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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달항아리 백자 (1) (3/226)

3화 달항아리 백자 (1)2020.12.07.

[미션 : 24시간 내에 강정휘에게 이 달항아리를 35억에 판매하면 2단계 정보가 공개됩니다.]  

16560242428241.jpg‘35억?’

16560242428241.jpg“하……!”

그때 아래 제한시간이 나타났다. [남은 시간 : 23시간 59분] 강정휘란 사람이 도대체 누구길래 22억짜리 이 달항아리를 35억이 사는 것일까. 이 달항아리를 구매할 강정휘가 누구인지 알아내야 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가게 안에 있는 벽시계를 확인했다. 2시 13분이다. 1분이 흘렀으니, 내일 2시 12분까지가 제한시간이었다. 이렇게 헝겊으로 계속 도자기를 문지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16560242428241.jpg“아버지.”

16560242428257.jpg“왜?”

16560242428241.jpg“그…… 저기 그러니까요.”

이걸 뭐라고 말한다? 가게에 있는 안경을 우연히 썼고, 그래서 물건이 어떻게 팔릴지 그 정보를 알고 있다. 이렇게 말했다가는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것이 뻔했다. 아버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16560242428257.jpg“그러니까 뭐?”

그럴듯한 말로 둘러대면 되는데 갑자기 머리가 하얘졌다. 아버지의 눈썹이 더 요동치자 나는 성급하게 입을 열었다.

16560242428241.jpg“……아버지. 이 달항아리 백자요, 사고 싶다는 분은 없었어요?”

16560242428257.jpg“흥미를 보인 사람은 많았지. 달항아리 백자가 워낙 귀하지 않니. 17세기 후기부터 18세기 전기, 딱 한 세기 동안 그것도 광주 금사리(가마터)에서만 만들어졌어.”

질문이 들어오자 바로 긴 설명이 나온다. 사실 예전에 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 데다, 지금 내가 듣고 싶은 건 이런 내용이 아니다.

16560242428257.jpg“물론 18세기 후반에도 만들어지긴 했지만 40cm가 넘는 것들은 잘 나오지 않지. 높이가 중요한 이유는 가격을 책정할 때 큰 영향을 끼쳐서야. 40cm 넘으면 1cm가 더해질 때마다 1-2억이 붙어.”

16560242428241.jpg“그니까 제 말은…….”

관심을 보이는 손님이 있었냐구요! 그중에 강정휘란 사람이 있었는지 그걸 알고 싶다 이 말입니다, 아버지! 타는 내 속도 모르고 아버지는 심취한 채 설명을 이어갔다.

16560242428257.jpg“워낙 대형이라 한 번에 만들 수가 없어. 상하 부분을 따로 만들고 붙여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완전히 둥근 형태를 내기가 어려워지지. 이것도 완벽한 원형은 아니지 않니. 참으로 묘해. 구연부가 굽보다 2-3배…….”

30년 동안 아버지와 같이 산 나는, 뒤에 이어질 내용을 알고 있었다.

16560242428241.jpg“2-3배 넓은 불안정한 구조인데도 안정감 있다는 것이 대단하죠. 그게 풍만함을 느끼게 해 주고요.”

16560242428257.jpg“그래, 내 말이 그 말이다. 조형도 조형이지만 달항아리의 백미라고 볼 수 있는 건 역시 뽀얀 흰색이지. 정말 달을 보고 있는 거 같은 느낌을 들게 해 주니까.”

아버지가 흐뭇한 눈길로 달항아리를 보면서 계속 말했다.

16560242428257.jpg“난 이 작품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국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16560242428241.jpg“관심을 보인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요. 근데 왜 안 팔린 거예요? 돈 때문이었어요?”

16560242428257.jpg“자꾸 값을 깎으려 들지 않니.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아직은 좀 더 데리고 있고 싶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자꾸 미뤄졌어. 경매에 내놓으면 27억도 받을 수 있지만, 우리 가게 손님한테 팔고 싶었는데 말이야.”

나는 머리를 굴리다 현재로서 최선으로 생각되는 말을 내뱉었다.

16560242428241.jpg“어제 아버지가 잠시 자리 비우셨을 때 강정휘란 사람한테 전화가 왔었거든요. 달항아리백자에 대해 묻길래 좋은 물건이 있다고 말했어요.”

아버지의 눈빛이 부담스레 반짝였다.

16560242428257.jpg“번호 받았어?”

순간 나는 움찔했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보니, 번호에 대한 질문이 나올지는 몰랐다. 하지만 애써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16560242428241.jpg“번호를 여쭤 보니까 그냥 나중에 들르겠다고 말을 돌리시더라구요. 그래서 못 받았어요.”

16560242428257.jpg“그럴 수 있지. 원래 돈 많은 사람들이 의심도 많고, 누가 자기 정보 아는 거 극도로 꺼려. 너무 마음 쓰지 마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버지는 못내 아쉬우신 지, 쩝 하고 입맛을 다시셨다. 내 말에 대해 의심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하긴, 그렇지. 내가 무슨 이익이 생긴다고 이런 거짓말을 하겠는가.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거짓말은 성공적이었으나 알아낸 정보는 없다는 데 있다. 그냥 이대로 35억을 날려야 하는 것일까? * 가게에서 나와 시간을 확인했다. 6시 5분. 나는 얼른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아까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검색창에 ‘강정휘’를 쳤다. 세 사람이 검색되었다. 한 사람은 교수, 한 사람은 정치인, 한 사람은 갤러리 대표. 직업상으로 봤을 때는 갤러리 대표가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 더 확인해 보니 그 갤러리는 현대 미술을 다루는 곳이었다. 그러면 되레 가능성이 제일 낮아진다. 현대 미술 갤러리와 거래했다는 말을 아버지에게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뭐가 뭔지 모르는 뿌연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확실한 나침반이 내 손에 들려 있으니. 고민 끝에 나는 세 곳 다 일단 연락을 취해 보기로 했다. 이 세 명 중에 메시지 속 그 ‘강정휘’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셋 다 연락은 해 보아야 했다.

16560242428241.jpg“일단 정치인부터 해보자.”

아무래도 정치인이면 돈이 많을 것이다. 정치가 중에서 골동품에 취미가 있는 사람은 꽤 많았다. 골동품에 취미가 없는 경우라도, 꼬리가 밟히지 않는 뇌물이나 비자금 세탁의 명목으로 골동품을 애용했다. 의원의 사무실로 나는 태연히 전화를 걸었다.

16560242484342.jpg[강정휘 의원 사무실입니다.]

나는 약속이 된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16560242428241.jpg“네, 안녕하세요. 여기 명품 골동상입니다.”

16560242484342.jpg[네. 무슨 일로 전화 주셨습니까?]

16560242428241.jpg“지난번에 강 의원님이 좋은 달항아리 백자가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하셔서 전화 드렸습니다. 물건 보고 싶어 하시는 다른 손님들도 계셔서요, 내일 오전 중으로는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당황할 거란 예상과 달리 상대는 아주 여유있게 사무적으로 대응했다.

16560242484342.jpg[네. 그럼 말씀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름과 연락처를 받고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이 사람이 맞는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16560242428241.jpg“다음은 교수.”

사무실 번호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홈페이지에 있는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메일 내용은 방금 전 통화 내용과 같았다. 빨리 확인하길 기대하는 수밖에.

16560242428241.jpg“다음은 현대 미술 갤러리인데…….”

시간을 확인한 눈이 가늘어졌다. 6시 25분. 강정휘 갤러리는 6시 30분까지 운영된다. 지금 폐점을 딱 5분 남긴 상황이었다.

16560242428241.jpg“전화 안 받는 거 아니야?”

입술을 살짝 깨물고 핸드폰을 귀에 댔다. 통화연결음이 반복되는 그 몇 초의 순간이 내게는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설마 벌써 직원들이 퇴근한 건 아니겠지? 그때 달칵 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들렸다.

16560242484342.jpg[강정휘 갤러리입니다.]

건조한 여자의 목소리. 안도하느라 미처 대답을 하지 못했더니, 재촉하는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16560242484342.jpg[여보세요?]

나는 더없이 친절한 목소리를 냈다.

16560242428241.jpg“안녕하세요. 명품 골동상 한지감입니다. 지난번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달항아리 백자 준비되었다는 말씀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당황한 모양이다. 정치인 사무실에서 덤덤하길래 여기도 덤덤할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개인차가 큰가 보다. 하긴, 다짜고짜 준비된 물건이 있다는 말을 꺼내면 당황스러운 게 당연했다.

16560242484342.jpg[아……. 달항아리 백자요?]

여자는 애써 당황을 감추는 말투였다.

16560242428241.jpg“네. 대표님께서 달항아리 백자 보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16560242484342.jpg[……어디라고 하셨죠?]

16560242428241.jpg“명품 골동상입니다. 이 물건을 찾으시는 다른 분들도 있어서요. 내일 오전 중에는 물건을 보셨으면 좋겠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모르는 물건을 다짜고짜 보러오라고 하다니, 참으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여자는 일단 알겠다고 하면서 내 이름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연락처를 받았다.

16560242484342.jpg[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사무적인 대답을 마지막으로 전화는 끊겼다. 그와 동시에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달리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 힘이 몸에서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과 달리 심장은 요란하게 뛰었다. 심장 위에 손을 올렸다. 쿵쾅쿵쾅 뛰는 이 느낌이 얼마만인지 모른다.

16560242428241.jpg“살아 있는 느낌.”

정말 살아 있는 느낌. 이게 몇 년 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더라? 아마 고등학교 때 이후 처음 느껴보는 거 같았다. 거의 10년 만이다. 너무 오래 잊고 있어서, 이런 느낌이 있다는 것조차 잊고 살아 왔다. 하지만 이젠 잊고 싶지 않았다. 아니, 자주 느끼고 싶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내가 존재한다는 걸, 내가 가치 있다는 걸 느끼고 싶었다. * 김 비서의 말을 들은 강정휘의 미간이 좁아졌다.

16560242513063.jpg“뭐? 명품 골동상에서 전화가 와?”

1656024251307.jpg“네. 한지감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말씀하신 달항아리 백자를 준비해 두었다고.”

16560242513063.jpg“한지감이라면 김 비서랑 싸운……?”

김 비서가 각을 잡고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1656024251307.jpg“네, 그 집 아들입니다.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습니다. 달항아리라니…….”

16560242513063.jpg“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어?”

1656024251307.jpg“네. 없습니다.”

16560242513063.jpg“혹시, 김 비서가 그 범인이란 걸 찾아낸 거 아니야?”

강정휘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김 비서가 단호하게 말했다.

1656024251307.jpg“그럴 리 없습니다.”

16560242513063.jpg“어떻게 확신하지? 몸싸움이 일어났잖아.”

1656024251307.jpg“몸싸움이 일어나긴 했지만 흔적이 남을 게 없었습니다. CCTV도 확실하게 처리했고, 장갑도 끼고 들어갔습니다. 모자를 쓰고 있어서 머리카락을 흘릴 위험성도 적었구요.”

김 비서의 말은 흠잡을 게 없었다. 하지만 강정휘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16560242513063.jpg“그런데 왜 그 자식이 전화를 걸어서 이상한 이야길 하냔 말이야!”

날카로운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요새 들어 강정휘는 부쩍 예민했다. 물론 평소 때도 그다지 유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강정휘는 김 비서가 명품 골동상에서 물건을 가져다주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한지감이란 변수로 인해 모든 게 어그러져버렸다. 큰 기대는 큰 실망을 낳는 법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강정휘는 물건에 집착했다. 물건을 어떻게 해서든 찾아야한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이 강정휘를 이렇게 만들었다. 이렇게 목소리가 울리고 나면 김 비서가 해야 하는 일은 딱 하나였다. 고개를 조아리는 것.

1656024251307.jpg“죄송합니다. 제가 내일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16560242513063.jpg“잠깐만.”

김 비서가 돌아서려다 멈췄다. 강정휘의 표정이 묘해져 있었다. * 다음날, 오전이 다 지나가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 1시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달항아리 위에 뜬 제한 시간은 이제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손은 계속 솔을 쓰는 단순한 행위를 반복했지만 속은 타들어갔다.

16560242428241.jpg‘미션에 나온 강정휘가 그 세 명 중에 없었던 건가? 어떻게 한 명한테도 반응이 안 오냐! 이대로 그냥 끝나버리는 거 아니야?’

그런 거라면 정말 최악이었다. 눈앞에서 10억이 날아가는 꼴을 봐야 한다니, 정확히는 35억인가. 아니 그것보다 능력을 가지고도 활용하지를 못하다니, 정말 이렇게 어이없을 수가 없었다. 가슴이 타들어가고 있는 그때, 문이 열리면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세련된 여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16560242428257.jpg“안녕하세요.”

아버지가 밝게 맞았다.

16560242428257.jpg“어서 오세요. 찾으시는 물건 있으십니까?”

씨익, 여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16560242513063.jpg“찾으시는 물건은 이미 알고 계실 텐데요? 달항아리 찾았던 사람입니다.”

강정휘! 강정휘가 드디어 나타났다!

16560242428241.jpg“아, 전화 주신 분이군요!”

흡족한 아버지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흥분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책상이 흔들렸고 내가 닦던 연적도 흔들렸다. 아버지가 매서운 눈빛으로 주의를 줬다. 나는 죄송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하지만 흥분은 숨길 수가 없었다. 쿵쾅쿵쾅 심장이 마구 뛰어댔다. 다른 사람한테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까 걱정해야할 정도로 강하게.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강정휘 대표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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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0242513063.jpg“전화는 이쪽에서 주셨죠.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달항아리를 찾고 있다는 건.”

아버지가 무슨 소리인지 확인을 바라듯 나를 보았다. 순간 난 긴장에서 얼음이 되어버렸다. 애초 목적한 바, 그러니까 강정휘 대표가 이곳에 오게 만드는 건 성취했지만 앞뒤 관계가 안 맞는 상태가 되었다. 아버지는 내가 강정휘의 전화를 받았다고 알고 있고, 강정휘는 난데없이 물건을 준비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한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눈빛 압박이 먹히지 않자 조용히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16560242428257.jpg“어떻게 된 거야?”

16560242428241.jpg“아…… 저…… 그게 그러니까…… 강정휘란 손님 찾으려고 인터넷에 검색을 했거든요. 근데 갤러리 대표님이시길래…… 맞는 거 같다고 생각해서…….”

엄밀히 따지자면 여전히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대충 알았다는 듯 고개를 돌리셨다. 눈앞의 손님이 우선이다 보니 세세하게 따지고 들 상황도 아니었을 것이다. 강정휘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16560242513063.jpg“처음에 연락한 그 손님은 제가 아닌데, 결론적으로 제가 달항아리 찾고 있던 건 맞아요. 그러니까 좀 볼 수 있을까요? 좋은 물건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16560242428257.jpg“그럼요, 보셔야죠. 어서 가져와, 지감아.”

16560242428241.jpg“네……!”

16560242428257.jpg“앉으시죠.”

나는 조심스레 물건을 가지고 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강정휘가 소파에 앉아 돋보기로 물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꽤 긴 시간 아무 말 없이 물건만 봤다. 아버지가 무슨 말이든 꺼낼 줄 알았지만 아버지 또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낸 건 오히려 강정휘 대표였다.

16560242513063.jpg“좋은 물건이군요. 김환기 화백이 왜 그렇게 달항아리를 그렸는지 한 번에 느끼게 하네요.”

아버지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16560242428257.jpg“정말 보기 좋지 않습니까. 학술적으로는 백자대호나 백자환호 등으로 불리지만, 전 달항아리란 호칭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강정휘가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6560242513063.jpg“그러게요. 달의 아름다움이 도자기에서 느껴지다니, 신기하네요.”

강정휘를 보기에 급급했던 내 시선이 도자기로 갔다. 보름달 같이 환한 느낌과 함께 흘러내리는 옆 곡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손을 대면 매끈하게 좌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다. 아버지가 흐뭇한 미소와 함께 설명했다.

16560242428257.jpg“훌륭한 작품이지요. 전 감히 국보와도 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부풀려도 좋을 텐데,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을 때보다 담백하게 말씀하셨다. 저래도 되는 건가 생각하는데, 강정휘가 입을 열었다.

16560242513063.jpg“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은데요.”

바로 본격적인 질문이다. 나는 시간을 봤다. 어느새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1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16560242428257.jpg“25억입니다.”

아…… 아버지. 일단 부르는 거 통 크게 35억을 부르시지, 25억이 웬 말입니까! 10억이 날아가 버리다니!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강정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16560242513063.jpg“25억이라…….”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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