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마대호 화가 (2)2021.04.07.
먼저 물어보고 받아들일걸……. 경솔했다. 지금이라도 못 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할까? 그런 고민을 하는데 메시지가 떠올랐다. [미션 : 48시간 내에 마대호 화가의 전시 허락을 받으면 2단계 정보가 공개됩니다.] 왜 하필 미션이 이거야! 짜증이 치솟았지만 미션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된 거 부딪혀 볼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설득하겠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임병규가 환한 미소를 짓더니 덥석 내 손을 잡았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힘없는 대답을 하면서 나는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 갤러리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인터넷 창에 ‘마대호’를 검색했다. 하지만 동명이인이 나올 뿐, 화가 마대호는 나오지 않았다. 여기저기 검색해봤지만 나오는 정보는 ‘납북’ 화가라는 것 외에는 없었다.
“정보가 있어야 설득을 할 거 아냐.”
임병규에게 받은 마대호의 정보는 납북된 서양화 화가라는 것과 일본에서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뿐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정보였다. 그때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논문이라면 이것보다 자세한 정보들이 있지 않을까?”
미친 듯이 검색해서 마대호의 정보가 들어간 논문을 찾았다. 여러 납북 화가를 조사한 논문인데, 마대호가 잠깐 등장했다.
“17년 출생, 메이지 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하지만 이곳에도 자세한 정보는 없었다. 마대호의 그림 한 장 실려 있지 않았다. 막다른 길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가게로 가자.”
가게로 가서 나는 이런 상황을 아버지에게 털어놨다.
“어려운 상황이구나. 연락은 해 봤니?”
“못했어요. 무슨 말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확실히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지. 6.25 전쟁이 있은 후로 7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색깔 논쟁은 여전하다. ‘북으로 넘어간 화가’의 가족이란 꼬리표는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것보다 더 무거운 짐이었을 거다.”
“하지만 납치 당한 거잖아요.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살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 것이 죄는 아니잖아요.”
“북한에서 공로를 인정받은 순간 그건 소용없게 된 거지. 이념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도 이념 때문에 죽어가는 시대였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검색해 보니까 마대호 화가 같은 경우에는 감시와 통제를 합법화할 수 있었더라구요.”
“그렇지. 계속 감시당하고, 무슨 일만 생기면 잘못한 것이 없어도 의심을 샀을 거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원망했을 거야.”
“마대호 화가를 잘 알지도 못하는 제가 가서 난데없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미션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을 때는 설렜는데, 지금은 두통과 답답한 마음만이 남아 있었다. * 가게에서 퇴근한 나는 차에 올랐다. 핸드폰을 계속 봤지만 연락이 없었다. 계속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부딪혀 볼 심산으로 마대호의 막내딸인 마선영에게 전화를 했다. 몇 번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연락드린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하순호가 왜 수집을 멈췄는지 알기 위해 하정민에게 연락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땐 처음 전화 걸었을 때 받긴 받았잖아.”
이번에는 한번 대화도 못해 보고 이렇게 끝내는 걸까? 이제 시간은 21시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다짜고짜 집으로 찾아가?”
임병규에게서 받은 집 주소가 있었다. 정말 무조건 찾아가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다. 그렇지만 계속 연락이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만나서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거지.”
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벨 소리가 꼭 설득할 방법이 없지는 않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기대에 차 발신인을 확인한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다영이었다.
“응. 다영아.”
[목소리가 왜 그래요?]
“힘들어서. 무슨 일이야?”
[저도 힘들어서요. 오늘 갤러리에 진상 손님 왔었거든요. 제가 살 테니까 술 마셔요.“
“그래. 술이나 마시자. 내가 갤러리 쪽으로 갈게.”
[그럼 전 근처 술집에 자리를 잡겠습니다아.]
“알았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데 붙잡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 알아? 술 마시다가 뭔가 생각날지.”
기가 막힌 합리화라는 알면서도 나는 시동을 걸었다. * 다영이 알려준 가게로 들어선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고가의 레스토랑이었기 때문이었다.
“잘못 왔나?”
두리번거리는데 다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예요오.”
다영이 앉은 테이블에는 이미 스테이크과 샐러드, 와인이 세팅되어 있었다.
“여기 비싼 거 같던데.”
“맨날 여기서 먹는 것도 아니고 오늘 하루인데요. 우리 건배해요.”
“아…… 응.”
허공에서 와인글라스가 부딪혔다. 입안에서 와인을 굴렸다. 달지 않은 드라이한 와인이었지만 풍미가 제법 좋았다.
“맛있죠?”
“응. 풍미가 좋다.”
“다행이다아.”
다영의 입꼬리를 올라갔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진상에게 많이 시달린 모양이다.
“그냥 울고 싶으면 울어.”
“절대로 안 울 거예요.”
눈을 부릅뜬 다영이 앙칼지게 말했다.
“왜?”
“울면 그 진상에게 지는 거잖아요.”
“그게 왜 지는 거야? 감정을 해소하는 거지.”
“자기도 잘 안 울면서.”
“나는 남자잖아.”
“우는데 남자, 여자가 어딨어요? 사람이 구시대적이야.”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을 보니 말을 돌리고 싶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다영을 봤다. 그런 나를 보고 멈칫한 다영이 물었다.
“왜 그렇게 봐요?”
“또 말하면 말꼬리 잡을 거잖아. 그래서 가만히 있는 거야.”
그제야 다영이 시무룩한 표정을 드러냈다.
“지금 울면 완전 펑펑 울 것 같단 말이에요. 이 레스토랑이 떠나가도록 울 것 같다구요.”
“그건 좀 곤란하네. 알았어. 그럼 딴 생각할 수 있도록 내 이야기를 할게. 그전에 일단 좀 먹자.”
“좋은 생각이에요!”
다영은 볼이 터지도록 스테이크를 집어넣었다. 나는 속이 좋지 않아 샐러드부터 먹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서 다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마대호 화가라고 알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나는 임병규에게 의뢰받은 일을 설명했다.
“확실히 힘든 일이네요. 막내 따님이 왜 그러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요.”
“그래서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르겠어. 설득은 둘째 치고, 만나기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빠 근데. 뭘 놓치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놓쳤다고? 뭘 놓쳤다는 거야?”
“저도 잘 모르겠는데 뭔가 놓친 느낌이 들어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다영은 오물거리며 다시 음식을 먹었다. 놓쳤다? 뭘 놓쳤을까? *
“도대체 ‘와유첩’은 언제 가져올 거야?”
이수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2단계 제한시간이 5시간밖에 남지 않은 이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나는 이수지에게 소환당했다. 바쁘다고 말했더니 생난리를 쳐서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더니 수행원이 전화를 걸어 잠깐이라도 와달라고 애원했다. 같은 고용인의 입장으로 외면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온 것이다. 그랬더니 이렇게 소리를 질러댔다. 이해를 못하겠다. 소리를 지른다고 일이 해결되나? 일이 해결되지도 않는데 왜 소리를 지르는 걸까? 의문을 해결할 겨를도 없이 이수지의 날선 목소리가 또 끼어들었다.
“대답 안 해?”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말씀드렸지 않았습니까. 마대호 화가의 전시회를 허락받는 것이 조건이라고 말입니다.”
충분히 이해가 갈 만큼 설명했는데도 그녀는 인내심이 아예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게 언제냐고!”
조금만 더 기달려 달라, 그렇게 저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저도 모르죠. 그냥 와유첩은 없던 이야기로 할까요?”
“감히 나를 협박해?”
이수지가 매서운 눈매로 나를 압박했다.
“제가 어떻게 관장님을 협박하겠습니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거 다 핑계야.”
왜 이런 의미 없는 말다툼을 이수지와 해야 하는 건지……. 피로감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수지가 진상일지언정 손님이기에, 나는 현재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했다.
“솔직히 마대호의 화가의 전시회를 할 수 있는 확률은 1%도 되지 않습니다. 그 말은 곧 ‘와유첩’이 관장님의 손에 들어갈 확률도 적다는 이야깁니다.”
“1%라도 있으면 악착같이 달려들어서 성과를 내야 할 거 아니야!!”
문득 이수지의 아버지인 이 회장도 이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무조건 난리를 치면 결과를 낸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피로감이 더 짙어진다. 더 이상의 설명은 거절한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제가 마대호 작가의 그림을 소유한 분을 만나러 가야 하지 않을까요?”
“…….”
본인도 할 말이 없는지 눈만 껌벅이다 겨우 대답했다.
“내가 바로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그럼.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나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얼른 관장실을 빠져나왔다.
“아아아!”
짜증이 난 이수지가 소리 지르는 것이 관장실 앞까지 짱짱하게 들렸다. 문 앞을 지키던 수행원이 안절부절못하며 울상이 되어 물었다.
“왜 저러세요?”
“제가 묻고 싶습니다. 왜 저러는지. 저는 관장님 말씀대로 일하러 가야겠네요.”
“아…… 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번에 뵙죠.”
인사를 하고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핸드폰을 보니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이수지의 짜증을 받아주느라 황금같은 30분을 허비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4시간 30분이었다. * 허름한 파란 대문 앞에 나는 차를 멈췄다. 이제 남은 시간은 3시간 정도였다. 마대호 작가의 막내딸인 마선영이 사는 동네는 서울의 외곽에 있었다. 동네가 전체적으로 서울이 맞나 싶게 건물들이 오래되었고 낮았다. 대문 앞에 서서 나는 심호흡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마선영으로 짐작되는 나이 든 여자의 목소리가 초인종 옆에 있는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한지감이라고 합니다. 문자로 연락드렸는데 답이 없어 염치불구하고 찾아왔습니다.”
[할 이야기 없어요.]
얼른 말을 하지 않으면 이야기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 같았다.
“임병규 대표님이 왜 이 전시를 하려고 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알고 싶지 않아요.]
“제발 저에게 10분만 시간을 주세요. 그 시간 동안 제 이야기를 듣고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신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겠습니다. 그때까지 대문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뚝 끊기는 소리가 났다.
“하아…….”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제한시간 내에 마선영을 만나기나 할 수 있을까?
“최초로 미션 시도도 못하는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미션을 여태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실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몰랐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록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쩌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서 기대감에 차 돌아보면 바람이 만들어낸 소리였다. 제한시간까지 30분이 남자 나는 거의 포기했다. 날도 너무 춥고 그냥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션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그때 대문에서 끼익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도 바람 소리겠거니 하며 나는 별 기대 없이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문이 열려 있었다. 작은 문틈 사이로 흰머리가 성성한 할머니가 서 있었다. 마대호의 막내딸 마선영이다.
“딱 10분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마선영은 나를 거실로 안내하더니 따듯한 라벤더 티를 내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좀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경험에서 나오는 말인 듯했다. 감시와 통제 속에 긴 세월을 살았으니 마음을 진정시킬 일이 좀 많았을까. 마음이 아팠다.
“세원 갤러리 직원이에요? 못 본 얼굴인 것 같은데.”
“저는 직원이 아니라 골동상입니다.”
“골동상이 왜……?”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임병규에게 물건을 사러 왔다가 되레 이 일을 부탁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감 씨도 황당하시겠네요.”
“아니라고는 못하겠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황당해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왜 아버지 그림을 달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아버지 그림을 본 적도 없으면서.”
“여러 번 찾아왔는데 한 번도 보여 주신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임 대표님의 부모님께서는 아버지의 그림을 보신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놓쳤던 부분이다. 임병규가 그림도 보지 못한 마대호의 그림을 전시하려는 이유 말이다. 마선영을 설득하기 어렵겠다는 것에 매몰되어, 왜 임병규가 이 전시를 하려는 건지 가장 기본적이고도 본질적은 부분을 놓쳤다. 다영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도 몰랐을 것이다. 마선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아버지가 납북되고 나서 그림은 한 번도 다른 이들에게 보여진 적이 없어요.”
“단 한 번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마선영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