 너무 원대한 것 아니에요?”

16560300911824.jpg“꿈은 크게 꾸라고 하잖아. 그래서 그러는 건데 뭐.”

1656030091183.jpg“걱정하지 말아요. 잘 안 된다고 해도 내가 잘 위로해 줄게요.”

유찰이 확정된 것처럼 다영이 어깨를 토닥였고, 살짝 욱한 내가 손을 내려놨다.

16560300911824.jpg“위로 필요 없게 잘할 거거든?”

1656030091183.jpg“네네. 아무렴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는 다영을 보니 약이 올라, 꼭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세 번째 경매라 그런지, 확실히 경매대에 오르는 것이 그렇게 떨리지 않았다. 떨리지 않는 것을 넘어서 어느샌가 상황을 즐기게 됐다.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면서 뜨거워질 때쯤, 이번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전명자의 ‘나비와 여인 Ⅵ’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현장 고객석도 직원석도 들썩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들썩이는 인물들 중에는 윤이서와 권미애도 있었다. 19억이 안경에서 본 최고가인 작품이다. 나는 오늘 그 최고가에 도전하려 한다.

16560300911824.jpg“오늘의 하이라이트, 전명자 ‘나비와 여인 Ⅵ’입니다. 나비와 여인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독특한 색채 표현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집중을 유도하려 한 템포 쉬고 말을 이어갔다.

16560300911824.jpg“시작가는 십이억, 오천만 원씩 올라갑니다.”

말이 마치기도 전에 윤이서가 169번 패들을 올렸다.

16560300911824.jpg“169번 고객님 십이억, 십이억 오천, 53번 고객님 십삼억!”

53번은 권미애의 표정이다. 담담하게 빛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이 작품을 얼마나 가져가고 싶어 하는지 느껴졌다. 빠르게 가격이 오르면서 어느 순간 윤이서와 권미애 두 사람만 남아 경합을 벌였다.

16560300911824.jpg“십오억 오천, 십육억, 십육억 오천, 십칠억, 십칠억 오천, 십팔억!”

이제 십구억이 눈앞에 있었다.

16560300911824.jpg“십팔억 오천!”

제발 패들이 올라오기를 바라면서 현장석의 권미애를 보니 망설이고 있었다. 조금만 끌어올리면 십구억도 가능하다. 내는 배에 힘을 주고 그녀를 향해 부드러운 손짓을 했다.

16560300911824.jpg“십구억 없으십니까?”

내 손짓에 홀린 듯이 그녀는 53번 패들을 들었다.

16560300911824.jpg“53번 고객님 십구억!”

최고가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응찰은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나는 윤이서를 보고 말했다.

16560300911824.jpg“십구억 오천 없으십니까?”

윤이서는 고민했지만 패들을 올리지 않았고, 나는 낙찰봉을 두 번 두드렸다.

16560300911824.jpg“53번번 고객님께 19억에 낙찰되었습니다.”

치열한 경합 끝에 낙찰받은 권미애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벅찬 감정이 올라와 나는 다영을 보면서 웃었다. 눈시울을 붉히던 그녀는 나를 보고 자랑스럽다는 듯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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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매팀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며 김도군이 말했다.

1656030099686.jpg“9월 경매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긴장을 풀고 한 달은 푹 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10월 초에 신인작가 후원 경매가 있고, 10월 말에는 홍콩 경매가 있어서 어렵습니다. 그래도 오늘만은 모든 걸 잊고 즐겼으면 합니다!”

경매팀이 열렬히 반응했다.

16560301027426.jpg“좋습니다.”

16560301027426.jpg“와!”

그가 잔을 올리고 말했다.

1656030099686.jpg“탑 옥션을 위하여!”

16560301027426.jpg“위하여!”

16560301027426.jpg“위하여!”

우렁찬 목소리와 잔이 맑게 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앞에 앉은 서정선이 시원하게 맥주잔을 비우고 기분 좋게 말했다.

16560301027458.jpg“경매 세 번 만에 낙찰률 89%라니, 대단해! 한지감!”

백 책임도 웃으면서 말을 보탰다.

16560301027462.jpg“그러게요. 이 정도면 경매 신동 아닌가요?”

‘신동’이란 말에 장희정이 빵 터졌다.

16560301027462.jpg“책임님, 신동이 뭐에요. 천재라는 좋은 단어를 두고.”

16560301027462.jpg“요새는 뭐만 하면 천재라잖아. 얼굴 천재, 노력 천재, 너무 질리지 않아?”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서정선이 픽하고 웃었다.

16560301027458.jpg“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 그럼 우리 한 책임은 이제부터 한 신동인 건가?”

16560300911824.jpg“그냥 한 책임으로 불러주세요.”

내가 난색을 표하자 서정선이 이번엔 백 책임을 놀렸다.

16560301027458.jpg“모처럼 백 책임이 신경 써줬는데 한 책임이 거부를 하네. 그럼 우리 백 책임을 백 신동으로 불러볼까?”

16560301027462.jpg“저는 경매사로 서지도 않았는데 왜요?”

정색하는 백 책임을 보면서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이 잦아들 때쯤 장희정이 말했다.

16560301027462.jpg“솔직히 저는 전명자 작가 그림 유찰될 줄 알았어요.”

16560301027458.jpg“나도. 내정가 근처도 못 가면 어쩌지 했는데, 치고 올라가서 깜짝 놀랐네.”

공감을 표한 서정선이 말을 이어갔다.

16560301027458.jpg“어떻게 십구억까지 끌어올린 거야? 그 비결이 궁금한데.”

16560300911824.jpg“좋은 스승이자 선배이신 팀장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했죠.”

서정선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데 백 책임이 찬물을 끼얹었다.

16560301027462.jpg“크리스토퍼 버지 영상 보고 많이 연습했지? 느낌이 딱 그쪽이던데.”

16560300911824.jpg“그것도 물론 참고는 했죠.”

인상을 쓴 서정선이 눈을 흘겼다.

16560301027458.jpg“백 책임은 꼭 그렇게 훈훈한 순간에 물을 끼얹어야겠어?”

16560301027462.jpg“가짜 뉴스가 많은 시대에 팩트 체크는 필수죠.”

16560301027458.jpg“사람이 말랑말랑하지가 않아.”

다른 상사들이었다면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테지만, 서정선은 이 한마디를 하고 입술을 삐죽이는 것으로 마쳤다.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지속됐다. 무언가 생각난 서정선이 말했다.

16560301027458.jpg“참 한 책임, 내일 휴가지?”

16560300911824.jpg“네. 휴가 같지 않은 휴가요.”

이유가 궁금한 듯 장희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16560301027462.jpg“이유 같지 않은 이유는 들어봤는데, 휴가 같지 않은 휴가는 뭐에요?”

16560300911824.jpg“내일 진 회장님이랑 아트 페어에 가기로 했거든요.”

16560301027462.jpg“아트 페어에요?”

16560300911824.jpg“네. 가인 갤러리가 나오거든요. 진 회장님이 지난번에 안채령 작가 작품을 인상적으로 보셔서, 가고 싶다고 하시더라구요.”

눈을 가늘게 뜬 서정선이 물었다.

16560301027458.jpg“정말 진 회장님이 가고 싶다고 말씀하신 거야? 한 책임이 수작 부리는 게 아니고?”

16560300911824.jpg“수작이라뇨.”

백 책임이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16560301027462.jpg“수작이 맞지 뭐. 다음 주 월요일 투표하기 전에 진 회장님 활용해서 안채령 작가한테 관심을 가지게 하려는 거잖아.”

지난주부터 시작해서 이번 주말까지 4월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30인 후보를 올리고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는 공지를 돌렸다. 투표는 다음 주 월요일에 문자를 통해서 진행된다. 나는 적당히 능글하게 굴었다.

16560300911824.jpg“어쩌다 보니 시기가 맞물린 거예요.”

장희정마저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믿지 않았다.

16560301027462.jpg“에이.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16560300911824.jpg“안 믿으시면 어쩔 수 없구요.”

모두의 예상이 맞지만, 그래도 명색이 스페셜리스트인데 대놓고 특정 작가를 띄우기 위해 이러는 거라고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회식을 마치고 나는 다영과 함께 택시를 탔다.

1656030091183.jpg“정말 오빠가 바라는 대로 됐네요. 낙찰률은 오빠가 바랐던 거보다 1%나 높고, 메인 작품도 십구억에 낙찰됐잖아요. 어떻게 딱 십구억을 맞췄어요?”

너무 신기하다는 듯 다영이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잠시 철렁했다. 최고가 19억을 봐서 목표를 잡았던 것인데, 그걸 필터링 없이 다영에게 공유한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신기해하는 것을 보니 뭔가 눈치챈 것은 아니었다. 하긴 내가 사실대로 말한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 상황 아니던가. 자연스레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

16560300911824.jpg“그냥 내정가보다 더 높게 잡고 싶어서 말이야. 이십억은 너무 과한 것 같아서 십구억! 그런데 십구억에 정말 딱 낙찰되니까 정말 신기하더라.”

1656030091183.jpg“저두요. 엄청 신기했어요. 하긴, 오빠 자체가 신기한 사람이죠.”

16560300911824.jpg“내가?”

빙그레 웃으며 다영이 답했다.

1656030091183.jpg“우리 첫만남 잊었어요? 오빠 덕분에 덤터기 쓸 뻔했던 것 잘 넘겼잖아요!”

16560300911824.jpg“당연히 기억하지.”

1656030091183.jpg“그때 오빠 케이스 안에서 모습만 보고 가품이라는 것을 알아냈잖아요. 그 이후에도 진품과 가품을 기가 막히게 가려냈죠. 스페셜리스트 공부한 뒤로는 근현대미술도 섭렵해서, 오빠가 가져오는 작품은 팀장님들이 다 믿는 거 알죠? 진위 감정이 감정위원들보다 정확하다면서.”

안경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능력이기에 나는 마음 편히 웃지 못했다.

16560300911824.jpg“운도 좋았고, 촉도 좋았지.”

1656030091183.jpg“그게 어떻게 운이에요. 실력이죠. 내 남친이지만 정말 대단해요.”

16560300911824.jpg“정다영이 칭찬해주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네. 고마워.”

1656030091183.jpg“고맙긴요. 내 인생에 나타나줘서 내가 더 고마워요.”

지나가듯이 다영은 말했지만 마음을 훅 파고 들었다. 내 존재를 고마워해주는 사람이 다영이라 행복했다. * 다음 날. 나는 진 회장을 모시고 아트 페어로 갔다. 주차장부터 사람이 붐비는 것이 보였다.

16560300911824.jpg“사람이 너무 많네요. 괜찮으시겠어요?”

16560301142951.jpg“그럼 괜찮지. 공짜로 온 것도 아닌데. 그림 정말 사주는 거지?”

16560300911824.jpg“그럼요.”

진 회장에게 채령의 그림 하나를 사주겠노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 오겠다고 했다.

16560300911824.jpg“대신에 아시죠?”

16560301142951.jpg“그럼 알지. 주변에 그림 보여주면서 이야기 슬슬 흘리면 되는 거 아니야.”

16560300911824.jpg“네. 바로 그겁니다.”

아트 페어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 회장이 채령의 그림을 사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고 나서 진 회장의 인맥에 말을 흘리면 채령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면서 커뮤니티 투표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진 회장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16560300911824.jpg“이천만 원 이내에서 마음껏 구매하세요. 단, 안채령 작가 그림 2점은 꼭 사셔야 합니다.”

16560301142951.jpg“알았어. 걱정하지 마.”

신인 작가 위주로 구성된 아트페어라서 그림 가격이 비싸지 않았다. 내가 공손히 카드를 내밀자 진 회장은 신나서 받아들었다. 가인 갤러리 부스로 바로 가고 싶었지만, 구경을 좋아하는 진 회장 때문에 이곳저곳 끌려다녀야 했다.

16560300911824.jpg“회장님 이제 좀 가면 안 될까요?”

16560301142951.jpg“좀만 더 보고.”

16560300911824.jpg“정말 체력이 좋으시네요.”

16560301142951.jpg“너는 젊은 녀석이 왜 체력이 그 모양이야.”

핀잔을 먹고 시무룩해있는데, 시선이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 진 회장을 보는 거구나.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미술계에서 진 회장은 찰스 사치 같은 위치 아니던가. 파산해서 비록 그 명성이 삐걱거리긴 했지만 말이다. 진 회장을 모르더라도 볼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오늘 샛노란색 정장을 입었다. 여러 가지로 시선을 모으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지 않으려 살짝 옆으로 빠져주었다. 그런데 시선이 나를 따라왔다. 왜 나를 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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