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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성 교수 (1) (60/226)

60화 성 교수 (1)2021.04.19.

16560260437508.png“정확한 감정이 가능하고, 감정위원도 아니면서 빨리 봐줄 수도 있는 분, 있어요……!”

16560260437514.jpg“누구.”

16560260437508.png“한지감 씨요.”

정연주가 날 보았고,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지 팀장이 달려오다시피 해서 내 앞에 섰다.

16560260437514.jpg“지감 씨. 해줄 수 있어요?”

지 팀장 뒤에선 정연주가 간절한 눈으로 나를 봤다. 인턴 신분이라면 무조건 ‘네’라고 대답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상황 파악을 하는 것이 먼저였다.

16560260437527.jpg“먼저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주세요.”

16560260437514.jpg“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지 팀장이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메이저 경매에서 추정가 2-3억 정도 하는 철화백자를 김 이사장이 도강 그룹 강 회장과 경합을 벌인 끝에 5억에 사갔다. 그런데 한 달 정도가 지나서 성 교수에게 위조품이라는 감정을 받고 환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내가 생각했던 성준섭 교수가 맞았다. 성준섭 교수라, 나도 학계 최고 권위자와 대면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위조품이라 감정한다면 상관없겠지만, 성 교수와 다르게 진품이라고 감정을 한다면 사람들은 내 말이 아닌 성 교수의 말을 믿을 것이다. 그럼 골동상으로서 신용도에 타격을 입는다. 지 팀장과 정연주가 내 눈치를 보면서 말을 기다렸다. 그때 불쑥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16560260437535.jpg“부담이 된다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지감 씨가 인턴이라고 해서 이 일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어요.”

김 이사장 배웅을 마치고 돌아온 김도균이었다. 시선이 더더욱 집중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이 상황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 이러한 첨예한 상황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인턴 자리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골동상으로서의 입지는 나의 돌아갈 자리이다. 그러니 안 하는 것이 내 이익을 위해선 맞았다. 그럼에도 위험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5명의 감정위원이 진품이라고 감정할 정도면 진품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성 교수는 위조품이라고 했다. 어떤 것을 보고 위조품이라고 한 것일까? 여기에 지 팀장과 정연주가 내 긍정적인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이 더해져 마음이 흔들렸다.

16560260437527.jpg“하겠습니다.”

16560260437514.jpg“정말 고마워요. 지감 씨.”

지 팀장이 내 손을 두 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16560260437527.jpg“하지만 감정은 정확하게 할 겁니다. 제가 인턴 신분이라는 사실이 진위여부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16560260437535.jpg“그건 당연한 겁니다. 여긴 옥션입니다. 위조품을 진품으로 만드는 그런 곳이 아니죠.”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테 김도균은 차가운 태도를 유지했다. 내게는 아예 틈을 주지 않을 작정인가 보다. 김도균의 태도가 계속 바뀌지 않을 것 같아 씁쓸해졌다. * 김 이사장의 집 내부로 들어가다 화려한 인테리어에 그대로 멈춰 버렸다. 벽은 다 화려한 무늬의 대리석이었고, 바닥은 파란색과 빨간색이 섞인 카펫이었다. 샹들리에와 조명이 과하게 치렁치렁한 상태로 걸려 있었다. 흡사 라스베이거스 호텔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어떤 재벌의 집 인테리어보다 화려했다.

16560260461413.jpg“촌스러운 티를 너무 내시네. 뭐 하긴 우리 집이 좀 휘황찬란하지?”

내 반응을 다르게 해석한 김 이사장이 으스댔다. 나는 빠르게 표정 관리를 하며 웃었다.

16560260437527.jpg“멋지네요. 꼭 라스베이거스 호텔을 보는 느낌입니다.”

16560260461413.jpg“그렇게 해 달라고 했거든.”

16560260437535.jpg“인테리어 하시느라 신경을 많이 쓰셨겠습니다.”

김도균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김 이사장을 비위를 맞추려 했다.

16560260461413.jpg“많이 썼지. 곧 성 교수 올 거야. 그때 감정을 시작하자고.”

16560260437535.jpg“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거실에서 차를 대접 받았다. 김 이사장이 나를 보고 말했다.

16560260461413.jpg“유명한 한지감을 이렇게 보게 되다니. 기분이 이상해.”

16560260437527.jpg“제가 유명해 봤자 김 이사장님보다 유명하겠습니까?”

16560260461413.jpg“나를 알아?”

16560260437527.jpg“힘든 이웃을 위해 앞장서서 노력하시는 분이신데 모를 리가요.”

16560260461413.jpg“노블리스 오블리주. 나는 그거 중요하게 생각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니겠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김 이사장의 입꼬리는 들썩였다. 기분이 좋은 것이다. 역시 사전 조사는 큰 힘이 된다. 김 이사장은 소위 있는 집안 출신이 아니다. 일수를 해서 밑천을 모았고, 그걸로 부동산 투기, 주식 등으로 엄청난 부를 창출했다. 돈이 생긴 이후 당연한 수순처럼 명예를 탐하다 재단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눔 재단’이라는 곳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한다. 남의 이목을 생각해 시작한 일이니 이 부분을 칭찬하는 것은 플러스가 될 것이 분명해 이야기 한 것이다. 예상이 잘 먹힌 것 같아 웃는데, 정색한 김도균과 눈이 마주쳤다. 아부나 떠는 인간인 줄 진즉에 알았다는 표정이다. 그때 인기척이 들리더니 성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 이사장이 성 교수를 보고 크게 반겼다.

16560260461413.jpg“오셨어요. 성 교수.”

16560260461413.jpg“네.”

성 교수가 힘없이 인사하곤 바닥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김 이사장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16560260461413.jpg“이제 모두 보였으니 수장고로 가죠.”

김 회장을 따라 나와 김도균, 그리고 성 교수가 수장고로 들어섰다. 수장고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자라 모양을 한 철화백자가 보였다. 지름이 20cm, 높이가 10cm 정도 되었다. 가만, 이거 내가 지난번에 프리뷰에서 본 거잖아. 그래 맞다. 면접 준비하면서 관련 질문이 나올까 봐 프리뷰 봤을 때 이 철화백자를 봤다. 그 프리뷰에서 위조품은 없었다. 그리고 이 유물은 누가 봐도 진품인데. [ 500,000,000원 | 진 | 500,000,000원 | 1680년대 | 소장자 환불 원함 ] 철화백자는 말 그대로 산화철로 그림을 그린 백자이다. 병자호란 이후 코발트 안료가 없어서 산화철로 도자기에 그림을 그렸으니 그것이 철화백자다. 청화백자의 출토는 적지만 철화백자는 꾸준히 출토되었고, 그래서 대체적으로 청화백자보다 비싸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이 크지도 않은 이 유물이 2-3억의 고가 추정가를 기록했던 이유는, 이 시기에 철화 백자 자라병이 희소하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이건 누가 봐도 진품이었다. 형태, 유약, 자연스런 산화는 말할 것도 없었고 굽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혹시 지난번 인화문이 찍힌 분청사기처럼 자연스런 산화가 위조된 것인가 싶어 좁은 입구를 확대경으로 봤지만 자연스런 산화가 목격되었다. 나는 멍해져서 성 교수를 봤다. 성 교수는 나를 보지 않은 채 땅만 보고 있었다. 참을성이 바닥난 김 이사장이 끼어들었다.

16560260461413.jpg“위조품 맞지?”

16560260437527.jpg“그게…….”

안경의 힘을 굳이 빌리지 않고서라도 누가 봐도 진품인 것을 위조품이라고 한다. 그것도 도자기 최고 권위자인 교수가. 이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은 뭘까? 내가 보지 못한 그 어떤 부조화스러운 느낌을 성 교수가 보았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성 교수를 봤다. 근데 성 교수, 왜 떨고 있지? 이유를 생각할 틈도 없이 김 이사장이 짜증스런 목소리로 나를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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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60260461413.jpg“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유명한 사람이 왜 이렇게 감정을 느리게 해?”

16560260437527.jpg“죄송합니다. 좀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서요. 지금 당장 감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16560260461413.jpg“진품이면 진품이고, 위조품이면 위조품이지 어렵다는 건 또 뭐야?”

김 이사장이 성질을 부렸지만 나는 넉살 좋게 말했다.

16560260437527.jpg“제가 뛰어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진위 감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진, 위, 그리고 불능. 지금 굳이 판단을 내리자면 감정 불능입니다.”

감정 불능은 진위여부를 100% 확신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 이사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자 김도균이 나섰다.

16560260437535.jpg“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확실하게 감정할 수 있는 분을 데려오겠습니다. 조금만…….”

16560260461413.jpg“조금? 난 충분히 참았어!”

16560260437535.jpg“알고 있습니다. 옥션에서 산 도자기가 위조품이라는 감정을 받았으니 얼마나 기분이 상하셨겠습니까?”

16560260461413.jpg“그래. 상할 만큼 상했다고! 그러니까 빨리 환불해 달란 말이야!”

김도균이 머리를 조아렸다.

16560260437535.jpg“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16560260461413.jpg“하루, 딱 하루 시간을 주지. 결과는 보나마나 뻔하겠지만.”

말을 마친 김 이사장이 홱 뒤돌아섰고, 성 교수는 그 뒤를 따랐다. 김도균과 나는 그 집에서 나와 차에 탔다. 차에 탄 김 도균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16560260437535.jpg“감정 불능이라고 한 이유가 뭐죠?”

16560260437527.jpg“시간을 벌어야 할 것 같아서요. 누가 봐도 진품인 도자기를 최고 권위자가 위조품이라고 했을 때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16560260437535.jpg“그렇다면 성 교수에게 직접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16560260437527.jpg“유물 외적인 문제인 것 같아서요.”

그 말을 들은 김도균이 움찔했다.

16560260437535.jpg“유물 외적인 문제라면, 성 교수가 일부러 진품을 위조품이라고 감정했다는 말이에요?”

16560260437527.jpg“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현재 상황에서 그게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 같습니다.”

김도균이 정색하고 물었다.

16560260437535.jpg“본인의 감정 실력을 너무 믿는 거 아니에요?”

16560260437527.jpg“제가 잡아내지 못할 걸 성 교수가 잡아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16560260437535.jpg“지감 씨가 능력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성 교수는 훨씬 오래 도자기를 봐왔어요. 지감 씨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성 교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수 있죠.”

16560260437527.jpg“맞습니다. 그럴 수 있죠. 그런데 그렇다면, 성 교수가 그렇게 한 번도 제 눈을 안 보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가 감정하는 내내 성 교수는 불안해했어요.”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를 보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성 교수를 봤을 때 그는 떨고 있었다.

16560260437527.jpg“그래서 성 교수에게 묻지 않은 겁니다.”

16560260437535.jpg“성 교수는 뇌물 받고 감정 바꿔 주는 그런 양아치가 아닙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청렴한 생활로 학계에서 존경받는 분이에요.”

16560260437527.jpg“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 교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16560260437535.jpg“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16560260437527.jpg“이제부터 조사해 봐야죠.”

대답을 하고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하루 동안에 과연 알아낼 수 있을까? * 다음 날, 나는 일찍 회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출근했다. 김 이사장의 ‘나눔 재단’이라는 곳이었다. 옥션 직원이 아닌 예비 후원자 입장으로 온 것이다. 직원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았다.

16560260461413.jpg“저희 재단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16560260437527.jpg“후원 전에 재단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16560260461413.jpg“네. 잘하셨어요. 요새 이상한 재단도 많다 보니 확인하는 것이 당연하죠.”

직원은 재단 사무실을 보여주었다. 여의도에 위치한 사무실은 김 이사장의 집처럼 인테리어가 몹시 과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을 도와주는 곳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16560260437527.jpg“인테리어가…… 화려하네요.”

16560260461413.jpg“좀 그렇죠? 이사장님 취향이라…….”

직원이 난감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사무실 투어 이후에는 회의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가 이어졌다.

16560260437527.jpg“혹시 재단에서 활동하시는 교수님이 있으신가요?”

16560260461413.jpg“교수님이요? 네. 있죠. 이만성 교수님이라고 사회복지학 분야에서 유명한 분이세요.”

성 교수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16560260437527.jpg“그분 외에는 없나요?”

16560260461413.jpg“네. 아직 없습니다.”

16560260437527.jpg“학계와 네크워크가 형성되면 여러 가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텐데요.”

16560260461413.jpg“아무래도 그렇죠. 근데 교수님들은 모시기가…… 어렵더라구요.”

김 이사장과 성 교수의 다른 접점은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재단이 접점으로 보이는 유일한 가능성이어서 이곳에 온 건데, 아무래도 헛걸음한 모양이다. 이 질문만 하면 이상할 테니 재단과 관련된 다른 질문을 던져 보기로 했다.

16560260437527.jpg“학생들은 어떻게 선정하나요? 신청을 하나요?”

16560260461413.jpg“아니요. 학교나 보육원 등 기관에서 추천을 받습니다. 아무래도 개인 신청으로 하면 서류와 실제 상황이 다른 경우도 있어서요. 아! 아이들 사진 보여드릴게요.”

16560260437527.jpg“아…… 저.”

거절하려 했지만 직원은 재빠르게 나가서 태블릿 PC를 가지고 돌아왔다. 재단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평소 생활도 들어 있었다. 학교에서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모습이었다. 사진 속 아이들의 환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이곳으로 온 것 같아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16560260437527.jpg“아이들이 참 예쁘네요.”

16560260461413.jpg“네. 너무 예뻐요.”

사진을 넘기던 내 눈이 한곳에서 멈췄다. 아이의 모습 뒤로 보인 ‘푸른 보육원’ 명패 때문이었다. 이걸 어디서 봤는데.

16560260461413.jpg“왜 그러세요?”

16560260437527.jpg“‘푸른 보육원’ 들어본 거 같아서요.”

16560260461413.jpg“비슷한 이름이 많아서 그러실 거예요.”

16560260437527.jpg“그런가요.”

나는 재단에서 나오자마자 핸드폰으로 미친 듯이 검색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검색했을 때 내가 봤던 사진을 찾아냈다.

16560260437527.jpg“찾았다!”

드디어 김 이사장과 성 교수의 접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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