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가격 협상 (1)2021.06.07.
쌍룡검이 다른 곳에 넘어가는 것만은 나도 피하고 싶다. 내 손으로 쌍룡검을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어그러진다. 하지만 칼 같은 아버지를 설득할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 갑자기 머리가 뒤엉키면서 복잡해진다. 이럴 때는 상황을 먼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해결책이 보인다.
“지금 내정가가 문제인 거죠?”
“그렇지.”
내정가란 가격협상을 통해 결정한 판매 최소 금액이었다. 이 금액에 도달하지 못하면 유찰된다. 이건 말 그대로 최소 금액이기에, 경합을 벌인다면 낙찰액은 내정가보다 훨씬 높을 수 있다.
“내정가가 낮아도 더 높은 금액으로 낙찰될 수 있다고 말씀은 해 보셨어요?”
“해봤지. 근데 귓등으로도 안 들으시더라구. 안중근 의사 ‘경천’도 유찰되는 판에 쌍룡검도 안전하지는 않으시다면서……. 정곡을 찔려서 할 말이 없더라.”
끄응. 역시 아버지다. 모든 일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듯이 경매도 마찬가지다. 경합을 벌이며 높은 금액으로 낙찰 될 거라고 여겼던 미술품이 유찰되기도 하고, 반면 유찰될 거라고 예측했던 미술품이 경합을 벌이며 높은 금액으로 낙찰되기도 한다. 안중근 의사의 ‘경천’은 전자의 경우였다. 뜻 깊은 작품이 경매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유묵 최고가로 낙찰될 거란 기대를 받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유찰되었다. 이후 한 카톨릭 교회에서 ‘경천’을 구입하였고 바티칸에 전시되며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경매 결과가 처참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비슷한 일이 이순신의 쌍룡검에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푹 한숨을 쉰 지 팀장이 한풀이를 하듯 말했다.
“솔직히 지감 씨 아버님 입장도 이해가 가. 경합을 벌여서 높은 금액에 낙찰되면 더없이 좋은 거지만, 그렇지 않으면 유찰된 작품이라는 꼬리표를 달잖아.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건데 내정가까지 낮으면 불안하시겠지.”
경매에서 유찰될 경우 유찰된 작품이라는 꼬리표가 생겨, 이후 2년 정도는 경매에 나오지 못한다. 그래도 아버지는 골동상이니 판매가 어렵지 않겠지만, 그럴 경우에도 경매에서 유찰된 작품이라는 꼬리표는 유효하고 가격이 낮아질 위험이 높았다. 하지만 쌍룡검은 위탁받은 이후 기부할 수 있을 만한 인사들에게 연락할 것이기에, 내 생각대로만 된다면 유찰될 가능성이 낮았다. 맞다. 아버지는 이런 상황을 모르고 계시지. 이 부분을 말씀드리면 설득이 될 것 같기도 한데……. 고심하는데, 그 모습을 힘겨워한다고 여겼는지 지 팀장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됐어. 그 정도로 힘들어하지 않아도 돼. 애초에 이런 부탁 지감 씨에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너무 답답해서 그랬어. 미안해.”
“저…… 된다는 장담은 못하지만, 제가 한번 아버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괜찮겠어……? 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텐데.”
“그렇긴 하지만, 손 놓고 쌍룡검을 보내긴 싫어서요.”
울컥한 지 팀장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고마워. 지감 씨.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마음 써 준 거 잊지 않을게.”
* 가게 문을 열고 빼곰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버지는 나를 보셨음에도 보지 못한 척 관리대장을 봤다. 내가 무슨 이후로 평일 낮에 이곳에 왔는지 이미 눈치를 채고 계신 것이다. 슬금슬금 안으로 들어가 넉살 좋게 웃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아들로 오지 않았을 텐데?”
아버지는 형사같이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나를 봤다. 오금을 저리게 하는 눈빛이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는 골동상이 아닌 형사가 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 눈빛을 골동품을 위해서만 쓰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살갑게 굴었다.
“에이. 옥션 회사 직원 이전에 전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수작 부리지 말아라. 아들이 온다고 가격 깎아 줄 거였으면 애저녁에 골동상 그만두었다.”
“잘 알죠, 아버지 성격. 그런 아들이 찾아온 거니 무작정 깎아 달라고 온 건 아니지 않겠어요?”
아버지가 뚫어져라 나를 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만 능글거리고 본론이나 말해봐라.”
“아버지, 쌍룡검이 어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실망감이 역력한 표정이 떠오르더니 숨도 쉬지 않고 반론을 했다.
“겨우 국가에 기부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냐? 국가에 귀속되면 좋겠지. 하지만 그래 봐야, 처음 기증할 때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겠지만 결국 그 관심은 빠르게 식어갈 거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전 복잡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쓰려 해요.”
“그게 무슨 뜻이냐?”
나는 쌍룡검에 대해 갖고 있는 계획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기부할 사람을 정해서 이슈를 만들 생각이다?”
“네. 맞아요. 그러니까 내정가가 낮더라도 낙찰 금액은 높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네 생각 아니냐. 아직 기부할 사람이 정해지지도 않았잖아.”
“위탁이 되어야 접촉해서 이야기라도 해 보죠.”
“먼저 기부할 사람을 접촉해 이야기를 끝내라. 그럼 위탁을 하지.”
이건 엄연히 순서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위탁을 받아야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있다.
“위탁을 받아야 이야기를 꺼내죠. 위탁도 받지 않았는데 가서 뭐라고 해요?”
“그럼 위탁은 없다.”
야속하게도 아버지는 너무나 단호했다. 더 이상 설득을 한다 해도 들을 아버지가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태어나서 쭉 아버지를 봐온 나는 안다. 그러니 이제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기부자들을 먼저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김도균의 허락이 필요했다.
* 나는 회사로 돌아와 김도균에게 이러한 사실을 보고했고, 그는 인상을 팍 썼다.
“회의실로 가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나는 김도균에게 끌려 회의실로 향했다. 정말 들어가기 싫다. 회의실에 들어가면 김도균이 몰아붙일 것이 뻔하다. 나는 자리에 앉아있는 지 팀장에게 눈빛으로 SOS를 쳤고, 그는 재빠르게 달려와 김도균 앞에 섰다.
“총괄님, 제가 지시한 일이니 저도 동석하겠습니다.”
“아니요. 지 팀장은 이따가 따로 보죠.”
“그래도…….”
“따로 보자 했습니다.”
날카로워진 목소리를 들은 지 팀장은 물러섰다.
“네…….”
그는 눈빛으로 미안함을 전했고 회의실을 떠났다. 그렇게 회의실엔 나와 김도균만 남았다. 빌어먹을……. 서릿발 같은 태도로 김도균이 나를 압박했다.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위탁도 받지 않았는데 기부할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말이 되냔 말이에요.”
“저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탁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 이것뿐이라 이러는 겁니다.”
나는 읍소했지만 김도균에게 이런 것이 통할 리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한 말이니 더더욱 통할 가능성이 낮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면 한지감 씨 선에서 끊었어야죠. 애초에 내부적인 일을 위탁자에게 이야기한 것도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쌍룡검이 경매에 올라간다 한들 나에게 어떠한 이익도 떨어지지 않는다. 기껏해야 정직원이 되는 것이 최대치였다. 정직원이 되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그걸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0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쌍룡검을 가장 화려하게 세상에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또한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있어야 할 자리로 가게 하고 싶었다. 그게 이렇게 지탄받을 일일까? 어떻게 해서든 쌍룡검을 탑 옥션에 세우고 싶었기에 나는 억울함을 뒤로하고 말했다.
“그럼 쌍룡검이 다른 옥션에 넘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습니까? 총괄님도 쌍룡검을 경매에 세우고 싶지 않으십니까?”
“원칙을 어기고 무리를 하면서까지 쌍룡검을 세워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 명분을 여쭤 본 것이 아닙니다.”
“그럼요.”
“세우고 싶은 마음, 있으시지 않습니까. 그게 없었다면 애초에 허락도 하지 않으셨겠죠.”
잠시 멈칫했던 김도균이 이내 다시 날카롭게 나를 몰아쳤다.
“그래서요. 허락했으니 나도 공범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겁니까?”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마음이니, 어려운 부탁이란 것을 알지만 허락해 달라는 겁니다.”
“더 이상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그래요. 나도 공범이에요. 그러니 이 이상은 안 돼요. 한지감 씨는 지금 탑 옥션 인턴이에요. 내 말을 따라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쌍룡검을 경매에 세울 수 없었다. 결단이 필요할 때였다.
“그럼 골동상 한지감의 입장으로 기부자를 만나겠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탑 옥션 인턴으로 만나면 안 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골동상으로서 만나겠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 장난이에요? 고객을 우롱하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우롱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팅시 처음에 명확하게 이 이야기를 할 겁니다.”
김도균이 눈을 치켜세우고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한지감 씨가 한 행동이 탑 옥션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칠 시에는 즉각 해고할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습니다.”
나는 호기롭게 대답하고 회의실을 나섰다. 이판사판이다. 회사에서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매달려 보고 싶었다. * 6시가 되자마자 나는 재빠르게 회사를 나서 도강 그룹 강 회장이 사는 집으로 향했다. 쌍룡검을 낙찰받아 기부할 사람으로 강 회장이 가장 적합하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강 회장이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이거 정말 오랜만이에요. 얼굴 잊어버리겠어요.”
강한 경상도 억양은 여전했다.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자주는 말고 가끔 찾아와요. 회사는 다닐 만해요?”
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렵지만 재밌습니다.”
“이거 아쉽네요. 아무래도 탑 옥션에 뼈를 묻을 생각인 거 같은데.”
“그건 어려울 거 같습니다. 당장 해고당할지도 모르는 상태라서요”
“무슨 일 있어요?”
“…….”
말도 안 되는 일로 이곳에 왔기에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로 여기 왔는지 말씀드리기 전에, 하나 명확히 짚고 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봐요.”
“저는 오늘 여기 탑 옥션 직원이 아닌 골동상으로 왔습니다.”
흥미로운 미소가 강 회장의 입가에 걸렸다.
“그래요? 이제 무슨 일인지 말해 봐요.”
나는 천천히 쌍룡검의 현 상황과 기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꾹 입을 다문 강 회장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위탁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낙찰을 받으면 기부를 하라는 이야기를 꺼낸다라…….”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것도 안 되는 거지만, 그것보다도 하나도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들이에요. 쌍룡검을 응찰할지 말지는 결국 고객이 정해요. 그런데 한 선생은 나더러 응찰을 하라는 말을 하는 데다, 막상 낙찰을 받아도 내가 소유하는 것도 아니고 기부를 하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나에게 무슨 이익이 있죠?”
강 회장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입안이 바싹바싹 말라 갔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준비한 말을 꺼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얻으시게 될 겁니다. 국보격인 물건을 국가로 귀속시킨 정의로운 인물이라는 타이틀이요. 도강 그룹의 강직한 느낌과 잘 어울리는 홍보 요소가 되겠죠.”
“홍보라. 나쁘지는 않지만, 그걸 이십억 가까운 돈을 쓰면서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어요?”
“제가 말씀들인 이미지는 백억을 주어도 사기 어려운 이미지입니다. 근데 그걸 이십억으로 산다면 남는 장사 아니겠습니까.”
“남는 장사라……. 과연 그럴까요.”
그가 묘한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서 응찰을, 기부를 약속한다 해도 그걸 지켜야 할 의무는 없어요. 당일에 가서 마음을 바꿀지도 몰라요. 그래도 한 선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강 회장님이 약속해 주신다면 그대로 하실 거라 믿습니다.”
껄껄 웃은 강 회장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내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봐온 회장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한 선생 말, 충분히 알아들었어요. 살 생각은 있지만 기부를 할지 말지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해요.”
“언제까지 연락을 주실 수 있습니까?”
“내일까지 연락해 주도록 할게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 이제 결과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