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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분실 위험 (3) (51/226)

51화 분실 위험 (3)2021.03.29.

나와 이 형사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는 한 치의 기대감도 없는 얼굴로 반문했다.

16560257117891.jpg“윗집 사는 양준배 씨가 범인이라구요?”

16560257117896.jpg“네. 틀림없습니다.”

윗집 사는 양 씨, 그러니까 양준배가 내가 생각한 범인이었다. 아니, 그가 범인임에 틀림없다. 이 형사는 매우 귀찮은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16560257117891.jpg“양준배 씨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16560257117896.jpg“CCTV에 양준배 씨 모습이 찍혔나 보죠?”

16560257117891.jpg“그것만이 아닙니다. 그 당시 같이 있었던 일행들이 있습니다.”

16560257117896.jpg“일행들이 있다……. 일행이 한 사람이 아니군요. 그렇다면 잠깐 자리를 비우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텐데요.”

인상을 쓴 이 형사가 기가 차다는 듯 물었다.

16560257117891.jpg“도대체 양준배 씨가 범인이라는 근거가 뭡니까?”

16560257117896.jpg“일단 전문 털이범들의 짓은 아닙니다. 전문 털이범들이라면 기껏해야 최고가 유물이 1억인 집을 선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다 걸린 것이 최 교수님 집이었다면, 거실에 있는 유물들까지 싸그리 훔쳐갔겠죠.”

16560257117891.jpg“그것만으로는 전문 털이범이 아니라는 근거가 되지 않는데요.”

이 형사는 내가 앞에 있는 것이 무색할 만큼 푹 의자에 기대 앉아있었다. 내 말을 하나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 모습을 오니 오기가 슬그머니 올라온다. 어디 이 말을 듣고도 계속 그럴 수 있는지 보자.

16560257117896.jpg“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전문 털이범들은 보통 액자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그림만 떼어내서 가져갑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범인은 ‘액자’ 자체를 옮겼더군요.”

그제서야 내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이 형사가 똑바로 앉았다. 그렇지만 아직도 눈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16560257117891.jpg“하지만 범인은 안방에 있는 비싼 그림들만 가져갔습니다. 고미술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16560257117896.jpg“그게 형사님이 절 의심한 이유이기도 하겠죠.”

16560257117891.jpg“의심했다기보다…….”

16560257117896.jpg“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같은 이유로 박명국 교수를 의심했으니까요. 하지만 액자 자체를 옮긴 것을 보고,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 형사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16560257117896.jpg“범인은 그림에 대해 잘 모릅니다. 다만, 최 교수님이 값비싼 그림이다 자랑하는 걸 보고 호기심에 그림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그러다 정말 최 교수님이 말한 것처럼 비싼 물건인지 궁금해서 고미술 가게에 가서 사진을 보여줬고, 진짜라면 1억 정도 받을 수 있는 유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죠.”

16560257117891.jpg“지금 하신 이야기 누구에게 들은 겁니까?”

이 형사가 매서운 눈빛으로 어서 말하라고 압박했다. 나는 지지 않고 이 형사를 봤다.

16560257117896.jpg“누구에게 들었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검은 네트워크에 최 교수님이 도난당한 그림이 올라왔다는 겁니다. 나머지는 형사님의 일입니다.”

16560257117891.jpg“…….”

이 형사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정리가 끝난 그가 입을 열었다.

16560257117891.jpg“그러니까 지금 양준배 씨가 범행 날짜에 일부러 근처에서 약속을 잡고, 최 교수님이 집을 비우신 틈을 타 그림을 훔쳤다는 거죠?”

16560257117896.jpg“네. 맞습니다. 아마 그림은 양준배 씨 집에 있을 겁니다.”

16560257117891.jpg“한지감 씨 말대로라면 아파트 후문으로 들어와서 CCTV에 찍히지 않을 수 있다는 건데, 벌써 후문으로 그림을 빼돌리지 않았을까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16560257117896.jpg“그러기엔 그림 크기가 너무 큽니다. 소상팔경도 한 폭의 가로 세로 길이는 각 30cm, 50cm입니다. 4폭이 2열로 붙어 있고 그림마다 약간의 폭을 두고 붙어 있어서, 가로는 160cm 세로는 105cm 정도 됩니다. 160cm이면 웬만한 여자 키죠. 옮기기 부담스러울 겁니다.”

16560257117891.jpg“그런 거에 부담을 느낀다면 아예 훔치지도 않았겠죠. 검은 네트워크가 물건을 판다고 올려놓지도 않았을 거구요.”

정말 문화재 도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16560257117896.jpg“보통 전문적으로 문화재를 훔치는 사람들은 10년간 세상에 유물을 내놓지 않습니다. 그게 아무리 검은 네트워크라도 세상에 잊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요.”

물론 정말 희소한 유물에 대해서는 바로 팔리는 경우가 있지만, 최 교수가 가진 유물들은 그 정도 급은 아니었다. 나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16560257117896.jpg“근데 범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기도 하고, 경찰이 움직이는 상황에서 불안 초조했던 겁니다. 검은 네크워크에서 팔렸을까요? 아니요. 지금 그림을 잘못 움직였다가 덜미라도 잡히면 큰일 나니까, 사려는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어느새 이 형사의 몸이 내 쪽으로 기울었다. 드디어 내 말을 믿는 것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다 끝났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16560257117896.jpg“나머지는 형사님께서 잘 하실 거라 믿습니다.”

16560257117891.jpg“왜 제가 한지감 씨를 의심했는지 아십니까?”

16560257117896.jpg“최 교수님에게 보험과 보안에 대해 이야기해서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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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형사가 끄덕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16560257117891.jpg“그것도 맞지만 결정적이진 않았습니다. 집으로 찾아갔을 때 한지감 씨는 도난당했다는 걸 듣고 놀라지 않았어요. 없어질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들킨 사람처럼 움찔했다. 안경을 통해 얻은 정보였지만 이 형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상하게 보였을 터였다.

16560257117896.jpg“유물이 없어진 자체보다 최 교수님이 더 걱정되었습니다.”

16560257117891.jpg“그게 전부입니까? 이렇게 나선 이유도요?”

16560257117896.jpg“네. 전부입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그 방에서 나왔다. * 가게에서 물건관리대장을 정리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최 교수가 포장된 큰 액자를 들고 서 있었다.

16560257117896.jpg“교수님. 어쩐 일이세요?”

16560257117891.jpg“고맙다는 인사하려고 왔죠.”

어젯밤에 최 교수에게 전화가 와서 그림을 훔친 범인을 잡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범인은 내가 예상한 대로 최 교수의 윗집에 사는 양준배였다. 양준배는 이 형사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모든 범행을 자백했다. 범행 동기는 시기였다. 매일 빠듯한 살림인 자신과 달리 풍족하게 살면서 골동품을 사들이는 최 교수를 질투해 이러한 범행을 저질렀다. 아버지가 최 교수가 들고 온 큰 액자를 받아 벽면에 세우고 물었다.

16560257117896.jpg“파실 그림입니까?”

16560257117891.jpg“아니요. 지감 씨에게 주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16560257117896.jpg“저요?”

16560257117891.jpg“네. 너무 고마운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죠.”

액자의 그림을 보니 어떤 그림인지 알 것 같았다.

16560257117896.jpg“소상팔경도죠?”

16560257117891.jpg“맞아요.”

최 교수는 밝은 미소로 답했지만 나는 당황스러웠다. 소상팔경도는 최 교수가 소유한 유물 중에 가장 비쌌다.

16560257117896.jpg“받을 수 없습니다.”

16560257117891.jpg“받아주세요. 지감 씨 덕에 잃어버린 유물들을 찾아서 너무 고마워서 그래요.”

16560257117896.jpg“아끼시는 그림이지 않습니까. 판매 생각도 없으셨던 그림인데…….”

그런 그림을 범인을 찾아줬다는 이유로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버지도 말을 보탰다.

16560257117896.jpg“최 교수님, 주실 마음으로 오셨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합니다.”

하지만 최 교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16560257117891.jpg“충분하지 않아요. 이 그림을 비롯한 많은 유물들을 아낀다고 말하면서도 저는 보안 장치조차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죠. 지감 씨가 그런 제안을 했을 때 솔직히 속으로 비웃었어요.”

16560257117896.jpg“이해합니다. 여태까지 보안이 필요했던 상황도 없으셨으니 그런 반응이 당연하죠.”

16560257117891.jpg“그래서 이 그림을 바보같이 도둑맞았죠. 그것도 자랑 삼아 보여줬던 이웃이었으니, 도난을 제가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런데 지감 씨가 어렵게 찾아주셨으니 이렇게라도 보답을 하고 싶어요. 제발, 받아주세요.”

최 교수의 간절한 눈빛을 보니 계속 거절하기도 난감했다.

16560257117896.jpg“그럼, 최 교수님이 구매하셨던 가격에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16560257117891.jpg“구매라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여기 두고 갈 테니 알아서 하십시오. 되돌려 보내셔도 절대 안 받을 겁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최 교수는 가게를 나섰다. 서둘러 쫓아갔지만 대로에서 택시를 타버리는 바람에 놓쳤다. 가게로 돌아온 나는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포장된 소상팔경도를 응시했다.

16560257117896.jpg“난감하네……. 어떡하지?”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165602572739.jpg“그냥 받아라.”

16560257117896.jpg“하지만…….”

165602572739.jpg“그래야 최 교수 마음이 편하지 않겠냐. 그리고 지감아.”

16560257117896.jpg“네. 아버지.”

165602572739.jpg“앞으로는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어떠냐?”

아버지는 내가 최 교수의 일에 나선 것이 마음에 걸리시는 모양이다.

16560257117896.jpg“제가 나서는 것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생각하세요?”

165602572739.jpg“그런 뜻이 아니다. 나는 그저 네가 다칠까 봐 걱정되는구나. 이번에는 잘 처리됐지만, 어떤 일에 나서다 보면 네가 생각지도 못하는 곳에서 공격당할 수도 있다.”

16560257117896.jpg“다음부터 조심할게요.”

이 형사가 나를 의심했던 이유가 머릿속에 스쳤다. 나는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버지의 말대로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 토요일. 나는 메이저 경매 프리뷰를 보기 위해 탑 옥션으로 향했다. 다음 주에 있는 면접에 혹시 관련된 프리뷰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미술 관련된 것을 다 둘러보고 근현대 미술이 있는 4층으로 이동했다. 아직도 근현대미술은 낯설었지만 예전보다는 익숙했다. 현대미술은 고미술에 비해 그 개념이 훨씬 어려웠지만 한 가지 매력적인 점이 있으니, 메시지가 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가격과 상관없이 그림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림 몇 점을 지나 가로 200cm, 세로 150cm나 되는 대형 그림 앞에 섰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이 나비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나비와 여인, 이 두 가지 키워드와 특유의 매혹적인 그림체에서 연상되는 작가는 한 명이었다.

16560257117896.jpg“전명자 작가?”

작가 이름을 확인하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16560257301646.jpg“오오. 제법이네요.”

고개를 돌리니 눈을 가늘게 뜬 다영이 서 있었다. 뜬금없는 등장이었지만 반가웠다.

16560257117896.jpg“정다영, 너 여기서 뭐하냐?”

16560257301646.jpg“뭐하긴요. 누구처럼 혹시 면접에 나올까 싶어서 프리뷰 보러 온 거죠. 근데 이거, 호랑이 새끼를 키운 것 같네요.”

호랑이 새끼?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16560257117896.jpg“설마 그 호랑이 새끼가 나는 아니겠지?”

16560257301646.jpg“오빠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16560257117896.jpg“네가 언제 나를 키웠냐?”

16560257301646.jpg“근현대 작가라면 까막눈인 오빠를 누가 전시회를 데리고 다녔죠?”

턱을 도도하게 치켜세운 다영이 나에게 물었다. 그 꼴을 보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러 전시회를 다니면서 다영 덕분에 근현대 작가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16560257117896.jpg“……어.”

16560257301646.jpg“어허. 하나도 안 들리네요?”

어서 대답하라는 듯 다영은 자신의 귀에 손을 가져다댔다. 못마땅했지만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6560257117896.jpg“그래. 너다 너! 들으니까 속이 시원하냐?”

16560257301646.jpg“네. 아주 시원해요.”

만족스럽다는 듯 다영은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16560257117896.jpg“야. 그래도 호랑이 새끼를 키운 건 아니지. 누가 보면 네가 나를 양육한 줄 알겠다?”

16560257301646.jpg“근현대 미술사에 있어서는 제가 양육한 거나 다름없죠. 이렇게 경쟁자로 마주할지도 모르고 말이에요.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다영이 과장스럽게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짜냈다.

16560257117896.jpg“그런 거라면 나도 마찬가지지.”

16560257301646.jpg“오빠가 고미술에 대해서 그렇게 가르쳐 준 적 없잖아요.”

16560257117896.jpg“이수지 관장, 신현숙 대표, 도강 그룹 비서실장, 다 누가 소개해 줬더라?”

16560257301646.jpg“음……. 그건 인정. 쳇. 사람 할 말 없게 만들기예요?”

16560257117896.jpg“네가 먼저 시작했다아.”

볼이 붉게 달아오른 다영이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16560257301646.jpg“짜증나서 그래요. 나는 고미술은 잘 모르니까. 오빠는 고미술 스펙이 차고 넘치는데 이제 근현대 미술까지 잘 알아봐요. 내가 경쟁력이 없잖아요!”

16560257117896.jpg“너는 좋은 대학 나왔잖아. 그리고 나 현대미술, 그림 보고 작가 이름 겨우 아는 것이 전부거든?”

내 상대적 열세를 털어놓는데도 다영은 그 정도는 자신의 열세와 비교할 수 없다는 듯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16560257301646.jpg“오빠, 솔직히 너무 이기적인 거 아시죠?”

16560257117896.jpg“내가?”

16560257301646.jpg“미대 다니는 애들 중에 그런 애들 가끔 있거든요. 서양화 전공해서 회화랑 드로잉이 기가 막힌데, 사진하고 영상 같은 매체도 잘 다루고 조각하고 소조까지 잘하는 괴물 같은 애들. 오빠가 딱 그래요.”

16560257117896.jpg“칭찬이냐, 욕이냐.”

눈을 부릅뜬 다영이 또박또박 말했다.

16560257301646.jpg“질투예요! 강렬한 질투! 꼭 그렇게 다 가져야만 속이 시원해요? 상도덕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만 알아둬요.”

말을 마친 다영이 홱 돌아서서 가버렸다.

16560257117896.jpg“정말 어이가 없네. 정다영.”

헛웃음이 터져 웃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나더니 온몸을 타고 강한 전기가 흘렀다. 이 느낌 언제 느껴봤는데……. 그래. 처음 안경을 썼을 때 딱 이런 느낌이었다.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휘청거리다 벽을 잡고 겨우 중심을 잡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림을 보는데,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 보였다.

16560257117896.jpg“웬 메시지? 여긴 고미술이 없는데……?”

하지만 분명 메시지였다. [1단계 구매가격이 제공됩니다.] [ 1,700,000,000원 ] 지금…… 근현대 작품 메시지가 보이기 시작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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