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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온라인 팀 (1) (83/226)

83화 온라인 팀 (1)2021.06.12.

지 팀장이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말했다.

1656026785598.jpg“지감 씨. 같이 일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정말 아쉽다.”

16560267855985.jpg“저야말로 팀장님과 일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늘은 온라인 팀으로 자리를 옮기는 날이었다.

1656026785598.jpg“온라인 팀 간다고 모른 척하면 안 돼.”

16560267855985.jpg“제가 어떻게 팀장님을 모른 척하겠습니까.”

넉살 좋게 대답하는 나를 보면서 지 팀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짐을 가지고 유리문 가장 가까이 있는 온라인 팀으로 옮겼다. 강민수와 김현아까지 오자 이 팀장은 온라인 팀의 민 책임과 최요한을 보고 말했다.

16560267855999.jpg“인사하지.”

여행 작가 분위기를 풍기는 민 책임은 부드러운 인상에 여유로워 보였다. 경매팀에서 유일하게 책임 직위에 있는 여자이다 보니 움츠러들 만도 한데,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16560267856004.jpg“민여름 책임이에요.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나 물어보세요.”

16560267856004.jpg“최요한입니다! 함께 힘내서 재밌게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아.”

장난기 어린 최요한의 표정은 경환을 떠올리기 충분했다. 서글서글한 눈매가 어디서나 잘 어울리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나를 비롯한 인턴들은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사실 2개월 동안 함께 사무실에서 지냈기에 얼굴과 이름을 이미 익히고 있었지만, 팀을 옮기고 치르는 하나의 절차였다. 김현아를 마지막으로 자기소개가 끝나자 이 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16560267855999.jpg“동기들에게 온라인팀에 대한 이야기를 웬만큼 들었을 테지만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온라인 팀에서는 기본적으로 오백만 원 이하의 미술품을 판매합니다.”

온라인 경매의 미술품은 현장에서 직접 이루어지는 경매보다 기본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미술품으로 세팅된다.

16560267855999.jpg“애초에 온라인 경매가 생긴 목적 자체가, 기존에 옥션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아닌 새로운 고객들을 유입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현재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수입원이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그 맛을 안다고 했다. 처음부터 몇천, 몇억이 되는 미술품을 사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몇십만 원대의 미술품을 구매하면 그 이후 몇백만 원대의 미술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시간이 흘러 몇천, 몇억대의 미술품도 구매할 수 있다. 예전에 한번 서정선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16560267856021.jpg‘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였던 사람들이 인테리어 포스터를 걸고, 그게 마음에 들면 판화를 건다. 거기에서 효과를 본 사람들이 원화를 건다.’

  온라인 경매는 인터리어 포스터를 건 이후 그림을 벽에 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또한 현재는 오백만 원 이하의 저렴한 작품들을 다루고 있지만, 앞으로 그림을 온라인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높아지면 더 고가의 작품들을 다룰 수 있다. 이 팀장은 인턴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말을 이어갔다.

16560267855999.jpg“한 달에 한 번 온라인 옥션을 엽니다. 이번 달은 이미 했고, 이제 내년 1월에 있을 온라인 옥션을 준비해야 합니다. 내년이라고 하니 한참 남아있을 거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3주 뒤에 경매가 열립니다. 프리뷰 1주일, 감정 1주일 정도를 제외하면 위탁 신청을 받을 시간은 1주일밖에 없습니다.”

‘위탁’이라는 단어를 들은 팀원들은 긴장했다. 다시 위탁에 뛰어들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긴장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나에게 위탁은 또 다른 기회이기도 했다. 월등한 수치로 내가 탑 옥션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긴장한 팀원들의 표정을 보면서 이 팀장이 빙그레 웃었다.

16560267855999.jpg“그렇다고 그렇게 얼어붙을 필요는 없습니다. 온라인 위탁을 위해서 뛰는 건 우리 팀뿐만 아니라 회사 전 직원들도 마찬가지이니 말입니다. 1월 온라인 경매, 멋지게 치러 봅시다!”

16560267878436.jpg“네!”

16560267878436.jpg“열심히 하겠습니다!”

흐뭇한 미소를 지은 이 팀장이 자리에 앉자 다른 팀원들도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나도 자리에 앉아 머리를 굴리려는데 옆자리에 있는 강민수가 쓰윽 얼굴을 디밀었다.

1656026787845.jpg“위탁 어떻게 받을 계획이에요?”

입꼬리는 분명 웃고 있지만 눈은 나를 간파하려 들고 있었다.

16560267855985.jpg“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죠. 민수 씨는 계획 짜 놨어요?”

1656026787845.jpg“몇몇 분들께 연락을 해 놓긴 했어요. 오늘부터 돌아봐야죠.”

예전에 노골적으로 자신을 자랑하더니 지금은 뉘앙스만 풍긴다. 이제 좀 내가 견제할 만한 상대로 보이는 모양이다.

16560267855985.jpg“네. 수고하세요.”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아 나는 싱긋 웃고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강민수가 하는 것보다 더 결과를 내고 싶다. 컴퓨터 화면에는 내가 여태까지 골동상으로 일하면서 거래한 손님 명단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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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미술, 근현대미술 상관없이 오백만 원 이하의 미술품을 위탁해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여태까지 내가 상대한 손님은 기본 천만 원 이상의 미술품들을 사는 사람이다. 오백만 원 이하의 미술품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렇게 걸려버릴지 몰랐다. 그래도 잘 찾아보면 한 사람은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애석하게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허덕거리며 탈출구를 찾고 있는 그때, 강민수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1656026787845.jpg“고객 만나고 오겠습니다.”

16560267878436.jpg“잘 다녀와요.”

팀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강민수는 사무실을 떠났다. 겉으로는 나도 웃고 있었지만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빨리 위탁받을 수 있는 고객을 찾아내야 한다. 고객 명단을 내팽개치고 나는 핸드폰 주소록을 보았다. 거래하지 않았어도 만났던 사람들 중에 분명히 물건을 줄 만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다르게 손님 명단과 같은 이름들이 주소록에서도 중복되었다. 어쩌다 다른 이름이 나오면 초중고대 동창 같은 미술품과 전혀 상관없는 이름들이었다. ‘ㅈ’까지 나오자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ㅊ’에 들어섰을 때 눈에 띠는 이름이 있었다.

16560267855985.jpg“그래. 최석훈 교수……!”

그는 유물을 도난당하고 다시 찾은 이후 나에게 소상팔경도를 선물했다. 그 집에는 유물이 아주 많았지만 대부분 오백만 원 이하의 유물들이었다. 문제는 최석훈이 유물을 많이 아낀다는 데에 있었다. 그에게 유물은 거의 자식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위탁을 당연히 거절하지 않을까 하면서도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받는 소리와 거의 동시에 반기는 목소리가 들렸다.

16560267856004.jpg[지감 씨! 어쩐 일이에요?]

16560267855985.jpg“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어요. 잘 지내세요?”

16560267856004.jpg[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지감 씨, 안 그래도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 만날 수 있을까요?]

이게 웬 떡이야.

16560267855985.jpg“그럼 당연하죠. 제가 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16560267856004.jpg[아니에요. 내가 부탁하는 입장인데 가게 쪽으로 갈게요.]

16560267855985.jpg“마침 제가 집 근처에 갈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16560267856004.jpg[그래요. 집에서 2시쯤 볼 수 있을까요?]

16560267855985.jpg“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면서 중얼거렸다.

16560267855985.jpg“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면 알겠지.”

자식 같은 유물이라 해도 돈이 필요해진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의 변화가 있길 바랐다. 그런데 부탁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했다. * 강정휘가 씩씩거리며 소파에 푹 기대어 앉은 김 비서를 노려봤다.

16560267932078.jpg“이렇게 앉아 있을 시간이 있으면 당장 나가서 안경 벗는 법을 알아오란 말이야!”

16560267932083.jpg“귀청 떨어지겠습니다.”

김 비서가 인상을 찌푸리며 귀를 팠다. 이제 김 비서는 강정휘 앞에서 자세를 낮추지 않았다. 그런 태도에 강정휘는 열이 받을 때로 받았지만, 김 비서는 지금 강정휘가 가진 유일한 패였기 때문에 화를 간신히 삭였다.

16560267932078.jpg“약속한 한 달이 다 갔어. 근데 아직도 안경 벗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돼?”

16560267932083.jpg“아직 며칠 남았습니다. 그리고 한지감하고 친해져야 뭘 해볼 거 아닙니까. 아직 경계를 풀지 않았습니다.”

16560267932078.jpg“그럼 경계를 풀도록 만들어! 그게 네놈이 해야 할 일이니까!”

조소가 김 비서의 입가에 스쳤다.

16560267932083.jpg“누가 보면 선입금이라도 해준 줄 알겠습니다.”

16560267932078.jpg“안경 벗는 방법을 알아내면 당장 오억 입금해 준다고 했잖아!”

16560267932083.jpg“계약금 명목으로 한 푼도 주지 않은 분이 너어무 당당하십니다.”

16560267932078.jpg“하……! 지금 지나치게 당당한 건 김 비서 너야!”

순간 김 비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16560267932083.jpg“그렇게 제가 마음에 안 드시면 이쯤에서 접도록 하죠.”

16560267932078.jpg“이런……!”

강정휘는 욕지거리를 하려다가 이를 악물며 화를 참았다. 김 비서가 아닌 다른 이를 고용하는 것은 안경을 존재를 홍보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16560267932083.jpg“그럼 접는 걸로 알고 이쯤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강정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16560267932078.jpg“계속…… 계속 진행해……!”

16560267932083.jpg“대표님,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고 나니까 많은 것이 달라 보입니다.”

16560267932078.jpg“무슨 헛소리야?”

강정휘의 말을 무시한 채 김 비서가 말을 이어갔다.

16560267932083.jpg“예를 들면 나를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은 사람하고 일하고 싶지 않다던가, 하는 그런 거요.”

16560267932078.jpg“그래서……?”

16560267932083.jpg“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16560267932078.jpg“뭐!”

눈을 부릅뜬 강정휘를 보면서 김 비서가 싸한 태도를 보였다.

16560267932083.jpg“싫으시다면 어쩔 수 없죠.”

문을 나서려는 김 비서의 뒤통수에 대고 강정휘가 말했다.

16560267932078.jpg“미……미안해…….”

16560267932083.jpg“뭐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요새 귀가 잘 안 들려서.”

16560267932078.jpg“미안하다고!”

16560267932083.jpg“사과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닌 거 같은데요.”

결국 강정휘는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김 비서에게 고개를 숙였다.

16560267932078.jpg“미안합니다.”

그제야 김 비서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16560267932083.jpg“대표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는데, 사과 받아들이죠. 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곧 좋은 소식 가져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김 비서가 휘파람까지 불며 여유롭게 사무실을 떠났고, 강정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목에는 핏대가 섰다.

16560267932078.jpg“오늘 이 모욕은 안경을 차지한 다음에 돌려주지.”

이를 악무는 강정휘였다. * 최 교수의 집 앞에 도착한 나는 바로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예전에는 없었던 보안 시스템이 눈에 들었다. 도난 사건 이후 단 모양이다. 초인종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면서 최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16560267856004.jpg“지감 씨, 바쁠 텐데 이렇게 오게 해서 미안해요.”

16560267855985.jpg“아닙니다. 마침 근처에 약속이 있던 터라 잠깐 들른 건데요.”

16560267856004.jpg“그래도요.”

집 안으로 들어서니 빼곡이 집안을 채운 유물들이 보였다. 청화백자, 분청사기, 노안도, 책가도, 반닫이 등등 다양했다. 오백만 원 정도 되는 유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유물들을 위탁받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최 교수는 나를 부엌으로 안내하더니 차를 대접했다.

16560267856004.jpg“지감 씨는 그동안 잘 지냈어요?”

16560267855985.jpg“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가게를 그만두고 탑 옥션이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16560267856004.jpg“탑 옥션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경매회사잖아요. 정말 대단하네요.”

16560267855985.jpg“인턴이라서 아직은 이런 이야기 민망하네요.”

16560267856004.jpg“인턴도 아무나 하나요. 듣기로 탑 옥션은 들어가기 어렵다면서요.”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16560267855985.jpg“운이 좋았죠.”

16560267856004.jpg“이런 인재를 얻다니, 탑 옥션이 운이 좋은 것 같은데요.”

16560267855985.jpg“기분 좋은 칭찬이네요. 근데 부탁하실 일이라는 것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16560267856004.jpg“아…… 지감 씨에게 이런 부탁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교수 모임에서 친하게 지내는 한 분이 현대화를 판매하려고 하거든요. 이 그림이에요.”

핸드폰을 꺼낸 최 교수가 사진을 보여주었다. 검은 색 작은 점에서 시작해서 색색깔의 원이 점점 커지는 그림이었다. 옥션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스타일의 그림이다. 십중팔구 옥션에서 거래되는 작가는 아닐 확률이 컸다. 옥션에서 거래되는 작가는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옥션의 문턱을 넘기란 쉽지 않으며, 어렵게 그 문턱을 넘었다고 해도 유찰이 이어지면 더 이상 그 작가는 다루지 않는다.

16560267855985.jpg“작가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메시지를 뒤진 최 교수가 말했다.

16560267856004.jpg“우수정 작가입니다.”

역시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16560267855985.jpg“사진 보내 주세요. 친한 동생이 갤러리를 다녔는데, 판매할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6560267856004.jpg“정말 고마워요. 지감 씨에게는 늘 신세만 지네요.”

16560267855985.jpg“신세랄 것이 있나요. 정 나중에 혹시 유물들 판매할 생각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16560267856004.jpg“말씀은 고맙지만 저에겐 자식 같은 녀석들이라. 나중에 판매할 생각이 들면 꼭 지감 씨에게 연락할게요.”

아쉬웠지만 현재 판매할 생각이 없다는 사람에게 판매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16560267855985.jpg“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이제 그만 일어나 봐야겠어요.”

16560267856004.jpg“아이구. 이거 내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네요.”

16560267855985.jpg“그런 말씀 마…….”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최 교수의 뒤에 걸려있는 노안도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 3,000,000원 | 진 | 5,000,000원 | 1920년대 | 처분 가능성 높음 ] 처분 가능성이 높다고? 왜 갑자기 메시지가 바뀌었을까. 그리고 처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은 도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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