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2차 면접2021.04.12.
황덕현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그 불안감은 적중했다.
“어떤 고객이 우리 회사에서 사 간 고미술품이 위조품이라며 가져왔다고 합시다. 한지감 씨가 담당자여서 그 고미술품을 봤는데 정말 위조품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옥션 직원과 골동상으로서의 양심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질문한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의 신용성을 지키기 위해 위조품이 아니라고 고객에게 부정하는 것이 황덕현이 원하는 답 아닐까? 하지만 정말 내가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고객에게 진품이란 거짓말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저는…….”
“솔직하게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솔직할 수 없는 질문을 해놓고 솔직하란다. 특유의 미소를 짓는 황덕현이 악마처럼 느껴졌다. 덫을 설치하고 그 덫에 빠질 수밖에 없게 유혹하는 악마 말이다.
“저는…… 위조품이라는 것을 고객에게 말씀드리고 이후 절차를 밟겠습니다.”
“탑 옥션 직원으로서의 역할보다 골동상으로서의 양심을 택한 거네요.”
지그시 날 바라보며 말하는 황덕현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탑 옥션 직원이기에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뭐죠?”
“위조품이라면 제가 진품이라도 주장해도 언젠가 밝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당장의 이익을 따른다면, 결국 회사는 신용성을 잃을 것이고 더 큰 손실을 입게 될 겁니다.”
“그래요.”
황덕현의 입가에 오묘한 미소가 흘렀다. 내 대답을 좋게 들은 것인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질문은 이어졌고, 나는 찜찜함을 뒤로한 채 대답을 했다. * 면접이 끝나고 나는 다영과 함께 탑 옥션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카페를 갔다. 배가 고프진 않은데 진이 빠진 기분이라 당이 당겼다. 음료로 당을 충전했는데도 황덕현이 한 질문이 자꾸만 걸려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어두운 내 얼굴을 살핀 다영이 조심스레 물었다.
“오빠.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요?”
“하아……. 아무래도 면접 망친 것 같아. 그냥 진품이라고 말하겠다고 대답할걸 그랬나?”
“진품이요?”
나는 황덕현이 어떤 질문을 했는지 설명해주었다.
“헉. 그렇게 난감한 질문을 하다니. 내가 면접 볼 때 그런 질문 받았으면 얼어버렸을 거예요.”
“넌 그런 질문 안 받았어?”
“제가 받은 질문은 위탁한 미술품이 위조품일 때 고객에게 어떤 설명을 하면서 돌려드릴지에 대한 거였어요.”
“넌 뭐라고 대답했는데?”
“저는 위조품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이번 경매의 컨셉과 맞지 않아서 어렵다고 말씀드리겠다고 했어요.”
“대답 잘했네.”
예전에 정연주에게 궁금해서 한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감정을 통해 위조품으로 판명나면 위탁자에게 뭐라고 하면서 돌려주냐고 말이다. 정연주도 위조품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컨셉과 맞지 않아서 돌려준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고 했다. 미술품의 진위 여부는 민감한 사항이어서 굳이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영의 대답은 좋았는데 내 대답은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더 불안해졌다.
“다영아. 너라면 내가 받은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을 것 같아?”
“저도 위조품이라고 고객에게 말했을 것 같아요.”
“그렇지?”
다영이 비슷한 대답을 했을 거라니 어쩐지 응원 받는 기분이 든다. 쪽 음료를 빨아 마신 다영이 말을 덧붙였다.
“단, 회사와 상의한 이후에요.”
그 순간 눈이 번쩍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회사와 상의……. 그게 중요하지. 근데 나는 그렇게 대답을 안 했어.”
머리를 쥐어뜯는 나를 보면서 다영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빤 그게 당연한 전제라고 여기신 거 아니에요?”
“아니……. 생각을 못했어. 조직에서 일해 본 적이 없으니까.”
반면 다영은 작은 조직이긴 하지만 갤러리에서 일했다. 그 차이가 이렇게 면접에서 드러날 줄은 몰랐다.
“하아……. 나 떨어지겠다.”
“오빠가 그렇게 말했어도 듣는 입장에서는 전제했다고 들었을 수 있죠.”
“그렇지 않을 거야…….”
다영은 상심한 나를 물끄러미 보다 등을 토닥였다.
“그것만으로 당락이 결정되지 않을 거예요. 그것만 대답한 거 아니잖아요.”
“그래. 아직 모르는 거지.”
나를 위로해주는 다영이 고마워서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철렁했다. 하나의 실수 때문에 이제 겨우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꿈이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전 상무가 한지감과 정다영의 이력서를 번갈아 봤다.
“5명은 결정되었고, 나머지 한 명만 결정하면 되는데…….”
“저는 정다영 씨가 여러모로 나은 것 같습니다.”
윤 이사의 말에 전 상무는 납득을 하지 못하겠다는 듯 반문했다.
“여러모로요?”
“학벌도 그렇고 갤러리 경험도 있잖아요.”
“한지감 씨가 지방대 출신이라 학벌에서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고미술에 대한 지식이 다른 지원자들보다 월등하고 전문적입니다.”
“스페셜리스트는 전문적인 지식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에요. 거기다 경매팀은 도록을 만듭니다.”
전 상무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한지감 씨가 더 없는 적임자 아닙니까. 골동상을 해서 실무 경험이 풍부합니다. 또 업계에서 한지감 씨를 모르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유명세 그거 무시할 게 못됩니다.”
“너어무 유명하다 보니 조직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대표님이 하신 질문에 회사와 상의한다는 이야기가 빠져 있었습니다. 왜? 항상 그렇게 일해 오다 보니 그런 겁니다.”
“그거야 가르치면 될 일 아닙니까.”
“개인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그 습성을 못 버려요. 곰이 무리로 활동하는 거 보셨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그게 문제를 만든다구요.”
흥분한 전 상무와 윤 이사가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방을 가득 메웠다. 전 상무가 여태까지 침묵을 지킨 황덕현을 보고 물었다.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국 능력은 뛰어나지만 조직에 낯선 사람과, 능력은 보통이지만 조직에 익숙한 사람 중에 선택해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죠?”
윤 이사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말했다.
“능력은 향상시킬 수 있지만, 습성은 바꿀 수 없어요. 대표님.”
전 상무도 지지 않고 눈을 부릅떴다.
“인간이 동물도 아니고, 습성이 뭡니까. 조직에 적응하는 건 가르치면 될 일입니다. 이런 전문가를 놓치는 건 회사로서 큰 손해입니다.”
“…….”
황덕현은 책상을 손끝으로 톡톡 치며 고심했다.
* 정장을 빼입고 세원 갤러리로 갔다. 오늘이 바로 마대호 화가의 전시회가 열리는 첫날이었기 때문이다. 갤러리 앞에는 마대호 화가의 전시회를 알리는 플랜카드가 크게 걸려있었다. 내가 보고 크게 감명 받았던 ‘빛’ 그림이 플랜카드에 담겨 있었다.
“멋지네.”
전시회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전시회가 열리는 데 내 지분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남달랐다. 내부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북적였다.
“곧 오프닝 리셉션이라 많이 왔나 보네.”
사람들을 피해서 천천히 전시회를 둘러보았다. 지난번 마선영의 집에서 짧게나마 마주했던 작품들이 보였다. 마대호 화가는 주로 인물화를 그렸다. 그 중에서도 가족을 그린 그림들이 특히 많았다. 아내, 맏아들, 둘째 아들 마선영에 이르기까지 가족은 그의 예술의 뿌리였다.
“지감 씨!”
고개를 돌리니 임병규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내 앞에 선 그는 덥석 손을 잡았다.
“언제 왔어요?”
“방금 전에 왔습니다. 마선영 님은 오셨습니까?”
“곧 오실 겁니다. 정말 고마워요. 지감 씨.”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지감 씨가 마선영 님을 설득해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전시가 이루어지지 못했을 거예요.”
나는 미소로 화답했다.
“이번에 탑 옥션 면접 봤다면서요?”
“네. 더 늦기 전에 회사에 다니고 싶어서요.”
“회사에 다니고 싶었다면 진작 이야기를 하죠. 혹시 탑 옥션과 인연이 닿지 않으면 우리 갤러리로 와요.”
“말씀이라도 감사합니다.”
임병규가 진지하게 내 눈을 보며 말했다.
“그냥 하는 이야기 아니에요.”
“현대 미술을 제대로 아시는 분들의 자리가 되는 것이 마땅하죠. 그리고 세원 갤러리는 우리나라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갤러리인데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감 씨를 위한 자리는 항상 마련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들어올 생각 있으면 꼭 말해 줘요.”
“네. 알겠습니다.”
그때 강민수가 다가와 임병규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임병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봤다.
“중요한 손님이 지금 도착하셨다네요.”
“어서 가보세요.”
임병규가 빠른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났지만 강민수는 따라가지 않고 으스대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또 뵙네요.”
“그러게요.”
“면접은 잘 보셨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나는 일부러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떨어질 때 떨어지더라도 강민수 앞에서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럼 저랑 같이 붙겠네요. 같이 옥션 다니게 되면 서로서로 돕죠.”
“아 네.”
“하긴 고미술은 뭐 별게 없으니까 도움 받을 일도 없으려나?”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지만 강민수의 오만한 표정은 내가 들은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말해주었다.
“고미술이 별게 없다구요?”
“아.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그런데 뭐 사실 고미술은 별로 돈도 안 되잖아요.”
이건 정말 참을 수가 없다. 지방대 나왔다고 나를 무시했더라면 움츠러들고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근데 고미술을 무시해? 발끝에서부터 시작해 순식간에 정수리까지 열이 뻗쳤다.
“그 말씀은, 돈이 안 되는 미술은 필요 없다는 말씀처럼 들리네요.”
“설마 지감 씨도 예술이 그 자체로 의미 있다는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시는 분은 아니죠?”
강민수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돈이 되는 건 중요하죠. 하지만 돈과 상관없이도 예술은 유의미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고흐가 생전에 그림 한 점만 팔면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진 않았겠죠.”
“그거야…….”
나는 강민수의 말을 씹어버리고 랩하듯이 말을 했다.
“고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자랑이 아닙니다. 미술 업계에 일하면서 고미술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자랑이라면, 우리나라 역사를 모르는 것도 자랑이 되겠죠.”
강민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흥분한 그가 입을 열려는데 익숙하고도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목소리의 주인은 이수지였다. 그녀의 뒤에는 늘 그렇듯 수행원이 있었다. 이수지의 등장 자체가 반갑지는 않았지만 강민수의 말을 끊은 것은 고소했다. 그럼에도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대화를 나누느라 전화가 온지 몰랐습니다.”
“그게 변명이 된다고 생각해?”
“여기 온다는 말씀도 없지 않았습니까.”
“다른 일정 때문에 못 올 뻔했으니까.”
이수지는 짜증을 내면서 강민수를 걸리적거린다는 듯 곁눈질했다. 이수지를 알아본 강민수가 기합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세원 갤러리 강민수라고 합니다. 현성 미술관 이수지 관장님 맞으시죠?”
“맞아요.”
강민수가 명함을 꺼내 이수지에게 내밀었다. 현성 미술관 이수지를 이렇게 개인적으로 볼 수 있는 일이 흔치 않기에 좋은 기회라 여기는 모양이다.
“그림 필요하실 때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이수지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명함을 받았다.
“그림 필요하면 임 대표님께서 직접 처리해 주세요. 일단, 주니까 받을게요.”
“네……!”
그때 마선영이 정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저는 인사드릴 분이 있어서 가 보겠습니다.”
“어디 가.”
“잠시면 됩니다.”
이수지가 나를 잡는 것을 간신히 떼어놓았다. 내가 베이비시터도 아니고, 계속 이수지의 곁에 있어야 할 의무는 없었다. 마선영은 아는 사람이 없어 당황한 눈길로 안을 훑어보았다.
“오셨네요.”
나를 본 마선영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지감 씨도 왔군요.”
“안 올 수가 없죠. 이렇게 멋진 그림들이 전시되었는데요. 그림 보존 상태가 참 좋아요.”
“수복 전문가 덕분이죠.”
오래된 그림이라 수복 전문가의 손을 안 거칠 수가 없었다. 전문가의 손에서 그림은 마대호 화가가 처음에 그렸던 상태로 생생하게 되돌아갔다.
“그렇다 해도 상태가 좋은 편이에요. 잘 관리하신 덕분에.”
마선영이 부끄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지난번 그림을 보았을 때 마선영이 그림을 주기적으로 관리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서양화의 관리 방법에 대해 하나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선영이 보관하던 그림들은 하나같이 흰 천 위에도 바닥에도 먼지가 없었다. 주기적으로 쓸고 닦은 것이다. 마선영은 아버지를 원망한 것보다 더 많이 그리워한 것 같았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림이 그렇게 관리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담당자에게 마선영을 데려다 주고 잠시 화장실에 갔다.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많은 인파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 물끄러미 핸드폰을 봤다. 2차 면접을 본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연락이 없었다.
“강민수가 별말 없는 것 보니까 아직 연락이 안 돈 것 같기는 한데…….”
면접 때 회사와 상의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멍하니 핸드폰을 보는데 요란하게 벨소리와 함께 발신인이 표기되었다. 탑옥션이다. 입이 바싹 마른다. 그토록 기다렸던 전화인데, 막상 전화가 오니 받는 것이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안 받을 수는 없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