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1화 그가 원하는 것 (1) (211/226)


211화 그가 원하는 것 (1)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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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숙 갤러리가 유지된다면, 거기에 내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차분하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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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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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미술품을 이용해 돈세탁을 하겠다는 것이다.

남정숙 갤러리가 미세탁에 이용되게 할 수는 없었다.

단호하게 거절하려는데, 정수일이 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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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솔하게 행동하지 마세요. 어제 누가 왔다 갔는지 아십니까? 강정휘 대표가 왔습니다.”

강정휘가 ‘남정숙 갤러리’에 관심 있을 리가 없었기에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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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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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말을 못 믿겠다면 직접 물어보세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이 달아있는 상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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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대표와 내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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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한 사실이던데요?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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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맞습니다.”

생각보다 미술계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어 놀랐고, 한편으로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내 뒷조사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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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휘에게 빼앗기는 것보다 나한테 한자리 넘겨주는 게 낫지 않겠어요? 이틀 정도 고민할 시간을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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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상황 파악을 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아, 나는 물러서기로 했다.

*

지친 다영이 눈꺼풀이 반쯤 감겨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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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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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나는 다영을 식탁에 앉히고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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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가 왜 이렇게 뭉쳤어? 요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눈을 가늘게 뜬 다영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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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하던 일을 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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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피곤해 보이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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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것 같은데 내일 있는 최종 30인 발표, 알려달라는 거 아니에요?”

정곡을 찔린 나는 배시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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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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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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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붙여달라는 것도 아니고, 미리 좀 알게 해달라는데 그게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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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요. 알 수가 없다구요.”

팔짱을 낀 다영이 새침하게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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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알 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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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작가 후원 경매 팀이 만들어진 뒤부터는, 후보 30인을 다른 팀들에게 공개하지 않아요. 알아도 알려줄 생각도 없지만!”

나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의자에 앉았고, 다영의 눈길은 어느새 안쓰러움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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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될 가능성 없다고 말하고선, 왜 이렇게 알고 싶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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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포기가 안 되니까 그렇지.”

말이 신인 작가 후원 경매이지, 요즘은 메이저 갤러리들이 신인 작가를 발굴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라 중견급 작가도 신인인 척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 상황에서 정말 신인인 민효성이 경쟁력을 갖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불쌍한 척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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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게 포기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러면 민효성 작가한테도 미리 말해줄 수 있으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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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또 그렇네요. 참. 오늘 수 캐피탈 갔던 건 잘 해결됐어요?”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었다.

동그랗게 눈을 뜬 다영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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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미세탁 해주려는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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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 미쳤거든? 그럴 거면 진작에 대통령 비자금을 받아들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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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난 오빠가 그럴 거라고 믿었어요오.”

언제 의심했냐는 듯 다영은 천사 같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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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 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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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정말 믿었다니까요. 그래서 어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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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탁 없이 정수일을 설득할 방법을 생각해봐야지. 시간이 주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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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강정휘는 왜 그 건물을 가지려고 하는 걸까요?”

나는 덤덤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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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때문일 거야. 부동산 관련 미션이 그걸로 떨어진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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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그러고 보면 안경이 이익과 손실에 관해서는 정확해요. 남 회장님 봤을 때 후광 안 보인 것도 그렇잖아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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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렇긴 해. 고마워, 다영아. 남정숙 갤러리 인수하는 거 이해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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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 게 아니라 포기한 거예요. 내가 말려도 할 게 뻔해서! 그리고…… 나도 남정숙 갤러리가 사라지는 건 싫어요.”

다영에게 남정숙 갤러리를 인수하겠다고 말했을 때, 예상과 달리 그녀는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돈이 많이 든다는 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다영이 지적한 부분들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턱을 괸 다영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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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사채업자요. 정말 미세탁하려고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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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업을 하려면 권력자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잖아. 그러니 뒷돈 같은 게 많이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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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태까지도 다른 방식으로 해왔을 것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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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편리한 방법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정수일의 진짜 이유가 미세탁일지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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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아침.

일찍 갤러리에 가서 정리를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재범이 갤러리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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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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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될 걸 알면서도 후보 30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요……. 그러는 신 디렉터님은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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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마찬가지예요.”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 상황이 웃겨, 신재범과 나는 같이 웃음이 터졌다.

웃음이 잦아들 때쯤 신재범이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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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민효성 작가님하고 통화했어요. 이번은 어려울 것 같으니 10월을 노리자고 말씀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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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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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괜찮다고 하시는데, 아쉬운 기색이 뚜렷하게 보이더라구요. 첫 개인전 잘 치렀는데도 공모전 수상 경험이 없다 보니 괜히 스스로에 대해 증명하지 못하는 기분이 드나 봐요.”

내가 조직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했듯, 민효성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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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죠.”

신인 작가 후원 경매의 후보 발표는 토요일 오전 10시에 갤러리에 메일로 연락을 돌리고, 오후 1시에는 커뮤니티에 발표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어느새 그 시간에 다다르자 신재범과 나는 더 초조해졌다.

바로 그때 신재범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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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제가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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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신재범이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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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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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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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요. 민효성 작가 됐습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어서 그의 핸드폰을 다시 확인했다.

‘감 갤러리 민효성 작가는 후보 30인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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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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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나왔다. 그건 신재범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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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쁜 소식을 민 작가에게 알려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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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대표님! 직접 연락 주시면 민 작가님이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민효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무룩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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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30인 결과 나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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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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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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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후보 30인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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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이요?]

거칠어진 호흡만으로도 눈이 커진 민효성의 모습이 선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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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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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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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최종 10인은 아니지만, 요즘은 후보로 선정된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는 거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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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알죠!]

예전과 달리 요즘은 신인 작가 후보 30인에 선정된 것을 이력으로 기재하는 작가들이 많았다.

30인에 선정되었다는 것 자체가 시장에서 니즈가 있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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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너무 감사해요! 다 대표님 덕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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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 좋은 작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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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제가 이렇게 있을 수 없죠. 오늘 갤러리 분들 점심은 제가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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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통화를 마친 나는 환한 표정으로 신재범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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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효성 작가에게 식사를 대접받는 날도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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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입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흘렀다.

*

어떻게 민효성이 후보 30인에 선정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서 백 팀장을 만나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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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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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냈습니다.”

그는 장난스런 내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얼굴은 까칠했다.

일이 많아 피곤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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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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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일이 있어서 물어보려고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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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일?”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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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효성 작가가 후보 30인에 있어서요. 없을 줄 알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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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이라도 빼줘? 갤러리에서 원하지 않으면 빼줘야지.”

그는 당장이라도 실행할 듯이 핸드폰을 들었고, 나는 그런 그를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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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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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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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효성 작가 그림을 보는 내내 형 표정이 안 좋으셨다길래, 떨어질 줄 알았거든요.”

그 말을 들은 그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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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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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한테 직접 물어보면 불편해할 것 같고…… 그래서 연락도 못했어요. 그런데 떡하니 후보 30인에 이름이 올라오니까 놀라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그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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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효성 작가 작품 좋았어.”

그럼 왜 작품을 보는 내내 그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일까?

더더욱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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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표정이 안 좋았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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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안 좋았지. 신인 작가 후원 경매 만든 게 너라는 사실을 미술계에서 모르는 사람도 있냐? 그 한지감이 갤러리를 세우고 처음으로 받은 전속작가가 곧바로 후보로 올라왔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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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거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낮은 한숨을 쉬면서 그가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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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 못하지. 그런데 요새 후보 30인에 대해서도 투표로 결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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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는 중이네요.”

최종 10인을 후보 30인 중에서 커뮤니티가 투표해서 결정하자는 의견을 내가 냈을 때 백 팀장은 반대했다.

갑자기 울컥한 백 팀장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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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하지 말자고 했잖아. 사람들은 권리가 한번 쥐어지면 더 많은 것들을 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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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일을 벌인 건 난데, 그걸 떠안은 사람은 반대했던 백 팀장이다.

세상 참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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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그 투표 덕분에 커뮤니티가 더 관심을 얻은 건 맞으니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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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도 많이 변했네요.”

예전이었다면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을 텐데 지금은 좀 수더분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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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게 아니라 그러려고 노력하는 거지. 살려고. 예민한 천성은 어쩔 수가 없어. 거기에다 겁은 더럽게 많고. 나도 왜 이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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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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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할 때 말이야. 보통 자신이 투표한 후보가 뽑히길 원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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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뽑히길 바라는 것이 사람의 본능적인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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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내가 뽑은 후보가 떨어졌으면 좋겠어. 그 사람이 뽑혔을 때 나쁜 짓을 저지르면 내가 꼭 동조하는 거 같아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기에 당황했다.

잘 이해는 안 가지만, 백 팀장이 워낙 예민하고 심리적 결벽증도 높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일 것이다.

당황한 내 표정을 보고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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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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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 이해가 안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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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도 내가 잘 이해가 안 가. 그런데 이번 일도 같은 맥락인 것 같더라구. 난 결국 어떤 것에도 책임지고 싶지 않은 거야. 그게 부담스럽거든.”

그는 힘이 빠져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다른 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면에서는 이해가 됐다.

또한 나도 예전에는 소심한 편이어서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는 일이 많았기에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과연 의미가 다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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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저는 잘 모르겠지만, 형이 신경 쓰시는 일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 저지른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하기 그렇지만, 결국 커뮤니티도 형이 예상하는 방향대로 됐잖아요. 형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거예요. 그래서 외로운 거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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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그가 나를 보고 웃었다.

*

갤러리 운영 시간이 끝나고, 민효성을 최종 10인에 넣기 위한 긴급회의가 열렸다.

오늘 당장 민효성 작가에 대한 홍보자료를 정리해서 탑 옥션에 넘겨야 한다.

그걸로 4일 동안 홍보가 이루어진 뒤 투표를 한다.

나는 디렉터들의 얼굴을 일일이 보면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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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4일입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커뮤니티의 관심을 끌 만한 홍보를 해야 합니다.”

박 디렉터가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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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다면 미리 전략을 짰을 텐데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양 디렉터가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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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요. 솔직히 저 아까 점심 먹다가 체할 뻔했어요.”

그 말에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후보 30인에 선정되었다는 것을 알고 기분이 좋아진 민효성은 갤러리 식구들에게 점심을 샀다.

1인당 2-3만 원대의 식사를 살 거란 예상을 뒤엎고, 그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음식을 대접했다.

울상이 된 박 디렉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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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10인에 선정될 건 기대도 안 한다고 하시는데, 말씀과 달리 내심 기대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민효성은 정말 현재 성적에 만족한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하지만 미련이 가득한 그의 눈빛과 비싼 음식 대접은 다른 이야기를 했고, 이것이 디렉터들의 체기를 유발한 것이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신재범도 소화가 잘 안 되는지 가슴을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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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어떻게 안 하겠어요. 모처럼 온 기회인데…….”

체기가 없는 사람은 나 혼자뿐인 듯 했다.

가슴을 계속 문지르며 신재범이 나를 보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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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다른 신인 작가들은 해외 전시 경험이 거의 없을 테니, 홍콩 전시 이력을 강조하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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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도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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