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나비와 여인’ 시리즈 (1)2021.02.17.
“무슨 일인지 말해봐. 내가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무래도 제가 위작을 판 것 같아요……. 흐엉……!]
다영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한번 터진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차를 길가에 세웠다.
“다영아. 조금만 진정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래?”
[그게…….]
다영이 울먹거리면서 한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얼마 전 한 사람이 갤러리에 전명자 작가의 작품을 팔겠다고 왔다. 전명자 작가의 작품이라면 다른 유명 갤러리도 관심을 가질 텐데 작은 갤러리에 연락이 온 것이 좀 미심쩍기는 했지만, 진작이라면 더없이 좋은 기회였기에 속는 셈 치고 그림을 보러 갔다. 그림은 ‘나비와 그림’ 시리즈 중에 하나로 작가의 서명도 있었고, 과거 전명자 작가의 전속 갤러리였던 대원 갤러리의 보증서도 있었다. 대원 갤러리에 보증서 진위 여부를 문의했고, 진짜 보증서란 확인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억에 그림이 팔렸다. 갤러리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판매자에게 입금했다. 그것이 불과 일주일 전 일이었다. 문제는 오늘 터졌다. 그림의 구매자가 그림이 위작이라며 환불을 요구했다. 똑같은 그림이 지인의 집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지인 역시도 대원 갤러리의 작품 보증서를 갖고 있었고, 대원 갤러리에서 보증서 확인 역시 해주었다고 했다. 비슷한 검증을 걸친 상태에서 구매처에 대한 신용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인의 그림은 스카이 옥션에서 구입한 것인데 반해 다영이 다니는 드림 갤러리는 그 규모가 작다는 것이 문제였다. 업체의 규모가 그림의 신빙성을 흔들어놓은 것이다. 일이 생기고 다영은 바로 판매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판매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집에도 있지 않았다. 이래저래 다영의 판매한 그림이 위작일 확률이 높아졌다.
[저 어떻게 해요……? 지난번에는 천만 원이었는데 이번에는 오억……!]
다영의 목소리가 하염없이 떨렸다.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다.
“다영아. 일단 네가 판매한 그림하고 전명자 작가 도록 찍어서 보내줄 수 있어? 보증서도 같이. 근현대 그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보이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고마워요. 오빠. 사진 보낼게요.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알았어.”
사진을 기다리면서 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근현대미술은 내가 모르는 분야이고 안경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나섰다가 도리어 다영을 실망시키는 것은 아닐까? * 화장실에서 다영은 눈물을 닦아내고 찬물로 세수를 했다. 티슈로 물기를 털어내고 거울 속 자신을 똑바로 응시했다.
“정신 차려, 정다영. 아직 위작으로 결론 난 것 아니잖아. 위작으로 결론나면 그때 책임을 지면 돼.”
이를 악물고 다영은 사무실로 갔다. 그곳에는 악다구니를 쓰는 구매자 박 사모와 그런 박 사모를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는 이 실장이 있었다.
“당장 환불해 달라잖아!”
“일단 협회 감정을 받고 결정하시죠.”
대원 갤러리는 협회에 소속되어 있었고, 보증서가 발급된 작품이 협회 감정으로 위작이라는 것이 드러날 경우 원금을 보상 받을 수 있었다.
“협회? 지들 소속 갤러리니까 당연히 진작이라고 우기겠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정다영이 마른침을 삼킨 후 박 사모에게 다가섰다. 어쨌든 갤러리스트로서 이 거래를 진행한 것은 자신이었다. 더 이상 빠져서 상황을 관망할 수만은 없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원하신다면 협회 감정 후 다른 감정기관을 통해서 감정을 진행하겠습니다.”
박 사모의 눈매가 더 날카로워졌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정다영을 믿고 구매한 것이기 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단지 돈 때문에 이러는 줄 알아!! 지인들 앞에서 얼마나 창피를 당했는지 아냐고!”
돈이 있는 사람들이 그림을 사는 것은 투자 개념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준다는 허영심 때문이기도 했다. 음악과 문학 그리고 기타 사회 지식은 오랜 기간 공부를 해서 쌓아야 하는 측면이 강한 반면에, 유명한 그림을 사는 것은 돈만 지불하면 되었다. 그 그림을 소유하는 순간, 그림의 명성이 자신이 명성이 된다. 그런데 자신을 빛내야 할 그림이 되레 똥물을 뒤집어쓰게 했으니, 얼마나 화가 치미겠는가. 정다영은 고개를 조아렸다.
“사모님께서 돈 때문에 이러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멋진 그림에 매혹되셔서 구매했는데 위작이라니 화가 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거기에다 그 일로 창피까지 당했으니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지 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한지감이 이수지 앞에서 간신 같은 멘트를 날린 것을 떠올리며 정다영은 일부러 박 사모가 작품에 대단한 애정을 가진 것처럼 말했다. 비록 박 사모가 원한 것은 작품의 후광뿐이었지만, 이렇게 말하는 편이 박 사모의 감정을 진정시킬 가능성이 높았다. 정다영의 예상대로 박 사모의 호흡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야. 멋진 그림에 매혹돼서 구매했는데 위작이라니! 내가 가짜를 보고 좋아했다는 것이나 다름없잖아!!”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사모님 입장이라도 너무 화가 날 것 같습니다. 예술을 사랑하시는 분이니 얼마나 이 상황이 상처가 되겠습니까. 정말 면목 없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금만 저희한테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박 사모가 입을 다물고 고민했다. 몇 초간의 정적이 정다영에게는 몇 년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박 사모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삼 일 주지. 그때도 내가 만족할 만한 이야기를 못 가져오면 각오해야 할 거야.”
정다영은 정말 감동받은 것처럼 글썽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모님. 마음 써주신 것 잊지 않겠습니다.”
“운 좋은 줄 알아. 나니까 이렇게 배려해준 거야.”
박 사모에게는 배려의 의미가 생색과 같은 뜻인 모양이었다. 마뜩잖았지만 정다영은 감동한 표정으로 박 사모를 끝까지 배웅했다. 갤러리로 돌아온 정다영을 보고 이 실장이 혀를 내둘렀다.
“다영 씨, 말발이 장난 아니네.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세 치 혀로 충신 여럿 날렸겠어?”
“그런 사람을 알고 있어서 한번 따라해 봤어요. 일단 시간을 버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일 것 같아서요.”
“잘했어. 근데 삼 일로는 협회 감정도 받기 어려워.”
정다영도 알고 있었다. 근현대 미술에 대한 협회 감정은 매주 화요일이고, 월요일까지 사전신청을 해야만 가능했다. 하지만 오늘은 목요일이었다. 협회 감정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5일이 필요하다.
“그렇죠. 3일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죠. 일단 사진부터 찍을게요.”
“사진은 왜?”
“봐주기로 한 사람이 있거든요.”
정다영은 눈빛을 반짝이면서 플래시 설정을 끄고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간 한지감의 행적으로 보았을 때 그가 이 일을 해결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사진이 도착했다. 전명자 작가의 도록, 다영이 판매한 그림과 보증서가 도착했다. 다영은 무리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지금 문자로 들어온 많은 사진들이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마음이 느껴져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더 강해졌다. 다영이 잡은 지푸라기가 내가 될 수 있었으면 싶었다. 먼저 도록 사진을 훑어봤다. 전명자의 그림은 하나같이 강렬한 색채감으로 시각을 사로잡았다. 예전에 기사에서 ‘나비와 여인의 화가’로 불린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랬다. 거의 작품 70% 이상에 여인이나 나비가 등장했다. 다영이 판매한 그림과 보증서를 봤다. 보증서가 90년대 초반에 발급되어서 그런지 한눈에도 낡아 보였고, 도장이 찍힌 옆에 적힌 ‘대원 갤러리’는 수기였다.
“여기만 수기로 썼네.”
전체적으로 다 훑어본 나는 다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영아. 스카이 옥션에서 샀다는 그림 말이야. 내가 좀 볼 수 있을까?”
[일단 박 사모한테 연락해서 확인해볼게요.]
“알겠어.”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스카이 옥션에서 산 그림을 보면 무엇이 진작이고 무엇이 위작인지 확실해질 것 같았다. * 다음 날, 나는 다영과 함께 스카이 옥션에서 물건을 샀다는 박 사모의 지인인 조 사모를 만나러 그 집으로 갔다. 그 자리에는 박 사모까지 함께했다. 박 사모는 처음에 더 창피를 당할까 봐 조 사모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을 꺼려했지만, 다영의 거듭된 부탁에 승낙하고 자리를 만들었다. 대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박 사모가 함께하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박 사모와 조 사모 모두 50대 중반의 여자였지만 그 태도는 상반되었다. 위작으로 추정되는 그림의 소유자인 박 사모는 잔뜩 위축이 되어 있었고, 진작으로 추정되는 그림의 소유자인 조 사모 묘한 우월감으로 모두를 보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싸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영은 그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조 사모가 거만한 자세로 말했다.
“그러니까 ‘나비와 여인’ 시리즈 그림을 보여달라구요?”
“네. 괜찮으시다면 보증서와 함께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영의 공손한 부탁을 받은 조 사모는 더 거만해졌다.
“내가 왜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하죠? 그림은 보여줄 의무는 없잖아요.”
이 방어적인 태도는 뭘까? 보통 다른 사람 소유의 그림을 위작이라고 대놓고 이야기할 정도면 상당히 과시적 성격의 사람이란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그림을 흔쾌히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높이고 위작을 산 상대방을 한 번 더 깔아뭉갤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은가. 참다못한 박 사모가 말했다.
“언니! 언니가 자기 그림 보여주면서 내 그림 위작이라고 했잖아. 그럼 언니도 언니 말에 책임을 져야지.”
“근현대 미술 감정사도 아니고 고미술 감정사를 불러서 어쩌자는 거야.”
조 사모가 싸하게 나를 훑어보았다. 나를 걸고넘어지시겠다? 그럼, 한번 찔러볼까?
“이런 반응을 보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내 반응이 어떤데요?”
“진작, 위작 이런 말들은 수집가들 사이에서 굉장히 예민한 이야기죠. 골동품 수장가들은 위조품인 것이 거의 확실한 물건을 보고도 잘 모르겠다면서 말을 아낍니다.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니까요.”
발끈한 조 사모가 나를 노려봤다.
“지금 내가 예의가 없다는 거예요?”
정확히 알아들었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한껏 심각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강정휘가 왜 아카데미상 뺨치는 연기 실력을 갖게 됐는지 알겠다. 손님들 비위 맞추려면 연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아니요. 오히려 예의를 잠시 잊으실 정도로 예술품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다른 작품이 위작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조 사모와 눈을 맞추면서 말을 이어갔다.
“사람과의 관계보다 위조품이 미술계를 더럽히는 것이 참을 수 없으셨던 것이겠죠. 그런 열정을 가진 분께서 이런 반응을 보이시는 것이 의아할 뿐입니다.”
만약에 그림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예의도 없고 예술에 대한 열정도 없는 사람이 된다. 눈치를 보던 다영이 적절하게 말을 던졌다.
“그림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 일을 알게 된 다른 분들도 의아해할 겁니다.”
그림으로 후광을 얻으려는 사람들이다. 평판에 예민하지 않을 리 없다. 조 사모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사람을 시켜서 그림과 보증서를 가져오게 했다. 테이블 위에는 도록, 두 장의 보증서 그리고 거의 차이를 알아차리기 힘든 ‘나비와 여인’ 시리즈 두 개의 그림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나는 다영이 판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조 사모의 것이다. 나는 면장갑을 끼고 조 사모의 그림과 보증서를 보았다. 빙고! 입꼬리가 싸악 올라갔다.
“제가 이 두 그림 중에서 하나를 산다면 무엇을 살 것 같습니까?”
조 사모가 팔짱을 낀 채 거리낌 없이 말했다.
“당연히 내 그림이겠죠.”
“아니요. 드림 갤러리에서 판 이 그림입니다.”
“오억짜리 위작을 사고 싶다고?”
“네. 사고 싶습니다. 위작이 아닌 진작이니까요.”
코웃음을 친 조 사모가 같잖다는 듯 나를 보고 말했다.
“뭘 알아도 한참 잘못 안 것 같은데, 진작은 이게 아니라 이거예요.”
나는 그 여자를 보며 여유롭지만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이건 위작입니다. 진작은 이쪽입니다.”
나는 다영이 판매한 그림을 가리켰다. 조 사모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근현대 미술에 대해 뭘 알기나 해요?”
“맞아요. 전 근현대 미술은 잘 모릅니다. 근데도 이건 진작이라는 걸 알겠더라구요.”
“그 이유를 들어나 보죠.”
나의 입에서 그 어떤 근거가 나올 거라고 기대하는 이는 다영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