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6화 기회 (1) (176/226)

176화 기회 (1)202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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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근처의 술집에서 경매 뒤풀이가 이루어졌다. 첫 오픈 경매에 낙찰률 100%를 달성한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모두 흥분한 상태였고, 그 흥분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백 책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16560302410112.jpg“오늘 정말 수고했어.”

16560302410116.jpg“잘돼서 다행이에요.”

옆에서 듣던 김 책임이 믿기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16560302410112.jpg“첫 경매에 낙찰률 100%라니, 이거 정말 엄청난 거 아니에요?”

16560302410112.jpg“그렇지. 미친 숫자지!”

흥분한 백 책임을 보는 김 책임의 눈길에는 신기함이 담겨있었다.

16560302410112.jpg“책임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니까 낯설어요.”

16560302410112.jpg“좋아할 만하니까 그렇지!”

그때 전 팀장이 박수를 쳐서 모두를 주목시켰다.

16560302410112.jpg“모두 주목! 총괄님의 건배사가 있겠습니다.”

그는 홍콩 직원들을 배려해 영어로 같은 말을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도균의 시선이 사람들이 아닌 나에게 쏠렸다.

16560302410142.jpg“오늘 건배사는 제가 아니라 한지감 책임이 해야 할 것 같군요.”

그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6560302410116.jpg“저……저는…….”

그때 동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내 이름을 연호했다.

16560302439179.jpg“한지감! 한지감! 한지감!”

이런 걸 싫어하는 백 책임마저 나를 떠밀었다.

16560302410112.jpg“안 일어서고 뭐해.”

결국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어서 영어로 천천히 말했다.

16560302410116.jpg“이렇게 건배사를 할지 조금 전만 해도 몰랐던 것처럼, 저는 오늘 경매대에 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곳곳에서 픽픽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웃겨서라기보다, 같은 상황을 싸워낸 사람들의 공감에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경매대에 오른 것은 나였지만 모두 같은 한마음으로 불안해했으리라. 위태위태한 외줄타기를 지켜보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다.

16560302410116.jpg“정말 도망가고 싶었지만 경매대에 올랐습니다. 경매대에 오른 건 저 혼자였지만 다 같은 마음으로 마음 졸이고, 뿐만 아니라 고객님들을 설득해서 응찰하신 것 알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16560302410112.jpg“한지감 멋지다!”

김 책임의 외침과 동시에 쩌렁쩌렁한 박수가 이어졌다. 그 속에는 기쁜 눈물을 삼키는 다영이 있었다. 그녀가 입술 모양으로 말했다.

16560302439202.jpg‘잘했어요.’

16560302410116.jpg‘고마워.’

다영이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같이 도망가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도망쳐버렸을 것이다. 그녀의 존재가 더, 더 애틋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김도균의 방을 찾았다. 미리 연락을 하고 왔지만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16560302410116.jpg“죄송해요. 너무 일찍 왔죠?”

16560302410142.jpg“아니야. 나도 일찍 일어나서 괜찮아. 코코아는 없고, 커피밖에 없는데 마실래?”

16560302410116.jpg“네. 주세요.”

아침마다 커피를 즐기는 취향은 아니었지만, 잠을 깨는 데 커피만 한 것은 없었다. 지금 해야 할 이야기는 최대한 맑은 정신 상태에서 꺼내야 했다. 나를 살피며 김도균이 따듯한 커피를 내밀었다.

16560302410142.jpg“잠은 좀 잤어?”

16560302410116.jpg“아니요. 잘 못 잤어요.”

16560302410142.jpg“성취해냈다는 기쁨 때문만은 아니겠지?”

16560302410116.jpg“네. 니콜라스 때문이에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김도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눈치챈 이상한 부분을 그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16560302410142.jpg“그래. 확실히 그게 걸리는 부분이지. 당일날, 그것도 몇 시간 전에 사표를 냈다는 건 굉장히 비상식적인 일이야.”

16560302410116.jpg“옥션 업계는 좁죠. 이런 소문은 단숨에 퍼져요. 이런 경매사를 다시 고용할 경매회사는 없죠.”

16560302410142.jpg“맞아. 니콜라스는 은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런 일을 벌인 거야.”

나도 김도균과 정확히 같은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이 일은 니콜라스가 단순히 개념 없는 인간이라서 벌인 일일 수가 없다. 그렇기엔 니콜라스가 떠안아야 하는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16560302410116.jpg“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그 정도를 감수할 정도라면, 니콜라스는 이 일은 혼자 벌인 것이 아닐 거예요. 누군가 그 뒤에 있어요.”

지그시 나를 보던 김도균이 물었다.

16560302410142.jpg“짚이는 사람이라도 있어?”

16560302410116.jpg“…….”

16560302410142.jpg“여기 우리 둘밖에 없어.”

16560302410116.jpg“김승재가 가장 의심스러워요. 니콜라스가 혹하는 액수를 제시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인물은 김승재가 유일하죠.”

강정휘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지만 재벌 3세인 김승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16560302410142.jpg“김승재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질문이 나올까 봐 이야기가 하기 싫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다.

16560302410116.jpg“처음엔 이 관장과 제 관계를 의심하는 줄 알았는데, 제가 다영이랑 사귀는 줄 아는데도 이러는 것을 보면 그냥 미운털이 박힌 것 같아요. 지방대 출신이 미술계에 설쳐대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거죠.”

미술은 대중과 떨어져 있는 자들의 영역으로 평가된다. 그런 곳에서 집안이 부유하지도 않고, 미대를 나오지도 않은 데다가 지방대 출신인 내가 주목을 받는다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16560302410142.jpg“만나서 대화는 해봤어?”

16560302410116.jpg“대화가 아니라 경고를 했죠…….”

내 말에 김도균은 감을 잡고 말했다.

16560302410142.jpg“설마, 지난번 이기환 ‘산’ 낙찰 철회도 김승재가 벌인 일이야?”

16560302410116.jpg“……네.”

대화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김도균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어쨌든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기에, 나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떨궜다.

16560302410116.jpg“정말 죄송해요…….”

16560302410142.jpg“지감이 네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 사람은 김승재야.”

16560302410116.jpg“어쨌든 저 때문에 회사에 피해를 끼쳤잖아요.”

16560302410142.jpg“아니, 오히려 남는 장사였지. 이 관장이 넉넉하게 값을 쳐서 주도록 네가 만들었고, 낙찰 철회로 인한 수수료 30%도 받았잖아.”

응찰에 신중을 기하라는 뜻에서, 낙찰을 철회하려면 낙찰가의 30%를 지불해야 했다.

16560302410116.jpg“그거야 운이 좋았던 거죠. 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회사에 피해가 가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16560302410142.jpg“하지만 그 피해를 넌 더 좋게 갚아 주었잖아. 어제 니콜라스가 경매대에 섰어도 100% 낙찰률을 이끌어내진 못했을 거야.”

김도균의 위로에도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이른 아침 이곳까지 온 이유를 털어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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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0302410116.jpg“저는 일단 이번 일을 정말 김승재가 벌인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어쩌면 니콜라스가 홍콩의 탑 옥션에 온 것조차 김승재의 계획의 일부일 수도 있다. 니콜라스가 탑 옥션을 택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업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면 모를까, 외국 옥션 업계까지는 정보력이 미치지 않았다. 터너와 같은 외국 고객들이 있었지만, 이런 일에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나로서는 용납되지 않아 김도균을 찾아온 것이다.

16560302410142.jpg“알았어. 내가 확인해 볼게. 정말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안 좋은 생각은 하지 마.”

16560302410116.jpg“……네.”

그렇게 답하면서도 나의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정말 이 일이 김승재가 벌인 일이라면 나는 탑 옥션에 없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이 무거워졌다. *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휴가를 쓰고 집에 틀어박혔다. 경환이 출근을 준비하면서 나를 걱정스럽게 봤다.

16560302527275.jpg“오늘도 회사 안 나가?”

16560302410116.jpg“내일까지는 안 나간다고 했잖아. 네가 내 부인도 아니고, 뭘 그렇게 묻냐?”

16560302527275.jpg“아니 하드워커가 일을 안 하니까 불안해서 그렇지.”

16560302410116.jpg“하드워커도 휴식 시간은 필요하거든?”

내 말에 경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16560302527275.jpg“하긴, 몇 달 동안 형 진짜 바빴지. 메이저 경매, 신인 작가 경매, 홍콩 경매까지! 심지어 예정에 없이 경매사로 서기까지 하고.”

16560302410116.jpg“그래. 그래서 좀 쉬려는 거야. 결혼 준비는 잘되고 있어?”

부끄러운지 경환이 볼을 붉히면서 말했다.

16560302527275.jpg“당연히 잘되고 있지.”

요새 경환은 신혼집을 꾸민다는 핑계로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거의 신혼집에서 지내면서 채령과 시간을 보냈다.

16560302410116.jpg“아주 달콤한 시간을 보내나 보네.”

16560302527275.jpg“질투 나면 형도 다영 씨랑 빨리 결혼해!”

16560302410116.jpg“다영이가 준비가 돼야 하지.”

으스대며 경환이 얄밉게 굴었다.

16560302527275.jpg“형이 믿음을 별로 주지 못했으니까 그렇지.”

16560302410116.jpg“그런 거 아니거든?”

16560302527275.jpg“네네. 그러세요.”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경환이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16560302527275.jpg“나 오늘 안 들어올지도 몰라.”

16560302410116.jpg“언제는 들어왔냐? 오늘도 새벽에 옷 갈아입으러 왔으면서.”

16560302527275.jpg“헤헤. 들켰네. 그럼 쉬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경환은 나갔고, 나는 소파에 누웠다.

16560302410116.jpg“12월 메이저 경매 준비해야 하는데…….”

몸은 쉬고 있는데 마음은 그러지가 못했다. 홍콩 경매에서 느낀 짜릿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 다시 경매대에 서고 싶다. 이런 스스로를 보면서 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6560302410116.jpg“사람들 시선 받는 거 그렇게 싫어하면서, 어떻게 경매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드냐?”

아직도 시선이 쏟아질 때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경매대에서만은 사람들의 시선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토록 나를 옭아맸던 시험 공포증을 어느 정도는 극복한 것이다.

16560302410116.jpg“한지감 성공했네. 돈도 많이 벌고, 시험 공포증도 극복하고.”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이제 한국 미술계에서 내 이름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토록 원하는 조직 안에서의 성공을 제대로 맛봤다.

16560302410116.jpg“이 정도면 되지 않나?”

탑 옥션에서 있고 싶었지만 피해를 끼치면서까지 있고 싶진 않았다. 그때 김도균에게서 전화가 왔다. 직감적으로 그가 니콜라스의 배후를 확인하고 준 전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16560302410116.jpg“네. 총괄님.”

16560302410142.jpg[니콜라스에 대해서 조사해봤는데, 네가 생각했던 게 맞는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6560302410116.jpg“김승재가 그 뒤에 있군요.”

16560302410142.jpg[응. 니콜라스 이 자식, 몰랐는데 아주 더러운 자식이더라고. 그런데 김승재가 돈 써서 그 소문을 다 막았어…….]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거지만 착잡하다.

16560302410116.jpg“……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16560302410142.jpg[지감아. 넌 지금 탑 옥션에 중요한 자산이야. 네가 스스로의 커리어를 위해서 모를까, 타의에 의해 떠나진 않았으면 좋겠다.]

16560302410116.jpg“……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없이 전화를 끝내고 나서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다시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액정을 보지 않고 김도균이라 여기며 전화를 받았다.

16560302410116.jpg“너무 걱정하지…….”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김도균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우리나라 말이 아닌 영어였다.

16560302410112.jpg[한지감 씨 되십니까?]

16560302410116.jpg“네. 누구시죠?”

16560302410112.jpg[전화로는 처음 인사드리네요. 크리스티의 로버트입니다.]

메일로만 안부를 주고받던 그 사람이었다. 나는 놀라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16560302410116.jpg“안녕하세요. 전화를 주시다니 놀랐습니다. 지금 뉴욕은 밤인가요?”

16560302410112.jpg[뉴욕은 밤일 테지만 저는 한국에 있어서요.]

16560302410116.jpg“한국에 계시다구요?”

16560302410112.jpg[네. 일이 있어서요. 지감 씨를 만나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을 했습니다. 뵐 수 있을까요?]

지금 머리가 복잡했기에 만나는 것이 꺼려졌지만 멀리서 왔기도 했고, 언제 또 볼지 모르기에 오늘 보지 않는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

16560302410116.jpg“좋습니다. 어디서 뵐까요?”

  * 한 시간 후. 나는 회사 근처에서 로버트를 만났다. 그는 상상했던 것처럼 뉴욕이라는 도시에 어울리는 세련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16560302410112.jpg“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한지감 씨.”

16560302410116.jpg“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6560302410112.jpg“한지감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16560302410116.jpg“저를요?”

한국에 온 김에 나를 만나러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이유가 전혀 상상되지 않아 나는 의아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6560302410112.jpg“네. 저는 한지감 씨를 스카웃하기 위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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