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0화 강 회장과의 인연 (190/226)

190화 강 회장과의 인연2022.02.16.

16560307525433.jpg“좋은 소식입니다.”

내가 소유한 강남 빌딩 중 하나의 부동산 등기와 감정평가서를 내밀었다. 서류를 확인한 강 회장이 인상을 썼다.

16560307525438.jpg“이게 뭐죠?”

16560307525433.jpg“대통령님의 후원자가 되고 싶습니다.”

16560307525438.jpg“거절이군요.”

진지하게 강 회장을 보면서 나는 말했다.

16560307525433.jpg“네. 저는 비자금을 관리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대신 대통령님의 후원자로 남겠습니다.”

강 회장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16560307525438.jpg“좋은 기회였을 텐데 거절하는 이유를 알고 싶군요. 갤러리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이런 기회를 잡는 건 쉽지 않아요.”

16560307525433.jpg“그래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갤러리를 열기로 한 이상 저도 성공하고 싶구요.”

16560307525438.jpg“그런데요?”

나는 숨을 고르고 말을 대답했다.

16560307525433.jpg“지난번 이곳에 왔다가 집에 가는 길에 납치를 당했습니다.”

16560307525438.jpg“납치요?”

강 회장의 눈이 커졌다.

16560307525433.jpg“네. 긴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16560307525438.jpg“범인은 잡았어요?”

16560307525433.jpg“아니요. 범인이 말한 이야기로 추측하건대, 제가 갤러리를 시작하는 데 앙심을 품은 것 같습니다.”

범인을 알고 있지만, 나는 경찰 조사에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김승재에게 경찰에게 말하겠다는 협박으로 안경을 되돌려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나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16560307525433.jpg“그 일이 있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남에게 있는 백 가지 것보다 내가 가진 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낫겠다구요.”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 있는 많은 것들을 부러워하면서 산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가진 것의 가치는 잊어버릴 때가 많다. 남의 것을 욕심 부리다가 자신의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16560307525438.jpg“그런 말을 하기엔, 한 선생은 너무 많이 가지지 않았나요?”

16560307525433.jpg“그래서 더 제가 가진 것들을 지키려 합니다. 다른 갤러리스트들의 반감과 시기를 사고 싶지 않습니다. 정권이 바뀌었을 때 역풍을 맞기도 싫구요.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예술을 더럽히고 싶지도 않았다. 예술의 가치를 파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가치를 지키고 싶다.

16560307525438.jpg“이 계약서는 그 대신 주는 거군요.”

16560307525433.jpg“네.”

서류를 보는 강 회장이 보는 표정이 굳었지만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16560307525438.jpg“이걸 받을지 말지는 대통령께서 결정하실 거예요. 하지만 저는 한 선생에게 정말 실망스럽군요. 그동안 우리가 다져온 관계가 있는데, 이렇게 냉정하게 거절할 줄은 몰랐습니다.”

16560307525433.jpg“정말 죄송합니다.”

16560307525438.jpg“그만 가 보세요. 얼굴 보는 것이 불편하군요. 앞으로 보는 일 없었으면 해요.”

인연을 이어가지 않겠다는 통보였다.

16560307525433.jpg“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기에 나는 깍듯이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최기석이 부동산을 받든지 아니든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강 회장은 이제 나를 보지 않을 것이다. 비자금 선택을 거절한 것이 나의 선택이듯, 나를 보지 않는 것도 그의 선택이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영이 집에 있었다.

16560307568254.jpg“집에 있는 줄 알았더니, 어디 다녀왔어요?”

16560307525433.jpg“…….”

나는 말없이 다가가 다영을 품에 안겼다.

16560307568254.jpg“무슨 일 있었어요?”

16560307525433.jpg“있었지. 강 회장하고 인연이 끊겼거든.”

16560307568254.jpg“거절했군요?”

16560307525433.jpg“응”

다영이 등을 토닥여 주었다.

16560307568254.jpg“잘했어요. 강 회장님과 인연이 끊긴 건 아쉽지만, 여기까지였던 거죠.”

16560307525433.jpg“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는데 씁쓸하다. 나 많이 도와주신 분이잖아.”

16560307568254.jpg“그럴 만하죠.”

나를 꼭 안아준 다영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16560307525433.jpg“왜, 너무 잘생겼어?”

16560307568254.jpg“무슨 소리예요. 상처 티 나나, 안 나나 본 건데.”

16560307525433.jpg“쳇. 그냥 잘생겼다고 말해주면 덧나냐?”

토라진 내가 입을 내밀고 소파에 앉자, 다영이 애교스럽게 다가왔다.

16560307568254.jpg“삐쳤어요?”

16560307525433.jpg“응. 삐쳤어.”

16560307568254.jpg“잘생긴 건 너무 당연하니까 말 안 한 거죠.”

그 말에 픽 웃음이 났다.

16560307595244.jpg

16560307525433.jpg“빈말인 거 알지만 귀여우니까 넘어가 준다.”

16560307568254.jpg“진심인데에. 너무 억울하다아.”

그때 핸드폰이 울려 전화를 받았다.

16560307525433.jpg“네. 디렉터님.”

16560307623969.jpg[진 회장님의 소장품이 예정보다 빨리 도착할 것 같아서요.]

16560307525433.jpg“그래요?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16560307623969.jpg[네.]

전화를 마친 나는 일어섰다.

16560307525433.jpg“나 가봐야 할 것 같은데.”

16560307568254.jpg“점심 같이 먹으려 했더니만.”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다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16560307568254.jpg“네. 팀장님. ……도록에 표기가 잘못되었다구요? 알겠어요. 지금 갈게요.”

16560307525433.jpg“추정가 표기가 잘못된 거야?”

다영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6560307568254.jpg“오늘 내일 밤 새야겠네요. 그나마 주말에 발견돼서 다행이지.”

16560307525433.jpg“꼭 인쇄하고 나서 그런 게 보인다니까.”

16560307568254.jpg“그러니까요.”

16560307525433.jpg“회사 가 봐야 하는 거지?”

16560307568254.jpg“그래야죠.”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다영이 꿍얼댔다.

16560307568254.jpg“오늘은 좀 쉴 줄 알았더니. 택시 타고 가야겠다.”

16560307525433.jpg“내가 태워다 줄게.”

16560307568254.jpg“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16560307525433.jpg“너 태워다 줄 시간은 있어.”

그제야 다영은 싱긋 웃었다. * 나는 작품이 설치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16560307525433.jpg“디렉터님,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지 않아요?”

당황한 신재범이 내 시선을 살피다 물었다.

16560307623969.jpg“어디가요?”

16560307525433.jpg“‘감 갤러리’ 첫 전시잖아요.”

16560307623969.jpg“그렇죠.”

16560307525433.jpg“거기에 우리 전속 작가인 조선웅, 민효성 작가의 그림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그 말에 신재범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16560307623969.jpg“저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진 회장님이 민효성 작가님 그림을 마음에 안 들어 하시더라구요. 조선웅 작가님 작품은 설치미술이라 부담스럽다고 하시고…….”

16560307525433.jpg“진 회장님 취향이 아니긴 하죠. 제가 한번 설득해 볼게요. 우리 헤드 디렉터님은 전시에만 집중해 주세요.”

16560307623969.jpg“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아니 잘하겠습니다.”

혹시 자신에게 시키지 않을까 긴장했다가, 내가 하겠다니 얼굴이 활짝 폈다. 신재범은 고객을 다루는 데 능숙하지만 유독 진 회장 앞에서는 작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는데, 거슬리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16560307679455.jpg“한지감. 이 개자식! 약속을 안 지켜?”

돌아보니 김승재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가볍게 몸을 젖혀 김승재를 피했고, 그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16560307679455.jpg“네가 감히 나를 피해?”

16560307525433.jpg“이야기는 이미 끝난 줄 알았는데요.”

16560307679455.jpg“끝나긴 뭐가 끝나! 그건 약속을 지켰을 때 이야기지.”

김승재는 귀를 찢을 듯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 나는 피하지 않고 그를 힘으로 눌렀다. 마음 같아서는 내동댕이치고 싶었으나, 작품이 있고 사람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림도 사람도 이런 쓰레기 같은 놈 때문에 다치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 힘에 김승재는 켁켁거리다가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아무래도 슬랩스틱이 취미인 모양이다. 그제야 신재범이 다가와 속삭였다.

16560307623969.jpg“경찰을 부를까요?”

16560307525433.jpg“아니요.”

김승재의 등장에 업체 직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치를 봤고,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16560307525433.jpg“제가 처리할 테니 일들 하세요.”

아무래도 한 번은 치러야 하는 과정인 것 같았다. 나는 김승재를 힘으로 누른 채 일으켰다.

16560307679455.jpg“이 새끼가! 놔!”

16560307525433.jpg“…….”

나는 말없이 그를 질질 끌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를 소파에 바닥에 내팽겨 치고 문을 잠갔다. 사무실에 있는 물건들은 고가였으나 예술작품은 없었기에 망가져도 상관없다. 다시 사면 그뿐이니까. 김승재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 하자, 나는 다리를 세게 차서 다시 쓰러트렸다.

16560307679455.jpg“아악! 이 개새끼가!”

16560307525433.jpg“네가 날 이렇게 때리길래, 나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지.”

그가 나를 비웃으며 말했다.

16560307679455.jpg“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 근데 넌 결국 우리 하수인에 불과해.”

나는 자세를 낮춰 그의 얼굴 앞에 대고 날카롭게 말했다.

16560307525433.jpg“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생각해. 그건 네 자유니까. 그런데 너야말로 약속은 지켜야지. 어떻게 작동되는 건지 알려주면 귀찮게 굴지 않기로 했잖아.”

16560307679455.jpg“네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잖아! 시계, 옷, 그 어디에서도 안 보인다고!”

그 말에 나는 풉 웃음이 터졌고, 그는 분노했다.

16560307679455.jpg“감히 웃어?”

16560307525433.jpg“응. 웃겨서 웃었어. 안경 넘길 때 이런 전개가 될 줄은 몰랐거든. 내가 처음 안경으로 본 게 골동품이야. 왜인 줄 알아?”

16560307679455.jpg“골동품 가게 아들이니까 그렇겠지.”

16560307525433.jpg“맞아. 난 어렸을 때부터 늘 들었거든. 골동품의 특징, 가치. 이런 것들 말이야. 정말 듣기 싫었는데, 너무 자주 들어서인지 잊혀지지는 않았어.”

톡톡 내 머리를 검지로 두드리고 말을 이어갔다.

16560307525433.jpg“그래서 여기에 차곡차곡 다 저장됐지. 그런데 재벌로 태어난 너의 눈에는 왜 아무것도 안 보일까?”

그제야 무슨 말인지 깨달은 그는 입을 다물었다.

16560307679455.jpg“…….”

16560307525433.jpg“너한테 쌓인 지식이 아무것도 없는 거야.”

정곡을 찌르는 말에 그는 이를 악물고 나를 봤다.

16560307679455.jpg“……그 입 닥쳐!”

16560307525433.jpg“그러고 보면 내 사람들이 해준 이야기가 맞았네. 안경 덕분에 내 능력이 발현됐던 것뿐이야. 안경을 가진다고 해서 누구나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어.”

16560307679455.jpg“아직 못 찾은 거뿐이야.”

16560307525433.jpg“아. 그러세요? 그럼 찾으시면 되겠네.”

나는 몸을 일으켜 그를 내려다봤다.

16560307525433.jpg“약속대로 더 이상 나는 찾아오지 말고. 우리가 연락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잖아?”

16560307679455.jpg“약속을 어긴 건 너야! 경찰에 신고했잖아!”

16560307525433.jpg“내가 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했지. 누가 멍청하게 납치만 하고, 차는 거기에 그대로 둬서.”

16560307679455.jpg“…….”

수치심을 느낀 김승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16560307525433.jpg“내가 경찰한테 제대로 신고했으면 넌 여기 있지도 못해.”

16560307679455.jpg“나 삼원그룹 김승재야. 내가 이런 일로 감방에 갈 것 같아?”

16560307525433.jpg“오. 그렇구나. 그럼 감방에 보내는 대신 안경을 되찾아올까?”

내가 위협적으로 다가가자, 그는 일어서지도 못한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작동도 못 시키면서 안경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가 보다.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터졌다.

16560307525433.jpg“하하하.”

16560307679455.jpg“미친 새끼.”

16560307525433.jpg“미친 건 너지. 가고, 다시 보지 말자.”

그 말에 그는 나를 경계하면서 일어섰다. 말만 그렇게 하고 안경을 빼앗는 건 아닌지 불안한 것이다.

16560307525433.jpg“걱정하지 마. 내가 안경을 빼앗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내 사람들을 더 이상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을 거거든.”

말이 마치기도 전 김승재는 도망치듯이 사무실을 나갔다. 그가 나가는 것을 본 신재범이 대표실로 왔다.

16560307623969.jpg“괜찮으십니까?”

16560307525433.jpg“당연히 괜찮죠.”

16560307623969.jpg“삼원그룹 김승재, 맞죠?”

16560307525433.jpg“네. 이제 다시 올 일 없을 거예요.”

  * 진 회장이 대표실을 둘러보며 미소지었다.

16560307788214.jpg“좋다. 인테리어도 괜찮고.”

16560307525433.jpg“신 디렉터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16560307788214.jpg“이래서 경력자가 좋다니까. 다른 직원도 뽑았어?”

16560307525433.jpg“경력자로 디렉터 두 명 더 뽑았죠.”

진 회장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16560307788214.jpg“다 경력자라서 월급을 많이 줘야 할 것 아니야.”

16560307525433.jpg“그게 처음부터 일 가르쳐야 하는 것보단 훨씬 낫죠. 지금 당장 실전에 투입되어야 하니까요.”

16560307788214.jpg“그렇긴 한데, 시작부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조금씩 직원 늘려나가지. 기본적으로 드는 돈이 많을 텐데. 아직 전속 작가도 두 명뿐이고, 그림도 얼마 없잖아.”

16560307525433.jpg“그래서 말인데요. 전속 작가님들 기 좀 세워주고 싶은데, 회장님이 사 주시면 안 될까요?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뜰 작가예요. 특별히 회장님은 저렴한 가격에 모시겠습니다!”

작가의 그림을 인지도 있는 유명인이나 미술관에 파는 것은 갤러리스트의 중요한 일이었다. 작가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것은 물론, 작품 가격을 올려주기 때문이다. 미술계에서 진 회장의 영향력은 높다. 무명작가도 그가 작품을 구입하면 주목을 받는다. 이 영업이 중요한 이유였다. 그가 확 인상을 찌푸렸다.

16560307788214.jpg“이 이야기하려고 나를 불렀구만. 나는 그 작가 별로야. 이번 전시회도 어렵게 결정한 거 알지?”

16560307525433.jpg“그럼요, 알죠. 감사드리고 있어요.”

16560307788214.jpg“공짜로 준대도 싫어.”

역시 진 회장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이렇게 물러날 수도 없었다.

16560307812601.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