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손상 유의2021.03.10.
[ 800,000,000원 | 진 | 1,100,000,000원 | 1710년대 | 손상 유의 ] 최고가 십일억이나 되는 귀한 물건이라는 것은 좋은데, 손상을 유의하라고? 굳어버린 내 얼굴을 보고 경환이 다가와 속삭였다.
“왜 그래?”
“아니야.”
나는 부랴부랴 면장갑을 끼고 자세히 도자기를 봤다. 달항아리처럼 문양이나 장식이 생략된 도자기다. 입구에서 어깨까지 완만하게 부풀다가 어깨를 지나면 이전과 달리 빠르게 부푼다. 그러다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급격히 줄어든다. 달항아리처럼 위와 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였고, 그래서 비대칭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이런 대형 도자기는 왕실 권위를 상징하는 예식용으로 제작되어,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래서 최고가 십일억이나 되는 것이다. 문제는 특이사항인 ‘손상 유의’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 금 같은 위태로운 손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가볍게 두드려서 소리를 통해 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거까지 해볼 정신이 없었다. 손상되는 이유를 찾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유물을 옮기는 도중 문제가 발생하는 걸까? 만약 구매자에게 물건이 도착하기 전 배송하는 과정에서 유물이 손상된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손상될 시에 가장 좋은 상황은, 손상이 심하지 않아 구매자가 일부를 돌려받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 것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경우 판매자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고 그 불똥이 나에게까지 튈지 모른다. 만약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손상이 이미 이 백자에 있는 것이라면, 자외선이나 현미경 등 과학 장비를 통해 손상을 확인하고 보수한 이후에 옮기는 것이 안전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생각에 잠겨 있는데, 떨리는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 가품인가요?”
부인은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진품입니다. 그런데…….”
뭐라고 설명을 할지 난감하다.
“외부적으로 봤을 때는 흠이 없어 보이겠지만, 내구성이 약해서 운반이 굉장히 까다로운 물건입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이었다. 부인이 불안한 듯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판매를…… 할 수 없나요?”
“판매를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보험을 들고 운반할 때도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일단 과학 장비로 손상을 체크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위험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꿀꺽 침을 삼킨 부인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가…… 가격은 얼마나……?”
“문제없이 구매자에게 배송되기만 한다면 최소 9억입니다.”
“저…… 정말이요?”
“네.”
그 말을 들은 부인이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더 높은 금액을 기대했던 걸까? 내가 당황한 사이 경환이 부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안 괜찮을 게 뭐가 있겠어요. 이제…… 이제…… 살았는데…….”
부인이 펑펑 눈물을 쏟아내었다. 그제야 나는 부인이 더 높은 금액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라 안도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구 흔들리는 목소리로 부인이 말을 이어갔다.
“모아둔 돈도 없고, 이 집도 대출 받아서 겨우 산 거라 이제 죽었구나 싶었어요. 그 돈이면 적어도 애들 아빠 치료하고 얼마 동안은 버틸 수 있는 돈이잖아요.”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을까. 그 생각을 하니 나까지 덩달아 울컥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이 유물은 손상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부디 물건이 높은 값에 팔리고 판매자의 품에 안길 때까지는 무사해야 할 텐데. * 이수지가 개인 감정사와 함께 부인의 집을 찾았다. 내가 이 집에 온 후로 일주일이란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 시간은 손상을 확인하고 물건을 수리하는 데 쓰였다. 자외선을 통해 어깨에 있는 균열을 확인하고 미술품 수복 전문가가 와서 수리했다. 출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선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작업실까지 이 커다란 백자를 옮기는 위험을 감내해야 했을 터였다. 개인 감정사는 조금의 흠이라도 찾아내려고 눈을 뒤집고 백자를 봤지만 아무런 흠도 찾아내지 못했다.
“진품입니다…….”
부인을 훑어본 이수지가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띠었다. 원래 성격이 더럽긴 했지만 최근 들어 더 안 좋아졌다. 아무래도 장문식이 위탁한 물건을 판 이야기를 듣고 의심 수치가 올라간 모양이다.
“어디서 이런 귀한 도자기를 얻으셨어요?”
딱 보기에도 부인은 이런 도자기에 관심이 없을 것 같았고, 집안도 이런 고미술을 사 둘 만하지 않기에 던진 질문이었다.
“아…… 그게.”
부인이 쉽게 대답하지 못하자 이수지의 의심은 더 높아졌다. 가만히 있으면 상황이 악화되겠다 싶어 끼어들었다.
“남편께서 10년 전에 자동차에 치일 뻔했던 아이를 구해줬다고 합니다. 보상금을 거절하자 아이의 할아버지께서 이 물건을 선물하셨습니다.”
이수지는 의심을 풀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는 사기꾼들이 잘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10년 전 기사를 보여주었다. 자동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해준 부장의 이야기가 그대로 정리된 기사였다. 이수지의 눈빛이 누그러지자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현성 그룹의 정보력이라면 아이의 할아버지를 찾아내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제법 준비를 잘 해놨네.”
네가 이렇게 나올 것 같아서 준비해 놨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수지와 개인 감정사가 집을 떠나고 부인이 불안한 눈길로 말했다.
“안 사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죠?”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분이 아니어도 차선책은 있습니다.”
이수지가 안 사겠다고 나오면 은근슬쩍 도강 그룹 강 회장에게 넘기겠다는 말을 흘릴 작정이었다. 그럼 경쟁심에 불타올라 눈에 불을 켜고 사려고 들겠지. 하지만 정작 문제는 이 물건이 이수지이든 강 회장이든 판매자의 수장고로 손상 없이 들어갈 수 있느냐하는 것이었다. 수리를 했는데도 특이사항에서 ‘손상 유의’는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가을로 접어들어 쌀쌀한 날씨였지만 햇빛이 좋아 맑게 느껴지는 날이다. 그런 좋은 날, 나는 하필이면 현성 미술관에 있었다. 로비를 가득 채운 의자에 사람들이 촘촘히 앉아 있었다. 플랜카드에는 크게 ‘이수지 관장 취임식’이 쓰여 있다. 이수지가 관장으로 취임하는 걸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빠르다고 할 수도 없다. 이 회장과 기싸움을 벌인 이후 어느새 1년이나 지났으니까. 굳이 이곳에 오고 싶진 않았지만 ‘이수지’란 큰 손님 때문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이수지를 응시했다. 강단 위에서 이수지가 따분한 취임사를 열정적으로 말했다.
“현성 미술관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미술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미술관이 아니라 세계에서 꼽아주는 미세탁 미술관이 되고 싶은 거겠지. 그때 옆에 앉은 다영이 쿡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찔렀다. 불시에 당한 습격이라 신음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는데, 복화술로 속삭인다.
“웃어요. 웃어.”
그새 찡그려진 얼굴이 드러났다 보다. 나는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강한 아픔을 참고 웃음을 만들어냈다. 힐긋 다영을 보니 만들어낸 미소가 진짜처럼 자연스럽다. 정말 대단한 의욕이다. 고통을 참아내며 고개를 돌리는데, 앞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탑 옥션 황덕현 대표이다. 거의 1년 동안 대면한 적이 없어 반가웠지만 곧 고통이 반가움을 삼켜버렸다. 이수지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취임식이 끝났다. 미술관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수지와 관장실에서 티타임을 갖기로 했기 때문이다. 홀로 가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다영을 물고 늘어졌다.
“같이 가자.”
“나는 오라고 안 했잖아요!”
이수지는 1년 동안 다영에게 꽤 많은 그림들을 사갔고 많이 가까워졌지만, 개인적으로 마주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어 했다. 하긴 나도 하기 싫은데 다영은 오죽할까. 결국 나는 다영을 보내고 홀로 관장실로 가서 티타임을 가졌다. 이수지가 도도하게 턱을 치켜세우고 말했다.
“이 자리에 앉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빈말이라도 고맙다는 말을 한마디 안 한다. 그래, 돈 받고 일한 건데 립 서비스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수준급 미소를 지었다.
“제가 부탁드려야죠.”
골동상으로 지낸 지 햇수로 2년째이다. 이제 이 정도 표정을 만들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때 수행원이 들어와서 이수지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자 미소가 지워지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수지가 수행원을 보고 말했다.
“알겠으니까 그만 나가봐.”
수행원이 나가고 이수지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말했다.
“원하시는 물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무슨 일이었는지 안 물어봐?”
“물어보면 말씀해 주실 겁니까?”
“백자대호 기억나?”
내 손을 거쳐 이수지의 손에 들어간 백자대호는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달항아리, 다른 하나는 장신호.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달항아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장신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장신호. 그거 때문에 내가 속 좀 끓였잖아.”
백자대호를 본 이수지는 며칠 후 구매의사를 밝혔고, 빵빵한 보험을 든 현성 미술관에 의해 수장고로 옮겨졌다. 무사히 옮겨졌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한숨을 놓았다. 수장고에도 옮겨졌으니 백자가 별 탈 없이 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기억합니다. 미술관에 온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깨졌죠.”
“그래. 웬 멍청이가 그렇게 만들었지.”
이수지가 이를 부득 갈면서 인상을 구겼다. 백자대호가 전시를 위해 수장고에서 나와 전시실로 이동하는 중에 직원의 실수로 백자대호가 깨졌다. 보험을 들어놓았기에 금전적인 손실은 크지 않았지만, 산산이 부서지는 바람에 수리는 불가했다. 결국 그 직원은 해고됐다. 전시실 바닥이 미끄러워 발생한 일이라 모든 것을 직원의 과실로 돌릴 수는 없었으나 그런 말이 윗사람들에게 먹힐 리 없었다. 그 직원이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짜증을 누르며 이수지가 말을 이었다.
“그 멍청이가 글쎄 해고가 부당하다는 소송을 냈거든. 그것도 모자라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한다네. 어이가 없어서.”
맞장구를 쳐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유물이 손상된다는 특이사항을 알고 있어, 꼭 뒤집어씌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기분이 안 좋으시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가 끊겼다. 정적이 흘렀고 이수지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초심을 잃은 것 같아서. 예전에는 골동품 보는 걸 좋아하더니 요새는 별로 그런 것 같진 않네. 하긴, 뭐든 다 시들해지기 마련이지.”
“…….”
절대 시들해진 것은 아니었다. 멋진 골동품을 보면 가슴이 뛰고 흥분이 되는 것은 똑같았다. 다만 복잡해졌다. 안경이 알려주는 특이사항은 물건을 사고파는 데 좋은 정보들을 제공했고, 그로 인해서 나는 더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백자대호처럼 누군가 그 특이사항에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내가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 것은 아닌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골동품을 보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 끼니도 거르고 메이저 경매에 올릴 유물들을 감정하기 위해 탑 옥션으로 향했다. 첫 유물은 토끼와 새, 나무 등이 그려진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였다. 세로 70cm, 가로 30cm 정도 된다. 단원의 화풍이 느껴지지만 단원의 것으로 보기엔 밋밋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건 단원의 아들 긍원 김양기의 그림이다. [ 20,000,000원 | 진 | 25,000,000원 | 1820년대/ 긍원 | 소장자 판매 고민 ] 긍원은 추사의 제자인 우봉 조희룡과 교류했고 작품이 일본에 전해졌을 만큼 뛰어난 화가였지만 아버지인 단원을 뛰어넘진 못했다. 나도 아버지와 같은 일을 하고 있기에 안쓰러운 느낌이 든다. 아버지가 업계 선배라는 것은 도움도 많이 받지만 그만큼 힘든 부분도 있다. 그런데 긍원은 아버지가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로 뽑히는 단원이다.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무게감이다. 서화와 묵죽 대련을 차례로 감정하고 그다음은 진경산수화 4폭이었다. 정연주의 기대감 없는 표정을 보니 거의 위작이라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금강산 일대 만폭동, 벽하담, 진주담, 총석정이 화폭에 담겨 있었다. 세심하고도 힘 있는 필선. 이거 설마 겸재의 젊은 시절 작품인가? 내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차례로 메시지가 떴다. [ 300,000,000원 | 진 | 400,000,000 | 1710년대 / 겸재 | 소장자 판매 결정 ] [ 250,000,000원 | 진 | 400,000,000 | 1710년대 / 겸재 | 소장자 판매 결정 ] [ 360,000,000원 | 진 | 550,000,000 | 1710년대 / 겸재 | 소장자 판매 결정 ] [ 430,000,000원 | 진 | 530,000,000 | 1710년대 / 겸재 | 소장자 판매 결정 ] 맞다. 겸재의 젊은 시절 작품이! 하지만 이 그림들이 옥션에 출품될 수 있을까? 이 그림들이 겸재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감정 위원은 나뿐인 듯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