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쌍룡검 (3)2021.05.24.
지 팀장과 나는 이시하라의 병원으로 향했다. 가면서도 나는 이시하라 쇼헤이에게 할 질문을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나를 지 팀장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보면서 물었다.
“확인하려는 것이 도대체 뭐야?”
“확인되면 말씀드릴게요. 제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면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근데 또 이상하게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지감 씨, 믿는다.”
그는 불안한 눈길을 보내면서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다. 여태까지 내가 해온 일들이 지 팀장에게 작은 믿음을 준 모양이다. 이시하라 원장을 만나러 왔다는 말을 접수대에 전했다.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전화를 돌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인 이시하라 쇼헤이를 만날 수 있었다. 지 팀장은 일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기에 나 혼자 그를 마주했다.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한 쇼헤이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아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요.”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세요.”
입을 앙다물었던 그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말씀하세요.”
“쌍룡검은 원장님의 선조께서 고종 황제에게 직접 받은 것이죠?”
“…….”
쇼헤이의 초점이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원장님의 선조이신 이시하라 신이치, 그러니까 종친이었던 이신일이 받았을 겁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신일이 이시하라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내가 읽은 신문 기사는 1914년에 쓰인 것으로, 황제의 종친인 이신일이 이시하라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었음을 통탄하는 내용이었다. 데릴사위가 되었기에 이신일은 ‘이시하라’라는 성을 갖게 되었고, ‘新一’이라는 한자의 일본어로 읽은 ‘신이치’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나는 나직이 말을 이어갔다.
“이신일은 고종의 가까운 친척은 아니었지만 왕래가 있었죠. 1909년 철추가 일본으로 옮겨진 것에 대해 불안했던 고종 황제는, 이순신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쌍룡검만은 일본의 손에 넘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신일을 통해 궁에서 빼냈습니다. 아닙니까?”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쇼헤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숨기는 건 불가능하겠군요. 말씀하신 것이 모두 맞습니다……. 언젠가 이렇게 다른 이들에게 알려질 날이 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날이 부디 제가 이 쌍룡검을 가지고 있는 때는 아니길 바랐지만, 욕심이었나 봅니다.”
“아드님은 이 사실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까.”
“네.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창고 정리를 할 때 그 검이 나와서 급하게 오래전에 선물받은 거라고 둘러대었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압니다.”
이제 모든 퍼즐들이 맞춰진다. 소장 경로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쇼헤이의 아들은 이순신의 쌍룡검이라는 것을 어쩌다 알게 되었고, 별생각 없이 탑 옥션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제발 모든 것을 덮어 주세요.”
갑자기 쇼헤이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일으키려 했지만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덮어 주신다는 말을 할 때까지 이렇게 있겠습니다…….”
“외부로 알려지고 싶지 않은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쇼헤이는 눈물을 흘리며 내게 애원했다.
“쌍룡검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사람들은 어떤 경로로 이시하라 가문이 소장했는지 알고 싶어 할 겁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한국에서는 변절했다고 욕할 것이고, 일본에서는 한국의 피가 섞였다는 조리돌림을 당할 겁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덮으면서도 쌍룡검을 옥션에 세울 방법이 없을지 머리를 굴려봤다.
“만약 이 모든 것을 덮고도 쌍룡검을 한국으로 돌려놓을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실 겁니까?”
우는 것을 멈춘 그가 나를 빤히 보면서 물었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방법을 말씀드리기 전에 쌍룡검의 존재를 먼저 확인하고 싶습니다.”
위탁은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쌍룡검의 존재를 꼭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 쇼헤이의 뒤를 따라 창고로 들어가면서 지 팀장이 내게 속삭였다.
“도대체 어떻게 설득한 거야?”
“이따 호텔에 가서 말씀드릴게요.”
“알았어. 지감 씨 덕분에 일단 일본에 온 목적은 달성이다.”
쌍룡검을 볼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지 팀장은 호텔에 있을 때와 달리 눈에 띄게 기분 좋아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창고 깊숙한 곳에 보자기로 싸여져 있는 물건을 쇼헤이가 가져왔다.
“이겁니다.”
면장갑을 낀 지 팀장이 보자기를 천천히 풀었고, 검이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조선미술대관’에 실린 사진과 포개어지며 몇백 배, 아니 몇천 배는 아름다운 위용을 드러냈다.
“와……!”
“우와……!”
지 팀장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탄성이 자아냈다. 탄성을 멈추기도 전에 메시지가 떴다. [ 0 | 진 | 1,700,000,000원 | 1580년대 | 없음 ] 진품이다……! 그리고 1580년이라면 이순신 장군의 손때가 묻어 있는 검일 확률이 높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소름이 쫙 돋았다. 내가 정말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사용했던 검을 보다니……!
지 팀장이 칼집을 조심스레 벗겨 내자 쌍룡검의 글귀가 나타났다. ‘鑄得雙龍劍 千秋氣尙雄 盟山誓海意 忠憤古今同 (주득쌍룡검 천추기상웅 맹산서해의 충분고금동)’ 해석하면 이런 뜻이다. ‘쌍룡검을 만드니 천추에 기상이 웅장하도다. 산에 맹세하고 바다에 맹세한 그 뜻, 충성을 다하려는 분노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도다.’ 100년 넘게 행방을 감추었던 쌍룡검이 지금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처음에 이곳에 올 때는 쌍룡검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막상 보니까 욕심이 생긴다. 고개를 돌리니 지 팀장도 나와 같은 눈빛으로 쌍룡검을 보고 있었다. 욕심이 생긴 것은 지 팀장도 마찬가지다. * 호텔로 다시 돌아와서 나는 지 팀장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이시하라 가문과 쌍룡검의 비밀에 대해서 말이다. 놀란 지 팀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래서 현실이 더 드라마 같다고 하는구나.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은 몰랐어. 어떻게 그런 걸 알아냈어?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었을 텐데.”
“찍었는데 운이 좋았어요. 사실 고종 황제와 이신일 사이에 왕래가 있었다는 정보는 찾지 못했거든요. 종친이라길래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한 거죠.”
지 팀장은 감탄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운이 좋다고만은 절대 설명 못하지. 나라면 당연히 이신일이 빼돌렸다고 생각했을걸.”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철추가 일본으로 옮겨진 이후이다 보니 고종 황제의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 같았어요.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이라면 그 의미가 특별하다 보니 지키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은 원융검(元戎劍)이라고도 불렸다. 으뜸 되는 병기라는 뜻이다. 고종 황제는 왜적에 맞서 나라를 구해냈던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를 지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철추도 일본으로 옮겨지는 마당에, 쌍룡검을 계속 수장고에 두는 것은 더 위험하다 판단했을 터였다.
“지감 씨, 형사 같다.”
“과찬이십니다.”
“이제 남은 건 이시하라 가문의 비밀을 덮으면서 쌍룡검을 어떻게 옥션에 세우냐는 거지?”
“그렇죠.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요. 이런 방식은 어떨까요?”
지 팀장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듣고 말했다.
“지감 씨가 말한 방법이 최선의 방식이긴 한데,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내일 가서 총괄님과 상의해 봐야 해.”
“네. 알겠습니다.”
흐뭇한 미소를 지은 지 팀장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오늘 지감 씨 보니까 확실하게 알겠다. 어떻게 1년 만에 업계에서 이렇게 유명해졌는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감 씨랑 오래도록 같이 일하고 싶다.”
“그 말 꼭 총괄님에게도 해주세요.”
“알았어!”
김도균의 고지식한 성격을 생각하면, 내 제안을 받아들일 확률은 적었다. 하지만 오래도록 같이 일하고 싶다는 지 팀장의 말이 모든 것을 그런 부분을 잊게 만들 정도로 좋았다. * 다음 날 나는 지 팀장과 한국으로 돌아갔고, 바로 회사로 출근했다. 쌍룡검에 대한 결정을 빨리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김도균, 지 팀장, 그리고 나는 회의실에 모였다. 지 팀장은 상황을 짧게 설명하고 내 제안을 전했다.
“그러니까 한지감 씨 아버지가 쌍룡검을 구매한 이후, 다시 우리에게 위탁받는 형식을 취한다?”
“네. 그렇습니다.”
“보나마나 한지감 씨가 낸 아이디어겠죠?”
김도균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향했다. 지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한지감 씨가 낸 아이디어 맞습니다. 하지만 고미술 팀장으로서 저는 이 제안이 검토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옥션은 투명해야 합니다. 소장 경로가 떳떳하지 못한 유물을 위탁받는 것은 길게 봤을 때 옥션에 마이너스입니다.”
지 팀장은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저도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댄다면 위탁받을 유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또한 이번은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100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잘근, 김도균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도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말씀하시는 중에 죄송하지만, 옥션에 위탁하든 위탁하지 않든 저희 아버지는 쌍룡검을 이미 구매하셨습니다.”
어젯밤 아버지와 통화했다. 쌍룡검 이야기를 꺼내자, 그런 이야기를 왜 지금 하냐면서 성을 내시고 오늘 아침 비행기로 일본에 도착하셨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 대금을 지불하고 쌍룡검을 손에 넣었다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았다. 김도균이 그런 말을 왜 꺼내냐는 듯 매섭게 물었다.
“그래서요?”
“아버지가 저에게서 정보를 받은 만큼, 내일 저녁 여섯 시까지는 시간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연락이 없으면 다른 곳으로 넘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결정을 내일 여섯 시 전에는 하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일에 있어서 아버지는 정확하신 분이다. 절대 허투루 하는 말이 없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이라면 사고 싶은 사람이 줄을 설 터였다. 그러니 내일 여섯 시를 넘기면 위탁은 물 건너가는 거다. 김도균은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면서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전까지 고민해 보죠. 두 분, 이만 나가 보세요.”
그렇게 지 팀장과 나는 회의실에서 나왔다. 지 팀장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감 씨, 일부러 그런 거지?”
“뭘요?”
“순진한 척하기야? 시간을 많이 주면 총괄님이 안 움직일 것 같으니까 일부러 빨리 아버지에게 연락해서 시간 제약을 준 거잖아.”
나는 세상 순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전 혹시 다른 곳에서 냄새를 맡을까 봐 마음이 급해서 그런 것뿐이에요.”
“에이이. 아닌 거 같은데?”
“절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은데요.”
지 팀장이 음흉한 미소를 던지고 자신의 자리로 갔고, 나도 자리로 가서 앉았다. 지 팀장의 말이 맞다. 나는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을 경매에 세우고 싶었고, 그래서 일부러 아버지께 연락드렸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참으로 빨리 움직였다. 시간 제약을 두면 안 살 물건도 사게 된다. 홈쇼핑에서 괜히 마감 임박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그걸 이번 기회에 나도 써먹어 보았다. 하지만 역시 김도균은 녹록한 상대가 아니다. 시간 제약에 흔들리면서도 휘둘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언가 하나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뭐가 있어야 할까? * 나는 시계를 보고 얕은 한숨을 뱉었다. 벌써 오후 한 시가 넘었다. 여섯 시까지는 이제 다섯 시간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김도균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책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다. 더 이상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나는 벌떡 일어나 저벅저벅 김도균에게로 다가갔다.
“총괄님, 잠깐 회의실에서 뵐 수 있을까요?”
“여기서 하세요.”
모두 다른 일을 하는 척하고 있지만 이곳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 팀장과 내가 어떤 이유로 일본에 다녀왔는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도균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제가 왜 일본에 다녀왔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은데요. 다들 알아도 괜찮다면 여기서…….”
벌떡 김도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로 갑시다.”
회의실로 가서 자리에 앉기 무섭게 나는 말을 꺼냈다.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면 결과를 투명하게 만드는 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