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9화 진성 박물관 (1) (219/226)


219화 진성 박물관 (1)
20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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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이야기해 줄 수 있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는 싱긋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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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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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니?”

당황한 강정휘는 표정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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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거잖아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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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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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왜 강 대표님을 도와야 하죠? 제가 기억하기로 저는 강 대표님에게 도움받은 기억이 없는데.”

말을 더듬거리면서 강정휘가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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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와준 적이 왜 없어? 이 미술 업계에 널 처음 들여준 사람이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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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도와줬다고 할 수 없죠. 안경의 능력을 이용하려고 날 고용한 거잖아요. 그리고 대표님 아니었어도 저는 어떤 식으로든 발 들이게 됐을 거예요.”

내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자 강정휘는 악을 쓰면서 억지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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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마. 내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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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다고 치죠. 하지만 6년 넘게 안경을 차지하려고 절 괴롭히지 않았습니까. 안경을 준 이후에도 연락해서 괴롭히는 건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제가 왜 대표님을 도와야 하죠?”

궁지에 몰린 강정휘가 마른침을 삼키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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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무릎이라도 꿇으라면 꿇을게.”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듯 그녀는 몸을 움직였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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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다고 제가 대표님 때문에 힘들었던 일들을 보상받는 것도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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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달라고 이러는 거지? 택도 없어!”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강정휘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자신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구나 싶어서 나는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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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러세요. 뭐 가끔 생각나는 건 사실이니까요.”

강정휘가 날을 세우며 나를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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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없는 척하지 마. 내가 거기 속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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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은 있지만 가지고 싶진 않아요. 강 대표님 같은 사람들이 또 붙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강정휘가 나를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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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 마. 안경이 눈앞에 보이면 눈 벌겋게 뜨고 가지려고 할걸? 지금은 애써 이성으로 누르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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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지도요? 그럼 도와드리는 대가로 그 안경을 저한테 주실 거예요?”

예전에는 저 반응이 피곤했는데 격한 반응이 재밌어서 찔러봤다.

파르르 강정휘의 입술이 떨리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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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 알았어! 네 도움 따위 필요 없어. 한 단계 내려간다고 해도, 다시 시작하면 그뿐이야!”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그녀는 사무실을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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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다 멍멍하네. 아직도 기력이 넘쳐.”

몇 년간 묵힌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가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

이수지는 날카로운 눈으로 굴곡진 몸매를 가진 여자를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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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재 비서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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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짧은 기간이었지만 비서로 있었어요.”

삼원 그룹에서 눈앞의 이 여자를 비서로 만든 건 이성적 매력으로 김승재를 잡아두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김승재의 침대 시중을 든 여자까지 만나야 한다니, 이수지는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김승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김승재의 일을 맡았던 흥신소 직원을 통해, 서동효의 가정부가 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그 가정부가 있는 요양원으로 갔지만 그녀의 존재는 연기처럼 사라진 뒤였다.

1년 동안 전국의 요양원을 뒤지면서 가정부의 존재를 찾았지만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막다른 길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포기했을 테지만, 이수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더욱이 자신을 공격한 김승재를 공격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그래서 김승재의 감시 역할을 했던 비서를 찾기로 했다.

여자가 이수지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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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알고 싶으신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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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재의 약점이 될 만한 거라면 전부 알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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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이요? 여자를 밥 먹듯이 바꾼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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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말고는 없어? 꼭 약점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이상하거나 특이한 것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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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곰곰이 생각하던 여자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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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별건 아니지만 좀 이상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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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궁금하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이수지는 차를 홀짝 마시면서 여유로운 척 굴었다.

여자는 관심이 없다는 것에 무안해하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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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한테 불려가서 크게 혼나는 바람에 술에 엄청 취했던 날이 있었거든요. 그날 ‘안경을 손에 넣었으니 곧 부자가 될 거야.’라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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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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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사님, 눈 좋아서 안경 안 쓰시잖아요. 그런데 웬 안경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하는지 의아했죠.”

순간 이수지의 무섭게 반짝였지만 여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자가 가고 수행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확신에 찬 이수지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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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안경일까?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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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서가 잘못 들은 거 아닐까요? 김 이사가 취해서 헛소리 한 거일 수도 있구요.”

수행원은 이수지가 이 일에 집착하는 것이 싫었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단호하게 이수지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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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닐 거야. 남자 비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

김승재의 전 비서를 만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조금 전의 그 여자 이전에 일했던 건장한 남자 비서에게도 이수지는 같은 질문을 했고, 그는 김승재가 갖가지 물건을 늘어놓고 안 보인다며 이상증세를 보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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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 이사의 정신 상태는 최악이었습니다. 환영이나 환상을 보고 실재한다고 착각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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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한지감도 정신 이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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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수행원의 말을 자르며 이수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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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벌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틀림없어. 그게 한지감에게서 김승재를 걸쳐 강정휘로 넘어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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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정휘는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1년 전에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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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절대 아니야.”

이수지가 점점 그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 같아 수행원은 불안했다.

고민하던 수행원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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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든 너무 집중하시는 건 좋지 않습니다. 김 이사가 괘씸해서라면 다른 식으로 갚아주면 그만입니다. 관장님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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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수 때문에만 이러는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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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른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이수지가 창밖을 내려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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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 세탁이나 하는 미술관 관장 자리에 만족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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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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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이 올라갈 거야.”

그 물건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면 더 높이 올라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이수지는 여기서 멈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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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 세워진 곳으로 걸어가며 권미애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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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멋진 갤러리를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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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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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를 처음 봤을 때는 이렇게 멋진 갤러리스트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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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가 갤러리 주인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권미애와의 인연이 골동상과 고객으로 시작되었으니 당연했다.

그러고 보면 나조차도 갤러리 주인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뉴욕에 가기 전까지 한 번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없었다.

7년 전 나는 그저 취업이 목표인 취준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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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제가 갤러리 대표가 될 줄은 몰랐어요.”

신재범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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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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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솔직히 한 대표가 옥션 들어간다고 했을 때 말리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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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처음 듣는 말이었기에 나는 내심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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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골동상과 옥션은 많이 다르기도 하고, 또 한 대표는 유명한 골동상이었잖아요. 이미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데, 수익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 옥션에 왜 굳이 들어가려고 하나 싶었어요. 좋은 골동상을 잃는 게 싫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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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셨구나. 전혀 몰랐어요.”

그녀는 흐뭇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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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한 대표가 잘한 것 같아요. 그러지 않았으면 이렇게 멋진 갤러리 대표 못 됐을 거 아니에요. 좋은 작품도 못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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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마음에 쏙 드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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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는 쏙 들었는데, 받는 사람 마음에도 쏙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부끄러운 듯한 표정이 권미애의 얼굴에 스쳤다.

그녀가 산 그림은 소진열 작가의 작품이다.

소장이 아닌 선물할 목적으로 구매한 작품이다.

선물을 받는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 나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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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안전하게 배송해드리겠습니다. 특별히 더 신경 쓰라고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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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고맙구요.”

권미애가 차문 앞에 서자 나는 부드럽게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가 오르자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차가 출발했다.

멀어지는 차를 보면서 신재범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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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는 분이 전 국회의원인 조성오 의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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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아요.”

한마디로 전 남편에게 작품을 선물로 보내는 것이다.

그것도 결혼기념일마다 그녀가 받았던 소진열 작가의 그림을 말이다.

아무래도 다시 관계가 진전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들이 죽고 미술품 때문에 이혼을 못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옥션에 있을 때 그녀가 내놓은 소진열 작가의 그림을 조성오가 다 산 것을 보면, 상대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신재범과 갤러리로 다시 돌아오는데, 축 처져 있는 박도희가 눈에 들어왔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저런다.

마음에 걸려서 절로 한숨이 푹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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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신경 너무 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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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죠. 참. 크리스 우드 미팅할 때 디렉터님도 함께 가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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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다.”

크리스 우드를 설득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신재범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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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갤러리 인수는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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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침에 변호사와 통화했는데, 인수 자체는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10명이 넘는 전속 작가들 중 해지를 요구해서 난감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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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죠. 떠날 사람들은 떠나야 하니까요.”

예상했던 일이지만 씁쓸함이 입에 감돌았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다.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는 일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사무실로 걸어가는데, 멀리서 나를 발견한 윤 비서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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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비서님. 무슨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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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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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약속이 있나 머리를 굴려봤지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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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네요. 오기로 하신 분이 없는데요.”

그때 익숙하고도 낯선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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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없이 와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돌리니 강 회장의 비서실장이 서 있었다.

강 회장과 연이 끊어진 이후 한 번도 그를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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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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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한 대표님.”

그는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나를 대했다.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나는 그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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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할 일이 있으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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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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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당황스럽습니다. 인연은 그때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나는 강 회장의 반려견이 아니다. 그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런 인간에 속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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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일이란 걸 압니다. 강 회장님도 고민을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한 대표님밖에는 해결해주실 사람이 없습니다.”

저자세를 취하는데도 마음이 풀리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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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흥신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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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 아닙니다. 불쾌하셨으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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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불쑥 나타나기 전에 전화를 주실 수 있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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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드리면 만남 자체를 거부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나는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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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지 들어나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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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의 해악팔경과 송유팔경도를 구입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인상을 썼다.

겸재의 해악팔경과 송유팔경도는 국내 최대 사립 박물관인 진성 박물관의 소장품이다.

한마디로 파는 물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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