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3화 드라마 촬영 (2) (203/226)

203화 드라마 촬영 (2)2022.03.19.

이제 나만 대사를 잘하면 되는데 갑자기 긴장이 확 된다……. 잘할 수 있을까? 그동안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쌓아온 연기 내공이 빛을 내기를 간절히 바랐다.

16560311851959.jpg“사람들 흥미를 잡아끄는 데는 이만한 게 없어. 결국 미술도 시장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거든.”

대사를 마치고서 감독의 컷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데, 뭔가 이상한지 감독이 말을 하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서정선이 경매를 하는 모습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16560311851964.jpg“로트3번 작품은 전명자의 ‘나비와 여인Ⅲ’입니다.”

1656031185197.jpg“컷!”

그제야 감독을 컷을 외치고 조연출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며 힐끗 나를 본다. 이번에는 내가 까일 차례인건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조연출이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1656031185197.jpg“다음 장면 준비하겠습니다.”

어라? 무슨 일이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감독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는 아까의 서글서글한 모습을 돌아와 있었다.

1656031185197.jpg“연기를 정말 잘하시네요! 한 방에 이렇게 잘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옆에 있었던 이윤호도 한마디 거들었다.

1656031185197.jpg“그러게요. 타고 나신 것 같아요.”

16560311851959.jpg“아유. 전 대사 한 줄밖에 없었는데요. 민폐나 안 끼쳤으면 다행이죠. 그보다 서정선 경매사님이 정말 잘해주셨어요.”

어정쩡하게 서있는 서정선 곁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가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했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감독은 너무 건성으로 빈말을 했다.

1656031185197.jpg“그러니까요. 역시 경매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16560311851964.jpg“맨날 하는 일인데요, 뭐.”

부끄러워하는 서정선을 보면서 나는 말을 더했다.

16560311851959.jpg“맨날 하는 일이어도 다른 장소에서 애드리브로 하는 건 다른 문제죠. 패들을 아무도 안 드는데 연기하는 거 보셨죠? 그게 정말 어려운 거거든요.”

사실 그건 출품된 작품이 유찰될 때 내정가를 숨기기 위해서 밥 먹듯이 하는 일이었지만, 나는 살짝 과장했다. 내 말에 이윤호는 감명받아 고개를 끄덕였다.

1656031185197.jpg“그렇군요. 드라마를 위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16560311851959.jpg“경매사도 사람이다 보니 현장 고객들에게 기운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그런 기운이 없는 상태에서 저렇게 진행하기는 정말 힘듭니다.”

내가 부연 설명을 하자 감독은 그제야 고마운 감정을 담아 인사를 했다.

1656031185197.jpg“몰랐네요.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오늘 아주 멋졌습니다. 덕분에 장면이 잘 빠질 것 같습니다”

16560311851964.jpg“과찬입니다.”

싱긋 웃는 서정선을 보면서 감독은 사과했다.

1656031185197.jpg“아까는 죄송해요. 제가 슛 들어가면 예민해져서.”

16560311851964.jpg“그러실 수 있죠.”

그때 조연출이 달려왔다.

1656031185197.jpg“감독님. 세팅 다 됐습니다.”

오늘 우리 갤러리에서 총 세 장면을 찍기에 일정이 바쁘다고 들었다. 감독이 끄덕거리며 답했다.

1656031185197.jpg“그래. 알았어.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윤호 씨, 가자.”

1656031185197.jpg“네.”

목례를 하면서 이윤호는 자리를 떠났고, 그제야 안심이 된 서정선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6560311851964.jpg“하아…….”

16560311851959.jpg“수고 많으셨어요.”

16560311851964.jpg“응. 이제 가야겠다.”

16560311851959.jpg“혼자 가실 수 있겠어요?”

긴장이 풀린 상태라 괜찮을지 걱정스러웠다.

16560311851964.jpg“그럼, 내가 무슨 앤가.”

싱긋 웃으면서 걸음을 옮기던 서정선이 휘청거려 나는 그녀를 잡았다.

16560311851959.jpg“팀장님. 괜찮으세요?”

16560311851964.jpg“나 왜 이러지?”

16560311851959.jpg“긴장이 풀려서 그렇죠. 잠깐 제 사무실에서 쉬었다 가세요.”

나는 그녀를 부축해서 사무실로 데려갔다. 소파에 앉으면서 그녀는 내 눈치를 봤다.

16560311851964.jpg“이거 좀 창피하네.”

16560311851959.jpg“뭐가요?”

16560311851964.jpg“한참 후배한테 못 볼 꼴 보일 것 같아서.”

16560311851959.jpg“무슨 못 볼 꼴을 보인다고 그러세요. 멋지게 저 도와주셔 놓고.”

그 말에 픽 하고 서정선이 웃었다.

16560311851964.jpg“빈말인 줄 알지만 기분 좋다.”

16560311851959.jpg“빈말 아니에요. 출연 결정하신 거, 저 도와주시려고 한 거 맞으시잖아요. 그동안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 카메오 제안이 와도 탑 옥션 이미지 때문에 안 하신 거 알고 있어요. 거기에다 오늘 장면, 팀장님 입장에서는 부담스런 장면이잖아요.”

경매사는 경매회사의 얼굴이다 보니 이미지 관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오늘 장면은 갤러리에서 프라이빗한 경매가 이루어지는 장면이니 충분히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데도 응해준 것이다.

16560311851964.jpg“에이. 뭐 이 정도야 괜찮아. 카메오 제안 다 거절했던 건 사실이지만, 오늘처럼 덜덜 떨까 봐 그랬던 거고.”

16560311851959.jpg“그래도요. 정말 감사드려요. 나중에 위탁받을 작품 필요하시면 꼭 연락 주세요. 제가 인맥 다 동원해서라도 꼭 도와드릴게요.”

16560311851964.jpg“진짜지? 나 진짜 연락한다?”

16560311851959.jpg“당연하죠!”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나를 보면서 서정선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16560311851964.jpg“카메오 하길 잘했네.”

16560311851959.jpg“그럼요. 제가 또 도움 받은 건 배로 돌려드리죠.”

16560311851964.jpg“그것보다도 한 대표가 잘된 모습 봐서 좋아.”

흐뭇한 서정선의 반응이 나는 의아했다.

16560311851959.jpg“지금 막 갤러리 시작한 애송이인데요?”

16560311851964.jpg“걱정하지 마. 금방 메이저 갤러리가 될 테니까.”

16560311851959.jpg“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웃어넘기려는데 서정선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16560311851964.jpg“정말 진심인데? 방금도 봐봐.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지감 씨가 나서서 해결했잖아.”

16560311851959.jpg“그건 저 때문에 오셨으니까 그런 거구요.”

16560311851964.jpg“아니야. 한 대표는 예전부터 조율하는 능력이 탁월했어. 그 능력이 갤러리스트일 때 빛을 발할 거야. 두고 봐. 내 말이 맞을 테니까.”

장담하는 서정선을 보면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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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개월 후. 새로운 전속 작가를 검토하는 회의가 열렸고, 신재범은 이미 유명세를 가진 선영주를 추천했다.

16560311971751.jpg“선영주 작가는 시장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선웅 작가가 국내와 홍콩 개인전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아직 확고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침을 삼키며 열변을 이어갔다.

16560311971751.jpg“그건 민효성 작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선영주 작가가 전속작가가 된다면 재원이 될 수 있을뿐더러 갤러리가 좋은 이미지를 갖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고객들이 가져온 그림을 사고팔고, 원하는 그림이 있을 때는 다른 갤러리에서 빌려오는 상황에서 이익은 계속 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이익을 낸다면 ‘감 갤러리’는 재판매하는 갤러리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기에 돌파구가 중견 작가를 데려오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이미지뿐만 아니라 재원적인 안정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는데 박 디렉터가 머뭇거리는 것이 보였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16560311851959.jpg“박 디렉터님, 할 말 있으세요?”

16560312010335.jpg“……선영주 작가님이 좋은 작가님이란 것은 알지만, 저희 갤러리와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6560311851959.jpg“어떤 면에서요?”

16560312010335.jpg“조선웅, 민효성 작가님과 전속계약을 했을 때에는 ‘도전하는 갤러리’란 이미지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선영주 작가님이 전속 작가가 된다면 그런 이미지가 퇴색될 것 같습니다.”

신재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16560311971751.jpg“그런 부분이 있겠네요.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6560311851959.jpg“저는……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네요.”

안경을 지금도 쓰고 있다면 나는 과감하게 선영주를 데려올지 말지 결정할 수 있었겠지만, 현재로서는 그게 쉽지 않았다. 예전에 쉽게 결정하던 일도 요즘은 망설이게 되었다. ‘강정휘 갤러리’가 그 명성을 회복해가면서 더 움츠러들었다. 3개월 동안 강정휘는 시장에서 갑자기 작품 가격이 폭등한 작가들과 계약했고, 사람들은 조작을 의심하면서도 강정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녀와 연을 끊었던 재벌가들도 슬슬 발걸음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심각한 내 표정을 보고 신재범은 부드럽게 넘어갔다.

16560311971751.jpg“그럼 좀 더 논의하고 결정하기로 하죠.”

16560311851959.jpg“네.”

회의가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양 디렉터가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16560312010377.jpg“드라마 첫 방송, 이틀 후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16560311851959.jpg“맞아요. 화제성이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16560311971751.jpg“반응 있을 것 같은데요. 업계에서는 벌써 초미의 관심사예요.”

내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신재범이 밝게 말했다. 하지만 박 디렉터는 동의하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16560312010335.jpg“업계에서만 반응이 있는 거일 수도 있어요. 3년 전에 국악 소재로 드라마 나왔을 때, 국악계에서는 핫이슈였거든요. 시청률은 정말 안 나왔지만.”

그 말에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고, 신재범은 나무라듯 박 디렉터를 봤다. 나는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16560311851959.jpg“그래도 미술 컬렉터들의 귀에는 들어갈 거예요. 그러니까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16560311971751.jpg“맞습니다.”

신재범이 적극적으로 내 말에 동의했다.

16560311851959.jpg“업무 외 시간까지 일하면서 직원들이 도와준 거니까 절대로 허사가 되지 않도록 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16560311971751.jpg“네!”

16560312010377.jpg“넵!”

16560312010335.jpg“예…….”

자신만 반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민망했는지 박 디렉터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회의가 끝나고 모두 빠르게 일어서는데 박 디렉터만 밍기적거렸다. 아무래도 나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도 할 일이 있는 척 핸드폰을 보는데 쭈뼛거리기만 하고 다가오지 않아, 답답함을 못 참고 다가갔다.

16560311851959.jpg“박 디렉터님, 하실 이야기 있으세요?”

16560312010335.jpg“아……. 그게.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16560311851959.jpg“네. 기분 상했어요.”

내 말에 박 디렉터의 얼굴이 흑빛이 되었다.

16560312010335.jpg“저……정말…… 죄송…….”

16560311851959.jpg“죄송할 건 없구요. 기분이 상하더라도 다른 의견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필요해요. 여기 친목하러 온 거 아니잖아요. 일하러 온 거지.”

16560312010335.jpg“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 디렉터는 내 말을 못 믿는 눈치였다.

16560311851959.jpg“전 IQ가 높은 사람들이 있으면 엄청나게 멋진 아이디어들이 나올 것 같잖아요.”

뜬금없는 이야기에 놀라면서도 박 디렉터는 엉거주춤하게 반응했다.

16560312010335.jpg“그렇죠.”

16560311851959.jpg“그런데 그런 사람들이라도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있으면 오히려 아이디어의 질이 떨어져요.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바보 단체가 되는 거죠.”

16560312010335.jpg“대표님…….”

그제야 박 디렉터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16560311851959.jpg“박 디렉터는 감 갤러리가 그런 집단이 되지 않도록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줘요.”

16560312010335.jpg“네!”

그 말을 들은 박 디렉터가 환하게 웃음 지었다. *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드라마가 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박 디렉터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었다. 위험에 대비하는 것은 대표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무작정 잘될 거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게까지 느껴졌다.

16560311851959.jpg“드라마가 망했을 때의 대안이라…….”

뭔가 아이디어를 얻을 만한 것이 없을까 하면서 멍하니 포털 사이트를 봤다. 그때 이윤호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한류 스타 드라마 출격 완료!’라는 제목으로 드라마를 홍보하는 내용이다. 이틀 후가 첫방이니 드라마 홍보를 기사로 하려는 모양이다.

16560311851959.jpg“드라마 홍보도 되면서, 조선웅 작가 홍보도 될 만한 것이 없을까?”

그러면서도 대중들이 보기에 너무 인위적인 느낌도 없어야 한다. ‘웃음’을 목적으로 대놓고 광고할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 순간 아이디어가 섬광같이 머리를 스쳤고, 나는 신재범을 사무실로 불렀다.

16560311851959.jpg“신 디렉터님, 이윤호의 SNS를 통해 드라마와 조선웅 작가를 둘 다 홍보하면 어떨까요?”

16560311971751.jpg“드라마로 친분이 생긴 두 사람이 식사를 하고, 조선웅 작가의 작품을 보는 그런 모습을 말씀하시는 거죠?”

신재범은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

16560311851959.jpg“네. 이미지 변신을 꾀하는 이윤호에게도 좋고,”

16560311971751.jpg“드라마 홍보도 좋고, 조선웅 작가에게도 좋죠. 그럼 국 PD에게도 좋을 거구요. 지금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16560311851959.jpg“부탁드릴게요.”

16560311971751.jpg“네!”

그가 인사를 하고 후다닥 사무실에서 나갔다. 아까 말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드라마가 망하더라도 조선웅 홍보는 된다는 것이다.

16560311851959.jpg“이윤호 팔로워가 천만 명이니까 그 사람들에게 홍보가 되는 거지.”

그 안에는 분명히 미술품을 살 수 있는 잠재적 고객도 있을 터였다.

16560311851959.jpg“잘하면 아시아권 전체에 홍보가 되겠는데?”

음흉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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