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가격 협상 (2)2021.06.09.
늦은 밤, 강 회장은 따듯한 청주를 비서실장에게 따라주었다.
“감사합니다.”
잔을 받은 비서실장이 예의를 갖춰 술을 마시고 다시 강 회장을 보았다. 한지감의 제안을 고민하는 강 회장의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한 선생 제안,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감히 회장님 앞에서 제 생각을 말하겠습니까.”
“새삼스레 감히는 무슨……. 듣고 싶으니 말해봐. 정말 이십억으로 백억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 정도는 아니어도 두 배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두 배 이상의 효과라,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 회장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비서실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느 부분이 걸리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소장하고 싶으니 그렇지. 뻔히 알면서 왜 묻나.”
이미 예상하고 있던 답이었기에, 비서실장은 고개를 숙인 채 살짝 웃었다. 이순신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쌍룡검은 고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탐낼 만한 유물이었다. 고미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강 회장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자신의 수장고에 고이 두고 매번 보고 싶은 유물이다. 그런 유물을 기부를 하라는 제안을 받으니, 강 회장으로서는 난감했다.
“쌍룡검에 쓰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아. 이십억이 아니라 삼십억이라도 살 거야. 하지만 기부를 해야 하는 물건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돈이 문제가 아니고,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물건이지 않나.”
“충분히 이해합니다. 현금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쌍룡검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유물 아닙니까.”
“역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자네밖에 없구만.”
비서실장은 지그시 강 회장을 보면서 말했다.
“내키지 않으시면 거절하면 되지 않으십니까. 회장님이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의무는 없으십니다.”
“다른 사람이 한 제안이었다면 당연히 거절했을 테지. 하지만 한 선생이 한 제안이지 않나.”
한지감 덕에 아미타불화를 구하고, 최기석에게 선물로 줄 수 있었다. 이것 외에도 한지감은 강 회장이 원하는 것은 다 가져다 주었다.
“그 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그러니 회장님이 원하시지 않으신다면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한지감에게 준 인센티브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 외의 대가를 치를 필요는 없었다.
“한 선생이 여태까지 해준 것 때문에 이러는 것만은 아니야.”
“그럼 다른 이유는 뭡니까?”
“한 선생 같은 사람은 가까이 두는 것이 좋아. 여태까지보다 앞으로 쓸 일이 더 많다 이 말이야.”
그러니 이 제안을 고민하는 이유는, 한지감이 그만한 투자를 받을 만한 인간인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한 선생은 탑 옥션에 들어갔습니다. 회장님이 쓰실 일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디 세상일이 예상대로만 흘러가던가. 더 멀리 내다봐야지.”
“역시 제 짧은 소견으로는 회장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이 어울리지 않게 웬 아부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 회장은 웃고 있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비서실장이기 때문이다.
“아부라뇨.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한잔 따르겠습니다.”
강 회장이 잔 가득 채워진 술을 마시며, 한지감의 가치가 쌍룡검을 내줄 정도로 중요한지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 나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지 팀장에게 가서 보고했다.
“위탁은 마무리 지었습니다.”
강 회장은 기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사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강 회장이 나선다면 현성 그룹 이 회장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가 원하는 금액 이상으로 낙찰될 확률이 높았다. 이 사실을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흔쾌히 회사 측에서 제시한 내정가를 받아들이셨다.
“어떻게 했어?”
“강 회장님이 응찰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을 했네. 정말 수고 했어. 혹시 기부도……?”
“아니요. 거기에 대해선 오늘 점심까지 연락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해한다는 듯 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은 일이지. 안된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 마. 사실 약속을 한다고 해도 낙찰 받은 후에 마음에 바뀌면 또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압니다.”
“위탁계약서 작성해야 하는데, 아버지는 언제 오실 수 있어?”
“정연주 선배님과 일정 맞춰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나는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앉기 무섭게 지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팀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모두 한지감 씨와 내가 왜 급하게 일본으로 출장 갔는지 궁금했을 거야.”
그의 말에 다른 팀의 시선까지 쏠렸다. 경매팀의 모든 사람들이 지 팀장과 내가 일본에 간 이유를 궁금해했던 것이다. 정연주가 동그란 눈을 뜨고 말했다.
“네. 궁금해요. 빨리 말해 주세요!”
“이순신의 쌍룡검, 다 들어봤겠지?”
김 책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조선미술대관’에 나온 그 쌍룡검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바로 그 쌍룡검을 우리가 위탁받았다.”
“와아……!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100년 이상 자취를 감춘 유물이잖아요.”
“궁금하지? 자세한 이야기는 오늘 회식에서 할 테니까 참여하도록 해.”
궁금한 정연주가 투덜거렸다.
“지금 말씀해 주세요. 감질나게 예고편도 아니고오.”
“미안 연주 씨, 나는 감질 나는 예고편이 취향이라.”
“궁금한데 너무하세요.”
“저기요오.”
애교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옮겨졌다. 박도희였다. 지 팀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박도희를 봤다.
“도희 씨, 할 말 있어?”
“전(前) 고미술 팀원으로서 회식 참석하고 싶은데 가능한가요오?”
“회식에 참석하고 싶구나, 도희 씨.”
“네엡. 참석하고 싶어요. 너무 너무 궁금하단 말이에요.”
“근데 이거 어쩌나. 오늘 회식은 현(現) 고미술 팀만 참석할 수 있어.”
“너무하세요.”
입술을 삐죽이는 박도희를 보면서도 지 팀장은 어깨를 으쓱 올릴 뿐이었다. 저렇게 단호한 것을 보면 아직도 박도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지 팀장이 자리에 앉자 들뜬 분위기가 고미술 팀에 흘렀다. 물론 강민수는 대쪽같이 썩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뜬 기분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강 회장에게 연락이 언제 올까? 오늘까지 연락은 준다고 했는데……. 자꾸 핸드폰만 보게 됐다. * 분위기에 얼큰하게 취한 지 팀장이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말했다.
“나는 그냥 가려고 했는데, 지감 씨가 검색을 하더니 위탁받을 방법을 찾아내더라니까! 그리고는 병원에 딱 찾아가서 유창하게 일본어로 말을 하는데, 아주 멋졌어!”
“하하. 팀장님, 제가 언제 유창하게 일본어를 했어요. 알아들은 것이 다행인 수준이었는데요.”
지 팀장이 좋은 의도로 칭찬한걸 알면서도 나는 민망해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호기심 어린 눈을 한 김 책임이 물었다.
“근데 지감 씨, 도대체 일본사람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한 거야?”
“한국에서 국보격에 해당하는 소중한 물건이니까 꼭 팔아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런데도 위탁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셔서 아버지께 부탁을 드렸구요.”
이시하라 가문과 쌍룡검의 비밀은 이시하라 쇼헤이에게 약속한 대로 묻기로 했다. 언젠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 이야기가 전해지길 바라지만, 당장은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은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 같았다.
“지감 씨가 진짜 열일했네. 고생했어. 그런데 말야, 그 일본인은 어떻게 그 쌍룡검을 손에 넣었대?”
“그분의 아버지가 누군가에게서 구매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럼 정확하게 그 사람도 결국 한국에서 어떻게 일본으로 빠져나갔는지는 모르는 거지?”
“그렇죠.”
“도대체 누가 일본으로 쌍룡검을 가져갔을까?”
조용히 술을 마시던 정연주가 대답했다.
“뻔하죠. 뭐. 그 당시 힘 있는 일본인들이나 친일파들 아니겠어요?”
“그렇지. 일제강점기 때 도굴이 엄청 많이 됐으니까.”
“엄청이란 말로도 부족하죠. 도굴한 유물들을 산처럼 쌓아놓고 팔았다고 하잖아요.”
일제강점기 때 문화재 수탈은 상상을 초월한다. 도굴뿐만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옛 절에 있는 다양한 불교 미술품을 싹 쓸어갔다. 김 책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어갔다.
“일본에 숨겨져 있는 우리 문화재가 어마어마할 거야.”
테이블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나라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된 것은 일제강점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문화재보호법이 생기기 전에는 대놓고 문화재가 나갔으며, 문화재 보호법이 생긴 이후에는 밀반출을 통해 많이 나갔다. 숨겨져 있으니 정확한 데이터는 알 수는 없으나, 조금 부풀려서 일본의 어느 평범한 가정에서 국보급 문화재가 나온다 해도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씁쓸해진 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마어마하겠죠. 그중에서 국보급 문화재라도 다 가져오는 날이 올까요?”
지 팀장이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그건 거의 불가능하지. 일단 내놓지를 않잖아. 문화재를 가져오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아. 관리라도 잘됐으면 좋겠어.”
의외로, 선대가 남겨준 문화재를 소중하게 잘 관리하는 집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부모가 준 고미술품을 잘 관리하는 자식들은 드물었다. 애정이 없는 상태에서 까다로운 물건을 제대로 관리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한 고미술품은 빠르게 보존 상태가 안 좋아지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국보급 유물이라 해도 적절한 관리 없이는 그 빛을 잃어버린다. 돌아올 기약 없는,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문화재가 부디 무사하기만을 바라야 하는 이 상황이 무거운 공기를 만들었다. 그 공기를 털어버리려 지 팀장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이거 나 때문에 괜히 분위기가 심각해졌네.”
“아닙니다. 꼭 필요한 이야기인데요.”
내내 대화에서 빠져 있었던 강민수가 끼어들었다. 말할 때마다 저렇게 아부를 하는 것을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 딸랑이가 입에 달려있는 것이 분명하다. 픽 웃은 지 팀장이 맥주잔을 올렸다.
“무거운 이야기는 털어버리고 오늘 토할 때까지 마시자!”
“와우!”
“좋아요!”
팀원들이 모두 맥주잔을 들었고 허공에서 잔이 부딪혔다. 꿀꺽꿀꺽 맥주를 마시는 소리가 테이블에 퍼졌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강 회장의 비서실장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재빠르게 핸드폰을 가지고 일어나 구석으로 갔다.
“네. 비서실장님.”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결정은 하셨습니까?”
[네. 회장님께서는 기부하시로 하셨습니다.]
입꼬리가 자연히 올라갔다. 강 회장에게 쌍룡검이 낙찰된다면 국립박물관에 기증될 것이고, 쌍룡검은 100년 만에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겠습니다. 회장님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것이니만큼, 앞으로 한 선생님이 더 신경을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나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돌아왔다. 내 표정을 본 강민수가 떠보듯이 말했다.
“무슨 전화였어요?”
“친구에게서 온 전화요.”
“아닌 것 같은데 말 좀 해 줘봐요.”
친한 척하는 강민수의 태도가 불쾌함을 넘어 소름끼쳤다. 결국 나는 선을 확실히 긋는 의미로 정색했다.
“맞아요. 친구.”
“아…… 그래요.”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김현아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고미술 팀에서 일하는 것도 이번 주가 마지막이죠?”
“시간이 정말 빨라요.”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나는 맞장구쳤다. 다행스럽게 강민수도 합류했다.
“이제 인턴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어요. 지감 씨는 인턴 빨리 끝났으면 좋겠죠?”
“네?”
“워어낙 실적이 대단하잖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감 씨는 붙겠죠.”
불편함을 접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강민수는 순수하게 나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었다. 빈정거리는 묘한 어투가 꼭, 그 정도 실적을 냈는데도 못 붙는 건 등신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기분이 상했지만 이 상태를 드러내는 것은 강민수에게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느낌이다.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이니 말이다. 나는 그동안 갈고닦은 연기력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실적만이 평가의 잣대는 아니니까요.”
“실적만큼 중요한 다른 것이 있어요?”
“실적이 아무리 좋다 한들 인성이 좋지 않으면 힘들죠. 결국 사람을 대하는 일인데요. 그런 면에서 민수 씨가 부러워요. 인성은 정말 좋잖아요.”
나는 일부러 ‘은’이란 단어에 힘을 주었다. 내 말의 의도를 알아들은 강민수는 순간적으로 미간을 구겼지만 이내 웃었다. 나도 강민수도 웃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스파크가 튀었다. 강민수 앞이라 자신 있는 척했지만 사실 나는 지금 위험하다. 쌍룡검 때문에 경매 팀의 수장 김도균에게 완전히 찍혔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온라인 팀에서 실력으로 나를 보여서 강민수를 누르고 반드시 정직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