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그가 원하는 것 (2)
(212/226)
212화 그가 원하는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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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화 그가 원하는 것 (2)
2022.04.09.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도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단호한 나의 반응에 모두 놀랐고, 신재범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어떤 부분에 집중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가진 작가’를 컨셉으로 합니다. 홍콩과 우리나라 저소득층 문화시설에 참여한 사진을 중점적으로 넣을 겁니다.”
걱정스런 얼굴로 박 디렉터가 물었다.
“이런 말씀 좀 그렇지만, 커뮤니티 멤버 중에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 분들 중에 다수가 미술은 저소득층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런 컨셉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홍콩에서의 전시 이력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겠죠.”
양 디렉터가 의아하게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런 컨셉을 미시는 겁니까?”
“커뮤니티에서 투표를 할 때 어떤 기준으로 투표를 하는 거 같아요?”
“작품 아닐까요?”
양 디렉터의 말을 들은 신재범이 고개를 저었다.
“작가의 이미지입니다.”
“맞아요. 작가의 이미지. 작가에게 느낀 이미지와 작품이 일맥상통할 때 기억에 남죠.”
신재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민효성 작가의 작품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그걸 극대화할 포인트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장면으로 보여주시려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래야 인상에 남고, 뽑힐 수 있는 가능성이 올라갑니다. 물론 거부감을 가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짧은 시간 내에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는 방향입니다.”
처음에 뜨악했던 디렉터들이 어느새 공감하고 있었다.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도, 적어도 차악은 되는 방법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다음 날.
점심에 나는 채령과 경환의 집으로 갔다.
진작에 넷이서 함께 만나려고 했지만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계속 미뤄지다, 오늘에서야 같이 만나게 된 것이다.
채령을 보자마자 다영은 달려갔다.
“채령아!”
“언니!”
반가운 두 사람은 인사를 경환과 나는 어이없게 바라봤다.
“저 두 사람, 지난주에도 보지 않았어?”
“맞아. 형.”
“그런데 왜 오랜만에 본 것처럼 저럴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작게 말했는데도 들렸는지 다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랜만에 본 것처럼 반가워서 그런 거죠! 그치 채령아?”
“그럼요.”
나는 무마용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좋아 보인다고.”
채령이 준비한 식사를 마치고 상이 치워지자 경환이 아이스 초코를 내왔다.
“두 분이 애정하는 아이스 초코입니다.”
환한 미소를 지은 다영이 아이스 초코를 마셨다.
“어머.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잘 마실게.”
음료를 마시다 경환이 입을 열었다.
“감 갤러리 작가가 후보 30인에 올랐더라?”
“응. 민효성 작가 올랐지.”
“컨셉이 특이하던데?”
고개를 끄덕이며 채령도 말을 꺼냈다.
“그거 저도 봤어요. 신선하던데요!”
그 말에 경환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모았다.
“그건 신선한 것이 아니라 생경한 것 아니야?”
나를 의식한 채령이 그만하라는 듯 눈에 힘을 주자 경환은 딴청을 부리면서 중얼거렸다.
“아니……. 나는 여태까지 본적 없는 컨셉이다 보니……”
“괜찮아. 낯설게 느껴질 거란 예상은 했으니까.”
나는 웃으면서 경환이 지적한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며 말을 이어갔다.
“’모 아니면 도’ 전략이야. 민효성 작가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 경력이 짧잖아. 그런 상황에서 다르게 보이지 않으면 가능성 자체가 없을 것 같았거든.”
채령의 눈치를 보면서도 경환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신인 작가 중 드물게 해외에서 전시도 했잖아.”
“그것만으로는 임팩트가 부족했어. 작품하고 연관성도 없었고.”
문득 나는 다영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요즘 일에 치여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묻고 싶었지만 다영의 솔직한 성격을 잘 아는 터라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때 채령이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려 다영에게 물었다.
“전 좋은데. 다영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료를 한 모금 마시느라 다영의 대답은 늦어졌고, 나는 자연히 긴장했다.
긴장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그녀는 덤덤하게 입술을 뗐다.
“전략 자체는 나쁘지 않아. 다만, 통할지는 모르지. 오빠 말대로 모 아니면 도 같아.”
“그냥 좀 괜찮다고 말해주면 안되냐?”
내가 장난스레 서운함을 내비치자 다영은 애교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는 좋았어요. 객관적으로 어떤 반응이 올지 모른다는 뜻이라구요.”
“하여간 잘 빠져나가.”
그런 다영을 보면서 픽 웃는데, 채령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 오빠……. 남정숙 갤러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맞아. 형. 나도 궁금해. 형이 인수하는 거야?”
“직원들하고 작가는 이미 계약서 수정해서 같이 가기로 된 상태야. 문제는 건물이지.”
정수일이 자신의 자리를 요구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채령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어떻게 해요?”
“글쎄. 모르겠다. 오늘까지 연락 줘야 하는데.”
다영이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오늘까지예요?”
“응. 오늘까지 연락 달라고 했어.”
미세탁을 받아들일 생각은 당연히 없지만, 정수일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
이수지가 문서에 서명을 하면서 수행원에게 물었다.
“왔어?”
“네. 왔습니다.”
“인터폰으로 하면 될 말을, 왜 들어와서 하고 그래.”
이수지가 고개를 들자 어두운 수행원의 얼굴이 보였다.
“그 표정은 뭐야?”
“꼭 만나셔야겠습니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수지는 답했다.
“응. 난 꼭 만나야겠어.”
그런데도 수행원은 쉬이 물러설 수가 없었다.
“김 이사에게 감정 안 좋으신 것 압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엮이는 건…….”
“싸움은 그 자식이 나한테 먼저 걸었어……!”
분노 가득한 이수지의 반응에 수행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들여보내겠습니다.”
수행원이 나가고 바로 한 남자가 쭈뼛거리면서 들어섰다.
김승재의 일을 맡았던 흥신소 직원이었다.
이수지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를 환영했다.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갑자기 연락 드려서 놀랐죠?”
“네. 조금 놀랐습니다.”
이수지의 얼굴을 살피며 흥신소 직원이 물었다.
“그런데 어떤 일로 저를 부르신 건지……?”
“김승재가 한지감을 납치하면서까지 뭘 얻으려고 했는지 궁금해서요.”
납치에 자신이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에 남자는 그만 얼어버렸다.
그런 그를 보면서 이수지는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묻는 말에 잘만 답하면 별 문제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구요.”
“뭐……뭐를 알고 싶으신 겁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는 듯 이수지는 말을 곱씹었다.
“말했잖아요. 김승재가 납치를 벌이면서까지 뭘 얻고 싶어 했는지 궁금하다고.”
“죄송합니다. 제가 당황해서……. 그런데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녀의 눈빛이 일순간 사나워졌다.
“그 말을 나 보고 믿으라는 건가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한지감에게 결정적으로 뭔가를 할 때마다 저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도 다 그곳에서 나가야 했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남자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럼 알고 있는 걸 다 말해 봐요.”
“이사님은 강정휘와 한지감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자세하게 말해 봐요.”
흥미를 보이는 이수지를 보면서 남자는 대답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의 연관성이 나오지 않았는데, 예전에 강정휘의 지시를 받은 김태하가 서동효에 대해서 캐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동효라면 부동산 재벌이잖아요.”
“네. 서동효에게는 서인범이라는 아들이 있고, 그 사람이 자신의 집에서 일했던 가정부의 요양원 비용을 대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옆으로 새는 느낌이 들자 이수지가 인상을 구겼고, 조급해진 남자가 빠르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 가정부가 알고 보니 강정휘의 친척이더라구요.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됐죠. 이 사실은 김 이사님도 모르십니다.”
흥미를 느낀 이수지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래서요?”
“서인범이 가정부를 계속 챙겨준다는 게 이상해서, 뭔가 있을까 싶어 저하고 이사님이 직접 면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부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그 이후에 한지감을 납치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모른다?”
취조하는 검사처럼 강정휘는 날카롭게 물었다.
“네. 정말 저는 모릅니다. 이사님이 나가있으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요. 아주 흥미로운 일이군요.”
그게 무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금방 찾아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걸 알아내는 날 이수지는 김승재를 산산이 조각낼 작정이다.
*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정수일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계속 머리를 굴렀다.
그때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다영이 걱정스런 눈길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얼굴이 며칠 새 상한 것 같아서요.”
“상하긴 무슨. 이렇게 빛이 나는데!”
어물거리면서 넘어갈 생각 말라는 듯 다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장난으로 넘어가려고 하지 말구요. 정말 걱정 된단 말이에요. 일이 너무 많잖아요. 주말에도 거의 못 쉬고…….”
“대표라는 자리가 그렇지 뭐. 그래도 일이 잘되고 있으니까 힘든 줄도 모르겠어. 민효성 작가만 해도 이번에 후보가 될 줄 몰랐는데 됐잖아.”
밝게 웃는 데도 다영은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했다.
“잘되는 것은 좋은데, 젊다고 몸을 너무 혹사하지 말아요.”
“알았어.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하니까 더 걱정되네.”
“다영이 너도 건강 조심해. 3월달 메이저 경매 치루고, 4월달에 있는 기업 특별경매 준비하느라 요새 계속 바쁘잖아.”
다영이 가볍게 웃었다.
“바쁘기야 바쁜데, 그래도 몸에 익어서 그런지 엄청 힘들지는 않아요.”
“밤에 맨날 지쳐서 들어오면서.”
“그래도 전 버틸 만해요. 백 팀장에 비하면 신선놀음이죠.”
“어제 백 팀장님 뵀는데, 얼굴 별로더라. 신청하는 작가가 많다 보니까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많지?”
보기만 해도 안쓰러운지 다영이 얕은 한숨을 쉬었다.
“그것도 그런데, 그것보다 커뮤니티에서 난리잖아요.”
“커뮤니티에서?”
“특별대우 받고 싶은 거죠. 작품 하나 낙찰받고, 엄청난 대우를 바라는 사람들 있잖아요. 오히려 처음부터 활동하시던 분들은 안 그런데, 새로 들어온 분들이 유난스러워요.”
우울한 다영의 표정을 보니 보통 진상을 부리는 게 아닌 모양이다.
“어느 정도인데 그래?”
“새벽 1시에 대뜸 전화해서, 자기가 후원한 작가가 이런 방향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의견 내주는 건 고마운데, 그걸 꼭 새벽 1시에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지.”
“그러다 보니 백 팀장님 스트레스가 많으신 것 같더라구요. 신인 작가 후원 커뮤니티 자체가 그 특별함을 자극하는 거긴 하지만, 너무 심하다 싶어요.”
심하게 만든 장본인이기에 나는 격한 찔림을 느껴 헛기침을 했다.
“음음…….”
“오빠 찔리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그냥 그렇다구요.”
그러다 문득 이것이 정수일을 설득하는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건물, 복도, 회의실에 과하게 걸려있던 미술품이 판단의 근거가 되어 주었다.
집 앞에 차가 서자 다영은 내릴 준비를 했지만 나는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오빠. 안 내려요?”
“다영아. 나, 정수일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알겠어.”
“어서 가요.”
“이따 보자.”
씨익, 다영은 웃으면서 차에서 내려 잘 다녀오라는 듯 손을 흔들어주었다.
*
강정휘가 신경질적으로 비서에게 물었다.
“아직도 연락이 안 왔어?”
“네…… 아직 안 왔습니다.”
“뭘 하느라 아직도 연락을 안 하는 거야!”
남아있는 시간이 이틀뿐이라, 강정휘는 초조해졌다.
하루 만에 연락이 올 거란 기대와는 달리 정수일은 삼 일째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냥 200억 준다고 할걸 그랬나?
미션을 성공하지 못하느니, 김승재나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래. 빨리 미션을 성공해야 돈을 벌지.”
3개월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미술품으로 100억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니 부동산에 손을 대면 아마 그 액수는 더 커질 것이다.
“부동산 5단계까지 가면 상상도 못할 천문학적인 액수를 벌어들일 수 있을 거야. 그런데 푼돈인 200억에 가로막히면 안 되지.”
정수일에게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을 드는 그때, 안경에 메시지가 떴다.
[2단계 미션 실패. 미션 실패로 인해 한 단계 낮아집니다.]
“이……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