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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수락의 이유 (7/226)

7화 수락의 이유2020.12.16.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갤러리에 들어선 나는, 대표실로 바로 가려다가 걸음을 멈췄다. 긴장했는지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남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는데 거대한 몸과 마주했다. 이런 몸을 얼마 전에 본 적이 있는데…….

1656024347304.jpg‘그래, 가게에 든 도둑! 그 도둑의 몸이 딱 이랬어!’

반사적으로 나는 얼굴을 보았다. 강정휘의 비서, 김 비서였다. 너무 놀라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김 비서가 나를 지나려다 얼굴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16560243473049.jpg“한지감 씨. 오셨네요.”

1656024347304.jpg“……네.”

16560243473049.jpg“이따 뵙겠습니다.”

김 비서가 고개를 까닥 숙였다. 나는 한 박자 늦게 인사를 했다. 돌아서 멀어지는 김 비서의 몸을 다시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봤던 그 몸과 겹쳐졌다. 혼란스러웠다.

1656024347304.jpg‘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럴 리 없잖아.’

김 비서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 가게를 털겠는가. 도통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문득 고개를 돌리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보이진 않지만 내 몸에 장착되어 있는 안경이 떠올랐다.

1656024347304.jpg‘만약…… 안경을 노린 거라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도둑이 들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달항아리 때문에 이 갤러리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강정휘는 35억에 달항아리를 사갔지. 감정도 받지 않은 채.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하셨다. 큰돈이 오가는 거래에는 감정이 필수인데, 강정휘가 그러지 않았다고. 그때 난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35억이라는 숫자가 보여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찜찜하다. 이후 초대된 오프닝 파티에서는 느닷없이 강정휘가 연적을 봐달라고 했다. 그런 뒤 정다영이 그 연적을 깨는 사고가 일어났다.

1656024347304.jpg‘김 비서가 정다영을 몰아세웠지. 배상하라고.’

그런 정다영이 안쓰럽고, 달항아리 팔 때 도움 받은 것도 있기에 나는 굳이 나서서 위조품이라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강정휘는 분명 지인의 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물건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주일 전에 전화통화로는 지인이 구입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1656024347304.jpg‘강정휘가 안경을 노린 거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10억이란 돈을 더 주고 달항아리를 산 것이 심증을 굳혔다. 그리고 아버지가 있는데도 나에게 굳이 개인 감정사를 제의한 것도 말이다.

1656024347304.jpg‘내가 안경을 쓴 걸 알고 날 이용하겠다는 건가…….’

충격을 받아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머리도 움직임을 멈춰버린 거 같았다. 하지만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된다. 도둑질까지 감행했던 사람이다. 이대로 도망쳐 봐야 언제 어떤 식으로 다시 접근해 올지 모르는 것이다. 원래의 예정대로 강정휘를 만나야 한다. 그러려면 심증이 아닌 조금 더 확실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1656024347304.jpg“정다영……!”

만약 날 시험하려 했다면, 정다영을 민 것도 고의였을 것이다. 정다영한테 확인을 해야 한다. 나는 정다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2번 반복되기도 전에 연결이 되었다.

16560243498319.jpg[감정사님!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656024347304.jpg“다영 씨. 저 급하게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요.”

16560243498319.jpg[네! 말씀하세요]

1656024347304.jpg“그날이요. 무거운 거 옮기다 넘어진 거예요?”

16560243498319.jpg[……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절 밀었어요. 물론 고의는 아니었겠지만요……. 근데 돌아왔을 때는 아무도 없어서 다 제 책임이 되어 버렸죠. 게다가 하필 CCTV가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았다고 해서…….]

1656024347304.jpg“다영 씨 믿어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내가 물어봤다는 건 비밀로 해 줄래요?”

16560243498319.jpg[그럼요!]

정다영은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흔쾌히 대답해 줬다.

16560243498351.jpg

  전화를 끊고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봤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강정휘는 안경을 노리고 있고, 그래서 날 이용할 작정이다.

1656024347304.jpg‘날 이용하겠다 이거지? 그럼 나도 널 이용하지.’

  * 그렇게 나는 강정휘와 대면했다. 강정휘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날 봤다. 소름이 끼쳤다. 차라리 안경을 원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라고, 당장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그대가 가면을 썼다면, 나도 써주지.

16560243498361.jpg“지감 씨, 생각은 해봤어요?”

1656024347304.jpg“대표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강정휘가 독이 든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자신의 수에 넘어온 것이 몹시도 흡족한 모양이었다.

16560243498361.jpg“잘 생각했어요.”

1656024347304.jpg“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16560243498361.jpg“조건이요?”

강정휘의 눈에 날카로움이 스쳤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차분히 내 이야기를 했다.

1656024347304.jpg“건당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16560243498361.jpg“이유가 궁금하군요.”

강정휘는 태연한 척 굴었지만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었다.

1656024347304.jpg“아무래도 아직 배우는 입장이다 보니, 가게 일을 아예 놓을 수 없을 거 같아서요. 그 편이 감정을 하는데도 훨씬 도움이 될 거 같구요.”

미세한 경련이 눈 아래 일었다. 자신의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짜증 나는 것 같았다. 앞에 대고 깔깔 비웃을 수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싫으면 받아들이지 마. 난 손해 볼 게 없어. 날 이용하기 위해, 아니 정확히 안경을 이용하기 위해 개인 감정사란 명분이 필요한 거잖아. 그러니 강정휘는 날 잡아야 한다. 이 관계에 우위를 가지고 있는 건, 나다. 강정휘가 차 한 모금 마시고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16560243498361.jpg“저는 지감 씨가 개인 감정사로 온전히 집중하면서도 충분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날 설득하시겠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1656024347304.jpg“그럼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억지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강정휘의 얼굴이 눈에 띠게 어두워졌다. 나는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1656024347304.jpg“좋은 제안을 해주셨는데 거절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가끔 저희 가게 들러 주세요.”

어떠냐? 이래도 버틸래? 결국 강정휘는 항복을 선언했다.

16560243498361.jpg“다시 생각해 보니 건마다 일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네요. 지감 씨가 가게 일을 하는 게 저한테 더 도움이 될 거 같고.”

나는 준비된 미소를 발사했다.

1656024347304.jpg“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16560243498361.jpg“그럼요.”

올린 강정휘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억지로 웃고 있는 것이다. 그게 너무 고소해서, 나는 이번엔 마음에서 우러나는 환한 미소를 선보였더랬다. * 대표실을 나오자 험악한 얼굴이 보였다. 김 비서였다. 나는 아주 공손하게 인사했다. 도둑님에게.

1656024347304.jpg“다음에 또 봬요. 김 비서님.”

김 비서가 아무 말 없이 매서운 눈빛으로 봤다. 덩치만 믿고 저따구로 인사를 씹는다 이거지? 그래, 뭐 내가 나이도 어리고 하니까 넘어간다. 나는 사무적인 미소를 짓고는 긴 복도를 걸어갔다. 강정휘의 제안을 일부 받아들인 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강정휘가 나한테 바라는 건 간단했다. 돈이 되는 골동품을 사들이는 것. 고가라 할지라도 돈이 된다면 사들이겠지. 사실 달항아리 백자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뿐, 10억 이상의 고가품을 골동상에서 사들이는 건 무리였다. 위탁을 받는다면 모를까. 고가의 물건을 보고, 감정하는 경험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강정휘는 자본을 가지고 있고, 나는 돈을 벌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 강정휘는 돈을 갖고, 나는 경험을 갖는 거지. 나라고 이 관계가 마냥 발전적으로 느껴지는 건 아니다. 강정휘는 안경을 노리고 있다. 아마 지금 방법을 몰라서 그냥 있는 거지, 방법만 안다면 어떻게든 가져가려고 할 것이다. 제안을 완전히 거절하는 방법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 강정휘가 더 위험한 방법을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당분간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돈을 벌어다주면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취할 작정이다. 한마디로 적과의 동침. 산뜻한 걸음으로 입구를 나와 정문을 지났을 때였다.

16560243498319.jpg“한지감 감정사님!”

뒤를 보니 정다영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다가왔다.

16560243498319.jpg“허억…… 허억…….”

뛰어와서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복숭아가 아니라 사과 같았다. 숨을 겨우 고르고는 정다영이 말을 이었다.

16560243498319.jpg“오셨다는 말 듣고 기다렸어요. 제가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세요?”

초롱초롱하게 눈을 뜬 모습을 보니 차마 거절하기가 그랬다. 동의하자 분위기 좋은 카페로 데리고 갔다. 그리곤 깍듯이 다시 인사했다.

16560243498319.jpg“한지감 감정사님. 지난번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천만 원 갚았을 거예요.”

1656024347304.jpg“감사인사 잘 받았으니까 이번을 마지막으로 해요. 계속 그러다간 고개가 안 남아나겠어요. 그리고 그냥 편하게 불러요. 감정사라고 불리기엔 아직 공부하는 입장이라서.”

16560243498319.jpg“그럼 지감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눈치를 보는 그 모습이 귀여웠다.

1656024347304.jpg“그래요.”

16560243498319.jpg“말씀 편하게 하세요, 지감 오빠.”

1656024347304.jpg“그럴까? 아, 그리고 나도 고마워. 갤러리 마감 5분 전에 전화 받아줘서.”

16560243498319.jpg“아니에요, 당연한 일인데요.”

1656024347304.jpg“그래도 다영이 아니었으면 달항아리 못 팔았을 거야.”

16560243498319.jpg“에이, 다 오빠가 잘해서 그렇죠. 근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1656024347304.jpg“강정휘 대표님 개인 감정사 일을 맡게 됐어. 건당으로 일하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갤러리에 자주 오게 될 거 같아.”

16560243498319.jpg“정말요? 다행이다. 가끔이라도 보면 정말 반가울 거 같아요. 갤러리 안은 저한테 지옥 같거든요.”

1656024347304.jpg“왜, 다영 씨 괴롭히는 사람이라도 있어?”

16560243498319.jpg“……연적 깬 이후에 단단히 미운털이 박혀서. 뭐 제가 잘못한 거니까요.”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갤러리 안에 있을 때는 주눅 든 모습밖에 못 봤는데, 밖에서 만난 정다영은 꽤 대범해 보였다. 강정휘에게 이용당한 같은 피해자이기도 해서 묘한 동질감도 생겼다. 연적에 대해 더 말해 주려다 입을 닫았다. 알면 스트레스만 받지.

16560243498319.jpg“앞으로 혹시라도 제가 도와드릴 일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1656024347304.jpg“정말 말해도 돼?”

16560243498319.jpg“그럼요!”

1656024347304.jpg“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이거 적군에 뜻밖에 동지가 생겼다. 뭐 나한테는 나쁘지 않는 일이다. 대략적으로라도 강정휘의 동향을 파악하는 건 도움이 되는 일이니 말이다. * 다음날, 가게에서 나는 여느 때처럼 도자기를 솔로 쓸어 댔다. 그렇게 도자기 하나를 다 쓸어낸 뒤에는 편액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 댔다. 강정휘의 개인 감정사로 건별로 일하기로 한 건 당분간 아버지한테 비밀로 할 작정이다. 이걸 이야기하면 안경을 썼다는 것에 대해서도 털어놓아야 할 테니 말이다. 나는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1656024347304.jpg“근데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해?”

이대로 있다간 물아일체를 넘어 내가 도자기나 그림이 될 거 같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1656024347304.jpg“아버지. 제대로 가르쳐 주시면 안돼요? 언제까지 이렇게 먼지만 털 수는 없잖아요!”

16560243609899.jpg“왜 계속 그것만 시키냐, 이 말이지?”

1656024347304.jpg“네!”

16560243609899.jpg“그게 공부다.”

1656024347304.jpg“네?!”

16560243609899.jpg“내가 가게에서 처음 일할 때, 니 할아버지가 나한테 4년 동안 먼지 터는 것만 시키셨다.”

헉! 이게 말로만 듣던 그건가? 선임한테 갈굼당한 인간이 후임을 더 갈군다는 그거? 오싹해져서 뒷걸음질 쳤는데 아버지가 담담히 말을 이어 갔다.

16560243609899.jpg“그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알겠더구나. 먼지를 털면서 질감, 색채, 전체적인 조형, 비례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색이 보일 거야. 도자기든 그림이든, 근래에 만들어진 것들은 묘하게 색이 떠 있어. 그게 첫 단계가 될 거다.”

아버지의 말에도 나의 경계는 풀리지 않았다. 정말 그런지 모르겠으나, 아버지 말씀대로라면 나도 4년 동안 계속 먼지만 털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눈빛을 읽기라도 한 듯 아버지가 담담히 말했다.

16560243609899.jpg“이 녀석아! 나는 4년 동안 안 시킬 거니까 걱정 마. 통장이나 확인해 봐.”

1656024347304.jpg“통장은 갑자기 왜요?”

16560243609899.jpg“보라면 좀 봐라!”

버럭 소리를 지르시곤 아버지가 돌아서셨다. 나는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어 통장을 확인했다. 눈이 커졌다.

1656024347304.jpg“하나둘셋넷…….”

9자리 숫자였다. 내 통장에 한 번도 찍힌 적 없는 숫자!

1656024347304.jpg“일억 오백……?”

16560243609899.jpg“네 덕에 달항아리 백자 팔았지 않냐. 보상이다. 수익금에서 중개비용 10%로 계산하고 네가 진 이천오백 제하고 넣은 거야. 이제 너 빚 없다.”

1656024347304.jpg“아버지!”

경계심은 순식간에 풀어졌다. 돈이 이렇게 무섭다.

16560243609899.jpg“아직 수습이니까 10%로 한 거야. 더 열심히 해. 그럼 퍼센트가 점점 늘어날 테니까.”

1656024347304.jpg“열심히 할게요!”

16560243609899.jpg“그러니까 얼른 솔질이나 더해!”

아까와는 달리 생기를 띤 얼굴로 솔질을 했다. 6시가 되자 아버지는 가게를 닫을 준비를 했다. 나는 관리대장을 보며 가게 안 유물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러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왜 안경은 보이지 않지? 내 몸에 내장된(?) 안경도 어쨌든 가게에 있던 물건이다. 그러니 당연히 관리대장에 적혀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1656024347304.jpg“우리 가게엔 안경 없어요? 강정휘 대표님이 찾으시던데.”

순간 아버지가 멈칫한 것 같았다. 내가 잘못 본 걸까?

16560243609899.jpg“안경을?”

1656024347304.jpg“네. 조선시대 애체요.”

16560243609899.jpg“우리 가게에는 없다.”

그럼 내가 쓴 안경은 뭐지?

1656024347304.jpg“가게에 있는 물건들 다 대장에 있는 거예요?”

16560243609899.jpg“당연하지. 가게에 있는 물건이 대장에 없는 경우는 없다.”

1656024347304.jpg“아버지가 깜박하셨을 수도 있잖아요.”

16560243609899.jpg“다른 가게엔 몰라도, 우리 가게엔 대장에 없는 물건 없어. 그런 물건은 없는 물건이야.”

1656024347304.jpg“네 알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머릿속 의문은 정리되지 않았다. * 아침이 되자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했다. 토요일이었기에 평소 같았으면 출근하지 않았을 테지만, 오늘은 물건이 들어오는 날이어서 특별히 출근하는 것이다. 발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생각은 딴 곳에 있었다. 어제 아버지가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16560243609899.jpg- 다른 가게엔 몰라도 우리 가게엔 대장에 없는 물건 없어. 그런 물건은 없는 물건이야.

  이 말이 나는 왜 이토록 걸리는 걸까? 가게 문을 여니 계산대에 앉아계시는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계셨다.

1656024347304.jpg“아버지, 저 왔어요…….”

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웠다. 왜 저러지? 그 답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계산대 아래 있었던 아버지의 손이 올라왔다. 아버지의 손에는 나무 재질의 작은 함이 들려 있었다. 그러니까 안경함 말이다. 아버지는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처럼 비장하게 물었다.

16560243609899.jpg“안경,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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