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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노도(老刀) (8/226)

8화 노도(老刀)2020.12.19.

16560243769122.jpg“안경, 썼어?”

온몸이 굳어졌다. 아니라고 하자. 모른다고, 그렇게 말하면 된다. 아버지가 검사 뺨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압박했다.

16560243769122.jpg“거짓말할 생각은 마라.”

나에게는 하나의 선택지 밖에 없었다. 진실이란 선택지.

16560243769132.jpg“네, 썼어요.”

16560243769122.jpg“……언제야?”

16560243769132.jpg“도둑이 들었던 날이요. 처음엔 그냥 신기해서 썼어요……. 그리고 숫자가 둥둥 떠다녀서 벗으려고 했는데 어느새 없어져 버렸더라구요.”

아버지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충격을 받으신 것이다.

16560243769122.jpg“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16560243769132.jpg“처음엔 제가 미친 줄 알았어요. 좀 지나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구요. 그리고 지금은…….”

16560243769122.jpg“그리고 지금은, 그 알량한 능력을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겠지.”

아버지가 날 꿰뚫어보는 눈으로 말했다.

16560243769132.jpg“네, 맞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활용하고 싶어요.”

16560243769122.jpg“당장! 당장, 안경을 벗어……!”

16560243769132.jpg“벗는 방법 몰라요.”

16560243769122.jpg“그건 내가 어떻게 해서든 알아올 테니…….”

16560243769132.jpg“그리고, 벗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

16560243769122.jpg“뭐?”

울컥 올라오는 것을 꾹 참으며 말을 이어갔다.

16560243769132.jpg“벗고 싶지 않다구요.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저 고3 수능 때 이후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제가 있을 곳이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시험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죠.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이제야 제가 있어야 할 곳을 찾은 거 같아요……!”

16560243769122.jpg“처음에야 뭔가 능력이 생긴 것 같겠지. 하지만 곧 저주라는 걸 알게 될 거다.”

16560243769132.jpg“왜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세요. 달항아리만 해도 35억에 팔았잖아요.”

아버지의 얼굴이 굳어졌다.

16560243769122.jpg“……그것도 안경으로 본 거였냐?”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16560243769132.jpg“네. 안경으로 봤어요. 정말 유용한 물건이에요. 특히 골동상한테는 더더욱이요. 아버지 모르고 위조품 팔았다가 곤란해지신 적 많았잖아요. 하지만 이 물건만 있으면 위조품을 살 일도 팔 일도 없어요.”

16560243769122.jpg“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는 법이다. 그 안경을 계속 쓰고 있다가는 모든 걸 돈으로만 보게 될 거야. 어떻게 벗을 수 있는지는 내가 알아낼 거다. 그 방법을 알아내는 그날로 넌 안경을 벗어야 할 거다.”

아버지는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16560243769132.jpg“아버지가 저한테 주신 돈 일억오백만 원, 일주일간 다섯 배로 불려올게요. 그렇게 되면 이 안경 제가 계속 쓸 수 있도록 해 주세요.”

16560243769122.jpg“한지감. 그 안경만 믿고 이러나 본데, 10만 원 이익을 남기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물건이 재평가 받는 건 극히 드문 경우야. 한번 형성된 가격은 쉽게 달라지지 않아.”

16560243769132.jpg“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골동품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으니까.

16560243769132.jpg“일주일에 다섯 배로 만드는 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괜찮은 물건을 발견했다고 해도 사줄 사람을 찾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잖아요. 게다가 저한테는 단골손님도 없죠.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좀 엄살을 부리긴 했지만 과장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16560243769122.jpg“천만 원. 천만 원을 오천만 원으로 만드는 걸로 하지.”

억대 유물이 수요에 따라 값이 오르는 것보다 천만 원대 유물이 재평가되는 것이 더 어려웠다. 고민되었지만 나한테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16560243769132.jpg“알겠어요. 그 대신 안경이 주는 모든 능력을 활용할 거예요.”

16560243769122.jpg“알겠다. 시간은 다음 주 토요일 오후12시.”

16560243769132.jpg“네.”

16560243769122.jpg“그리고 한 가지 더. 물건 살 때, 노도(老刀)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해라.”

늙을 로에 칼 도. 오래된 가짜를 가리킬 때 하는 말이다. 세월 흔적 때문에 사람들은 더 진짜같이 생각하게 되지만, 그게 칼처럼 사람을 상하게 한다는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16560243769122.jpg“니가 사는 건 물건이지만, 상대하는 사람은 사람이다. 잊지 마라.”

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 인사동의 한 골동품 가게 안에서, 나는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서 있었다.

16560243858227.jpg“이것 봐. 이 물건이 기가 막히다니까! 이 때깔 좀 봐봐!”

사장이 침을 튀기며 반닫이를 가리켰다. 사장 말대로 때깔은 좋았다. 나무는 윤이 나고 경첩과 장식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가로 90cm, 세로 40cm, 높이 1m 정도가 되는 사이즈였다. 반닫이는 앞면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 면만을 열고 닫도록 만든 가구다. 반만 사용해서 반닫이라고 부른다. 사극에서 주로 양반가에서 사용하는 가구로 많이 등장한다.

16560243858227.jpg“천만 원에는 이게 최선이라니까. 총각이 예뻐서 싸게 주는 거야.”

16560243769132.jpg“아…… 네…….”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 5,000,000원 | 위 ] 사장은 500만 원을 주고 구입한 모양이었다. 잠깐 생각해 보니까 열받네. 그걸 나한테 천만 원에 팔아먹으려고 하냐! 그것도 가짜 물건을 말이다. 내 나이 서른. 이제 어디 가서 지지 않는 나이다. 하지만 골동품 가게 사장들 눈에는 호구로 보이는 모양이다. 목기는 80년대까지는 위조품이 거의 없었는데, 고미술 시장이 생겨나면서 가짜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진짜든 가짜든, 목기는 보관하기가 어렵다. 온도와 습도가 중요한데, 창고에 보관하는 골동품 가게와 달리 일반 가정집에서는 상온에 둘 수밖에 없다. 그러면 너무 덮고 너무 추운걸 이겨내지 못하고 터져버릴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런 특성 때문에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목기를 취급하지 않고 계시다. 날 꾀어 보려는 사장의 눈빛이 기가 차서 한마디 해주고 싶은 걸 꾹 참고 어정쩡한 미소를 지었다.

16560243769132.jpg“돌아보고 오겠습니다.”

나가려는 나를 사장이 붙잡았다.

16560243858227.jpg“후회하지 말고, 이 자리에서 딱 결정해. 좋은 물건이라 이따 왔을 때는 없을 수도 있어.”

16560243769132.jpg“후회할 일 없을 거 같은데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가게에서 나왔다. 가게 사장이 뒤통수에 대고 소리치는 게 들렸다.

16560243858227.jpg“아니, 뭐야! 내가 가짜라도 판다는 말이야! 이거 진짜야, 진짜!”

16560243769132.jpg“하. 진짜라고 당신이 믿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가게 주인을 비웃으면서도 씁쓸했다. 저 가게가 들어간 지 열 번째 되는 가게였다. 그런데 진짜를 본 게 드물었다.

16560243769132.jpg“가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이야.”

위조품이 진품이란 탈을 쓴 채 고가로 사고 팔리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 가게는 아주 진품 천국이었다.

16560243769132.jpg“아버지 안목이 탁월했어.”

아버지 안목이 탁월하다는 건 아주 좋은 것이었지만 지금 나에게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니었다. 돈이 될 만한 물건을 구하지 못했다. 위조품이 진품의 탈을 쓰고 고가인 경우는 많아도, 진품이 제값을 받지 못한 경우는 적었다. 정말 드물게 진품이고 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해도, 애초에 1억 이상의 고가였다.

16560243769132.jpg“천만 원으로는 넘보지도 못할 물건들…….”

날은 어둑어둑해지는데 구한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좋을 물건을 구한다고 해도 그걸 팔려면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 거 같다. 나한테는 고정 고객이 없었다. 뭐 유일하게 강정휘가 있긴 하지만. 그냥 가짜를 사서 진짜라고 사기치고 강정휘한테 팔아버릴까? 어차피 나를 속이려는 사람 아닌가.

16560243769132.jpg“한지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정신 차려! 다음 가게로 가자.”

이를 악물고 다음 가게로 들어섰다. * 아무 물건도 구하지 못한 채 금요일 밤을 맞았다. 하루 종일 물건을 구하려 뛰어다녔지만 계속 같은 문제가 반복되었다. 내일 오후 12시까지 오천만 원을 구할 확률은 이제 0%에 가까워졌다. 피가 마른다는 말이 어떤 말인지 이제 정말 실감이 난다. 이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배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났다.

16560243769132.jpg“분위기 파악 좀 하자!”

영화 같은 데서는 심각하면 배가 안 고프다는데, 왜 나는 배가 고플까. 정말 알 수가 없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먹을 요량으로 움직이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 옆에 있는 24시간 설렁탕집에서 기가 막힌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냄새에 홀려 나는 설렁탕집으로 들어갔다.

16560243858227.jpg“어, 총각 오랜만이네?”

자취방 근처에 있고, 24시간 열어서 경환과 자주 다니던 곳이다. 서빙하는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16560243769132.jpg“보통…… 아니 특으로 하나 주세요.”

16560243858227.jpg“알았어!”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무심코 가게 안을 둘러봤다. 몇 주 만에 왔지만 가게는 늘 그렇듯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저 그림까지도. 부엌 맞은편에 걸려 있는 그림은, 눈을 부릅뜬 매가 인상적인 수묵화였다. 화훼영모도의 일종이었다. 화훼영모도란 꽃 화(花), 풀 훼(卉), 새 깃털 영(翎), 짐승 터럭 모(毛)로 꽃이나 풀, 곤충이나 동물을 그린 그림을 뜻한다. 매는 용맹하고 민첩해서 새들의 왕으로 불렸다. 새끼 밴 것을 잡지 않고 죽은 고기도 먹지 않아서 영물이라 했다. 뿐만 아니라 매를 뜻하는 한자인 ‘鷹(응)’은 ‘英雄(영웅)’에서 ‘英’과 중국 발음이 비슷해 영웅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다.

16560243769132.jpg“저 그림은 참 언제 봐도 생생해.”

잠깐만…… 이게 뭐야? [미션 : 내일 오후 12시까지 이 그림을 육천만 원 이상에 판매하면 3단계 정보가 공개됩니다.] [ 100,000원 | 진 ] 맙소사! 육천만 원의 가치가 있는 물건을 십만 원에 산 거야? 그리고 여기 이렇게 걸어놓았다는 건, 주인이 이 가치를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건데. 그때 달그락 무언가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아주머니가 설렁탕을 내려놓고 가신 것이다. 눈치를 보다 일단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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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정말 무슨 맛인지 하나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배가 고팠는데 말이다. 그림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치 관심이 가는 여자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온통 신경을 빼앗겼다. 어떻게 하지? 제대로 된 물건을 발견하면 일사천리로 뭔가 될 줄 알았는데, 머리가 새하얘졌다. 일단 소장자를 확인해야 한다. 가게에 걸려 있으니 십중팔구 가게 주인의 소유일 터였다. 가게 안을 둘러봤지만 사장님이 보이지 않았다. 고집이 엄청 세 보이는 할머니인데 오늘따라 부엌에도 없는 것 같았다. 현재 가게에 있는 유일한 직원인 아주머니이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한 척 물었다.

16560243769132.jpg“근데 사장님은 안 보이시네요.”

아주머니는 시선은 TV에 고정한 채로 말했다.

16560243858227.jpg“사장님이 지금 이 시간에 왜 있어? 아침에 나와야 하는데.”

아, 젠장. 이러다가 그림 팔라는 말 한번 제대로 못하고 내일 오후 12시를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초조함을 애써 숨기고 또 물었다.

16560243769132.jpg“아침이요? 몇 시쯤 오시는데요?”

16560243858227.jpg“뭐 한 6시쯤? 근데 그건 왜?”

당황했지만 웃음으로 지웠다.

16560243769132.jpg“설렁탕이 맛있어서요, 비법 좀 알려달라고 하려구요.”

16560243858227.jpg“어이구. 설렁탕이 무슨 비법으로 끓이는 줄 알어? 정성으로 끓이는 거지. 우리 가게는 정말 좋은 재료 받아서 푹푹 끓인다고. 우리 가게처럼 영업하는 데 손에 꼽아.”

16560243769132.jpg“그러네요. 국물 맛이 정말 진해요.”

물건에 정신이 팔려 진한 맛도 못 느끼는 주제에. 지금 이 순간 설렁탕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 6시, 나는 무조건 여길 올 것이다. 사장님을 설득해 봐야지. * 다음날 아침, 6시도 되기 전 나는 집을 나섰다.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는데도 몸이 힘들지 않았다. 어제 나는 몰래 그림을 핸드폰으로 찍었다. 그리고 화제 마지막 부분에 있는 관서를 읽어냈다. 긍재(兢齋) 김득신의 호다. ‘齋’ 부분이 행서로 쓰여 있어 읽어내기 몹시 힘들었지만 결국은 해냈다! 긍재는 사실 화훼영모도보다는 풍속화로 유명하였다. 신윤복, 김홍도와 함께 3대 풍속화가로 꼽혔다. 하지만 단원(김홍도)의 영향을 받았다 하여 아류라는 빈정거림을 받기도 했다. 그림 우측 하단에 쓰여 있는 화제는 매 하면 떠오르는 두보의 유명한 시이다. 제목이 시 내용보다 길어 기억은 안 난다. 내용은 ‘萬里寒空祗一日, 金眸玉爪不凡才(만리한공지일일, 금모옥조불범재)’. 뜻은 ‘차가운 하늘 만 리 길도 하루면 족할 터, 황금 눈동자 옥빛 발톱이 특별하구나’였다. 화제까지 찾아보고 나니 매 그림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래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가게 근처에 도착한 나는 무턱대고 들어가려다 분위기를 살폈다. 안에는 어제와 다른 아주머니 한 명만 있었다. 아직 사장님이 오지 않은 것이다. 나는 초조하게 주변을 돌면서 할머니 사장님이 오길 기다렸다. 6시 정각이 되어 재료를 실은 차가 도착했고, 잠시 후 할머니 사장님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얼른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사장은 이미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미리 앉아 있다가 물어볼걸 하는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부엌 가까운 데 앉아 주문하고 할머니 사장님이 한 번이라도 나오길 고대했다. 일분일초가 흐를 때마다 피가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림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한참 후에야 부엌에서 나온 할머니 사장님을 뵐 수 있었다. 깊게 파인 주름은 음식에 대한 고집을 보여주는 거 같았다.

16560243769132.jpg“사장님, 설렁탕이 참 맛있네요!”

16560243858227.jpg“신선한 재료로 만들어서 그렇지.”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때를 난 놓치지 않았다.

16560243769132.jpg“근데 저 그림은 무슨 그림이에요? 매가 아주 활기가 넘치네요.”

16560243858227.jpg“아, 저 그림. 잘 몰라. 20년 전엔가 여기로 가게 옮겼을 때, 전 주인이 가져가기 뭐하다고 10만 원만 더 보태 달라고 해서 샀지. 집에 두기도 뭐해서 가게에 걸었어.”

이렇게 술술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일이 잘 진행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16560243769132.jpg“그림이 좋아 보여요. 사고 싶어요. 파신다면 얼마에 파실 생각이세요?”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할머니 사장님은 당황하신 거 같았다.

16560243858227.jpg“판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한 50만 원……?”

끝말을 흐리는 걸로 봐서 50만 원도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16560243769132.jpg“100만 원에 저한테 파세요.”

양심이 콕콕콕 찔렸다. 육천만 원짜리를 백만 원에 후려치다니. 꾼들이 많이 한다는 호리다시(값싼 투자로 횡재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속어)를 하고 있는 거다. 정말 양심 없다, 한지감. 하지만 천만 원 안에서 승부를 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제발 천만 원 아래로만 불러라……! 나는 입술 안을 잘근 씹으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할머니 사장님이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16560243858227.jpg“육십만 원에 줄 테니까 가져가.”

16560243769132.jpg“정말요?”

16560243858227.jpg“그래.”

아싸! 와! 해냈어! 해냈다고! 환호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할머니 사장님의 말 때문이었다.

16560243858227.jpg“앞으로 우리 가게 자주 오고.”

할머니 사장님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을 지났다.

16560243769132.jpg“……감사합니다.”

양심이 콕콕 찔리는 것을 넘어섰다. 누가 발로 심장을 퍽퍽 때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림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큰 액자를 조심스레 들고 나는 설렁탕 가게에서 나왔다. 액자 길이가 내 다리 길이보다 조금 짧은 수준이어서 더 조심스러웠다. 시간을 확인했다. 8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오후12시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4시간 정도다. 누구한테 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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