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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아미타불화 (3) (33/226)

33화 아미타불화 (3)2021.02.15.

16560251594913.jpg“내 뒤에는 현성 그룹이 있어. 알아? 현성 그룹의 권력이면 네까짓 놈의 말은 아무 쓸모도 없어.”

김용식이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정말 이대로 그림을 가지고 사라져버릴 생각이었다. 김용식이 건장한 남자 두 명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16560251594913.jpg“내가 나가고 30분 후에 나와.”

16560251594913.jpg“네!”

16560251594913.jpg“네!!”

돌아서 문을 연 김용식의 얼굴이 굳어졌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가 그 앞을 막았기 때문이다.

16560251594913.jpg“넌 뭐야?”

그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는 바로 도강 그룹 강 회장의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말없이 뒤를 보고 고개를 까닥했다. 10명이 넘는 인원이 우르르 쏟아지더니 순식간에 김용식의 손에서 그림을 빼앗고 그를 제압했다. 또한 건장한 남자 두 명을 내게서 떼어내고 그들 역시 제압했다. 가게 안을 훑어본 비서실장이 나에게 물었다.

16560251594938.jpg“장문식은 어디 있습니까?”

주변을 보았지만 장문식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 찰나에 도망친 모양이다.

16560251594943.jpg“도망친 것 같습니다.”

비서실장이 다섯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16560251594938.jpg“장문식 데려와.”

16560251594913.jpg“네.”

16560251594913.jpg“네!”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섯 명이 장문식을 쫓기 위해 움직였다. 새삼 회사에서 비서실장의 지위가 남달라 보였다. 명령을 마친 그는 내가 줄곧 봤던 모습처럼 정제된 모습으로 다가왔다.

16560251594938.jpg“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지감 씨 아니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16560251594943.jpg“비서실장님께서 빨리 움직여주신 덕분입니다.”

진심이었다. 내가 장문식이 실소유자가 아닌 것을 알아내었다고 한들, 비서실장이 실소유자를 찾아내고 연락을 취해 위임장을 받아내지 않았으면 무의미한 일이었다.

16560251594938.jpg“이후 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십시오.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16560251594943.jpg“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깍듯이 고개를 숙이고 가게를 나왔다. 그림을 잃어버릴 뻔했던 조금 전의 아찔한 순간의 잔상이 떠다니면서 온몸이 후들거렸다. 극도의 긴장이 풀렸거니와 하루 종일 장문식을 감시하느라고 커피 한 모금 빼곤 먹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간신히 몸을 추슬러서 택시를 잡아탔다.

16560251594943.jpg“요새 왜 이럴까?”

달항아리 백자 사건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급박한 상황이 반복되니 어쩐지 찜찜하다.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이런 일은 다시 없었으면 좋겠는데, 왠지 더 힘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그 직감을 부정하듯 나는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16560251594943.jpg“그럴 리 없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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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후, 나는 호텔 커피숍에서 아미타불화의 실소유자인 전종학을 만났다. 그는 거듭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현했다.

16560251594913.jpg“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크게 사기를 당한 뻔했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16560251594943.jpg“그저 아미타불화를 실소유자에게서 구입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장문식 씨와 각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전종학이 푹 한숨을 쉬었다.

16560251594913.jpg“제일 친한 친구인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전 고미술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아미타불화도 문식이를 믿고 구입했습니다. 근데 이렇게 될 줄은…….”

16560251594943.jpg“장문식 씨를 고소하실 생각이십니까?”

16560251594913.jpg“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사기 치려고 한 것만 생각하면 이렇게 분통이 터지는데, 워낙 오랜 시간 알아왔던 친구인지라…….”

나 같으면 당장 고소장을 제출했을 텐데.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실 내 입장에서는 전종학이 이렇게 고민하는 편이 나았다. 도강 그룹 강회장이 일이 외부적으로 알려지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16560251594943.jpg“아시다시피 도강 그룹 강 회장님께서 아미타불화를 구매하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시끄러운 것을 워낙 싫어하시다 보니, 아미타불화와 관련된 법적 분쟁을 원치 않으십니다.”

16560251594913.jpg“그렇군요.”

16560251594943.jpg“쉽지 않은 결정이란 것을 압니다. 만약 고소를 진행하시지 않는다면 물건 값과 별개로 오억 정도의 보상을 해드릴 겁니다. 그걸로 충분한 보상은 되지 않겠지만 부족하나마 작은 위로는 얻으실 겁니다.”

전종학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했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돈도 돈이지만 인간적 배신감이 상당할 터였다. 그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16560251594913.jpg“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16560251594943.jpg“정말 판매하시겠습니까?”

나는 미소를 감추고 애써 무표정하게 확인했다.

16560251594913.jpg“이런 일이 일어난 마당에 그 불화를 계속 가지고 있기도 어렵고, 문식이는……. 덕분에 일이 일어나진 않았으니 그것으로 그냥 덮겠습니다.”

16560251594943.jpg“정말 감사합니다.”

일이 바라는 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젠 마지막으로 판매 금액만 맞추면 된다.

16560251594943.jpg“유물의 가격은 얼마를 생각하시고 계시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16560251594913.jpg“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16560251594943.jpg“하지만…….”

16560251594913.jpg“선생님 덕분에 겨우 물건을 지켰습니다. 흥정을 하는 건 말도 되지 않습니다.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더 이상 가격을 이야기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16560251594943.jpg“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와 전종학은 커피숍에서 함께 나왔다.

16560251594913.jpg“나중에 워싱턴에 오시면 꼭 연락주세요.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16560251594943.jpg“네.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나는 바로 강 회장의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판매 가격을 이야기 해주기 위해서였다.

16560251594943.jpg“한지감입니다. 판매가격 육십억, 보상금 오억 도합 육십오억입니다.”

16560251594938.jpg[네. 알겠습니다.]

아미타불화의 적정가는 오십억에서 오십오억 사이였다. 오십억에 가져온다 한들 전종학이 불만을 가질 것 같진 않았지만 나는 최고가를 불렀다. 분명 현성 그룹에서도 접촉이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나를 선택해준 보답이었다. 또한 강 회장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었기에 오히려 이득이었다.

16560251594943.jpg“그럼 나중에 또 연락…….”

마무리를 하려는데 비서실장이 말을 자랐다.

16560251594938.jpg[회장님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 지금 오실 수 있으십니까?]

큰 거래를 앞두고 며칠 동안 긴장상태라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큰 손님이니만큼 웬만하면 가는 것이 좋을 듯했다.

16560251594943.jpg“네. 가능합니다.”

16560251594938.jpg[차 보내겠습니다.]

호텔 이름을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십여 분쯤 지나 잘 빠진 은색 세단이 내 앞에 섰다. 벤츠에서 나온 에스 클래스였다. TV에서나 봤지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곁눈질로 슬쩍슬쩍 보는데 창문이 내려갔다. 너무 노골적으로 봐서 그런가?

16560251594913.jpg“한지감 감정사님이십니까?”

16560251594943.jpg“네.”

그제야 나는 도강 그룹에서 보내온 차라는 것을 깨닫고 탔다. 여태까지 계속 검은색 차를 보내서 당연히 이번에도 검은색 차가 나올 거라 착각했다. 비서실장이 빨리 데려오라 했는지 기사가 꽤 속력을 내었다. 그런데도 차가 흔들림 없이 나아갔다. 완전 좋네. 별 생각이 없었는데, 타 보니 이 차를 사고 싶었다. 견물생심이란 말이 딱 맞다. 정확한 가격은 모르지만 이억 정도라면 충분히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으니, 실질적으로 차가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차가 있으면 편리하긴 하겠지만, 현재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대중교통과 택시로 충분했다. 유물을 옮길 때 차가 필요하다는 핑계가 그럴듯하긴 하지만, 사실 내 차로 유물을 옮길 확률은 적다. 대부분 구매자가 유물을 가져갔고, 드물게 내가 유물을 옮기는 경우에도 물건을 안고 택시에 타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실질적으로 살 이유가 없는데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나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 강 회장이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음흉하게 웃었다.

16560251698673.jpg“어떻게 알았어요?”

16560251594943.jpg“뭘 말입니까?”

16560251698673.jpg“장문식이 실소유자가 아니란 것 말이에요.”

16560251594943.jpg“골동상에서 십억 이상 나가는 물건을 구매하기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죠. 이사를 한다고 했지만 고가의 물건들이 너무 없는 것도 이상했구요.”

안경이 알려준 최고가가 결정적인 단서였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16560251698673.jpg“그 정도로 확신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16560251594943.jpg“골동상의 감이죠. 당연히 확인이 필요하니 비서실장님께 확인을 요청드린 거구요.”

입안이 바싹 마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빙그레 웃었다.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 같진 않았지만 강 회장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16560251698673.jpg“약속한 대로 인센티브 30% 통장에 넣었어요.”

16560251594943.jpg“감사합니다.”

16560251698673.jpg“정당한 대가인데 감사할 게 뭐가 있어요. 오늘 탄 차 어땠어요?”

16560251594943.jpg“매번 보내오시던 차가 아니라서, 기사님이 부르시고 나서야 알아봤습니다. 승차감이 좋았습니다. 빨리 달리는데도 잘 흔들리지 않던데요.”

강 회장이 끄덕끄덕거렸다.

16560251698673.jpg“저렴한 가격대 치고 괜찮은 차죠. 한 선생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준비했어요.”

16560251594943.jpg“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 멋진 차를 나를 준다고? 갑자기 한 선생이라는 호칭은 뭐야? 그런 나와 달리 강 회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 미동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

16560251698673.jpg“오늘 탄 차, 한 선생이 타면 된다는 말이에요.”

16560251594943.jpg“감사하지만 부담스럽습니다.”

16560251698673.jpg“부담스러워하지 말아요. 몇십억 손해 볼 뻔한 걸 한 선생 덕에 손해도 면하고, 그림을 샀는데 당연히 고맙다는 표시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16560251594943.jpg“저는…… 그냥 제 일을 한 것뿐입니다.”

강 회장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16560251698673.jpg“그게 가장 어려운 거예요. 자기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 드물거든요.”

얼떨떨한 기분으로 비서실장과 함께 회장실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차 앞에서 비서실장이 내게 벤츠 로고가 찍힌 고급스러운 차 키를 주었다. 뭔가 좀 현실감이 없었다. 불과 30분 전 차에 침을 흘리면서도 단념하기로 했는데, 그 차가 내 것이 되다니.

16560251594943.jpg“그럼 가 보겠습니다.”

인사하고 가려는 나를 비서실장이 심각한 얼굴로 막아섰다. 무슨 일이지? 내가 뭐 잘못했나? 그가 말하지 않은 몇 초 동안 갖가지 이유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외였다.

16560251594938.jpg“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16560251594943.jpg“네?”

16560251594938.jpg“장문식이 어떤 경로로 아미타불화를 손에 넣었는지, 실소유자가 맞는지 그런 것들은 원래 제가 확인했어야 합니다. 현성 그룹에서 붙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급한 마음에 주변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선생님께 일을 넘겼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실수였다. 또한, 실수를 한 것은 비서실장만은 아니었다. 현성 그룹 이 상무 쪽에서도 주변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물건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니 많은 돈을 써서 가져오려고만 했다. 설마 감히 현성 그룹을, 또 도강 그룹을 건드리겠냐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설마 나한테 이런 일로 감사를 표할지는 몰랐다. ‘선생님’이란 호칭까지 쓰면서 말이다. 나는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말했다.

16560251594943.jpg“이번에는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그리고 비서실장님이 아니셨다면 실소유자가 누구인지 알아내지도 못했을 것이고, 알아내도 연락이 닿지 않았을 겁니다. 저도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16560251594938.jpg“말씀하세요.”

16560251594943.jpg“장문식은 어떻게 됐습니까?”

계속 궁금했지만 묻지 못했다. 사실 어제 장문식의 가게도 갔었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꼭 증발해버린 것 같았다.

16560251594938.jpg“그날 저는 만나서 주의를 주고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현성 그룹에서도 그 정도로 넘어갔을지는 모르겠군요.”

일개 골동상에게 속은 것도 모자라 아미타불화를 강 회장에게 빼앗겼다. 이수지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건대, 오빠의 성격도 그리 좋을 것 같진 않았다. 아마 최소 반쯤 죽여 놨을 것이다.

16560251594943.jpg“그렇군요. 차 잘 타겠다고 회장님께 전해주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차에 탔다. 차는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무려 비서실장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주차장을 떠났다. 서울 시내를 벤엠을 타고 누볐다. 성취감에 취해 있어서일까? 매일 비슷하게 보이던 풍경들이 달라 보인다. 그러다 신호에 맞춰 차를 멈췄다. 인센티브 생각이 나서 재빠르게 핸드폰으로 통장을 확인했다. 십팔억이 입금되어 있었다. 잔액과 합치면 삼십억이 넘는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취업을 못해서 자포자기로 편의점 알바를 했던 나였다. 근데 이젠 통장이 두둑하고, 차가 있으며, 대기업의 회장과 비서실장이 나를 ‘선생’이라 부른다.

16560251594943.jpg“한지감 성공했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6시였다. 이제 슬슬 갤러리 쪽으로 가면 될 것 같았다. 콧노래가 절로 났다. 성공에 대한 기쁨에 소고기를 먹을 설렘까지 더해져서였다. 오늘은 다영이 소고기를 사주기로 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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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이 울려 발신인을 확인하니 다영이었다.

16560251594943.jpg“다영아. 지금 가는 중이야.”

16560251763348.jpg[오빠……. 오늘 약속 못 지킬 것 같아요.]

다영의 목소리가 절벽 위에 서있는 사람처럼 처참했다.

16560251594943.jpg“무슨 일이야?”

16560251763348.jpg[제가 나중에…….]

16560251594943.jpg“무슨 일인지 말해봐. 내가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16560251763348.jpg[아무래도 제가 위작을 판 것 같아요…….]

다영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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