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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공개적 망신 (12/226)

12화 공개적 망신2020.12.28.

1층 로비의 회전문을 막 통과하던, 벌건 얼굴을 한 나까마와 눈이 딱 마주친 것이다.

165602449005.jpg“한지감! 이 개새끼! 너 잘 만났다!”

단숨에 뛰어온 나까마가 내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내 키가 커서였다. 그는 모양 빠지게 발꿈치를 들고 나서야 겨우 멱살을 잡았다. 키스하는 것도 아니고, 발꿈치가 뭐냐.

165602449005.jpg“너 이 자식! 젊은 놈이 할 게 없어서 사기를 쳐! 어디에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로비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도와줄 만도 한데 이수지를 비롯한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다들 재밌는 구경거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 유독 한 사람은 입이 찢어져라 좋아했다. 이수지의 개인 감정사. 나는 나까마를 내려다봤다. 아까 문자를 받았을 때는 솔직히 쫄았다. 근데 내 밑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긴장이 착 가라앉았다.

16560244900513.jpg“놓으시죠.”

멱살을 잡은 나까마의 손을 떼어냈다. 나까마는 떼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50대 아저씨가 30대 한창인 청년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나까마는 다시 달려들려는 듯 움찔하다가 멈춰 섰다.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으리라.

16560244900513.jpg“청자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165602449005.jpg“그래, 이 뻔뻔한 새끼야! 후려쳐도 정도가 있지, 30억짜리를 1억에 가져가는 놈이 어디 있어! 아니지, 10만 원에 가져갔지!”

로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질타의 시선으로 봤다. 순진한 사람 사기 친 나쁜 놈이 됐다.

16560244900513.jpg“그게 문제가 됩니까?”

165602449005.jpg“뭐?”

16560244900513.jpg“저는 선생님과 똑같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165602449005.jpg“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16560244900513.jpg“선생님도 ‘후려쳐서’ 사지 않으셨습니까. 10개에 삼천만 원.”

나까마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165602449005.jpg“무슨 소리야! 난 다 제 값 치르고 샀어!”

16560244900513.jpg“나까마가 제 값 치르고 샀다니……. 그 말을 누가 믿을까요? 그렇게 자신 있으시면, 물건 원 소유주 좀 만나게 해주세요. 제 값 주고 샀는지 확인이 되면 청자 값 제대로 쳐드리겠습니다.”

이번엔 질타의 시선이 나까마에게 넘어갔다.

165602449005.jpg“이…… 이 자식이 쫄리니까 본질을 흐리네!”

쫄리는 건 나까마였다. 그렇지 않으면 말을 저렇게 더듬겠는가.

16560244900513.jpg“같은 업자인 선생님에게서 삼십 억짜리 청자를 일 억에 산 제가 나쁜 걸까요?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노부인에게서 청자를 비롯한 여러 물건을 삼천만 원에 산 선생님이 나쁜 걸까요?”

나까마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나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쳤다.

16560244900513.jpg“적어도 저는 일반인을 상대로 후려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업자인 선생님은 다르죠. 그리고 제가 선생님이었다면 이렇게 찾아오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겁니다. 30억을 날리는 것보다는, 안.목.이 없다는 걸 광고하는 게 꺼림칙했을 테니까요.”

어느새 나까마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질타를 넘어 경멸에 이르렀다. 안쓰럽게 보는 사람마저 있었다. 여기서 공개적으로 더 나가면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나까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히 마무리하고 싶어서였다.

16560244900513.jpg“선생님. 믿지 못하시겠지만 단원의 그림은 가짜였습니다. 저는 청자를 1억 10만 원에 사온 겁니다.”

그러고는 로비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16560244900513.jpg“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상황이 정리되자 이수지가 다가왔다. 그녀는 재밌는 영화라도 본 사람처럼 흥미로워했다. 반면에, 옆에 있는 개인 감정사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런데도 기세에 눌려서인지 아까처럼 노려보지는 못했다.

16560244929556.jpg“재밌는 구경을 했네.”

16560244900513.jpg“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16560244929556.jpg“그래. 이만 가봐.”

나는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언제 갔는지, 나까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 탑 옥션 대표 사무실. 황덕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셨다.

16560244958782.jpg“아주 마음에 든단 말이야.”

그의 앞에는 김도균이 앉아 있었다.

1656024495879.jpg“형이 말했던 애가 아까 로비에서 나까마랑 싸우던 걔야?”

16560244958782.jpg“맞아. 어때? 감정위원으로.”

1656024495879.jpg“당장 들이자는 건 아니지?”

16560244958782.jpg“왜, 나이가 너무 어려서?”

1656024495879.jpg“어쨌든 후려친 건 후려친 거잖아. 그것도 30배나…….”

16560244958782.jpg“그게 뭐 어때서?”

1656024495879.jpg“형! 그게 뭐 어떠냐니.”

16560244958782.jpg“한지감 말대로 업자들끼리잖아.”

1656024495879.jpg“아무리 그래도, 결국 목적은 돈이었다는 거잖아.”

언짢은 게 그대로 드러났다. 픽, 황덕현이 웃었다.

16560244958782.jpg“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옥션 회사에서 일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총괄님.”

1656024495879.jpg“처음부터 돈이 목적인 거랑은 달라. 나는 미술이 얼마나 가치 있는 건지 보여주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거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는 돈으로 판단되니까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미술의 가치가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치밀어.”

16560244958782.jpg“하긴……. 애널리스트들이 다짜고짜 와서 ‘뭐가 뜰 거 같아요?’하면 짜증 나지. 하지만 도균아, 우리도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어쨌건 미술품을 사고파는 일을 하잖아.”

황덕현이 잔을 내려놓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16560244958782.jpg“그리고 당장 경매에 올릴 작품이 필요하면 아까 그런 나까마에게라도 작품을 받아와야 하는 게 우리야. 우리도 마냥 결백할 수만은 없다고.”

1656024495879.jpg“알아……. 그래도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어.”

김도균이 씁쓸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 다시 말했다.

1656024495879.jpg“근데 고미술 감정위원 8명 자리는 이미 다 차 있잖아.”

16560244958782.jpg“현재로서는 그렇지.”

탑 옥션에서는 고미술 분야에는 총 8명의 외부 감정위원이 있다. 감정위원은 학계 인사와 상인으로 이루어진다. 한 작품당 3인 이상의 개별 감정을 진행하고, 그 결과가 만장일치일 경우에만 출품할 수 있다.

1656024495879.jpg“현재로서 그렇다는 건 곧 빈자리가 생길 수도 있단 말로 들리네?”

16560244958782.jpg“글쎄. 모르지.”

1656024495879.jpg“아 뭔데! 나에게도 못할 얘기야?”

16560244958782.jpg“대표 자리에 앉으면 말하지 못할 게 늘어난단다.”

황덕현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 감정위원 중에 교수로 재직 중인 인물에 대해 첩보를 들었다. 졸부인 친척이 화랑을 열 계획인데 거기 들어갈 물건 반을 가짜로 채웠단다. 교수가 전문지식을 이용해 가짜들을 진짜로 만드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잘 팔리기만 한다면 교수의 책을 내주고 방송까지 탈 수 있도록 힘써 주겠다는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했다. 물론 아직 첩보이기 때문에 백 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이라도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위촉을 해지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가짜를 진짜로 만드는 건 친척과 관련된 일에서 끝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황덕현의 경험상, 한번 이해관계에 의해 움직인 사람은 계속 그 행위를 반복한다. 한마디로 신뢰할 수 없다. 학계를 떠올리면 고고한 이미지가 연상되기 마련이지만 실상은 그리 깨끗하지 못했다. 학계 또한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라, 더러운 짓을 하는 사람들은 꼭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걸러내서 이 회사를 지키는 것이 대표의 일이었다. 황덕현이 찻잔을 가져와 가만히 향을 맡았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세상 여유로운 사람 같았다. 속이 엄청 시끄러운데도 말이다. * 나는 지하철에 타자마자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재꼈다. 긴장을 풀기 위해 뻣뻣해진 목을 이리저리로 돌렸다. 오늘 나까마와 마주칠 줄은, 그것도 탑 옥션 로비에서 설전을 벌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처를 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 최선이었다.

16560244900513.jpg“그 정도면 잘한 거지.”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나까마에게 쏟아낸 말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된 시선이었다. 시험 공포증이 생긴 이후로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근데 어째 안경이 생긴 이후로 시선을 받을 일이 자꾸만 늘어만 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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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0244900513.jpg“갤러리에서 연적이 깨졌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그리고 이상하게도 앞으로도 이러한 일이 계속 생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그 부분이 걸렸다. 시험 공포증은 극도의 긴장 상태일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근데 이번처럼 시선이 쏠렸을 때 극도의 긴장 상태가 된다면, 그래서 시험 공포증 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고객 앞에서 아니면 같은 업자들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아찔해졌다.

16560244900513.jpg“시선이 몰릴 일은 되도록 피하면 되지……. 오늘 같은 일이 얼마나 자주 있겠어.”

많지 않을 것이고, 그때마다 좀 더 신경 써서 잘 지나면 된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정다영이었다. 반가워서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16560244900513.jpg“여보세요?”

16560245015249.jpg[오빠, 괜찮으세요?]

16560244900513.jpg“덕분에 괜찮아.”

16560245015249.jpg[휴우……. 다행이에요.]

정말 걱정한 모양이었다. 잔뜩 긴장했다가 안도하는 것이 느껴졌다.

16560244900513.jpg“걱정 많이 했구나.”

16560245015249.jpg[네……. 정말 무슨 일 나는 줄 알았어요. 아저씨가 어찌나 행패를 부리던지, 보안직원 두 명이서도 버거웠다니까요.]

16560244900513.jpg“네가 알려준 덕분에 잘 끝났어. 고마워, 다영아.”

16560245015249.jpg[고맙긴요. 오빠는 더한 것도 해주셨는데요.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죠. 아참, 오빠!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괜찮으시면 저녁 대접하고 싶어서요. 도와주셨는데 식사 대접 한번 못해서 마음이 안 좋아서요.]

16560244900513.jpg“괜찮아, 오늘 나 이렇게 도와줬잖아. 그리고 지난번에 차도 샀으면서. 뭘 자꾸 산다고 그래.”

16560245015249.jpg[그래도요. 저녁 먹어요. 제가 맛있는 걸로 살게요!]

그러고 보니 배도 고팠고, 마침 지하철이 가는 방향도 갤러리 쪽이었다.

16560244900513.jpg“그래, 그럼 같이 먹자.”

  * 정다영이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16560245015249.jpg“정말 국밥으로 괜찮으시겠어요?”

16560244900513.jpg“응! 나 순대국밥 좋아해.”

16560245015249.jpg“그래도 너무 소박한 거 같은데…….”

16560244900513.jpg“소박하긴, 비싼 수육도 시켰는데?”

16560245015249.jpg“더 비싼 걸로 드셔도 괜찮아요. 다음에는 비싼 걸로 사드릴게요!”

16560244900513.jpg“나에게는 이게 충분히 비싼 음식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육 사먹을 형편도 안 됐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한 술 크게 국밥을 뜬 뒤 수육 한 점을 얹어 먹었다.

16560244900513.jpg“정말 맛있는데?”

16560245015249.jpg“그래요?”

그제야 다영의 얼굴이 환해지더니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물오물 작은 입을 움직여가면서 국밥을 맛있게 먹었다.

16560244900513.jpg“국밥 잘 먹네?”

16560245015249.jpg“네, 좋아해요. 점심시간에 여기 자주 와요.”

그 모습이 좀 신기해 보였다. 내가 만났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순대국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다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16560245015249.jpg“왜 그렇게 보세요?”

16560244900513.jpg“아니 좀 신기해서. 내가 아는 여자들은 국밥 종류를 다 싫어했거든.”

16560245015249.jpg“신기하네요. 제가 아는 여자 중에서는 국밥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는데?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건가?”

그러면서 수육 두 점을 간장에 찍어 야무지게 먹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16560244900513.jpg“전공이 뭔지 물어봐도 돼?”

16560245015249.jpg“현대 미술 전공했어요. 작가가 되고 싶었죠.”

얼굴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거기서 말을 멈출 거라 생각했지만 다영은 계속 이어갔다.

16560245015249.jpg“대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어려워도 작가가 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자, 알바 하면서도 작품은 계속하자 싶었죠. 근데 대학 다니면서 점점 의문이 생기더라구요.”

16560244900513.jpg“어떤 의문?”

16560245015249.jpg“현실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나에게 작가로서의 잠재력이 있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러다가 졸전 때 확실히 제 바닥을 봤죠.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애써 담담한 척 말하는 것이 안쓰러웠다. 간절히 원했던 것이 손에서 멀어지는 건, 세상에서 밀려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16560244900513.jpg“힘들었겠다.”

위로가 될 만한 말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이것뿐이었다.

16560245015249.jpg“제가 너무 진지한 이야기했죠? 분위기 처지게.”

16560244900513.jpg“아니, 좋아. 나도 비슷하거든. 나는 시험 공포증이 있어.”

짧게 그간의 내 삶을 이야기해줬다. 다영이 울어버릴 거 같은 표정을 지었다.

16560245015249.jpg“너무 억울하겠다.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시험을 제대로 못 보니까 의미가 없잖아요!”

16560244900513.jpg“그래서 그만뒀잖아.”

16560245015249.jpg“오빠에게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저랑 달리 빠르게 자리 잡았다고 생각거든요. 그래서 마냥 부럽기만 했는데…….”

16560244900513.jpg“다영이도 곧 자리 잡을 거야.”

지그시 날 보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16560245015249.jpg“‘모든 사람은 예술가이다.’ 이 말 아세요?”

16560244900513.jpg“들어는 본 것 같아.”

16560245015249.jpg“힘든 일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겨낸 사람들을 보면 그 말이 떠오르더라구요. 그거야말로 자신의 삶을 승화시킨 거잖아요.”

16560244900513.jpg“그렇게 생각하니 멋진 말이네! 근데 누가 한 말이야?”

16560245015249.jpg“20세기 다빈치로 불리는 조셉 보이스가 한 말이에요. 아까 오빠가 말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로 살진 못해도 내 삶을 그리는 예술가로는 살 수 있을 것 같다고요.”

빙그레 웃는 다영을 보며 나도 따라 웃었다. 다영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아 안심이 됐다. * 다음날, 나는 일찍 가게에 나와 청소했다. 오늘 아버지는 가게를 비우신다. 허리 때문에 병원을 가셨다. 많이 괜찮아졌다고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청소를 마치고 나는 관리대장을 보면서 물건을 익혔다. 사실 오백 번도 넘게 봐서 이제는 거의 외웠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손님 앞에서 긴장하고 헛소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계속 관리대장을 붙잡았다. 9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가게 밖에서 가방을 맨 20대 여자가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16560244900513.jpg“뭐지?”

아무래도 여기 들어오고 싶은데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문을 열고 최대한 밝은 영업용 미소를 띠었다.

16560244900513.jpg“물건 보시고 싶으면 편하게 들어와서 보세요.”

165602449005.jpg“아…… 저. 물건 보려는 게 아니라 봐주셨으면 하는 물건이 있는데…….”

16560244900513.jpg“네, 들어오세요.”

가게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가방 안에서 족자를 꺼냈다. 족자를 조심스레 펼치자 멋진 산수화가 보였다. 크기는 세로 120cm에 가로 40cm 정도였다.

165602449005.jpg“누구 작품인지 알고 싶고, 가능하면 처분도 하고 싶어요.”

그 위로 메시지가 떴다. [ 800,000원 | 진 | 5,000,000원 ] [미션 : 24시간 내에 이 그림이 육대가 중 누구의 작품인지 혼자의 힘으로 알아내면 4단계 정보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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