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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화 최후의 선택 (2) (225/226)


225화 최후의 선택 (2)
2022.05.09.


나는 매서운 눈빛으로 박도희를 쏘아봤고, 그녀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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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디렉터. 어제 급하게 자리를 비웠다고 하던데요. 무슨 일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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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래 작가님이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자리를 비웠습니다.”

입이 바싹 타들어가는지 박도희가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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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래 작가가 ‘감 갤러리’ 전속 작가이던가요? 아니면 ‘가인 갤러리’ 전속 작가인가요?”

그녀가 관리해야 할 작가이냐고 묻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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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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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 작가도 아닌 사람이 쓰러졌다고 근무시간에 달려나갔다, 근무지 무단이탈이네요?”

한 걸음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신재범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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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 보고를 했기 때문에 무단이탈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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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고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적인 일을 처리하는 데 근무시간을 썼다는 게 문제 아닙니까?”

내가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자 신재범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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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그렇지만…….”

신재범이 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는지, 눈을 질끈 감은 박도희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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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제 잘못입니다. 헤드 디렉터님께 허락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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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것 같았습니다. 정말 해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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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죄송합니다. 감봉하셔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는 실소를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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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게 겨우 감봉에서 끝날 문제로 보입니까?”

겁을 잔뜩 먹은 박도희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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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봉으로는 부족하죠. 더 제대로 된 걸로 갚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든지 하는 그런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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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프로젝트요?”

갑작스러운 프로젝트의 등장에 박도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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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 갤러리 한쪽에 미술 놀이터를 만들 생각입니다. 미디어 아트로 누구든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컨셉이죠. 거기에 임미래 작가가 작품을 해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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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그러니까 지금 임 작가에게 일을 주시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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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전속 작가 지위는 아니지만, 재료비와 최저시급 이상은 받을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거기서 반응이 좋으면 전속 작가 계약을 하고…….”

박도희가 덥석 내 손을 잡았기에 나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그녀는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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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임미래 작가님이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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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전속 작가 계약을 한다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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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요. 마음 써주신 게 감사해서 그래요.”

후두둑 눈물을 떨어트리면서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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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작품 만들 수 있는 기회하고, 최저시급만 받아도 여한이 없겠다고 하셨거든요. 이제 그럴 수 있는 거잖아요. 적어도 영양실조로 쓰러질 일은 없는 거잖아요.”

펑펑 눈물을 쏟는 그녀를 나와 신재범이 위로했다.

눈물이 잦아들 때쯤 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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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소식 직접 가서 잘 전해줘요. 갈 때는 신 디렉터님이랑 같이 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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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말 감사합니다. 대표님.”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박도희는 사무실에서 나섰고, 신재범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따라 나가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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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디렉터님은 잠깐 남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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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실 말씀이라도……?”

나는 개인 카드와 흰 봉투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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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로는 병원비 내 주세요. 흰 봉투는 생활비예요. 작가님 마음 상하지 않게 잘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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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걱정하지 마세요. 잘 처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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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신재범이라면 잘 처리할 거라 믿을 수 있어 안심이 된다.

그가 나가고 사무실에 혼자 남은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임미래가 뜨는 작가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번 주말에 잡힌 일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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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지금 흐뭇해할 때가 아니구나.”

이번 주말에 나는 다영에게 청혼을 할 예정이다.

다영이 책임이 된 이후 청혼하려 했지만 너무 바빠서 못 했다.

더 이상 미뤄지면 안 될 것 같아 이번에 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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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영이가…… 받아주겠지?”

어쩐지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

불이 꺼진 거실을 불안하게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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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안 오지?”

다영이 올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청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혼 선배인 경환에게 자문을 구했다.

경환은 호텔 레스토랑을 빌려서 잊지 못하게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지만, 채령은 두 사람에게 의미 있는 장소에서 하는 것을 추천했다.

다영과 친한 채령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마른 침을 삼키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에 불이 꺼져 있자 다영이 당황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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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아직 안 왔나?”

나는 바로 버튼을 눌렀고, 현관에서부터 거실까지 작은 전구로 이어진 길이 나타났다.

놀란 다영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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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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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와아.”

다영이 천천히 길을 걸어 내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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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영아. 여태까지 나랑 같이 해줘서 고마워. 같이 있었던 날들보다 더 많은 날들을 함께하고 싶어. 나랑 결혼해 줄래?”

이 짧고 간단한 말을 천 번도 넘게 연습했다.

스스로도 참 말주변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다영의 눈이 그렁한 것을 보니 마음이 전해진 모양이다.

나를 지그시 보던 다영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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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좋아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타이밍에 반지를 끼워 줘야 했지만, 너무 기쁜 나머지 그대로 다영을 안고 빙그르 돌렸다.

그녀가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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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없게 이게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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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서 그러지!”

그런 나를 보면서 다영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나는 다영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고, 다영은 감동해서 반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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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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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어무 예뻐요!”

예쁘다고 하니 좋긴 좋은데 존댓말이 묘하게 거슬렸다

하지만 분위기를 깨기 싫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고 우리는 자석처럼 서로에게 다가가 입을 맞췄다.

살짝 입술이 떼어졌을 때 다영이 귓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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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한지감.”

그렇게 원했던 반말을 지금 듣게 되다니!

우리는 다시 뜨겁게 키스하면서 침실로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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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일어나요!”

다영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어젯밤 일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지만, 다영의 손에 끼워진 반지가 꿈이 아닌 현실이라 외쳐댔다.

반지를 보면서 나는 바보처럼 웃었고, 그런 나를 보면서 다영도 덩달아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 때쯤 다영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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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제주도로 1박 2일이라도 여행 갈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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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지난번에 안경 경매 때문에 하루 자리를 비웠는데 정말 난리가 났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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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시간 빼야지. 그 정도는 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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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어요. 그리고 안 되면 안 된다고 하지, 왜 거짓말을 해요? 내가 오빠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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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한 번 하는 결혼이니까…….”

눈을 동그랗게 뜬 다영이 잘근잘근 씹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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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다가 실망하는 게 더 아프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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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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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신혼여행을 못 가다니 너무 슬퍼요. 일은 계속 바쁠 텐데, 언제 갈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다영의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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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 시간을 줘. 베니스 비엔날레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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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시간 뺄 수 있어요? 오가는 시간까지 잡으면 적어도 10일은 잡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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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만들 거야! 걱정하지 마!”

그런 나를 보면서 다영이 다시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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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요. 믿을게요.”

시간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지금부터 준비한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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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숙취에 김승재는 눈을 떴다.

안경을 이 회장이 가져간 이후, 그는 밤이고 낮이고 술에 절어서 살았다.

그게 한 달 정도 되었으니 숙취가 더 심해질 수밖에.

타는 듯한 목마름이 김승재의 신경을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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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갖다줘! 물!”

가정부가 물을 가져다 줄 거라고 기대해봤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목이 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다고 그는 기어가듯이 부엌으로 가서 시원한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그제야 숙취가 좀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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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는 새끼들은 어디 가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짜증스럽게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돌리던 그는 화들짝 놀랐다.

아버지인 김 회장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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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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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 일?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거냐……!”

분노를 꾹꾹 눌러담은 목소리가 김승재를 겁먹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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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가 뭐 잘못했어요?”

눈을 질끈 김 회장은 더 기대할 것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수족인 비서를 바라봤고, 비서가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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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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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처리를…….”

무슨 처리를 하라는 건지 김승재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부엌으로 정장을 입은 건강한 사내 두 명이 들어와 그의 양팔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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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놔! 놓으라고! 아버지,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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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는 짓? 어젯밤 사람을 친 놈이 할 말이야!”

버럭 화를 내는 김 회장을 보면서 그제야 김승재는 기억의 한 조각이 떠올랐다.

술에 취에 운전하다가 사람을 치고 김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SOS를 쳤던 것이다.

그 기억을 부정하듯 그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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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야…….”

그렇게 고개를 숙인 그는 자신이 입은 옷에 피가 잔뜩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짙은 피 비린내는 그가 정말 사람을 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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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건 모함이에요!”

김 회장은 대꾸하기도 지치는지 김승재를 외면했다.

비서가 알아서 김 회장의 마음을 읽고 사내들에게 턱짓했다.

사내들이 죄인을 끌고 가듯 김승재를 질질 끌고 갔다.

이미 다 끝나버렸다는 것을 모르는 김승재는 미친 사람처럼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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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

그 절규에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쯤 김 회장은 비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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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비서가 김 회장을 부축해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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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물이라도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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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자식을 정신병원에 보내는 애비가 물 마실 자격이라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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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이 아니라 요양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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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정신병원과 별다르지 않은 곳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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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잘 부탁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계속 확인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서의 위로에도 김 회장의 얼굴은 침통했다.

이틀 걸러 사고를 쳐서 사람을 붙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밥 먹듯이 음주운전, 마약, 폭행 등을 일삼으면서 하면서 점점 미쳐가는 자식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 일의 정점이 어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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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들어갈 사람은 세팅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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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 경찰서에 가서 자수하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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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 처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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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십시오.”

통제불능의 인간이지만 차마 아들을 감옥에 보낼 수는 없었다.

그룹 이미지 차원에서도 그것은 안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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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다가 내가 무슨 기사를 봤는지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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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감 결혼 기사를 보셨습니다.”

세계적인 갤러리스트의 결혼을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신부가 탑 옥션 스페셜리스트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미술계의 선남선녀가 만났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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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감 그 자식을 봤을 때 왜 그렇게 기분이 안 좋았는지 이제야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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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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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은 시궁창에 처박히고, 그놈은 찬란하게 빛날 걸 알았던 거지…… 승재가 그놈 반이만 따라갔더라면…… 아니 차라리 그놈이 내 자식이었다면…….”

부질없는 김 회장의 한탄을 비서는 묵묵히 들었다.

*

한지감의 결혼 기사를 본 강정휘가 핸드폰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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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도 아닌 놈 결혼 기사를 왜 언론은 앞다투어 내는 거야? 얼음물 좀 가져와!”

바짝 군기가 든 비서가 물을 가져와 강정휘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벌컥벌컥 물을 마셔서 불타는 속을 잠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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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감 그 빌어먹을 인간. 나한테서 안경을 빼앗고……!”

안경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녀에게 무용지물이건만,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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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장 들어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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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 부장을 기다리면서 강정휘는 거울을 바라봤다.

최근 마음고생이 심했는데도 그녀의 피부는 더 백옥 같아지고, 머리는 더 풍성하고 검어졌다.

아름다운 외모가 그녀의 마음에 그나마 위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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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도 이 강정휘는 피해가는군.”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거울 속을 들여다 본 그녀는 그만 굳어버렸다.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지고 백발에 깊은 주름을 가진, 소름 끼치는 노파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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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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