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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화 안경의 주인 (1) (186/226)

186화 안경의 주인 (1)202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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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재는 인적이 드문 뒷골목으로 걸어들어갔다. 그곳에는 차 한 대가 있었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조수석에 탔다. 흥신소 직원이 애써 웃는 얼굴로 그를 맞았다.

16560306383067.jpg“오셨습니까?”

16560306383073.jpg“인사는 집어치우고 이번에는 확실하겠죠?”

16560306383067.jpg“네. 확실합니다. 서인범이 변호사를 통해 매달 비용을 지불하는 곳입니다.”

아무리 인심 좋은 사람이라도 일을 그만둔 가정부의 양로원 비용까지 부담하지 않는다.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확신이 점점 짙어졌다.

16560306383073.jpg“출발해요.”

16560306383067.jpg“네.”

차는 서울 외곽에 있는 허름한 요양원에서 멈췄다. 안으로 들어선 김승재는 병원 냄새 때문에 눈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본 흥신소 직원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16560306383067.jpg“괘……괜찮으십니까?”

16560306383073.jpg“빨리 수속이나 밟아요.”

16560306383067.jpg“네.”

평소였다면 난리를 쳤을 테지만, 한지감의 비밀을 곧 알게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그를 들뜨게 했다. 가정부의 친척으로 위조된 자료로 면회 수속을 밟았다. 그 이후 흥신소 직원과 김승재는 서인범의 집에서 오래 일했다는 가정부를 만날 수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그녀는 두 사람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초점 잃은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흥신소 직원이 가정부에게 다가서서 대화를 시도했다.

16560306383067.jpg“할머니. 할머니!”

부르는데도 초점 잃은 눈빛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 그런데 그때, 무심코 시선을 돌린 가정부가 김승재를 보고 반응했다.

16560306383067.jpg“도……도련님! 왜 이제 오셨어요. 사장님이 얼마나 기다리셨는데…….”

씨익. 입꼬리를 사악하게 끌어올린 김승재가 흥신소 직원을 보고 말했다.

16560306383073.jpg“그만 나가 보세요.”

16560306383067.jpg“아아, 네.”

한지감과 강정휘가 공유한 비밀이 궁금했던 직원은 밍기적거리면서 방을 나갔다. 그제야 김승재는 가정부에게 다가서서 입을 열었다.

16560306383073.jpg“아줌마. 잘 지내셨어요?”

16560306383067.jpg“네. 전 잘 지냈어요, 범이 도련님.”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애틋한 눈길로 김승재를 봤다. 김승재가 그녀의 눈에는 서인범을 보이는 것이다.

16560306383073.jpg“저도 잘 지냈어요. 일이 바빠서 못 왔어요.”

16560306383067.jpg“사장님께 인사는 드리셨어요?”

16560306383073.jpg“그럼요. 드렸죠.”

16560306383067.jpg“잘하셨어요. 사장님도 이제 늙으셨어요. 도련님이 곁을 지켜주셔야 해요.”

그녀의 시간은 아직 서인범의 부친인 서동효가 죽기 전에 멈춰있는 듯했다. 이제 장단을 맞춰줬으니 비밀을 알아낼 차례였다. 문제는 어떻게 낚시질을 하느냐. 그가 알고 있는 정보는 여기에 강정휘와 한지감이 연관되었다는 것뿐이었다. 서인범과 한병수는 친구 관계이니, 아무래도 한지감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16560306383073.jpg“지감이 기억나세요?”

16560306383067.jpg“지감이요?”

16560306383073.jpg“왜 골동상 운영하는…….”

16560306383067.jpg“아…… 그럼요. 도련님이 자주 이야기하셨잖아요. 빨리 도련님도 결혼을 하셔서 아이를 낳으셔야 할 텐데. 예쁜 아가씨들이 참 많은데, 왜 다 싫다고 하셨어요.”

엄마같은 잔소리에 김승재의 미간을 찌푸려졌다. 그에게 엄마는 항상 같은 곳을 지키는 답답하고 짜증나는 존재였다.

16560306383073.jpg“잔소리 그만하죠. 엄마도 아니고.”

날카로운 반응에 가정부는 움츠러들었다.

16560306383067.jpg“죄송해요. 도련님……. 늙은이가 말이 많아서.”

아무래도 한지감에게 직접적으로 이어진 단서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럼 강정휘인가? 강정휘와의 별다른 관련성은 나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그는 부드럽게 태도를 바꾸었다.

16560306383073.jpg“아니에요. 제 말이 심했어요. 정휘는 잘 지내요?”

16560306383067.jpg“정휘요? 정휘가 누구예요?”

16560306383073.jpg“갤러리 대표요.”

그제야 떠오른 듯 가정부는 환하게 미소지었다.

16560306383067.jpg“정분이요? 네. 잘 지내요. 이제 화랑이 꽤 자리잡은 것 같더라구요.”

강정휘의 원래 이름이 강정분이었나? 몰랐던 사실이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6560306383067.jpg“정분이도 빨리 결혼을 해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아이를 낳으려면…….”

다시 쏟아지는 잔소리에 김승재의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이 정도면 가정부도 비밀에 대해서 모르는 것 아닐까.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그는 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16560306383073.jpg“시간이 너무 지났어요.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요. 잘 계세요.”

돌아서는 그의 뒷통수에 대고 가정부가 소리쳤다.

16560306383067.jpg“도련님……. 사장님이 안경을 주시더라도 절대 쓰지 마세요. 위험한 물건이에요.”

그 순간, 김승재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쫓던 비밀의 실체가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6560306383073.jpg“안경이요?”

16560306383067.jpg“네. 그 요상한 물건 때문에 도련님이 다칠까 봐 두려워요.”

16560306383073.jpg“어떻게 요상한데요?”

16560306383067.jpg“그걸 보면…… 가격이 보이잖아요. 쓰면 몸으로 흡수되구요…….”

김승재를 두 손으로 꼭 잡고 그녀는 애원하듯 말을 이어갔다.

16560306383067.jpg“돈은 벌 수 있겠지만, 위험한 물건이에요. 도련님은 절대 쓰시면 안 돼요. 아셨죠?”

알았다는 대답을 하지 않자 가정부는 발작하듯 뒤집어졌다.

16560306383067.jpg“아셨죠……! 절대 안 돼요. 절대……!”

소란을 듣고 들어온 흥신소 직원이 재빠르게 간호사를 호출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돌아오는 차 안, 한지감과 강정휘의 비밀이 궁금했던 흥신소 직원이 떠보듯 김승재에게 물었다.

16560306383067.jpg“무슨 일이 있었길래 발작을 한 거예요?”

16560306383073.jpg“아주 재밌는 일이 있었어요.”

16560306383067.jpg“무슨…… 일인데요?”

16560306383073.jpg“운전이나 집중해요.”

싸한 김승재의 눈길이 닿자 직원은 움찔했다.

16560306383067.jpg“네…….”

창밖을 바라보면서 김승재는 생각에 잠겼다. 가격을 보는 안경이 있다, 이 이야기를 한다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저 구전되는 전설의 물건, 그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재벌이 된 서동효, 미술품을 보는 눈 하나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가진 한지감의 존재가 여기에 더해진다면, 그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는 현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강정휘가 왜 한지감에게 그렇게 집착하는지도 설명이 된다. 그녀의 집착 대상은 한지감이 아니라 안경인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김승재는 안경의 존재를 확신하게 됐다. 안경이 존재한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안경을 뺏어 자신의 손에 넣는다. 한지감에게 복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부를 누릴 수도 있다. 그런 안경과 함께라면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16560306383073.jpg“현성을 밟아주는 것 또한, 일도 아니지.”

그렇게 이룩한 부로 현성을 무너트릴 것이다. 이수지가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매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는 음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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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 회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16560306495685.jpg“한 선생, 잘 지냈어요?”

1656030649569.jpg“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16560306495685.jpg“시간이 너무 늦었죠?”

1656030649569.jpg“괜찮습니다.”

곧 있으면 자정을 넘기는 시간이다. 강 회장이 요새 너무 바빠, 이 시간이 아니면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나는 부드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1656030649569.jpg“작년에 ‘고미술의 밤’에서 뵙고 처음이네요.”

16560306495685.jpg“벌써 그렇게 됐군요.”

작년에 나는 강회장의 전문가 자격으로 ‘고미술의 밤’에 참가했다. 차를 마시면서 강 회장이 말을 이어갔다.

16560306495685.jpg“오래 전에 골동상을 그만둔 한 선생이 전문가 자격으로 참가했다고, 사람들이 못마땅해했죠.”

1656030649569.jpg“그랬죠.”

골동상을 단순히 그만둔 것이 아니라 옥션으로 넘어갔고, 유명한 경매사로 알려진 내가 골동품 전문가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 좋아 보일 리 없었다. 나도 이를 걱정해 강 회장에게 다른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를 했지만, 강 회장은 꼭 내가 갔으면 좋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에게 도움 받은 것이 많기에 나는 이를 받아들였다. 옆에 있던 비서실장이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16560306522023.jpg“그런 사람들을 감정으로 보기 좋게 누르지 않았습니까.”

16560306495685.jpg“그랬지. 아주 멋졌어.”

그곳에서 마주친 다른 감정사는 가품을 진품으로 감정하고도 기고만장해 나에게 싸움을 걸었고, 나는 왜 가품인지 요목조목 따져가며 설명했다. 그러자 나에게 거부반응을 보이던 이들도 어느새 호의적으로 태도를 바꿨다. 그때를 떠올리면서 강 회장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16560306495685.jpg“한 선생은 뉴욕에서 일하면서도 고미술품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나 봐요? 전혀 실력이 녹슬지가 않았던데요?”

1656030649569.jpg“골동상으로 시작해서인지, 고미술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요.”

16560306495685.jpg“뉴욕에 있으면서 고미술품을 보기 어렵지 않아요?”

1656030649569.jpg“한국 고미술품 기획 전시하는 곳이 있으면 꼭 갔죠. 한국에 들어오면 아버지 가게에서도 틈틈이 보구요.”

이제 현대미술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고미술이 싫어진 것은 아니었다. 고미술은 나의 뿌리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힘들 때는 항상 고미술에 의지하게 된다.

16560306495685.jpg“갤러리를 만든다구요?”

1656030649569.jpg“네. 내달 초에 진 회장님 컬렉션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6560306495685.jpg“한 선생이 한다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죠.”

환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는데, 친절한 미소 속에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 불안했지만 겉으로는 넉살 좋게 웃었다.

1656030649569.jpg“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16560306495685.jpg“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당연한 거죠.”

‘우리 사이’라는 단어는 별로 좋은 징조가 아니다. 관계를 드러내는 단어를 택했다는 것은 부탁할 일이 있다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부러 가볍게 말했다.

1656030649569.jpg“너무 잘해주셔서 조금 두려운데요. 혹시 부탁할 일이라도 있으세요?”

그렇게 물어보면서도 없다는 대답이 나오기를 바랐다. 묘한 미소를 지은 강 회장이 답했다.

16560306495685.jpg“한 선생은 역시 눈치가 빨라요.”

그러고는 비서실장을 보고 눈짓했고, 그가 자리를 비웠다. 그렇게 거실에는 나와 강 회장만 남았다. 비서실장까지 나가게 한 것을 보면 보통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긴장했다.

1656030649569.jpg“무슨 일인지 궁금하네요.”

16560306495685.jpg“위험성은 높지만, 한 선생에게 많은 도움이 될 일이에요.”

‘위험성이 높다’는 말을 듣자 뒤에 이어지는 말을 안 듣고 싶었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강 회장이었기에, 듣지도 않고 일어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슬쩍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

1656030649569.jpg“위험성이 높다 하시니 벌써 불안하네요.”

16560306495685.jpg“좋은 기회이기도 해요. 최기석 대통령과 관련된 일이에요.”

그 한마디에 나는 어떤 일인지 알아차렸다.

1656030649569.jpg“자금 세탁과 관련된 것이군요.”

16560306495685.jpg“맞아요.”

정확히는 ‘비자금 세탁’이다. 나한테 강정휘, 이수지가 하는 일을 하라고 요구한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드는데, 강 회장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16560306495685.jpg“한 선생 성격에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도와준다면 갤러리가 자리 잡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실 거고, 힘써준 것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을 거예요.”

비자금 세탁을 맡으면 최기석이 넓은 인맥을 소개해줄 것이다. 인맥은 갤러리를 성공시키는 데 무시할 수 없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성공했다. 게다가 최기석의 주변인이라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다. 갤러리가 빨리 자리 잡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상응하는 보상은 수수료를 말하는 것일 거다. 모르는 사람들은 수수료가 얼마나 하겠냐고 생각할 테지만, 대통령의 비자금은 천문학적 단위다. 최소 천억 이상이고, 조를 넘길 수도 있다. 그 돈이라면 수수료를 10%만 받는다고 해도 무시하지 못할 금액이다. 갤러리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유혹적인 조건이었지만, 감수해야 할 부분이 너무 컸다. 시간을 두고 생각하면 그 유혹에 넘어갈 것 같아 나는 바로 거절할 마음을 먹었다.

1656030649569.jpg“감사하지만…….”

내 말을 자르고 강 회장이 말했다.

16560306495685.jpg“한 선생. 딱 일주일만 고민해줘요. 나를 생각해서라도.”

1656030649569.jpg“……네. 알겠습니다.”

  * 차를 타고 집으로 가면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1656030649569.jpg“받아들일까……? 하지만 너무 위험한데…….”

못한다고 확실하게 못박을걸……. 괜히 생각해 본다고 했다. 이렇게 시간을 주면 내 마음이 흔들릴 거라는 사실을 강 회장은 알았다. 가만 보면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1656030649569.jpg“거기에 넘어간 내가 잘못이지.”

머리가 지끈지끈거린다.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창밖을 보니 한산한 도로가 들어왔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인적도 드물고, 차도 거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쾅! 굉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이 몸을 흔들리면서 에어백이 터졌다. 그래서 차에 몸이 직접적으로 닿진 않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656030649569.jpg“아……아…….”

차가 뒤에서 박은 모양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충격이 더 이어지진 않았지만 머리가 울리고, 몸에서는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운전석에서 비틀거리면서 빠져나왔다.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보이는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1656030649569.jpg“이봐요. 운전을 이렇게…….”

나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남자의 표정에는 조금의 미안함도 담겨 있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에 나는 이것이 고의적인 사고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다시 차에 타려 했다. 빠르게 다가온 남자가 나의 덜미를 잡았고, 나는 이를 악물고 발로 급소를 찼다. 예기치 못한 반격에 남자는 넘어졌다. 이제 빨리 여기를 떠나기만 하면 된다. 다시 차 문을 여는데 누군가 나의 머리를 가격했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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