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 커뮤니티 투표 (172/226)

172화 커뮤니티 투표202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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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시선이 나를 따라왔다. 왜 나를 보는 거지? 당황해서 굳어있는데, 속삭이는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60301240632.jpg“맞지?”

16560301240632.jpg“응. 맞아.”

뭐가 맞는데?

16560301240632.jpg“탑 옥션 경매사를 여기서 볼 줄은 몰랐어. 긴가민가했는데 키 보니까 맞네.”

아아. 날 알아본 거구나. 밖에서 누가 날 알아보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16560301240632.jpg“어제 경매 재밌었는데”

16560301240632.jpg“나도. 중간에 가려다가 끝까지 봤잖아.”

경매가 재밌었다는 말에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내가 어제 경매를 좀 잘하긴 했지. 듣고 있다는 걸 티내고 싶지 않아 간신히 표정 관리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도 정장으로 입고 오는 건데, 너무 편하게 입고 온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16560301240655.jpg“기분이 좋아 보인다?”

언제 왔는지 진 회장이 빙글거리는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16560301240659.jpg“그럼요. 그림 구경은 항상 즐거우니까요.”

16560301240655.jpg“칭찬이 좋은 거겠지. 그냥 좋으면 좋다고 그래.”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16560301240659.jpg“네. 좋습니다. 그림 사셨어요?”

16560301240655.jpg“은근 슬쩍 말 돌리는 것 봐라.”

16560301240659.jpg“궁금해서 그러죠.”

16560301240655.jpg“그래. 하나 샀어. 한도 내에서 마음껏 사라며.”

16560301240659.jpg“네. 잘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먼저 가인 갤러리로 가는 것 어떨까요?”

새침한 표정을 지은 진 회장이 말했다.

16560301240655.jpg“안 그래도 가려던 참이었어. 앞장 서.”

16560301240659.jpg“네. 가시죠.”

진 회장과 함께 나는 가인 갤러리 부스로 향했다. 내 큰 키와 진 회장의 튀는 옷 덕분에 앞길이 트이더니 시선이 쏟아졌다. 붐비는 아트페어 한쪽에 패션쇼가 이루어지는 형국이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한편으로 이것이 커뮤니티 투표에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가인 갤러리 부스로 다가가자 이수현이 나를 보고 달려왔다.

16560301240632.jpg“한 책임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사전에 오겠다는 연락을 하지 않았기에 그가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변 부스에 있는 갤러리스트와 관람객의 시선이 모이는 것이 느껴져 나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했다.

16560301240659.jpg“아트 페어에 안채령 작가 그림이 나온다고 하니까 진 회장님이 꼭 가고 싶다고 하셔서요.”

16560301240632.jpg“정말요?”

진 회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16560301240655.jpg“그럼 정말이죠. 안 그래도 지난번에 안채령 작가 그림을 사지 못해서 정말 아쉬웠어요.”

16560301240632.jpg“진작 말씀을 하시죠. 이쪽으로 오세요.”

나와 진 회장이 가인 갤리러 부스로 들어서자 슬금슬금 부스 안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모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부스에 걸린 채령의 그림들은 수작인 10점을 제외한 상태였기에 완성도 면에서 살짝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안경으로 본 메시지에도 여기 있는 그림들은 최고가들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채령 특유의 신선함과 재미는 살아있었다. 채령의 그림을 본 진 회장이 껄껄 웃었다.

16560301240655.jpg“안 작가의 그림은 재치가 넘치네요. 재밌어요.”

16560301240632.jpg“네. 정말 재능 있는 작가죠.”

16560301240655.jpg“한국화 시장이 지금 침체되어있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군요.”

16560301240632.jpg“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하루 빨리 한국화 시장이 활기를 띄기 바랍니다.”

그 말에 진 회장은 격한 공감을 하면서 작품 두 점을 가리켰다.

16560301240655.jpg“이 작품과 이 작품을 구매하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16560301240632.jpg“그럼요. 구매 가능합니다.”

진 회장이 신인 작가의 그림을 두 점이나 구매한다는 것에 사람들은 술렁였다. 거기에 나는 정점을 찍기로 했다.

16560301240659.jpg“저는 이 작품하고 이 작품이 좋은데요. 살 수 있을까요?”

나까지 작품을 사겠다고 하자 사람들은 헉하고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갤러리 대표인 이수현조차도 말이다. 그는 놀란 나머지 아무 말을 하지 못했고, 나는 세상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16560301240659.jpg“이미 팔렸나요……?”

16560301240632.jpg“……아니요. 아직입니다. 사실 수 있습니다.”

16560301240659.jpg“다행히 늦지 않았군요.”

그림을 살 수 있어 행복한 사람처럼 해맑게 웃었다. 나와 진 회장이 산 그림의 결제가 이루어질 동안 사람들은 채령의 그림을 아주 관심있게 쳐다봤다. 경매사로 얼굴이 알려진 것이 이럴 때는 좋구나. 시선을 모으는 것의 순기능을 제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 회의실이 경매팀 사람들로 가득 찼다. 후보 30인에 대한 투표를 확인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내가 담당자였기에 사람들을 보면서 물었다.

16560301240659.jpg“담당하는 커뮤니티 분들에게 연락은 다 왔나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번호를 하나 지정해서 문자투표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고객이 다른 번호로 문자를 보낼 경우 다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뿐더러, 고급스러운 신인 작가 경매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담당 스페셜리스트가 문자를 받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대부분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고미술팀 정연주가 손을 들었다.

16560301319103.png“인호 그룹 사모님께서 문자 보낼 줄 모른다고 전화로 연락 주셨는데요…….”

16560301240659.jpg“전화여도 상관없지만, 기록을 남겨야 하니까 절차에 맞춰 누구누구한테 투표하셨다고 답을 보내셔야 합니다.”

16560301319103.png“네. 지금 보내겠습니다.”

정연주가 바로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일하다 보면 상대가 오리발을 내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대방이 ‘갑’의 위치에 있을 경우 이것이 더 치명적이다. 분명히 말하는 대로 했는데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회의를 하든 전화를 하든 구두로 나간 것들은 기록하고, 상대방도 확인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했다.

16560301240659.jpg“혹시나 투표 방식에 대해 소통이 제대로 안 된 부분이 있을까 봐 투표 방식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4월 신인 작가 후원 경매에서 낙찰을 받은 분들이 47명이고, 이분들이 투표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습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16560301240659.jpg“한 고객당 후보 5인에게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집니다. 하지만 중복 투표는 허용되지 않고, 5인 이하 투표를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16560301240659.jpg“엑셀에 이미 입력하신 것은 알지만 다시 한번 이 자리에서 확인하겠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일인 만큼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16560301240659.jpg“백 책임님이 커뮤니티 고객 명단 불러주시고, 김 책임님이 엑셀에 입력된 것과 같은지 봐주세요.”

서류를 본 백 책임이 명단을 확인했다.

16560301240632.jpg“강도영 고객님.”

담당 스페셜리스트인 민 책임이 손을 들었다.

16560301240632.jpg“표연준, 신태유, 안채령. 총 세 명에게 투표하셨습니다.”

채령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김 책임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엑셀을 확인했다.

16560301240632.jpg“네. 맞습니다.”

백 책임이 다음 명단을 호명했다.

16560301240632.jpg“김나라 고객님.”

처음에는 속도가 더뎠지만 점점 가속도가 붙으면서 빨라졌다.

16560301240632.jpg“드디어 확인이 다 끝났네요. 이제 결과를 말씀해주시죠.”

슬며시 웃은 김 책임이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16560301240632.jpg“가장 많은 표를 받은 5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윤봄, 신태유, 허수빈, 민재신, 마지막으로 안채령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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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령이 뽑혔다는 것이 벅찼지만 담당자이기에 감정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웃는데 다영과 눈이 마주쳐서 웃음이 터질 뻔했다. 위험한 순간을 참아내고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16560301240659.jpg“5인의 작가가 선정되었다는 것을 내일 커뮤니티 고객들에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갤러리에는 담당자인 제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급하게 방식이 바뀌어서 준비하느라 힘들 테지만, 제가 더 많이 일할 테니 예쁘게 봐주세요.”

16560301240632.jpg“네.”

16560301319103.png“넵!”

최요한과 정연주가 우렁차게 대답해서 분위기가 갑자기 업됐다. 그 업된 틈을 타고 서정선이 두 손을 입에 모으고 장난스럽게 외쳤다.

16560301348235.jpg“한지감 예쁘다!”

그 바람에 모두 웃음이 터져서 깔깔거렸고, 나는 홍당무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멋지다도 아니고 예쁘다라니, 뭘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 채령의 작업실 앞에 도착한 나는 경환을 보며 인상을 썼다.

16560301240659.jpg“꼭 이렇게 해야겠냐?”

16560301378993.jpg“응. 나는 꼭 이렇게 해야겠어.”

경환이 단호하게 말했다. 10인의 발표되는 것은 내일이지만 결과는 이미 나왔다. 채령에게 한시라도 빨리 말해주고 싶었지만, 나보다는 경환이 이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감동이 배가 될 것 같았다. 원칙대로라면 옥션이 갤러리에 통보하고, 갤러리가 작가에게 알려주는 절차였기에 채령은 이수현 작가에게 사실을 고지받아야 했다. 더욱이 채령은 자신이 30인의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경환이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수현에게 양해를 받아 경환이 이 사실을 알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까지 배려를 해줬는데 경환이 꼭 나와 같이 가야 한다고 생떼를 부렸다. 내가 같이 가지 않으면 채령이 믿지 않을 거라나. 정 안 믿으면 내가 통화를 해주겠다고 해도 굳이 같이 가야 한다고 생떼를 부려서 어쩔 수 없이 온 것이다. 모처럼 둘이 감동적인 시간을 보냈으면 해서 배려한 것인데 그것이 무색해졌다.

16560301240659.jpg“알았다. 알았어. 초인종이나 눌러.”

16560301378993.jpg“응!”

한껏 신난 얼굴로 경환이 초인종을 누르자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채령이 나타났다.

16560301379005.png“오빠. 지감 오빠까지 웬일이에요?”

16560301378993.jpg“들어가서 이야기하자.”

눈이 휘둥그레진 채령을 밀고 경환이 들어갔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채령은 약간 불안한 듯했다.

16560301379005.png“정말 무슨 일인데요?”

16560301378993.jpg“놀라지 말고 들어.”

마른 침을 삼킨 경환이 채령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말을 이어갔다.

16560301378993.jpg“너, 신인 작가 경매에 작가로 선정됐어.”

움찔 놀랐던 채령이 픽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16560301379005.png“몰카구나? 그럴듯해 보이려고 지감 오빠도 같이 온 거죠? 그런데 저 안 속아요. 신청 자체를 안 했는데 어떻게 속아.”

나는 당연히 그녀가 감동의 눈물을 흘릴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6560301378993.jpg“형! 형이 말 좀 해봐.”

16560301240659.jpg“진짜야, 채령아. 이 작가님이 만약 떨어지면 네가 많이 힘들어할까 걱정하셔서, 내가 그냥 말하지 말자고 했어.”

그러자 채령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더니 화난 얼굴이 되었다.

16560301379005.png“그만해요. 저 진짜 화나려고 해요. 만우절도 아닌데 왜 이런 장난을 쳐요?”

하긴 신청했다는 말 자체를 듣지 않았는데 믿기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제야 경환이 왜 그렇게 생떼를 부리면서 날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납득이 갔다. 억울한 마음에 목소리가 커졌다.

16560301240659.jpg“정말이야.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이 작가님에게 전화 걸게.”

내가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들자 채령이 내 팔을 잡았다.

16560301379005.png“장난에 작가님 끌어들이지 말아요. 이런다고 안 속아요.”

16560301240659.jpg“전화를 걸어보면 알겠네.”

내가 이렇게 못 믿을 사람이었다니, 약간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채령은 핸드폰을 뺏으려 했다.

16560301379005.png“지감 오빠! 그러지 말아요!”

하지만 나에게는 압도적인 키가 있기에 손을 들면 그뿐이었다. 폴짝거리는 채령을 경환이 붙잡았다.

16560301240659.jpg“정말이라니까.”

그때 달칵하고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16560301240632.jpg[한 책임님, 안 작가는 잘 만났어요?]

이수현의 목소리에 채령은 헉하고 멈춰 섰고, 나는 손을 내려 전화를 받았다.

16560301240659.jpg“네. 만났어요. 안 작가 바꿔드릴 테니 축하 좀 해주세요.”

핸드폰을 내밀자 채령이 천천히 전화를 가져가 받았다.

16560301379005.png“네. 저에요. 대표님.”

16560301240632.jpg[좋은 소식을 들은 사람 목소리가 왜 이렇게 어두워요?]

16560301379005.png“아……. 그게…….”

16560301240632.jpg[아직 실감이 안 나겠지만, 진짜니까 좀 더 기뻐해도 돼요]

그 말을 듣고서야 채령은 사실이라는 것을 믿고, 울컥했다.

16560301379005.png“네……! 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신인 작가 경매에 신청하시겠다는 말도 없었잖아요…….”

16560301240632.jpg[떨어지면 안 작가가 상심할까 봐 그랬죠. 그런데 이렇게 선정된 것을 보니 괜한 걱정이었네요. 정말 축하해요.]

16560301379005.png“……네.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치자 채령의 울음은 커졌고, 경환은 그런 채령을 꼭 안고는 다독였다.

16560301378993.jpg“이렇게 좋은 날에 왜 울고 그래.”

16560301379005.png“……좋아서. 너무 좋아서…….”

오랜 기간 무명이었고, 힘겨운 시간을 견뎌왔기에 그 열매 앞에서도 채령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지켜보는 나조차도 울컥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나의 노고는 신인 작가 경매를 통해서 보상받았다. 채령이 작품이 다른 작가들보다 월등히 높은 가격으로 낙찰되었고, 그중 하나는 삼천만 원이나 되었다. 진 회장을 활용한 효과가 확실했다. 그것이 원래 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제 홍콩 지점 오픈을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고 마음을 조금 놓았을 때, 상상할 수조차 없는 회오리가 나를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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