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나 변호사 (2)2021.05.08.
‘일단’ 팔고 싶다는 것은 기회가 되면 더 판매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이거 잘하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는데? 하지만 이런 야심은 오래 갈 수가 없었다. [ 40,000,000원 | 진 | 55,000,000원 | 1460년대 | 없음 ] [ 20,000,000원 | 진 | 31,000,000원 | 1870년대 | 없음 ] ‘소유자 판매 결정’이라고 떠야 할 특이사항이 왜 ‘없음’이지? 나는 당황한 나머지 멍해졌다. 나 변호사가 나를 살피더니 물었다.
“왜 그러죠?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 아니요. 좋은 물건이라서 잠시 시선을 뺏겼습니다.”
“좋은 물건이죠. 탑 옥션에서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주셨으면 해요.”
즉, 낙찰액이 높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일단 사진을 찍겠습니다. 그래야 서면 심사를 진행할 수 있어서요.”
“네. 찍으세요.”
핸드폰으로 부지런히 분청사기 장군과 청화백자 주자를 찍으면서도 내 신경은 ‘특이사항’을 향했다. * 나는 방 안에서 컴퓨터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에는 서면 심사 양식이 띄워져 있었다. 오늘은 토요일. 도록이 다음 주부터 만들어지기에, 이번 메이저 경매에 장군 분청사기와 청화백자 주자를 출품하려면 최대한 빨리 서면 심사를 받고 감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특이사항에서 본 ‘없음’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도대체 왜 ‘없음’인데……!”
여태까지 소유자가 판매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도 그것이 특이사항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판매를 원하는데도 특이사항에 뜨지 않았다는 건…… 결국 나 변호사가 소유자가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면 모든 것이 말이 되긴 하는데, 그래도 좀 이상하다. 일단 변호사가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것이 말이 돼? 그것도 하필 유물을?
“혹시 누군가가 돈 대신 유물로 빚을 갚은 건가?”
이 경우는 좀 말이 된다. 유물을 보는 나 변호사의 눈빛에는 애정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가 걸렸다.
“어제오늘 수집한 거 같지가 않았는데…….”
무엇보다도, 방에 먼지가 좀 많았지만 지속적으로 관리한 흔적들이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인상을 팍 쓴 경환이 방으로 들어왔다.
“형이 먹었지?”
“뭐?”
“냉장고에 있던 죽, 형이 먹었잖아!”
“아…… 그거. 맞아. 내가 먹었어.”
도끼눈을 한 경환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걸 먹으면 어떻게! 우리 채령이가 나 요새 속 안 좋은 것 같다고 걱정된다면서 해 준 거란 말야! 당장 뱉어내!”
“미안해……. 나는 먹어도 되는 건 줄 알았지.”
내 사과를 들은 경환은 더 이상 나를 닦달하진 못하고 풀썩 침대에 주저앉았다.
“우리 채령이가 그림 그리는 섬섬옥수로 나 먹이려고 2시간 동안 만든 건데! 흐잉!”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어……. 미안.”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래. 그럴 수가 있겠네.”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경환아. 너 오늘 채령이 만날 생각 없냐?”
“어떻게 만나! 오늘 학원에서 일하잖아! 그래서 어젯밤 늦게 만나서 죽 받았는데! 그걸 홀랑 먹어버리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음식 싸들고 채령이 보러 가자.”
“음식?”
“그래. 잠깐 쉬는 시간 가질 수 있게. 애들 간식은 따로 사가지고 가는 거지. 애들은 입이 즐겁고, 너랑 채령이는 서로 볼 수 있어서 좋고. 나는 미안한 마음 덜 수 있어서 좋고. 어때? 모두가 윈윈 아니야?”
의심스럽다는 듯 경환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았다.
“말을 안 한 부분이 더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거 없어.”
“아닌데에.”
“경환아. 음식이랑 간식 값은 다 내가 낼게.”
“진작 말을 하지. 빨리 가자아.”
언제 울상을 지었냐는 듯 경환이 생긋 웃었다. * 경환과 나를 보고 채령은 놀라서 눈이 커졌다.
“우리 귀염둥이에 지감 오빠까지, 웬일이에요?”
귀염둥이? 누가? 집에서는 마른 오징어처럼 퍼석거렸던 경환이 생기를 되찾아 애교를 피웠다.
“우리 채령이 보고 싶어서 왔지이. 이거 애들 간식 먹으라고 하고 잠깐 쉬자.”
“너무 고마워. 귀염둥이. 좀만 기다려어.”
간식 봉지를 받아든 채령이 아이들에게 가서 간식을 나눠주었다. 나는 못마땅한 눈으로 경환을 보았다.
“누가 보면 네가 간식 산 줄 알겠다?”
“들기는 내가 들었잖아. 그리고 채령이에게 부탁할 것 있는 거 아니었어?”
경환이 능글맞게 눈을 깜박였다. 회사 다니고 나서 눈치만 늘었다. 짜증이 훅 머리를 치고 올라왔지만 나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참았다. 잠시 후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누어준 채령이 우리에게 왔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경환이 자기가 산 것처럼 고급 도시락을 펼치며 재롱을 부렸다.
“짜짜잔안.”
“너무 맛있겠다아. 고마워 귀염둥이!”
“뭐얼. 얼른 먹어.”
채령이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나는 질문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채…….”
“스읍! 밥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미간을 좁힌 경환이 귓속말을 하자 나는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결국 채령이 도시락을 다 먹고 나서야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채령아. 나에게 소개해 준 나 변호사님 말이야.”
“네.”
“학원 다니는 자녀, 그러니까 여기 학생을 통해서 연락을 주신 거야?”
“아니요. 학원에 전화 거셔서 직접 저를 찾으셨어요. 그건 왜요?”
“위탁받아야 하는데 찜찜한 부분이 있어서. 혹시 그 학생 지금 여기 있어?”
“네. 있어요.”
“잠깐만 만날 수 있을까?”
“그게…….”
고민하는 빛이 채령의 얼굴에 스쳤다. 학원과 관계없는 외부인이 학부형의 동의 없이 학생과 만나는 건 썩 좋은 그림이 아니다. 학생들은 아직 대학교에도 가지 않은 미성년자인 것이다. 그럼에도 채령이 고민을 한 것은, 부탁을 한 상대가 나이기 때문이다. 채령을 난처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기에 나는 방법을 다르게 하기로 했다.
“내가 직접 만나는 것이 문제면…… 네가 물어봐 줄래?”
“네. 그건 어렵지 않아요.”
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 짙은 어둠이 깔린 밤, 나는 초초하게 학원 간판을 보면서 채령이 나오길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고, 그 흐름 맨 끝에 채령이 있었다. 채령이 내 차에 올랐다.
“오빠 예상이 맞았어요.”
“역시 그랬구나.”
“제가 괜한 소리를 해서…… 오빠만 난처하게 만든 거 같아요. 죄송해요.”
미안한 나머지 채령은 내 눈을 보지도 못했다. 채령이 잘못한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나 도와주려고 했던 거 알아.”
“정말 죄송해요…….”
도움이 되려는 생각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시간 낭비를 하게 해서 채령의 마음이 안 좋은 것 같았다. 그때 잠시 자리를 비웠던 경환이 차로 다가오더니 채령을 보고 격하게 손을 흔들었다. 이런 상황이 민망한지 채령은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
“뭘 또 고개까지 숙여. 계속 그러면 나 집에서 경환에게 추궁 당해. 얼른 내려서 경환이랑 시간 보내.”
“감사합니다.”
채령이 꾸벅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경환과 채령에게 손 인사를 하고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강민수 느낌이 들 때부터 느낌이 쌔했어.”
유물을 소유자는 나 변호사가 아닌 수더분 인상을 풍겼던 부인이었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조기 유학을 가면서 나 변호사의 부인이 따라갔다. 그것이 약 한 달 전이다. 평소 고미술품을 모으는 부인의 취미를 몹시 못마땅했던 나 변호사는 조금씩 갖다 팔 생각을 하고, 옥션에 다닌다는 내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아무리 부부여도 그렇지, 자기 물건도 아니면서…….”
그래. 자기 돈으로 비싼 유물들을 사는 것이 못마땅했을 수는 있지만, 결코 이상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었다. 법을 잘 모르지만 나 변호사가 이런 짓을 저지른 건 친족상도례가 있기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의 절도의 죄를 면제하는 법이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형사처벌은 어렵지만 민사상 손해배상은 가능하다. 하지만 부인의 인상을 보니 손해배상을 하자고 나올 것 같진 않았다. 법도 잘 알고, 부인도 잘 알았던 그는 부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욕지거리가 나오면서 쓴 물이 올라왔다. * 차를 운전하는 김 비서의 어깨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강정휘가 자신에게 주기로 한 기간은 한 달, 그 마지막이 내일이었다. 김 비서는 반쯤 넋이 나가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반드시 서인범이어야 해.”
서인범이 아니라면 강정휘는 더 이상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서인범을 찾아내지 못했던 책임을 물어 그를 자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당장 돈 나올 곳이 없다. 강정휘에게 버러지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참아냈던 것은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 때문이다. 그에게는 젊은 시절 치기로 생긴 전과가 있었다. 그 전과 때문에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고, 마지막에 남은 선택은 운동하던 가락을 살려 조폭이 되는 것뿐이었다. 젊었을 적이면 사나이 인생 한 번이라면서 겉멋이 들어갔겠지만, 가족이 생기고 나니 사람을 때리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때 강정휘가 손을 내밀었다. 더러운 짓을 도맡아야 했지만 사람을 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표면적으로 가족들이 남에게 말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그를 강정휘에게 충성하게 만들었다. 강정휘의 잦은 히스테리는 그를 점점 지쳐 가게 했지만 이제 와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전과자였고, 나이도 들었기에 김 비서를 원하는 곳은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서인범이어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흥신소 직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있습니까?”
“따라오세요.”
흥신소 직원을 따라 지하도로 내려갔다. 5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박스와 신문지를 덮고 있었다. 직원이 그중 오른편 가운데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옆모습이 서인범의 얼굴이었다.
“저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의아한 눈빛으로 보는 직원에게 질문 따윈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김 비서가 매섭게 노려봤다.
“제가 알아서 합니다.”
“저…… 성공 수당은……?”
직원은 겁을 먹었음에도 성공 수당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김 비서가 인상을 쓰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오늘 내로 보내드릴 테니 그만 가 보세요.”
“네.”
직원은 대답을 하자마자 지하도에서 사라졌다. 김 비서가 저벅저벅 서인범으로 여겨지는 사람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잡았다.
“뭐야!”
그는 서인범이 맞았다. 김 비서의 간절함이 통한 순간이었다.
“드디어 찾았네.”
“이거 놔! 그 안경 나에게 없다고 했잖아! 버러지 같은 놈들!”
서인범이 그를 밀쳐내고 걸어갔다. 김 비서는 바로 서인범을 기절시킬 수 있었지만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뒤를 쫓았다. 지하도를 나온 서인범이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마침 그가 서 있는 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김 비서는 마취제가 적셔진 손수건을 꺼내 그의 코와 입을 막았다. 버둥거리던 서인범이 곧 정신을 잃었다.
“이번에는 안 놓쳐.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기나 해……!”
김 비서가 정신을 잃은 서인범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그는 가뿐하게 서인범을 들쳐 업고 자신의 차가 세워진 곳으로 가서 뒷좌석에 태운 뒤 움직일 수 없도록 그를 묶었다. 도로를 달리며 김 비서는 미러로 뒷좌석에 있는 서인범을 힐끗 보았다. 어느새 서인범을 찾았다는 성취감과 안도감은 사라지고, 서인범을 때려서라도 안경을 벗는 방법을 알아내야 한다는 부담감만이 남았다. * 주말을 보내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나는 메이저 경매 근현대 미술 부문의 작품 리스트를 확인했다. 혹시라도 입고나 감정이 안 된 작품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확인하도록 되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장희정이 나에게 물었다.
“지감 씨. 오늘 리스트 확인, 지감 씨 차례죠?”
“네.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도록 작업 목요일부터 들어갈 거예요. 그 전까지 변동은 있을 테지만 최대한 확인해서 차질 없이 픽스되도록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금요일에 고객 만난 건 어떻게 됐어요? 위탁 받았으면 고미술 팀에 서면 심사 요청해야 하는 거 알죠?”
“아. 그게…….”
그때 무언가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였고, 놀랍게도 유리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나 변호사였다. 놀란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나 변호사 앞에 섰다.
“무슨 일로…….”
그가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무슨 감히 내 딸을 이용해서 뒷조사를 해? 네가 그러고도 회사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잘 봐. 혀를 잘못 놀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줄 테니까!”
대강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느낌이 왔다. 딸을 통해서 내가 소유에 관한 조사를 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