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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바꿔치기 (2) (28/226)

28화 바꿔치기 (2)2021.02.03.

16560250280317.jpg“그래? 그게 정말 맞은 거라면 증명해봐. 강정휘가 바꿔치기를 했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16560250280323.jpg“지금 당장 해 드리죠.”

나는 가방에서 줄자를 꺼내 달항아리 크기를 쟀다. 이수지가 인상을 썼다.

16560250280317.jpg“지금 뭐하는 거야!”

16560250280323.jpg“증명하고 있습니다. 높이 43cm에 몸통 지름 42cm. 저희 가게에서 판 것이 아니에요. 저희 가게에서 판매한 달항아리는 높이 45cm에 몸통 지름 44cm입니다.”

내가 달항아리인지 달항아리가 나인지 호접몽을 느꼈을 때, 한 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 신기해서 크기를 재어봤다. 이수지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16560250280317.jpg“내가 그 말을 믿을 정도로 바보로 보여? 빠져나갈 요량으로 말하고 있는 거잖아.”

증거를 대도 내 말은 믿지 못하겠다.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내 눈에 달항아리가 들어 있었던 상자가 보였다.

16560250280323.jpg“이 상자, 오동나무가 아닌 싸구려 합판으로 만들어진 거예요. 어제 상자 때깔이 좋다고 말하셨죠? 하지만 이건 아니죠.”

상자를 본 이수지가 멈칫했다. 자신이 본 그 상자가 아니었다. 혼란스런 그 틈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16560250280323.jpg“강정휘 갤러리로 가서 대표실 앞에 있는 CCTV를 확인하세요. 강정휘가 바꿔치기를 한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상자가 들어가는 모습이 찍혀 있을 겁니다. 단, 강정휘와 김 비서는 몰라야 합니다. 안다면 증거를 없애버릴 테니 말입니다.”

이수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았다. 아직도 의심을 한다, 그렇다면 도박을 하는 수밖에.

16560250280323.jpg“만약 CCTV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으면, 삼십억 대금 제가 지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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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이 막히는 공기가 차 안을 가득 메웠다. 나는 보조석에 있었고 운전석에는 수행원이, 뒷좌석에는 이수지가 타 있었다. 우리의 시선은 하나같이 건너편에 있는 강정휘 갤러리를 향하고 있었다. 내가 건 도박이 통했기 때문이다. 강정휘가 점심을 먹으러 자리를 비운 사이 들이닥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 시가 다 되도록 강정휘는 갤러리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16560250280317.jpg“벌써 한 시간째야. 내가 이딴 데 시간을 낭비해야겠어?”

화난 이수지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16560250280323.jpg“죄송합니다.”

뒤통수에 눈도 없건만 이수지의 날 선 시선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갤러리 문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강정휘가 김 비서를 대동하고 나왔고, 두 사람은 차에 타서 갤러리를 떠났다. 강정휘의 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수행원이 차를 움직여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리면서 이수지가 차갑게 말했다.

16560250280317.jpg“CCTV에 아무 것도 없으면 대금 반드시 받아낼 거야. 보너스로 이 업계에서 발도 못 붙이게 해 주지.”

16560250280323.jpg“CCTV에 제가 말씀드린 장면이 나온다면 사과는 당연히 받을 거고, 달항아리 가격의 3분의 1을 저한테 주셔야 합니다.”

쫄았지만 나는 부러 더 당당하게 말했다.

16560250280317.jpg“그러시든가.”

이수지가 기가 막히다는 듯 웃고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곧장 사무실로 직행했다. 놀란 갤러리 직원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중 그나마 경력이 있는 직원이 겨우 이수지에게 말을 붙였다.

16560250307863.jpg“지금 대표님이 안 계시는데 어쩐 일로…….”

16560250280317.jpg“귀중품이 어제 여기서 없어졌어. 대표실 앞, CCTV를 확인해 봐야겠으니까 당장 틀어.”

직원은 강정휘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나 잠시 망설이는 눈치였다.

16560250280317.jpg“당장 틀라고!”

겁먹은 직원이 엉덩이에 불 난 사람처럼 움직이더니 어제 CCTV 영상을 틀었다.

16560250307863.jpg“어제 영상입니다.”

이수지가 고갯짓을 하자 수행원이 날렵하게 직원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했다. 어제 오전 12시부터 8배속으로 영상을 돌렸다. 나는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강정휘가 이것까지 계산하고 다른 수를 부렸으면 나는 영락없이 달항아리 대금 삼십억을 대신 치러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업계에서 매장된다. 그야말로 파멸이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갈 때쯤 수행원이 입을 열었다.

16560250307879.jpg“이것 좀 보세요!”

이수지와 나는 거의 동시에 화면 코앞까지 얼굴을 디밀었다. 어제 오전 11시쯤 달항아리가 든 것으로 보이는 나무 상자를 김 비서가 들고 대표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래! 없을 리가 없지!

16560250280323.jpg“보세요. 제 말이 맞죠? 저게 호텔에 있는 그 가품이라구요. 하나만 더 확인해 주세요. 어제 대표실에서 나온 이후에 저런 상자가 대표실에서 또 나온 적이 있는지.”

달항아리 백자의 크기가 크니 쉽게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수지가 관련된 것이니 계속 갖고 있긴 불안할 것이고, 열에 아홉 중개인을 통해 은밀히 거래한 뒤 달항아리를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수행원이 어제 CCTV를 다 확인한 뒤, 오늘 것까지 확인했다.

16560250307879.jpg“나온 적 없습니다.”

16560250280323.jpg“그럼 달항아리는 아직 저 안에 있어요.”

나는 대표실로 달려가 문을 열려고 했지만 잠겨 있었다.

16560250280323.jpg“이런 젠장!”

당장이라도 문을 깨부수고 달항아리를 확인하고 싶었다. 간신히 그 마음을 누르는데 뒤늦게 이수지와 수행원이 왔다.

16560250280317.jpg“문 안 열려?”

16560250280323.jpg“네.”

이수지가 수행원을 보고 말했다.

16560250280317.jpg“강정휘 불러. 안에 확인해야 하니까.”

16560250307879.jpg“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강정휘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16560250334216.jpg“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가품을 드렸다니요?”

모든 것이 까발려질 마당에 저런 연극을 도대체 왜 하는 걸까. 그토록 강정휘를 믿던, 정확히는 그 욕망을 믿던 이수지마저 차갑게 응시했다.

16560250280317.jpg“대표실 문 여세요. 그럼 모든 것이 확인되겠죠.”

강정휘가 김 비서를 보고 말했다.

16560250334216.jpg“열어 드려.”

김 비서가 문을 열자 모두 쏟아지듯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선두에는 내가 있었다. 소파 옆에 오동나무 상자가 떡하니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끈을 풀고 뚜껑을 열었다. [ 3,500,000,000원 | 진 | 3,500,000,000원 | 1780년대 ] 솜 포대기에 싸여 구연부만 언뜻 보였지만 안경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내가 판매한 바로 그 달항아리란 것을 말이다. 울컥 목이 메었다.

16560250280323.jpg“진품 달항아리 맞아요.”

안도감과 함께 강정휘에 대한 적대감이 찾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없었다면 당장 달려가 멱살을 잡았을 터였다. 가까스로 화를 누르고 강정휘에게 물었다.

16560250280323.jpg“여기 진품이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제발 연극을 그만두고 본모습을 드러내라. 연극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내 바람과 달리 강정휘는 이수지를 보고 호소했다.

16560250334216.jpg“그럴 리가요? 어제 보낸 것이 진품이고, 저건 모조품이에요.”

이수지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강정휘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16560250280317.jpg“왜 모조품을 샀죠?”

16560250334216.jpg“달항아리 백자가 정말 예쁜데 진품은 행여 깨질까 봐 불안하더라구요. 그래서 김 비서에게 모조품을 부탁했어요. 분명 뭔가 오해가 있는 거예요.”

정말 억울한 듯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직업을 잘못 고르셨네. 갤러리스트가 아니라 배우를 하셔야 하는데 말이야. 아주 연기 대상감이다. 아니, 연기 대상으로는 부족하지. 아카데미상도 받을 수 있겠어. 강정휘의 변명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강정휘의 뻔뻔함에 기가 차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정적이 감돌았다. 그 정적을 깨고 김비서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16560250359141.jpg“……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그러더니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이 이상한 전개는 뭐지?

16560250359141.jpg“제가…… 진품과 가품을 바꿨습니다. 다른 가품을 가져와 진품과 바꿔 놓고 진품을 팔아 돈을 챙길 작정이었습니다.”

16560250334216.jpg“김 비서……. 이게 무슨 소리야?”

김 비서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16560250359141.jpg“죄송합니다. 대표님. 빚 때문에 돈이 필요했습니다. 죽여 주십시오.”

16560250334216.jpg“김 비서!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있어!! 내가 김 비서를 얼마나 믿었는데……!”

강정휘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호흡까지 갖고 노는 배우라니, 클라스가 다르다. 애석하게도 이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은 강정휘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 갤러리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진이 다 빠진 상태라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이수지는 강정휘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김 비서를 고소하지 않겠다고 했다. 강정휘의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강정휘와 김 비서가 입을 맞춘 이상 증명할 수도 없거니와, 달항아리 진품이 돌아와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나로서는 마음에 드는 결정이 아니었지만 반발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일단 대금 삼십억을 주지 않아도 되고, 고미술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현재 상황에 안도하기로 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환한 보름달이 보였다. 자연히 달항아리 백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16560250280323.jpg“귀한 널 강정휘 같은 천박한 사람에게 팔아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집 앞에 택시가 섰고 터덜터덜 집안으로 들어갔다. 웬일로 경환이 집에 있었다.

16560250382942.jpg“혀엉. 왔어? 나 라면 먹을 건데, 같이 먹을래?”

16560250280323.jpg“됐다.”

16560250382942.jpg“저녁 안 먹었잖아?”

16560250280323.jpg“입맛이 없어.”

방으로 들어가는 나를 경환이 졸졸 따라왔다.

16560250382942.jpg“무슨 일 있었어?”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해줬다. 경환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16560250382942.jpg“우와. 영화 한 편 찍었네. 진짜 힘들었겠다.”

16560250280323.jpg“힘든 것도 힘든 것인데, 미안해.”

16560250382942.jpg“누가한테 미안한데?”

16560250280323.jpg“달항아리 백자.”

16560250382942.jpg“응?”

나는 침대에 풀썩 앉았다.

16560250280323.jpg“괜히 좋은 주인 못 찾아준 것 같아서……. 강정휘에서 이수지라니, 최악이지. 그나마 현성 미술관으로 가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거라는 점이 위로가 되더라.”

16560250382942.jpg“형 이제 거의 골동품을 사람처럼 보네.”

흥분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16560250280323.jpg“무슨 골동품을 사람처럼 봐. 그냥 마음이 안 좋으니까 하는 말이잖아.”

움츠러든 경환이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16560250382942.jpg“그게 그거 아니야……?”

생각해 보니 경환의 말대로 그게 그거였다.

16560250280323.jpg“…….”

16560250382942.jpg“형. 예전부터 느낀 건데, 형 왜 자꾸 골동품하고 거리를 두려고 그래?”

16560250280323.jpg“……내가 거리를 두려고 한다고?”

16560250382942.jpg“응. 실제로는 가까우면서도 의식적으로는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 같아. 꼭 사랑에 빠졌는데 부정하는 사람처럼 말이야. ……라면 두 개 끓일 테니까 조금이라도 먹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경환이 방에서 나갔다. 나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골동품을 보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서화를 봐도 도자기를 봐도 돈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마음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외면만 해 왔지만, 이제는 제대로 마주해야 할 때인 것 같았다.

16560250280323.jpg“왜 그럴까……?”

한참 고민하는데 경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6560250382942.jpg“형, 라면 먹어.”

입맛은 없었지만 괜히 화낸 것이 미안해 식탁으로 갔다. 경환이 냄비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좋은 냄새가 났지만 입맛이 돌지는 않았다.

16560250382942.jpg“어서 먹어.”

16560250280323.jpg“잘 먹을게. 아까 괜히 화내서 미안하다.”

16560250382942.jpg“형하고 나 사이에 낯간지럽게 무슨.”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분이 풀렸는지 방긋방긋 웃고 있다.

16560250382942.jpg“근데 형이 한 말, 틀린 것 같아.”

16560250280323.jpg“무슨 말?”

16560250382942.jpg“심미안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는 말.”

기억난다. 안경을 발견했던 날, 경환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16560250280323.jpg-이 유물들이 사람을 홀리거든. 사랑에 빠지는 거랑 비슷한 증상이 나와. 곁에 두지 못하면 눈에 어른거리고, 그래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지.

16560250382942.jpg-거의 중독 수준이네.

16560250280323.jpg-맞아. 중독이지. 심미안은 차라리 없는 게 나아. 특히 돈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적어도 단원처럼 매화를 사려고 주머니를 탈탈 터는 일은 없을 거 아니야.

  그때는 몰랐다. 유물과 사랑에 빠지는 그 사람이 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줄곧 생각해 왔다. 심미안은 없는 것이 낫다고. 돈도 없이 유물에 홀려 무조건 사들이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이다. 조금씩 고미술을 느끼면서 무의식적으로 불안했던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과 비슷해질까 봐 말이다. 이게 내가 골동품을 밀어냈던 이유였다. 이유를 알아냈는데도 밀어내는 것을 당장은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유물에 홀리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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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날, 나는 이수지를 찾아갔다. 어제 미처 정리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16560250280323.jpg“사과하시죠.”

이수지가 콧방귀를 뀌면서 수행원에게 눈짓했다. 미안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수행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은 가방을 가져와 내 앞에 펼쳤다. 사랑스런 신사임당 누나, 오만 원권이 다발로 빼곡히 들어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수행원이 차분하게 말했다.

16560250307879.jpg“십이억입니다. 어제 말씀하신 대금의 3분의 1이 되는 십억, 그리고 사과를 대신하는 이억입니다.”

재벌들이 사과를 돈으로 한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줄은 몰랐다. 이수지의 사과 가격은 이억이구나. 씁쓸한 기분이 드는 나를 보며 이수지가 도도하게 입을 열었다.

16560250280317.jpg“이 정도면 충분한 위로가 될 거야.”

그래. 이수지가 사과를 한다 한들 그게 진심일 리 없었다. 진심 없는 사과보다는 이억이 현실적으로 훨씬 더 위로가 된다. 나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6560250280323.jpg“실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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