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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성 교수 (2) (61/226)

61화 성 교수 (2)202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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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교수의 사무실 앞에 선 나는 심호흡을 했다. 옆에 있는 김도균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말했다.

16560260703967.jpg“그렇게 떨리면 그냥 있어요. 나머지는 제가 확인할게요.”

16560260703971.jpg“그럴 수는 없죠. 여기 골동상으로서 제 명예도 연관이 있습니다.”

나는 똑똑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성 교수가 우리를 보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16560260703975.jpg“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16560260703971.jpg“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잠깐 시간 좀 내주십시오.”

나는 최대한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말했다. 결국 성 교수는 우리를 사무실 안으로 들였다.

16560260703975.jpg“제가 곧 나가야 해서 차를 대접할 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16560260703967.jpg“차를 마시자고 온 것은 아니에요.”

김도균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16560260703975.jpg“철화백자 때문이라면 저는 드릴 말씀이…….”

16560260703967.jpg“정말 이대로 괜찮으세요?”

나는 숨을 죽인 채 김도균과 성 교수의 대화를 지켜봐야 했다. 이곳에 같이 오는 대신 김도균이 내건 조건이 바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6560260703975.jpg“뭐가 말입니까?”

16560260703967.jpg“누가 봐도 진품인 철화백자를 위조품이라고 감정하셨어요. 학계에서 교수님의 높은 영향력 때문에 진품이라고 나서는 사람을 없겠죠. 하지만 여태까지 지켜 오신 교수님의 커리어에 오점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김도균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성 교수를 압박하며 말을 이어갔다.

16560260703967.jpg“눈이 있는 이상 그 철화백자가 위조품이 아니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 테니 말입니다.”

16560260703975.jpg“……그 철화 백자는 위조품이 맞습니다……!”

16560260703967.jpg“제 눈을 보고 다시 한번 말씀해 보시죠?”

도발에도 성 교수는 김도균의 눈을 응시하지 못했다.

16560260703967.jpg“교수님. 교수님이 좋은 분이라는 것 알아요. 푸른 보육원이 아니었다면 이런 무리한 일은 벌이지 않으셨겠죠.”

16560260703975.jpg“그게 무슨…….”

성 교수는 부정하면서도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어떻게 정교수 자리를 어떻게 얻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다. 내가 찾은 성 교수와 김 이사장의 접점은 바로 푸른 교육원이었다. 김 이사장을 만나고 나와서 성 교수에 대해 조사하려고 SNS를 뒤졌다. 성 교수 본인의 SNS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SNS 조사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 교수의 주변인들, 그러니까 성 교수의 조교, 동료 교수, 가족의 SNS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SNS를 통해 성 교수의 일상생활을 가늠하는 작업을 했다. 그 작업 덕분에 오늘 나눔 재단에 갔을 때 ‘푸른 보육원’을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성 교수의 조교가 올린 SNS에서 한 달 전쯤 성 교수와 함께 봉사활동을 갔다는 내용과 함께 보육원 명패 사진을 올렸다. 김도균이 지그시 성 교수를 바라보며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했다.

16560260703967.jpg“저라고 그 아이들 사정이 안타깝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진품을 위조품을 만드는 것은 그 이유가 어쨌든 옳지 않은 행동이고, 교수님의 커리어를 망치는 일이에요.”

16560260703975.jpg“…….”

그의 목적은 돈도 명예도 아니다. 위조품으로 만들지 않으면 푸른 보육원에 대한 지원을 다 끊겠다는 김 이사장의 협박이 이러한 결정을 하도록 그를 몰아갔다. 불안한 그의 눈빛이 그가 흔들린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 없어, 나는 김도균과의 약속을 깨고 입을 열었다.

16560260703967.jpg“여태까지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견뎌내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협박에 굴복하시려 합니까.”

김도균이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는 보지 못한 척했다. 성 교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16560260703975.jpg“……그건 나와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정당한 과정을 거쳐야만 정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기면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로 인해 아이들이 피해 입을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간절하게 김도균은 호소했다.

16560260703967.jpg“교수님, 이것 역시 정당한 과정이 아닙니다.”

16560260703975.jpg“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후원자가 필요합니다. 특히 푸른 보육원은 후원자가 거의 없습니다. 나눔 재단에서 아이들을 후원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미래가 없어질 겁니다.”

16560260703967.jpg“하지만…….”

김도균의 말을 자르고 내가 끼어들었다.

16560260703971.jpg“후원이 문제라면,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16560260703975.jpg“정말……입니까?”

성 교수는 믿기 어려워하면서도 동요를 보였다.

16560260703971.jpg“네.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교수님의 감정을 철회해 주십시오.”

고민하는 성 교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김도균과 나는 조용히 그가 결정을 내리길 기다렸다. * 성 교수의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김도균은 언성을 높았다.

16560260703967.jpg“뭐하는 짓이에요?”

16560260703971.jpg“후원을 해결해 주겠다는 말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16560260703967.jpg“그래요. 제가 분명히 말했죠. 가만히 있으라고!”

16560260703971.jpg“가만히 있었다면 아이들 때문에 끝까지 위조품이라는 입장을 고수했을 겁니다.”

이를 악문 김도균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16560260703967.jpg“하하……. 그렇다고 후원을 해주겠다는 이야기를 해요? 이건 또 다른 거래예요!”

16560260703971.jpg“거래가 아니라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겁니다. 성 교수님이 현성 재단에서 푸른 보육원을 후원하겠다는 서류를 원하셨으니, 제가 이수지 관장을 만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가려는 나를 김도균이 멈춰 세웠다.

16560260703967.jpg“지금 혼자 가겠다는 거예요?”

16560260703971.jpg“네.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혼자 가는 것이 맞습니다.”

16560260703967.jpg“그럴 수는 없어요. 같이 가야 합니다. 이건 한지감 씨 개인의 일이 아니에요. 탑 옥션의 신용이 걸린 중대한 문제와 연관되어 있어요!”

김도균과 함께 간다면 이수지가 성질대로 하지 못해 불편해할 것이고, 그럼 이야기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었다.

16560260703971.jpg“이수지 관장과 둘이 이야기를 나눠야 합니다. 이 관장 예민한 성격, 총괄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16560260703967.jpg“알죠. 하지만 지금 이 관장의 성격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이건 우리 탑 옥션의 신용이 걸린 문제고, 그러니 저는 총괄인 이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해요.”

16560260703971.jpg“한 번만 허락해 주세요. 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16560260703967.jpg“허락할 수 없습니다. 앞장서요.”

16560260703971.jpg“하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걸어갔고, 김도균이 뒤를 따랐다. 안 그래도 설득하기가 어려운데 김도균까지 있다면 더 어려워질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든다. * 사무실에서 정연주는 김 이사장에게 전화로 시달렸다.

16560260845229.png“죄송합니다. 오늘 내로 처리가 될 겁니다.”

16560260703975.jpg[앵무새같이 말하지 말고!! 똑바로 하란 말이야!]

김 이사장의 목소리는 수화기를 튀어나올 정도로 쩌렁쩌렁했다. 정연주는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감내했다.

16560260845229.png“오늘까지는 반드시 결정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16560260703975.jpg[오늘까지 안 되면 가만 안 둬!! 알겠어!!!]

뚝 전화가 끊기자 정연주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오전 내내 김 이사장에게 이런 전화를 10통 넘게 받았다. 다른 업무를 못 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정신이 탈탈 털리다 못해 바스라지기 직전이다.

16560260845229.png“내가 무슨 죄를 이렇게 지어서…….”

탑 옥션에 들어와서 많은 진상들을 상대했지만 이번 김 이사장의 진상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지 팀장에게 갔다. 사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눈은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면서도 귀를 쫑긋 세웠다. 지 팀장은 정연주를 안쓰럽게 보면서 툭 튀어나온 목젖을 만졌다. 그 행동에는 팀장인 자신이 정연주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자신은 아니라는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16560260845229.png“팀장님……. 오늘 내로 진위감정 결론 나는 거…… 맞죠?”

16560260845257.jpg“그럴 거야. 연주 씨, 조금만 더 참아. 총괄님하고 지감 씨가 지금 엄청 뛰어다니고 있어.”

16560260845229.png“어제 왜…… 진위 감정이 안 된 거예요?”

16560260845257.jpg“그게…… 좀 사정이 복잡해. 나중에 설명해 줄게.”

16560260845229.png“네……. 알겠습니다.”

정연주가 푹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돌아섰다. 강민수의 입가에 조소가 맺히며, 앞에 있는 정다영을 들으라는 듯 나직이 말했다.

16560260870852.jpg“왜긴 왜겠어. 능력이 없으니까 그렇지.”

정다영이 눈을 치켜세우자 강민수는 딴청을 부렸다. 평소 욕을 잘 하는 성격도 아니건만 목구멍을 타고 살벌한 육두문자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사무실이기에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16560260870858.jpg‘오빠, 꼭 진품이라는 것을 증명해서 강민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자구요!’

홀로 전의에 불타는 정다영이었다. * 이수지가 김도균을 보고 간신히 화를 참으며 말했다.

16560260870862.jpg“그러니까 현성 재단에서 ‘푸른 보육원’의 아이들을 후원해 줬으면 좋겠다는 건가?”

16560260703971.jpg“네. 그렇습니다.”

그녀가 현성 미술관 관장이 된 이후 씀씀이에 인색해진 것 외에도 또 다른 변화가 있으니, 미술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김도균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기에 이수지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참고 말했다.

16560260870862.jpg“내가 왜 그래야하는지 모르겠는데. 사실 이것도 하나의 청탁 아닌가?”

16560260703971.jpg“청탁 맞습니다. 그래서 온 겁니다.”

이수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봤지만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16560260703971.jpg“기억하시죠? 관장님의 사과 대신에 제가 받기로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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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휘에 의해 달항아리가 바꿔치기 되었고, 달항아리를 산 이수지는 나를 의심했다. 이수지는 사과 대신 2억을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돈을 받지 않고 언젠가 내가 원할 때 도와달라고 했다. 이수지의 눈빛에 동요가 이는 것을 보니 잊어버리진 않은 모양이다.

16560260870862.jpg“이건 공적인 일이야. 내가 응한 것은 사적인 범위에 한한 거야.”

치사한 인간. 도강 그룹 강 회장이었다면 두말없이 들어줬을 텐데. 그래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16560260703971.jpg“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 중요하죠.”

16560260870862.jpg“알면 됐어.”

16560260703971.jpg“하지만 관장님, 저는 관장님이 공적인 이유로, 또는 사적인 이유로 원하는 유물을 찾으실 때마다 끝없이 거기에 맞췄습니다. 얼마 전에는 와유첩 때문에 마대호 화가의 막내 따님까지 만나 설득했죠.”

16560260870862.jpg“그 말이 여기서 왜 나와?”

이수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고, 김도균은 나를 말렸다.

16560260703967.jpg“한지감 씨, 그만하세요. 탑 옥션의 직원답게 행동해요.”

16560260703971.jpg“아니요. 전 여기 직원으로 온 것이 아니라 이 관장님께 도움을 받길 원하는 한 사람으로 왔습니다. 그것이 이 관장님이 제게 약속하신 거니까 말입니다.”

16560260703967.jpg“한지감 씨……!”

김도균이 말리는데도 나는 멈추지 않고 말했다.

16560260703971.jpg“임병규 대표는 ‘개인적인’ 이유로 마대호 화가의 전시회를 열고 싶어 했습니다. 또한 마대호 화가의 막내 따님은 ‘개인적인’ 이유로 전시회를 열고 싶지 않았죠. 그걸 설득해서 저는 관장님께 ‘와유첩’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제게 ‘사적인 영역’이라 들어줄 수 없다는 말은 너무 가혹합니다.”

씩씩거리며 날 노려보던 이수지가 전화기를 들어 수행원을 불렀다. 빛의 속도로 수행원이 들어왔다.

16560260906626.jpg“네. 관장님.”

16560260870862.jpg“현성 재단 대표에게 연락해. 푸른 보육원에 후원하겠다는 서류 만들어서 가져오라고.”

16560260906626.jpg“네. 알겠습니다.”

수행원은 영문도 모른 채 인사를 하고 나갔다.

16560260870862.jpg“됐지?”

16560260703971.jpg“정말 감사합니다. 관장님.”

나는 씨익 웃으며 응답했다. 그제야 이수지의 표정이 풀렸다.

16560260870862.jpg“하여간 고집은 알아줘야 해. 아버지 앞에서도 그러더니……. 그때 너 아버지가 봐줬다는 거 알지?”

16560260703971.jpg“알고 있습니다. 아량을 베풀어주셔서 골동상 계속 했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현성 재단의 서류가 팩스로 도착했다. 그 팩스를 가지고 김도균과 나는 관장실에서 나와 김 이사장의 집으로 향했다. 김 이사장의 집으로 가면서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커졌다. 왜 김 이사장은 이렇게 무리한 일을 벌인 것일까? 그때 김도균이 말을 걸었다.

16560260703967.jpg“왜 김 이사장이 이런 일을 벌였는지 생각하고 있어요?”

나를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6560260703971.jpg“네. 어떻게 아셨습니까?”

16560260703967.jpg“나도 그 생각했거든요.”

16560260703971.jpg“어떤 이유를 예상하십니까?”

16560260703967.jpg“대부분 진품인 미술품을 위조품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는 두 가지예요. 갑자기 미술품에 쓴 돈이 아까워졌거나, 아니면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거나.”

16560260703971.jpg“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었다면 제일 먼저 언론에 연락을 해서 언론 플레이를 벌였을 겁니다.”

16560260703967.jpg“그렇죠.”

문득 지 팀장이 한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16560260703971.jpg“강 회장님과 경합이 되어 2-3억짜리 철화백자를 5억에 구입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돈이 아까워진 걸까요?”

16560260703967.jpg“그럴 확률이 높아요. 김 이사장 앞에서는 정말 가만히 있어요. 옥션의 고객을 대하는 건 내 경험이 훨씬 많으니까 말이에요.”

16560260703971.jpg“네. 알겠습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다 했으니 나머지는 김도균에게 맡기는 것이 맞았다. 어쩐지 김 이사장의 집에서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이 전개될 것 같아 묘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내 기대감이 무색하지 않게, 김 이사장의 집에서는 극적인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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