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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화 안경의 주인(3) (188/226)

188화 안경의 주인(3)202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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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을 내놓지 않으면 죽이기라도 할 기세다.

16560306877944.jpg“알겠어요. 지금 하죠.”

하겠다는 말을 하자 김승재는 사람들을 다 나가게 했다.

16560306877948.jpg“이제 시작해.”

나는 서인범이 말해준 벗는 방법을 떠올리면서 두 손을 귓불로 가져갔다. 방법을 들은 이후에도 한 번도 안경을 벗은 적이 없기에 긴장이 됐다. 미간을 찌푸린 김승재가 의심가득한 눈으로 나를 본다. 귀 모양을 따라 천천히 손을 올리자, 손에 무언가 잡히면서 안경이 나에게서 빠져나왔다. 안경의 모습을 본 김승재는 잠시 멍해지더니, 총을 바닥에 떨어트리고는 가로채듯 가져갔다. 번들거리는 그의 눈은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절대반지에 눈이 먼 인물들처럼 보였다.

16560306877948.jpg“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16560306877944.jpg“그냥 쓰면 돼요.”

그는 얼른 안경을 썼고, 안경이 흡수되면서 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처음 안경을 썼을 때 느꼈던 전류를 느끼는 것 같았다. 신기해하는 것도 잠시 핸드폰을 본 그가 인상을 썼다.

16560306877948.jpg“왜 아무것도 안 보여?”

안경의 작동원리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한 건 아닌 모양이다.

16560306877944.jpg“아무거나 보이는 게 아니에요.”

16560306877948.jpg“그러면?”

안경을 빼앗긴 상황에서 가이드까지 해줘야 하냐? 턱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간신히 참고 말했다.

16560306877944.jpg“제가 여기서 나가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면 말씀드리죠.”

그 말에 김승재가 싸한 표정을 지었다.

16560306877948.jpg“내가 널 뭘 믿고?”

16560306877944.jpg“그럼 전 그쪽을 어떻게 믿죠? 이렇게 나를 납치까지 한 사람이 순순히 놔주리라는 법이 있어요?”

16560306877948.jpg“…….”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는지 김승재는 입을 다물었다. 모든 신경이 안경에만 가 있어, 뒤처리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생각을 정리한 김승재가 말했다.

16560306877948.jpg“네가 말하지 않아도 대강 알아. 확인하려는 것뿐이야.”

16560306877944.jpg“그러니까 이대로 확인해 드릴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짜증스럽게 미간을 찌푸린 김승재가 남자를 불렀다.

16560306877948.jpg“복면 씌워.”

남자는 엉거주춤 나에게 복면을 씌우고 그곳에서 나를 데리고 나가 차에 태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데려가는지 내심 불안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스파이처럼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보이지 않아서인지 방향감각을 금세 상실했다. 한참이 지난 뒤, 나를 끌고 다니던 남자는 내 주머니에 무언가를 쑤셔 넣었다.

16560306877944.jpg“뭐하는 겁니까?”

말이 마치기가 무섭게 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정차하더니 나를 차 밖으로 내팽개쳤다. 복면을 벗었을 때 이미 차는 빠르게 멀어졌고, 급하게 번호를 확인하려 했지만 번호판이 떼어진 차량이었다.

16560306877944.jpg“이런 제길……!”

그때 갑자기 낯선 벨소리가 내 주머니에서 났다.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어 보니 폴더폰이었다. 아까 이걸 쑤셔 넣은 거구만. 어디서 본 건 많아가지고. 짜증을 내면서 나는 전화를 받았다.

16560306877944.jpg“여보세요.”

16560306877948.jpg[이제 말해 줘야지?]

그냥 핸드폰을 끊을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16560306877944.jpg“하나만 약속하시죠. 다시 이런 일로 나를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16560306877948.jpg[원하는 거 더럽게 많네! 그럼 너도 약속해. 경찰에 나에 대해서 불지 않겠다고.]

너 같으면 말하겠냐? 너에 대해서 말하려면 안경의 존재까지 밝혀야 하는데? 하여간 머리는 더럽게 나빠요.

16560306877944.jpg“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16560306877948.jpg[이제 말해봐.]

16560306877944.jpg“그동안 쌓으셨던 지식이 있는 분야의 물건을 보면 가격이 보일 겁니다. 미션을 수행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구요.”

16560306877948.jpg[미션을 수행하지 못하면?]

16560306877944.jpg“그건 저도 모르겠는데요.”

버럭 김승재가 소리를 질렀다.

16560306877948.jpg[그걸 모르면 어쩌자는 거야?]

16560306877944.jpg“수행하지 못했던 적이 없거든. 이제 네가 썼으니까 알아서 해.”

16560306877948.jpg[야. 이…….]

내가 전화를 뚝 끊어버렸기 때문에, 거슬리는 김승재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서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16560306877944.jpg“여기가 대체 어디야?”

드문드문 상가가 있지만 불이 꺼져 있고, 거리에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차도 다니지 않는다. 차 사고가 날 때 핸드폰도 지갑도 차에 두고 내렸던 터라, 나는 김승재가 준 폴더폰을 들었다. 하지만 폴더폰은 수신만 가능할 뿐, 발신정지 처리가 되어 있었다.

16560306877944.jpg“이 새끼가…….”

발신정지 상태에서도 통화는 가능하다. 112를 눌렀지만 통화는 누르지 못했다.

16560306877944.jpg“경찰한테 뭐라고 설명할 건데……!”

욕을 뱉어내면서 핸드폰을 땅에 던지고 짓밟으며 화풀이를 했다. 결국 나는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주변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야심한 시각이라 그런지 사람이 아무도 없어 정말 난감했다. 10분 넘게 걸었을 때쯤 버스 정류소가 눈에 들어왔다. 기적처럼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이고, 자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조심스레 남자를 흔들어 깨웠다.

16560306964114.jpg“아…… 뭐야!”

신경질적인 반응에도 나는 겁먹지 않았다. 납치당한 것에 비하면 아주 훌륭한 상황이다. 게다가 내가 짜증을 낼 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가. 고개를 돌린 남자가 나를 보더니 움찔했다. 아마도 김승재에게 맞아 멍이 든 자국 때문일 터였다.

16560306877944.jpg“깨워서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핸드폰하고 지갑 아무것도 없어서요……. 전화 한 통만 쓸 수 없을까요? 사례는 반드시 하겠습니다.”

16560306964114.jpg“……쓰슈. 사례는 됐수.”

불쌍해 보였다 보다. 어쨌거나 핸드폰을 얻었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나는 핸드폰을 빌려 김태하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 운전을 하면서도 김태하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연신 나를 힐긋거렸다. 나는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16560306877944.jpg“저 괜찮아요.”

16560306964134.jpg“납치당한 사람이 괜찮을 리가 있어? 나 때문에 안 그래도 트라우마 있을 텐데…….”

16560306877944.jpg“트라우마는 아니에요. 오히려 그때 경험이 있어서 덜 쫄았다니까요.”

너스레를 떠는데도 김태하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16560306877944.jpg“사실 괜찮지 않아요. 납치된 것보다, 이제 안경이 저한테 없다는 게 너무 헛헛해요.”

사람이란 것이 참 간사하다. 아까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지 막막해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김태하를 만나 차에 오르니, 이번에는 안경이 없다는 것에 마음이 헛헛하다. 보이지 않을 뿐 안경은 여전히 나에게 있다고, 그렇게 멋대로 생각하고 싶다. 방금 전 일어난 일은 그저 악몽이었으면……. 그렇게 자꾸 부질없는 마음이 들었다. 얕은 한숨을 쉬며 나는 물었다.

16560306877944.jpg“안경 없이 제가 갤러리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

16560306964134.jpg“당연하지.”

김태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16560306964134.jpg“여태까지 이뤘던 성과들은 네 능력으로 만들어 낸 거야.”

16560306877944.jpg“아니요. 안경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안경이 있어서 골동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스페셜리스트로 전향했을 때도 안경이 주는 정확한 정보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경매사도 마찬가지다.

16560306964134.jpg“안경이 도움은 줬겠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진 않았어. 다만 네 능력을 발현시킬 기회를 줬던 거지.”

내가 힘들어하니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적잖은 위로가 됐다.

16560306877944.jpg“형. 위로를 참 잘하시네요.”

16560306964134.jpg“위로는 무슨. 진심이야. 내 성격이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는 것 알잖아.”

그는 숨을 고르고 계속 말했다.

16560306964134.jpg“위기는 기회라잖아. 이번 기회에 스스로에게 증명해 봐. 안경 없이도 충분히 성공시킬 수 있다는 걸.”

김태하의 말이 맞다. 세계적인 경매사란 명성을 가졌지만 나는 항상 의심했다. 이것이 내 능력으로 이룬 것들이 맞는지, 안경이 가져다준 것은 아닌지. 그래서 더 노력했지만 말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기회로 삼아보자고 나는 다짐했다.

16560306877944.jpg“형. 저 데려다 주시고, 아버지랑 다영이 집 좀 살펴주실 수 있어요?”

16560306964134.jpg“직접 가 보지, 왜?”

16560306877944.jpg“얼굴이 이래서요.”

김승재에게 맞아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몸만 묶여있지 않았으면 흠씬 패주는 건데……. 열이 받는다.

16560306964134.jpg“알았어. 그런데 얼굴에 난 상처는 어떻게 할 거야? 계속 피해 다닐 수도 없고. 잘 피해 다닌다고 해도 소문 금방 날 만큼 좁은 동네라며.”

업계에 들어온 이후로 늘 주목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엔 그 관심이 더 심해졌다. 내가 망했으면 하는 사람들과, 내가 어떤 걸 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 관심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이런 몰골로 갤러리에 나갔다가는 50부작 분량의 대하사극 소문이 돌아다닐 것이 분명하다.

16560306877944.jpg“어떻게 할지 머리 좀 굴려봐야죠.”

당분간 숨어서 신재범에게 모든 걸 맡긴다고 해도, 일주일 후에 있을 첫 전시에는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 갤러리를 오픈하는데 대표가 얼굴을 내밀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 진짜 어떻게 하지. 무슨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굴리는 사이에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16560306964134.jpg“왜 경찰이 있지?”

고개를 돌리니, 김태하의 말대로 경찰차과 정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보였다. 차에서 내려 무슨 일인가 하고 보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60307012109.jpg“모르겠어요. 어떻게 된 건지. 어젯밤까지 분명 연락이 됐거든요……. 강 회장님 뵈러 간다고 했는데…….”

다영의 목소리였다. 다가가니 경찰관들에게 가려있었던 다영이 보였고, 다영도 곧 나를 발견했다. 그녀가 달려와 나에게 안겼다.

16560307012109.jpg“오빠……!”

김태하에게 납치되었을 때처럼.

16560306877944.jpg“다영아…….”

눈물을 터트리면서 다영은 나에게 물었다.

16560307012109.jpg“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차가 왜 도로에 버려져 있어요? 연락도 안 되고…….”

내가 사라졌던 걸 어떻게 알았나 했더니, 아무래도 도로변에 버려진 내 차 때문인 것 같았다. 머리가 돌아가는 인간이라면 나를 납치한 후 차를 은밀한 곳으로 옮겼을 것이다. 하지만 김승재의 머리로는 그게 불가능했을 터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별일이 아닌 것처럼 거짓말을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러기엔 상황이 너무 비정상적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16560306877944.jpg“납치……됐었어.”

16560307012109.jpg“누구한테요?”

16560306877944.jpg“눈을 가리고 있어서 그건 모르겠어. 갤러리 업계를 떠나라고, 안 그러면 너랑 아버지를 가만히 안 두겠다고 그러더라…….”

16560307012109.jpg“도대체 누가……?”

상황을 지켜보던 경찰관이 나에게 다가왔다.

16560306964114.jpg“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16560306877944.jpg“주변 사람에게 보복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경찰관은 더 묻지 않고, 나중에 경찰서로 가서 진술을 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핸드폰과 지갑을 받아서 다영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16560307012109.jpg“정말 누군지 모르겠어요?”

16560306877944.jpg“음성변조기를 쓰고 있어서 누군지 알 수가 없었어.”

16560307012109.jpg“그런데 왜 김 선배를 불렀어요? 나를 부르지.”

16560306877944.jpg“걱정할까 봐 그랬지.”

16560307012109.jpg“다음부터는 나를 불러요. 당연히 내가 알아야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60306877944.jpg“알았어. 그럴게.”

범인을 뻔히 알고 있는데 누구인지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 기가 막히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다영은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16560307012109.jpg“얼른 씻고 자요.”

16560306877944.jpg“너도 자야 하는 거 아니야? 나 때문에 못 잤잖아. 출근도 해야 하고.”

16560307012109.jpg“전 괜찮아요. 빨리 씻고 나와요.”

다영이 나를 욕실로 밀어 넣었다. 씻고 나는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내 몸의 일부가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6560306877944.jpg“고작 6년 있었는데 몸의 일부가 됐냐…….”

스스로를 조소하고는 시계를 보니 새벽 6시다. 남들이 일어날 시간에 잠을 청해야 하다니, 망할 김승재. 화를 누르고 나는 눈을 감았다.

16560306877944.jpg“빨리 잠들어라. 한두 시간만 딱 자고 일어나자.”

피곤해서 자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잠을 자고 나면 며칠 지난 것처럼 거리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럼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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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이 느껴져 눈을 뜨는데, 납치당했을 때 나를 비췄던 손전등이 떠올라 흠칫했다.

16560306877944.jpg“완전 겁쟁이가 됐네.”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10시이다. 잠깐만 자려고 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지 몰랐다. 부스럭거리면서 일어서는데 거실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16560306877944.jpg“다영이 회사 갔나?”

거실로 나가니 예상과 달리 소파에 다영이 앉아 있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얼굴로.

16560306877944.jpg“회사 안 갔어?”

16560307012109.jpg“…….”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16560306877944.jpg“다영아. 왜 그래?”

16560307012109.jpg“안경이 대체 뭐예요?”

그녀가 똑바로 나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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