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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화 강정휘의 미션 (3) (218/226)


218화 강정휘의 미션 (3)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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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휘가 나를 찾아오더니 뜬금없이 그림을 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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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이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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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야. 돈은 아는 사람에게 말해서 대줄 테니까 사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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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진 회장에게 그림을 판매하라는 미션이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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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는 프로비넌스 때문이라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한다고 해도 누가 돈을 대주면서까지 사 달라고 하냐?]

프로비넌스는 소장 이력을 뜻하는 말로, 과거 소장자가 누구였는지에 따라 작품 가격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진 회장은 현재 유명 미술 투자자이기 때문에, 그가 소장한다면 작품 가격이 올라갈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선물로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대주면서 굳이 사라는 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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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지 너는 알 것 같아서 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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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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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어. ]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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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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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작품이 좋다 보니 사고 싶긴 한데 말이야,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영 찜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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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싶으면 사시고, 싫으면 사지 마세요. 여태까지 회장님이 항상 그러셨던 것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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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다. 그렇게 하마.]

통화를 마치고 나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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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속이 있는 것이 분명하니 사지 말라고 할걸 그랬나?”

하지만 이미 안경에 손 뗀 마당에 구차하게 굴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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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나 하자. 한지감.”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이런 생각할 시간이 없다.

*

다음 날.

강정휘가 기대감이 뚝뚝 흐르는 눈길을 보내자 부담스러워진 진 회장은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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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그 눈 좀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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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홍. 죄송해요. 그냥 회장님 오랜만에 뵈니까 좋아서요.”

비음이 과하게 섞여있는 목소리가 거슬렸지만 간신히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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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기엔 우리가 너무 격조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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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회장님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으셔서 그렇죠.”

진 회장이 잘나가던 시절 일시간에 미술계 인사들과 인연을 끊어버린 일을 말하는 것이다.

싸한 미소를 지으며 진 회장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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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강 대표가 참 끈질기게 연락을 했지. 내가 망한 후로는 연락이 싸악 끊겼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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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회장님이 더 잘 아시면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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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모르겠는데. 그리고 제발 콧소리 좀 안 낼 수 없어? 평소처럼 해. 평소처럼!”

다른 사람이라면 민망한 기분이 들었을 테지만 강정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계가 터치 한 번에 모드를 바꾸는 것처럼 평소 말투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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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사시기로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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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결정은 안 했어.”

그 말에 강정휘의 얼굴이 싸해졌지만 이내 표정 관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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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회 쉽게 오지 않는 거 아시잖아요. 작품 좋고, 투자 가치 있는 건 두말하면 입 아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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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까 이러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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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 프로비넌스 때문에 이러는 건데, 왜 그렇게 사람을 못 믿으세요. 저 의심하시는 거예요?”

너 같으면 의심 안 하겠냐는 말을 하려다가 진 회장은 가까스로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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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한다기보다 신중하려는 거야.”

상대가 자신을 의심할 때는 당기는 것이 아니라 밀어야 한다.

그래야 태도가 바뀌었다는 데 놀라면서 의심을 걷어내기 때문이다.

그런 계산으로 강정휘는 정색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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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전 정말 좋은 마음으로 부탁드린 건데, 너무 서운하네요. 제안은 없었던 걸로 하죠.”

정말 마음이 떠난 사람처럼 강정휘는 몸을 돌렸고, 그때 진 회장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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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걸려들었다 싶어 음흉스럽게 웃다가 돌연 정색하고 강정휘가 진 회장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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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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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해줘야 하는 조건이 있어. 그걸 해주면 제안을 받아들이지.”

‘조건’이 뭔지 강정휘는 불안하면서도 정색한 표정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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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조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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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가 납득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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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감 대표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격앙된 강정휘와 달리 진 회장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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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감 갤러리 한지감 맞아.”

자신의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은 상황에 조급함을 느낀 강정휘가 다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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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저와 회장님의 비지니스예요. 그런데 왜 거기에 한지감을 끼워넣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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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한 대표가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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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보다 저와의 관계가 훨씬 오래 됐잖아요. 저 정말 서운해요.”

진 회장이 실소를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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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오래됐지만 언제든지 이해관계에 의해 맺고 끊는 관계지. 하지만 한 대표하고는 아니야. 나는 한 대표한테 목숨을 빚졌어. 강 대표하고 사이가 안 좋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이런 제안을 덥석 받을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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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회장님…….”

진 회장은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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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 설득해. 그럼 강 대표가 원하는 대로 할 테니까. 그만 가.”

단호한 진 회장의 표정이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입술을 잘근 깨문 강정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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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보겠습니다.”

강정휘가 집에서 나가자 진 회장은 가까이 있는 방문을 보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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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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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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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나오라니까!”

방문이 열리면서 한지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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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왜 목소리를 높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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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같이 엿들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의뭉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한지감은 강정휘가 있던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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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같다뇨. 그저 살짝 재미를 추구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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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듣는 게 재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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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대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직접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으쓱 어깨를 올리는 한지감을, 진 회장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전화를 끊고 5분도 안 돼서 한지감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그는 원래의 입장을 뒤엎고, 강정휘에게 자신을 만나서 설득해 보라는 조건을 달라고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그가 탐내던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준다는 반대급부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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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넌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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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요? 저는 정말 투명한 사람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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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잘 모르네. 굉장히 음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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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회장님이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갤러리 대표가 되더니 이젠 뻔뻔하기까지 하다.

못 말리겠다는 듯 진 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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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강정휘한테 원하는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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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절 괴롭힌 대가로 굴욕감을 선물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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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그것 때문에 오십억이 넘는 작품을 준다고?”

한지감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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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죠. 제가 그 작품보다 가치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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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없는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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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재수없는 녀석이 한 말을 들어주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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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그림 때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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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엔 목숨을 구해줬다는 말이 너무 진심이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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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그렇다는 거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진 회장이 은근슬쩍 말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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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갤러리, 인수하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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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그러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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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라면 임대비?”

그 말에 한지감은 픽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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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비야 건물을 사면 그만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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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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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가질 거부감 때문에요.”

신재범이 지적했던 점을 설명하자 진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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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렇지. 역시 신 디렉터가 정확하네. 핵심적인 문제를 정확히 짚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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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시죠. 그래서 갤러리가 급성장할 수 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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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네가 생각한 방법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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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작가를 영입하는 거죠.”

의미심장하게 한지감이 웃었다.

*

나는 박도희를 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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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됩니다.”

울상을 지은 박도희가 간절하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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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다시 생각해주세요……! 임미래 작가, 정말 좋은 작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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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가인 것 저도 압니다. 도 디렉터.”

박도희는 1년 전 감 갤러리로 와서, 가인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 작가 중 감 갤러리 전속 작가를 선정하는 일을 맡았다.

‘박’ 씨임에도 불구하고 ‘도 디렉터’로 불리는 이유는, 박혜영 디렉터가 이미 ‘박 디렉터’로 불러고 있기 때문이다.

거절을 하는 것은 늘 어렵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결정권자를 설득하는 고용인의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결정권자다.

일이 되고 안 되고를 내가 결정한다.

그게 최대의 장점이었지만 동시에 최대의 단점이기도 했다.

이렇게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감정싸움은 해도 해도 쉽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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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가인데 왜 전속 작가는 안 된다는 건데요……?”

보다 못한 신재범이 다독이듯 나지막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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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디렉터, 임미래 작가는 미디어 아티스트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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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은 백남준 작가도 미디어 아티스트잖아요. 언젠가 임미래 작가는 정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가 될 거예요!”

열정적으로 말하는 박도희를 보면서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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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디렉터. 백남준 작가의 명성에 비해 작품 값이 높지 않은 이유를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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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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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트는 TV와 컴퓨터를 그 매체로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기계 부품은 단종되고 나오지 않아요. 유지시키는 것이 어렵다구요. 컬렉터들은 오래 볼 수 있는 작품을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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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은 박도희 때문에 나는 더 단호하게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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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트에 비하면 그림은 보관도 유지도 쉽죠. 그렇기 때문에 환금성도 좋구요. 하지만 미디어 아트는 아니에요. 박도희가 컬렉터라면 그림이 아닌 미디어 아트 작품을 사겠어요?”

잠시 머뭇거린 박도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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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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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요. 방금 머뭇거렸잖아요. 도 디렉터도 이렇게 머뭇거리는데, 컬렉터에게 그 작품을 어떻게 권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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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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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나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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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개를 숙인 박도희가 침울하게 사무실을 나갔다.

그제야 나는 푹 한숨을 내쉬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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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디렉터님. 제가 너무 심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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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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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임미래 작가 작품 좋아요. 하지만 컬렉터들이 그 작품을 부담스러워할 게 뻔해서, 전속 작가로 데려오긴 부담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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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신재범이 동의를 하는데도 임미래의 작품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그녀의 작품은 사람을 끌리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따듯하면서도 파격적이다.

마음이 불편한 것을 알아차린 신재범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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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잊어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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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죠. 크리스 우드 작가와 약속은 정해졌나요?”

나는 알고 있는 작가들의 인맥을 동원하려 했지만, 필립 린드 등 대부분 작가가 계약 기간이 남아있어서 어려웠다.

드물게 계약을 할 수 있는 작가들은 개인적 친분과 별개로 자신을 제대로 케어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에 망설였다.

그래서 작가들이 신뢰하는 작가를 공략하기로 했다.

그가 바로 크리스 우드이다.

독특한 패션 센스에 환경을 위한 과감한 퍼포먼스까지 벌인 괴짜 예술가지만, 작가들 사이에서는 그가 신뢰를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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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일주일 뒤에 뉴욕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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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그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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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세요.”

모습을 드러낸 윤 비서가 조심스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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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휘 대표, 어떻게 할까요?”

강정휘는 박도희가 오기 전에 왔지만 약속되지 않은 만남이어서 뒤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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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디렉터 나가면 들여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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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

신재범이 나가고 강정휘가 들어왔다.

한 시간 이상 기다렸으니 강정휘 성격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그녀는 매우 과하게 방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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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 요새 많이 바쁜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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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네요. 많이 기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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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별로 안 기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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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잡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요.”

계속 미소 지으며 그녀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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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도 안 받으면서어. 그러니까 내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왔지이.”

성격 좋은 푼수 아줌마 같은 말투에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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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로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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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에 우리 갤러리에서 계약한 도이리 작가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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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죠. 도이리 작가는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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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비넌스 때문에 진 회장님이 사셨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거든. 근데 진 회장님이 한 대표와의 관계 때문에 거절하셔서 말이야. 한 대표가 좀 잘 이야기해주면 좋겠어.”

나는 차를 홀짝 마시면서 이 상황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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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진 회장님이 작품을 살 수 있도록 제가 잘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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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거지. 진 회장님이 한 대표를 워낙 각별하게 생각하셔서인지 동의가 필요하신 것 같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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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렇군요.”

거의 다 넘어왔다고 확신하는지 강정휘의 입꼬리가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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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이야기해 줄 수 있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는 싱긋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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