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특이사항 (2)2021.02.24.
급하게 차에 타서 핸드폰을 들어 문화재청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미션 제한시간까지는 이제 한 시간도 남아있지 않았다. 강 회장의 말이 맞다. 불화는 혼자 보기 좋아도 남하고 같이 보기엔 좋지 않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불화뿐만 아닌 불교 유물 전체가 그렇다. 감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어서이다. 시장에 돌아다니고 있는 불교 유물은 거의 다 사찰의 물건을 훔친 도난품이다. 1985년부터 2017년 12월까지 도난된 문화재는 총 약 700여 건, 약 2만여 점이다. 이중 절반 이상이 불화, 불상 등과 같은 불교 유물이다. 오죽하면 ‘불교문화재 도난백서’라는 책이 나왔겠는가. 불교 유물의 도난은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많은 불상, 불화, 도자기 등이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전국에 있는 사찰의 유물을 강제로 가져갔다. 단적인 예로,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오구라 컬렉션에는 우리나라 불상이 48점이나 있다. 광복 이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교 유물을 훔쳐서 내다 팔거나 국외로 밀반출하였다. 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들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히는 것들이 많았다. 깊은 밤에 봉고차를 타고 절 앞마당에 가서 차 뒤로 살짝 석조물을 들이받는다. 충격으로 석조물이 분리되어 떨어지면 그걸 가지고 떠난다. 어쨌든 이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시장에 있는 불교 유물은 대부분 도난품일 수밖에 없고, 강 회장은 그런 문제들을 피하고자 혼자 보는 것이 더 좋다고 한 것이다. 권미애가 가진 철불도 도난품일 확률이 높았다.
“찾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권미애가 소장한 철불은 도난품이다. 연진사가 소장했던 철조아미타여래좌상. 보물로 지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졌다고 한다.
“철불은 도난품이야.”
[미션을 성공하셨습니다. 마지막 5단계 정보인 특이사항이 제공됩니다. 특이사항은 도난품이나 관련 이야기, 유물의 손상 등으로 유물 가격에 영향을 주거나 판매와 관련된 부분들이 표기됩니다. 다만 유물에 따라서는 특이사항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스!!”
짜릿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이번 미션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풀리다니,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나는 바로 권미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권 대표님.”
[어머. 지감 씨. 무슨 일이에요?]
“걸렸던 부분이 확실해져서 연락드립니다. 어제 저한테 보여주신 철불은 연진사에서 도난된 유물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놀란 기색이 전해졌다.
[어머나……. 난 정말 몰랐어요.]
“어제 말씀드린 대로, ‘고미술의 밤’에는 다른 유물을 가져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지감 씨가 아니면 정말 큰일 날 뻔했네요. 정말 고마워요.]
“아닙니다.”
전화를 마친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모든 의문이 풀린다. 권미애가 만약 그 철불을 ‘고미술의 밤’에 가져갔다가 도난품임을 알아보는 사람이 혹시라도 있다면 난감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 분명했다. 또한 돈과 무관하지 않다. 선의취득이라서 법적으로 소유권을 보장받는다 해도, 도난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공론화되면 불교계에서 공식적으로 항의를 할 것이다. 이 경우 기업과 본인의 이미지 때문에 강제 기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았다. 예전에 현성 미술관에 불교 유물 도난품이 전시된 적이 있었는데 불교계에서 격렬하게 항의했고, 버티다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돌려주었던 일이 있었다. 그때 많은 국민들과 불교신자들이 유물을 돌려주지 않고 버티는 현성 그룹을 욕했지만, 솔직히 현성 미술관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몇 억을 주고 구입한 물건을 기부하는 것은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권미애가 유물을 돌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건 내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었다. * 토요일. 나는 적당히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백화점에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띵해지는 것 같다. 백화점에 가는 목적은 ‘고미술의 밤’에 입고 갈 정장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청화백자를 감정했던 날, 강 회장이 함께 가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각 참가자들은 수행인 자격으로 한 명, 관련 전문가 자격으로 한 명을 대동할 수 있었는데, 내가 전문가 자격으로 함께 가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전문인이 참석할 시 앞에서 참가자의 유물을 설명해야 해서 내키지 않았지만, 그곳에 가면 진귀한 물건들을 볼 수 있다는 강 회장의 설득에 흔들렸고 결국 받아들였다. 어려운 자리인 만큼 강 회장이 비싼 옷 한 벌 해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했다. 차도 받았는데 옷까지 받으면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어쨌든 어려운 자리인 만큼 옷은 새로 구입해야 해서 백화점에 가는 것이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오는데 거실에서 꽃단장 중인 경환이 보였다. 보나마나 채령이를 만나기 위해 저렇게 공을 들이고 있는 거겠지. 회사에 갈 때보다 100배는 신경을 쓴 것 같다. 경환은 얼마 전에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곳이라서 힘들지만 채령을 생각하며 버틴다고 했다. 거울을 보며 흠뻑 취한 경환이 내게 물었다.
“혀엉. 나 오늘 좀 멋있지 않아?”
들인 공이 아깝게 8대 2 가르마가 굉장히 촌스럽게 느껴졌다.
“경환아. 너는 꾸미려고 하지 마. 그럼 더 이상해. 얼른 머리 감고 나가라. 채령이 기겁하겠다!”
“쳇! 우리 채령이는 내가 어떻게 해도 멋있다고 했어!!”
얼마전 채령과 호칭을 편하게 하기로 정리했단다. 그 후로 ‘우리 채령 씨’가 아닌 ‘우리 채령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래. 그럼 그대로 가든가.”
“오늘 백화점에서 정장 산다고 했지?”
“응.”
“내가 좀 봐줄까?”
나는 단칼에 잘랐다.
“네 미적 감각을 어떻게 믿고?”
“내 감각은 못 믿어도 우리 채령이 감각은 믿을 수 있잖아.”
“믿을 수 있지. 하지만 둘이서 눈꼴시게 구는 그 모든 과정을 내가 지켜봐야 하잖아. 싫.어.”
현관에서 신발에 발을 집어넣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다영이가 봐주기로 했어.”
“현대 미술 전공자라며. 이상한 정장 골라줄지도 모르는데?”
“그건 네 바람이겠지.”
가볍게 그 바람을 무시하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
“봐봐요! 예쁘잖아요!!”
다영이 정장을 입은 나를 보고 흥분해서 말했다. 그런 다영과 달리 내 얼굴은 썩어 들어갔다.
“다영아. 어려운 자리라니까.”
다영이 골라준 정장은 멜론 색깔이 나는 세미 정장이었다. 평소에도 입지 않는 색인데 이걸 ‘고미술의 밤’에 입고 가라고? 무시했던 경환의 말이 현실화 되는 순간이었다. 질끈 눈을 감는 나를 보며 다영이 이해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더 튀어야죠. 오빠를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이런 옷 입고 가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니까요.”
“강렬한 인상과 함께 찍히겠지.”
“왜 이렇게 사람이 부정적이에요. 옷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실력을 딱 보여주면 손님이 줄을 설 거예요!!”
다영이 동그란 눈을 깜박이며 장화신은 고양이 같은 눈으로 나를 본다. 반쯤 넘어갈 뻔했지만 다행히 정신을 차렸다.
“손님이 줄을 선대도 나는 이 옷 못 입어.”
다영이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그럼 어떤 옷 입고 싶은데요?”
“이런 옷.”
나는 무난해 보이는 검은색 정장을 집었다.
“이런 건 눈에 안 띄잖아요. 그럼 차라리 이걸로 해요.”
다영이 감색 줄무늬 양복을 집었다. 그것도 너무 화려한 것 같아 내키지 않았지만, 인상 쓴 다영의 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갈아입고 나왔다. 입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다영이 거기에 와인색 넥타이를 댔다.
“이렇게 매치하는 것 어때요?”
“괜찮네. 매 보게 줘 봐.”
다영은 넥타이를 뒤로 빼더니 장난기 어린 눈으로 말했다.
“내가 해줄게요!”
그러더니 넥타이를 내 목에 넥타이를 둘렀다. 얼굴이 가까워지더니 다영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환절기도 아닌데, 안면홍조증인가? 직접 매겠다고 나설 정도면 꽤 잘하겠지 싶었는데, 손의 움직임이 둔한 모습이 어쩐지 의심스럽다.
“정말 맬 줄 알아?”
“아…… 알아요. 지금 잠깐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다영이 민망한지 내 눈을 피하고 딴 곳을 쳐다봤다. 날이 선 목소리가 날아든 것은 그때였다.
“한지감?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
고개를 돌리니 이수지가 서릿발이 날리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와 이런 곳에서 마주친 것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라고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되도록 평소에 안 보고 싶은 얼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님이기에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저도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쇼핑 오셨나 봐요.”
“응. 누구 선물 좀 볼까 해서 왔는데, 이렇게 보네. 여자친구?”
이유는 모르겠으나 다영을 보는 이수지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아마 오늘 심사가 틀려있는 모양이다.
“아는 동생이에요. ‘고미술의 밤’에 가는데 마땅한 옷이 없어서, 옷 고르는 것 도움받고 있어요.”
어쩔 줄 몰라 하는 다영을 손짓해서 불렀다. 어쨌든 미술계에 있을 건데 이수지를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드림 갤러리에서 일하는 정다영이라고 합니다.”
“드림 갤러리? 처음 들어보네. 명함 없어?”
다영이 다급하게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언제 한번 꼭 찾아주세요.”
빨갛게 볼이 달아올랐지만 예전처럼 할 말을 못하지 않았다. 정다영, 많이 컸네. 이수지가 가고, 나는 입고 온 옷으로 다시 갈아입고 계산대 앞에 섰다.
“얼마죠?”
“동행하신 여자분이 이미 계산하셨습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영을 보았다. 200만 원 가까이 되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다영이 자신이 안 한 것처럼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빨리 취소해. 내 카드로 하면 돼.”
“이미 냈는데 뭘 취소해요.”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발끈한 다영이 소리쳤다.
“저도 돈 있어요! 전명자 선생님 작품 팔아서 인센티브 좀 챙겼어요. 이 정도는 살 수 있다구요.”
“그래도.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굳이 비유하자면 후배한테 돈 빌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냥 받아주세요. 저도 마음 편하자고 그러는 거예요. 연적 깨트렸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오빠가 저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한우로 퉁치는 건 양심에 너무 찔려서 그래요…….”
고개를 푹 떨어트린 다영이 발끝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모습이 웃겨서 풋 웃음이 났다. 그런 나를 보고 다영이 헤헤 거리며 웃었다.
“받기로 한 거죠?”
“그래. 받을게.”
“고마워요. 받아줘서.”
“나도 고마워. 잘 입을게.”
서로를 보고 웃는데 다영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아무래도 홍조가 심해진 모양이다. * 다음 날, 나는 다영이 사준 정장을 갖춰 입고 A호텔로 향했다. 호텔 VIP 라운지 앞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보안요원이 나를 멈춰세웠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한지감입니다.”
리스트를 확인한 보안요원이 길을 열어주며 정중하게 말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이수지 때문에 이곳에 한번 와봤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다. 소파를 다 치우고 한쪽 벽면에 유물 10점 정도를 설치했고, 약간 거리를 두고 유물이 잘 보이도록 의자를 깔아놓았다. 어떤 유물이 나왔는지 궁금해서 확인하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 선생, 일찍 왔네요.”
강 회장과 비서실장이 보여 인사를 나눴다. 내 정장을 본 강 회장이 눈을 반짝였다.
“정장이 아주 세련됐네요. 나중에 어디서 샀는지 좀 알려줘요.”
“하하.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강 회장을 보고 다가왔다. 가까이 와서야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바로 현성 그룹 이재근 회장이었다.
“오랜만입니다. 강 회장.”
“오랜만이에요. 이 회장.”
강 회장과 이 회장이 껄껄 웃으면서 인사를 나눴지만 그 속에서도 묘한 신경전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 시선을 가져간 것은 이 모습이 아닌, 이 회장 뒤에 서 있는 김용식이었다. 양아치 같은 짓을 하는 저런 사람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도 나처럼 전문가 자격으로 온 것 같았다. 나를 보고 이를 악무는 모습이, 아미타불화를 빼앗겼다 여기는 모양이다. 인사를 마친 이 회장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한지감 씨?”
이 회장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놀라지만 최대한 표현을 자제하면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재근 회장님. 제 이름을 알고 계시다니 놀랐습니다.”
“요새 계속 한지감 씨 이름이 들려서 모를 수가 없더군. 묘접도 마음에 들었어.”
“감사합니다.”
이 회장은 인사하러 다른 쪽으로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행사의 진행은 전문가 자격으로 온 사람들이 유물을 직접 설명하고, 전문가가 동석하지 않았을 경우 수행원이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강 회장의 청화백자가 첫 번째로 전시되었기에 나는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최대한 청화백자에 시선을 두고 설명했다.
“도자기에 그려진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 오조룡이 왕실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8세기에 들어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이전까지는 3-4개 발톱을 가진 용을 그렸습니다. 원래 오조룡은 황제를 뜻하는 것으로…….”
“정말 그 물건이 진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두의 시선이 날아든 목소리에 집중되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용식이었다. 나는 화가 났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네. 진품입니다.”
“그런 눈으로 골동상을 어떻게 하는지……. 이건 조잡한 위조품입니다!”
* 이번 회차에 등장한 철불과 관련한 내용은 법보신문 2018년 3월 13일자에 게재된 ‘보물 지정되자마자 사라진 강화 백련사 철조아미타불좌상’ 기사를 인용하였습니다. 인용을 허락해 주신 이숙희 감정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