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위조자 (2)2021.01.25.
다음날, 나는 계획을 복기하면서 초조하게 경환을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경환이 여자 친구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경환의 여자 친구는 사진의 모습 그대로 청순했다. 저런 외모를 가진 사람이 위조자라니 역시 이 세상에는 겉과 속이 다른 것이 너무 많다.
“혀엉. 일찍 와 있었네.”
“제수씨 만난다고 긴장해서 일찍 왔다.”
경환이 여자 친구를 보면서 말했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이자 가장 친한 형이야.”
“안녕하세요. 한지감입니다.”
“여긴 내 여자 친구, 채령 씨.”
안채령이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안채령입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 속을 알 리 없는 경환이 해맑게 말했다.
“어제 갑자기 형이 전화 오더니, 오늘 꼭 우리 채령 씨를 봐야겠다고 하잖아요.”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장난스레 말했다.
“경환이가 하도 자랑을 해서요. 어떤 분인지 정말 궁금했어요.”
“저도 궁금했어요. 경환 씨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거든요.”
배시시 웃는 안채령의 미소에는 그 어떤 악함도 보이지 않았다. 시시콜콜한 말들이 오고갔다. 대화의 90% 이상 지분은 경환이 갖고 있었다. 주로 안채령이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착한지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그럴 때마다 안채령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했다. 어찌나 눈꼴이 시던지, 원래의 목적이고 뭐고 그냥 카페를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경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형하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오.”
“그럴게요오.”
누가 보면 여기가 유치원인 줄 알겠다. 경환이 화장실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제가 갑자기 보자고 해서 놀라셨죠?”
“조금 놀랐어요. 저도 뵙고 싶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뵙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오늘 보자고 한 이유가 있어요.”
“이유요?”
나는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화면에는 나까마에게서 산 바둑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안채령의 눈이 심하게 일렁였다.
“채령 씨가 그린 그림 맞죠?”
“……이걸 어떻게……?”
“제가 샀어요. 나까마가 단원의 위작이라면서 1억을 달라고 했죠.”
“……저는…….”
순식간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연기를 아주 잘하는 모양이다. 누가 저 얼굴을 보고 위조자라고 생각하겠는가. 시간이 없는 관계로 나는 따끔한 경고를 날려야 했다.
“탑 옥션에서도 채령 씨가 위조한 풍속화 화첩 봤어요. 짚신삼기, 투전판……. 하나같이 그림들이 재밌더군요.”
“…….”
“채령 씨가 위조를 하든 뭐를 하든 제가 알 바는 아니죠. 하지만 경환이는 저한테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예요. 경환이가 채령 씨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차마 말 못했어요. 일주일 시간을 줄게요. 하는 일을 고백하든, 헤어지든 채령 씨가 선택하세요.”
“사…… 사정이 있었어요.”
사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때 경환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안채령을 보고 차갑게 말했다.
“경환이 와요.”
자리로 돌아온 경환이 개구지게 웃으면서 물었다.
“채령 씨,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아…….”
당황한 안채령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저렇게 거짓말을 못하면서 위작은 어떻게 그리는 걸까. 위작도 넓게 보면 거짓말과 다를 것이 없다. 다른 사람의 그림인 척 모든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 아닌가. 그냥 두었다가는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아 내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핸드폰에서 본 채령 씨 그림에 대해 이야기 나눴어. 그림 재밌다고.”
“형한테 안 물어봤거든? 채령 씨한테 물어봤다고. 그쵸오, 채령 씨.”
안채령이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빠른 선택을 원한다는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 백자 필통을 솔로 조심스레 털어냈다. 솔로, 천으로 먼지 털어내는 일이 정말 싫었는데, 이상하게 요샌 이 행동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경환 일행과 헤어지고 나는 곧바로 가게로 왔다. 경환을 위해서라고는 하나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것 같아 영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등록되지 않은 번호였다. 받지 말까 하다가 그냥 받았다.
“여보세요?”
[저…… 안채령이에요. 흐으윽……. 잠깐 뵙고 싶은데 괜찮으세요? 흐으윽…….]
나는 할 말이 없었기에 빠른 결정을 내리고 경환과 이야기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왠지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주소 찍어 줄 테니까 이쪽으로 와요.”
30분쯤 지났을까, 안채령이 낮과는 전혀 다른 퀭한 모습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여기 앉아요. 차라도 한잔 주고 싶은데, 이 안에선 물 외에 아무것도 못 먹어서요.”
“……괜찮습니다.”
안채령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입술이 터져 있어 놀랐다.
“무슨 일이에요?”
“교…… 교수님 찾아갔어요. 그림 그리게 한 분이 교수님이세요. 처음에는 위조를 하는지 몰랐어요. 안 믿으시겠지만…….”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자세하게 말해 봐요.”
“2년 전쯤, 박명국 교수님이 따로 교수실로 절 부르셨어요. 풍속화를 참 잘 그리는데 요샌 인기 없는 그림이라 아쉽다고 말씀하셨죠.”
그녀는 흐느끼면서 말을 이어갔다.
“저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처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풍속화를 그려보는 게 어떠냐, 그런 말씀을 할 줄 알았죠.”
“그런데요?”
“예상과 다른 말씀을 하셨어요. 친척분이 곧 화랑을 여는데 조선시대 풍속화를 재현한 그림을 몇 점 걸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단원의 풍속화처럼 그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안채령이 너무 후회스럽다는 듯 질끈 눈을 감았다. 하지만 난 안채령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걸리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렸다는 건가요? 그럼 인장은요?”
인장은 작가가 직접 찍는다. 단원이 말년에 사용한 ‘단구(丹邱)’가 새겨진 인장을 찍었다는 것은, 위조되는 걸 알고 동조했거나 묵인했다는 뜻이다.
“교수님이 인장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직접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시간이 걸리니까 그림 먼저 넘기라고 해서……. 그림 넘기고 얼마 안 돼서 여쭤 보니까, 아는 분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팔았다고 하시더라구요.”
“인장도 찍지 않은 그림을요?”
“저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반발을 할 수도 없었어요. 교수님은 절대적이에요. 잘못 찍혔다가는 학교는 물론이고 미술계에서 매장돼요. ……그러다 3개월 전쯤, 다시 교수님이 부르셨어요. 지난 번 그림을 사가셨던 분이 다시 그림을 사고 싶다면서 교수님을 통해서 연락이 왔다구요. 그렇게 화첩을 그리게 됐죠.”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처럼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근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제 인장을 찍지 않고는 그림을 안 넘기겠다고 했더니, 미술계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미 전 위작을 그린 위조자라고, 그런 애가 미술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냐고. 그래서…… 그냥 넘겼어요……. 저 최악이죠?”
그녀의 눈에서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티슈 곽을 앞에 놓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어느 정도 진정 된 이후 내가 물었다.
“입술은 왜 그렇게 된 거예요?”
“경환 씨한테 고백하기 전에 완전히 끝내야 할 것 같아서 교수님한테 갔어요. 이제 더 이상 안 그릴 거라고 했더니 때리더라구요…….”
그녀를 지그시 보다 물었다.
“경환이 진짜 좋아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채령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짜 좋아해요……! 앞으론 그런 짓 안 해야 경환 씨 붙잡기라도 할 테니까 안 하겠다고 했어요. 뒷감당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요. 그러니까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경환 씨한테는 제가 직접 말할게요. 경환 씨가 알게 되어도 모른 척해 주세요. 부탁드려요.”
자신이 위작을 그렸다는 걸 정말 처음엔 몰랐던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경환을 향한 마음만은 진심인 것 같았다.
“알겠어요.”
* 일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안채령에게 모른 척하겠다고 약속한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약속대로 계속 모르는 척하고 있다. 하지만 그 상태로 경환을 마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속이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나는 집에 늦게 들어가고 있다. 도서관에서 고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고 시간을 때웠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도서관에 가기가 싫었다. 나는 다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목소리가 다 죽어 가네. 많이 힘들어?”
[3일차잖아요. 힘들 때죠.]
“퇴근은 했어?”
[아니요. 잠깐 저녁 먹으러 나왔어요.]
“그렇구나. 놀아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도서관에 또 가야 하나.
[아참, 오빠. 그건 어떻게 됐어요? 정말 그 여자 친구분이 몰랐던 거예요?]
“그럴 확률이 커. 친척이 화랑 열고 거기에 들어가는 물건들을 위작으로 채우는 데 교수가 도움을 준 모양이야. 경환이 여자 친구 그림을 판 돈이 화랑 여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줬고.”
3일 동안 나도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다. 안채령이 말한 것이 진실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조사를 좀 했다. 놀랍게도 이 위조사건의 중심에 있는 박명국 교수는 얼마 전까지 탑 옥션 감정위원이었다. 그러니까 박명국 교수가 잘린 자리에 내가 들어간 상황이었다. 황덕현 대표가 이유 없이 위촉을 해지했을 이유는 없었다.
[자기 발등 찍은 것이지만 불쌍해요. 처음부터 위조할 목적이란 것을 알았대도, 교수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안 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이 업계에서 교수 입김 무시 못하거든요. 졸업해도 지도 교수 이름은 따라다니고, 계속 봐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그렇지.”
이해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예체능 분야에서 교수의 입김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들었다. 오죽하면 성인이고 교수보다 물리적인 힘이 약한 것도 아닌데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겠는가. 통화를 끝내고 터덜터덜 걸었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한 채 걸었다. 정신을 차라니 집 앞이었다. 당연히 집에 불이 켜져 있어야 하는데 꺼져 있었다. 경환이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에 안도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불을 켜는데, 어둠에 감춰져 있었던 경환이 나타났다.
“깜짝이야. 왜 불 끄고 있었어?”
“형.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채령 씨…… 그림 위조했다면서.”
모른 척하고 있으래서 모른 척하고 있었더니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은 뭘까? 아니, 말했으면 귀띔이라도 해 주든가.
“경환아……. 미안하다. 속이려는 건 아니었는데…….”
“왜 진작 말 안 했어! 말했으면 채령 씨 속 끓이게는 안 했잖아……!”
경환은 말 끝내기가 무섭게 끅끅거리면서 울었다. 여자 친구가 위조자라는 충격보다 마음고생 시킨 것이 더 마음이 아픈 모양이다. 내 룸메이트가 이런 사랑꾼인지 몰랐다.
“채령 씨가 모른 척해 달라고 부탁했어.”
“그래도 나한테 말했어야지! 우리 우정을 그렇게 기만할 수 있어?”
“미안해. 나 보기 힘들 테니까 혼자만의 시간을…….”
가려는 나를 경환이 붙잡았다.
“왜 이래? 우정을 기만한 나는 가 주겠다니까.”
“가려면 먼저 해결책을 놓고 가. 그때까지는 못 가.”
경환에게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집념의 눈빛이었다. * 일주일 후, 나는 안채령과 함께 박명국 교수의 사무실에 있었다. 박명국이 같잖다는 듯 내 명함을 봤다.
“명품 골동상? 채령아. 수준이 있지, 겨우 골동상을 만나?”
바로 반말이다. 게다가, 남녀가 나란히 앉으면 다 사귀는 거냐? 교수 수준하고는.
“교수님, 저는 안채령 씨와 교제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교제하는 사이가 아닌데 나란히 내 사무실에는 왜 있어?”
“더 이상 안채령 씨를 위조와 연관시키지 마십시오.”
박명국이 기가 막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마치 내가 강압적으로 그리게 했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네. 채령아, 내가 억지로 시켰어? 아니잖아. 돈 받고 그런 것 맞잖아?”
안채령의 어깨가 움츠러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말했다.
“협박하셨잖아요. 그림 안 그리면 매장시켜 버리겠다고…….”
“하! 이제 와서 딴말하는 것 봐. 이봐. 자네 저 순진한 얼굴에 속고 있는 거야.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증거 있어? 내가 억지로 그리게 했다는?”
“…….”
“…….”
박명국이 기가 살아서 나불댔다.
“봐봐. 없잖아. 그래, 뭐 앞으로 그리기 싫으면 그리지 마. 너 아니어도 할 만한 애들은 줄을 섰어! 돼먹지 않은 것들이 뒤집어씌우려고 지랄이야.”
정말 천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저러면서 수업할 때는 세상 좋은 사람인 척 군다고 했다. 야누스도 박명국 앞에서는 혀를 내두를 것 같았다.
“교수님, 이 일이 외부에 알려져도 되겠습니까?”
“외부에 알려지면, 나만 죽어? 나야 뭐 학교에서 정직 몇 개월에서 끝나. 교수가 위조를 도왔다는 것을 누가 믿겠어. 하지만 쟤는 아니지. 위조에 손댄 작가를 어느 갤러리에서 받아 줄까? 작가로서는 물론이고, 어떤 모습으로도 미술계에서 일 못해.”
박명국은 승리를 장담하며 이죽거리며 웃었다. 그 모습이 화가 나기보다 역겨웠다. 화도 사람한테 내는 것이지 않는가.
“그렇군요.”
씨익,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반격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