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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우수정 작가 (5) (90/226)

90화 우수정 작가 (5)2021.06.28.

불안해하면서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액정에 김도균의 이름이 떠 있었다. 나는 의아해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16560270334425.jpg“네. 총괄님.”

16560270334432.jpg[내정가 높게 책정하죠.]

갑작스런 김도균의 제안에 나는 놀라는 한편 의심을 품었다.

16560270334425.jpg“진심이십니까?”

16560270334432.jpg[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닙니다. 한지감 씨하고 장난칠 시간도 없어요.]

16560270334425.jpg“어제는 분명히 안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16560270334432.jpg[그럼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꿔서 안 된다고 해 줘요?]

16560270334425.jpg“아…… 아닙니다.”

16560270334432.jpg[얼른 위탁받고 이수지에게 상황 설명하세요. 더 이상 시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16560270334425.jpg“감사합니다!”

  * 나는 이경숙에게 내정가에 대해서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이경숙이 말했다.

16560270334473.jpg“그러니까 한지감 씨 말은, 내정가를 높게 잡아서 낙찰이 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말이죠?”

16560270334425.jpg“네.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모님께서는 좀 더 천천히 상황을 도 교수님께 설명하실 시간을 얻으실 겁니다. 그때까지 외부에 사모님에 관한 이야기가 오픈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구요.”

이경숙이 조심스레 말했다.

16560270334473.jpg“하지만 아무리 내정가를 높게 잡는다 해도, 여전히 낙찰될 가능성은 남아있는 거죠?”

16560270334425.jpg“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내정가를 높게 잡아도, 응찰자가 비싼 가격을 주고서라도 살 생각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만다 우의 유작이라면 원하는 사람들이 많을 터이니, 낙찰될 가능성이 낮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경숙의 얼굴을 보고 천천히 말했다.

16560270334425.jpg“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16560270334473.jpg“미안해요. 모든 걸 고민해서 이렇게 제안해준 건데…….”

16560270334425.jpg“아닙니다. 괜찮습니다.”

16560270334473.jpg“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물어봐도 돼요?”

16560270334425.jpg“옥션과 사모님이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한 것뿐입니다.”

16560270334473.jpg“그렇군요.”

힘겨워하는 이경숙을 보다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16560270334425.jpg“시간을 오래 드리지는 못합니다. 지금 이수지 관장에게 계속 시달리는 입장이라서요. 오늘 점심시간 전까지는 결정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16560270334473.jpg“……알겠어요.”

인생이 달린 중요한 결정에 대해 이렇게 재촉해야 하는 입장이라 미안했다. * 근무 시작 시간 20분 전에 도착한 정다영은 불안하게 유리문을 바라봤다. 곧 이수지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어제 다행스럽게도 정다영은 불려가지 않았지만, 오늘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불려 가면 무조건 모른다고 해야지, 정다영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더러운 이수지의 성격을 감내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터였다. 진상 응대에 최적화된 김도균조차도 이수지는 버거운 듯했다.

16560270399856.jpg“하아…….”

얕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다 그만 서정선과 눈이 딱 마주쳤다.

16560270399861.jpg‘힘내. 다영 씨.’

서정선이 입모양으로 응원했고, 그 마음이 고마워 정다영은 싱긋 웃었다. 그러다 무언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언제 왔는지 김도균이 세상 무서운 얼굴로 응시하고 있었고, 놀란 정다영은 움찔했다. 낮은 목소리로 김도균이 말했다.

16560270399868.jpg

16560270334432.jpg“서 팀장, 잠깐 회의실에서 보죠.”

16560270399861.jpg“지…… 지금요?”

당황스러워하는 반응에도 김도균은 완고했다.

16560270334432.jpg“네. 지금 당장이요.”

16560270399861.jpg“네. 총괄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서정선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고, 정다영은 직감했다. 그녀의 성격상 이수지 대응책을 자신과 공유했단 사실을 금방 털어놓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는…….

16560270399856.jpg“내가 끌려가는 거겠지……?”

잠시 후, 퀭해진 서정선이 회의실에서 나와 정다영을 불렀다.

16560270399861.jpg“다영 씨. 잠깐만.”

슬픈 예상은 항상 틀리지를 않는다. 정다영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김도균이 날카로운 눈으로 정다영을 봤다.

16560270334432.jpg“이수지 관장 대응책을 이미 들으셨다고요?”

16560270399856.jpg“네…….”

김도균에게 먼저 들킬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기에, 정다영은 고양이 앞에 쥐처럼 주눅이 들었다. 푹, 김도균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16560270334432.jpg“하아……. 이래서 이수지 관장을 어떻게 속일 겁니까?”

16560270399856.jpg“하…… 할 수 있습니다.”

정다영의 반응이 탐탁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16560270334432.jpg“정다영 씨. 절대 이수지 관장에게 정다영 씨가 그림의 행방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돼요. 알겠어요?”

16560270399856.jpg“네. 걱정하지 마세요.”

꿀꺽 마른 침을 삼킨 정다영이 믿어달라는 듯 눈을 크게 떴지만 김도균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16560270334432.jpg“나가 보세요.”

16560270399856.jpg“네.”

그렇게 정다영은 자리로 돌아왔고, 박도희가 조심스레 물었다.

16560270429563.jpg“뭐 때문에 불려간 거예요?”

16560270399856.jpg“이제 인턴 기간 얼마 안 남았잖아. 돌아가면서 면담하는 모양이던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박도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16560270429563.jpg“그렇구나……! 뭐 물어보셨는데요?”

16560270399856.jpg“그냥. 3개월 동안 어땠는지, 어떤 팀과 가장 잘 맞았는지 그런 거 물어보셨어.”

16560270429563.jpg“미리 대답 연습해야겠네요오. 언니 고마워요!”

16560270399856.jpg“뭘.”

정보를 얻었다고 신나하는 박도희를 보니 양심이 콕콕 찔렸다. * 12시쯤 되었을 때 김도균이 전화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16560270334432.jpg“네. 관장님. 지금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이수지가 도착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입안이 바싹 타들어가는 기분이다. 사무실로 들어선 이수지가 회의실로 향하면서 쓰윽 정다영을 훑어봤다. 바로 지금부터 연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정다영은 본능적으로 느꼈고, 일어서서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어제 이수지가 난리치는 것을 이미 본 상황에서 해맑게 ‘나 아무것도 몰라요.’ 전략을 쓰는 것은 먹혀들지 않을 거라 계산했다. 아는 것이 없지만 이 상황이 어색한 그 정도의 느낌이어야 했다. 정다영은 이수지가 그냥 자신을 지나치기 바랐지만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앞에서 걸음을 멈춘 이수지가 김도균에게 말했다.

16560270459332.jpg“정다영 씨도 회의실에서 봤으면 해요.”

16560270334432.jpg“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김도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의아하게 물었다.

16560270459332.jpg“한지감 씨랑 친하잖아요.”

16560270334432.jpg“네. 알겠습니다. 다영 씨, 따라와.”

16560270399856.jpg“네.”

회의실에는 적막이 흘렀다. 이수지는 매서운 눈빛으로 김도균, 이 팀장, 그리고 정다영을 돌아봤다.

16560270459332.jpg“한지감 씨에게 아직까지 연락이 안 왔다고 할 작정은 아니죠?”

1656027048646.jpg“안…… 왔습니다.”

이 팀장이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숙였고, 김도균도 답답하다는 어투로 말을 보탰다.

16560270334432.jpg“저희도 정말 답답해 미칠 지경입니다.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알아야 대응을 하는데, 어제부터 감감무소식이니…….”

16560270459332.jpg“그 말은 한지감과 연락이 되면 소장자의 정보를 나에게 넘기겠다는 거죠?”

16560270334432.jpg“저도 그러고 싶지만, 규정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수지가 사나워진 눈으로 김도균을 압박했다.

16560270459332.jpg“그러니까 그 말은, 한지감을 찾아도 나에게 줄 건 없다는 거군요. 제가 1년에 여기서 쓰는 금액이 30억이 넘어요. 저희 아버지까지 합하면 거의 100억 가까이 되는 돈을 탑 옥션에 쓰고 있다구요! 아세요?”

사실 정확하게 탑 옥션이 낙찰자에게 가져가는 돈은 낙찰금액의 15%였다. 하지만 탑 옥션이 중개 역할을 하기에, 고객은 그 돈을 탑 옥션에 전부 냈다는 느낌을 갖는다. 여기서 ‘저희는 낙찰금액 15%만 구매 수수료로 가져갑니다’라고 대답하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기 때문에, 김도균은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16560270334432.jpg“정말 죄송합니다. 관장님. 저희도 알려드리고 싶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16560270459332.jpg“어쩔 도리가 있는지 없는지는 한지감부터 내 앞에 데려다 놓고 말하시죠.”

이수지는 물러서지 않고 이를 악문 채 말하면서 정다영을 봤다.

16560270459332.jpg“정다영 씨는 알지? 한지감 씨가 어디에 있는지.”

16560270399856.jpg“제…… 제가요……?”

16560270459332.jpg“두 사람 친하잖아.”

16560270399856.jpg“친한 건 사실이지만, 어제부터 연락이 안 돼요……. 정말이에요.”

맑은 정다영의 눈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수지는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놓은 척했다.

16560270459332.jpg“친한 사이여도 연락이 안 될 수 있지.”

16560270399856.jpg“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다영이 안도의 한숨을 쉴 때, 이수지의 기습적인 질문이 들어왔다.

16560270459332.jpg“그래도 말은 들었지? 아만다 우의 유작에 대해서 말이야.”

16560270399856.jpg“한국의 바스키아로 불리는 아만다 우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인 듯 되물었지만 이수지는 흔들림이 없었다.

16560270459332.jpg“그래. 그 아만다 우. 한지감이 말했잖아.”

으르렁거리는 듯한 이수지의 목소리는 무엇을 알아낸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낚시일까. 아니면 정말 하루 만에 무언가를 알아낸 것일까. 낚시라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해야 하고, 무언가 알아낸 거라면 알고는 있지만 그 정도가 깊지는 않단 입장으로 가야 한다. 정다영은 첫 번째 입장을 취하기로 했다.

16560270399856.jpg“아만다 우의 유작이 나왔다구요? 있다고 소문을 들었지만 한 번도 보지는 못했어요.”

16560270459332.jpg“아하.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시겠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아!”

이수지의 눈에서 불꽃이 튀어올랐다. 아무래도 잘못된 입장을 선택한 모양이다. 회의실을 뒤집어 놓을 기세로 이수지가 벌떡 일어났고, 김도균이 나서서 그녀를 말렸다.

16560270334432.jpg“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16560270459332.jpg“내가 지금 차분하게 생겼어! 사람을 이렇게 바보로 만드는데!”

그때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한지감이 들어왔다.

16560270334425.jpg“여기 누구도 관장님을 바보로 만든 사람 없습니다.”

16560270459332.jpg“한지감, 이제 얼굴을 보네!”

독이 든 두꺼비처럼 씩씩거리며 이수지가 한지감을 노려봤다. 그러나 한지감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분하게 굴었다.

16560270334425.jpg“일이 있어서 그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16560270459332.jpg“죄송? 이게 죄송이란 말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야!”

한지감은 말없이 고개를 조아렸지만 그것이 쇼로 보이는지 이수지는 더 불같이 화를 냈다.

16560270459332.jpg“그렇게 죄송하면 아만다 우의 유작 소장자 연락처 대!”

16560270334425.jpg“정말 죄송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16560270459332.jpg“뭐? 그럴 수가 없어? 그래, 그러면 알려주지 마. 네가 아니어도 찾아낼 방법은 많으니까!”

회의실을 나가려는 이수지의 뒤통수에 대고 한지감이 말했다.

16560270334425.jpg“굳이 소장자를 찾아내실 필요는 없으실 것 같은데요.”

16560270459332.jpg“뭐?”

16560270334425.jpg“제가 위탁받았거든요.”

소장자를 찾아내는 것을 멈추게 하려고 한지감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이수지는 의심했다.

16560270459332.jpg“정말이야?”

16560270334425.jpg“네. 위탁받았습니다. 3월에 있는 메이저 경매에 나올 예정입니다. 그러니 쓸데없는 돈을 쓰면서 소장자를 찾는 것은 그만하세요.”

16560270459332.jpg“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왜 어제 오늘 회사에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

16560270334425.jpg“관장님이 이러실 것을 뻔히 알고 있으니까요.”

16560270459332.jpg“뭐?”

이수지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한지감은 평온했다.

16560270334425.jpg“관장님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소장자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해서 위탁받았습니다. 소장자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한지감 씨가 아니라면 얼마를 준다고 하더라도 팔 생각 못했을 거예요.’라고.”

16560270459332.jpg“말이야 다 그렇게 하지. 돈 앞에서는 행동이 달라지지만.”

싸하게 한지감을 보던 이수지가 말을 이어갔다.

16560270459332.jpg“일단 우리 옛정을 봐서 소장자를 찾는 건 그만두지.”

16560270334425.jpg“감사합니다. 관장님.”

16560270459332.jpg“하지만 또 이딴 식으로 내 연락을 무시한다면, 그땐 미술계에서 매장될 각오를 해야 할 거야.”

16560270334425.jpg“죄송합니다.”

이수지는 사과가 끝나기도 전 회의실에서 나가버렸고, 수행원을 비롯한 김도균과 이 팀장이 뒤를 따랐다. 그렇게 회의실에는 한지감과 정다영만 남았다. 한지감은 안도하며 벽에 몸을 기댔다.

16560270334425.jpg“휴우……. 겨우 넘겼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 다리에 힘이 풀린 정다영이 털썩 자리에 앉았다.

16560270399856.jpg“진짜 무슨 일 나는 줄 알았어요…….”

16560270334425.jpg“괜찮냐? 물이라도 갖다줘?”

도리도리 정다영이 고개를 저었다.

16560270399856.jpg“물도 지금 마시면 체할 것 같아요.”

16560270334425.jpg“이수지가 뭘 어쨌길래 그래?”

정다영은 이수지가 방금 전에 무언가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고 말했다.

16560270399856.jpg“하루 만에 뭔가를 알아낸 걸까요?”

16560270334425.jpg“아니. 그러기엔 시간이 촉박해.”

16560270399856.jpg“현성이라면 가능하잖아요.”

16560270334425.jpg“현성 그룹 차원에서 움직였다면 그렇겠지만, 이번 일은 그렇게 그룹을 움직일 급은 아니야. 사람들을 고용해서 찾았겠지.

정다영은 이수지가 화냈던 순간을 떠올렸다.

16560270399856.jpg“그럼 이수지는 떠보기 위해서 그런 걸까요? 하지만 그러기엔 진짜 화가 난 것 같았는데.”

16560270334425.jpg“이수지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어?”

16560270399856.jpg“별일 없었어요.”

16560270334425.jpg“아니,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거야. 혹시 너, 총괄님이나 이 팀장님에게 불려갔어?”

흠칫 놀란 정다영이 한지감에게 물었다.

16560270399856.jpg“어떻게 알았어요?”

16560270334425.jpg“아무래도 경매팀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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