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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애초에 필요한 건 다 지원해 드린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여자 핸드볼 협회 비리 혐의로 검찰 압수수색!]
[이준영 협회장, 횡령과 공금 유용 등 10가지가 넘는 비리를 포착!]
[아시안게임 대표 팀 지원은 하지 않고 호텔 연회장에서 운영비를 펑펑 써댄 여자 핸드볼 협회!]
[최고급 호텔 연회장을 빌려 협회장 취임식을 치른 협회가 대표 팀 회식은 김치찌개 가게에서 벌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고······.]
↳지들은 두당 10만 원짜리 밥을 처먹고 선수들한테는 6천 원짜리 김치찌개라고? 우와, 미친 새끼들!
↳돈 없다고 하면서 뒤로 공금을 다 빼돌렸겠지.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려고 땀 흘리고 있는데 윗대가리라는 것들이 저러고 있으니. 에이!
↳공금 횡령에 취업 청탁까지 아주 비리 백화점이 따로 없네.
일간 스포츠에서 여자 핸드볼 협회의 비리를 터뜨렸다.
이것은 다른 언론사는 물론이고 인터넷 주요 포털과 SNS를 통해 우후죽순처럼 퍼지며 국민들의 커다란 공분을 일으켰다.
태릉선수촌.
협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는 바람에 대표 팀 내부의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해졌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훈련을 멈출 수는 없었다.
대표 팀 선수들은 매일 반복되는 훈련 코스를 밟으며 오늘도 어김없이 체육관에서 땀방울을 흘렸다.
“패스!”
“그래. 미영이가 받고 앞으로 넘겨줘!”
공을 받은 공격수가 진로를 가로막는 수비수들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앞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수비수 한 명과 서로 무릎이 세게 부딪치면서 쓰러졌다.
“악!”
그걸 본 강명구 감독은 바로 연습 경기를 중단시키고는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필드로 뛰어 들어왔다.
“혜인아! 괜찮아?”
“으으······. 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정혜인 선수의 다리를 이리저리 살펴본 대표 팀 닥터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나중에 엑스레이를 찍어봐야겠지만. 다행히 뼈는 이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굳어 있던 강명구 감독의 얼굴에 안도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제 아시안게임도 한 달 남짓밖에 안 남은 상황.
주전 공격수가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정신을 어디에 팔고 있는 거야! 똑바로 집중 안 하지?”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감독님.”
풀 죽은 모습으로 머리를 숙인 선수들의 모습에 강명구 감독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협회 일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어수선한 기분인 건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고 집중해야지. 이대로 지난 몇 달 동안 피땀을 흘리며 준비한 아시안 게임을 망칠 거야?”
“아닙니다!”
“잘못을 저지른 건 너희가 아니라 협회야. 그러니까 다른 곳에 신경 쓰지 말고 대회에만 집중하자! 그것이 대표 팀을 응원하는 다수의 국민들한테 보답하는 길이야. 다들 내 말 알겠지!”
“예!”
“혹시 모르니까 혜인이는 의무실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나머지는 30분 휴식하고 다시 훈련하자.”
강명구 감독은 코치들을 이끌고 선수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코트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선수들은 각자 스포츠 음료를 마시거나 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휴식을 취했다.
“혜인이 괜찮겠죠?”
“뼈가 부러진 건 아니라잖아.”
“그래도 조금 절뚝거리던데.”
“쉬면 나을 거야. 지금 혜인이가 빠지면 곤란해.”
주장인 박소진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안 그래도 마음 심란해 죽겠는데 오늘 영 연습도 안 되네.”
“아, 저 어제 뉴스 봤어요. 우리 협회장 또 나오던데요.”
“아주 전국구로 유명해지셨네. 어쩌면 좋니.”
“그동안 공공연하게 많이 해먹었잖아. 벌을 받는 거지, 뭐.”
나란히 모여 협회장 뒷담화를 하는 선수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야야, 그만해. 아까 감독님 말씀 못 들었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주장이 벌떡 일어나 분위기를 다잡았다.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훈련만 똑바로 하면 돼. 그리고 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움켜쥐는 거야.”
“예, 언니.”
선수들이 한 입을 모아 대답했으나 각자 복잡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천 코치.”
“말씀하십시오.”
“지금 다들 집중을 못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괜히 다치는 일이 없게. 연습 경기는 이만하고 체력 훈련으로 대체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천용찬 코치는 머뭇거리며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 감독님.”
“할 이야기라도 있어?”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 협회장하고 임원들이 아시안 게임 전까지 풀려나긴 힘들 것 같은데. 정말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으음.”
“본선이 시작되기 전에 다른 팀들하고 연습 경기도 해봐야 되는데. 협회가 저 지경이라 제대로 일정도 잡지 못할 것 같고······. 정말 걱정됩니다.”
강명구 감독 역시 걱정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온전히 대회 준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협회가 훼방을 놓고 있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감독인 그마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지금도 협회 때문에 선수들이 불안해하고 있는데 그가 중심을 똑바로 잡아야만 했다.
안 그러면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난파선처럼 침몰해 버릴지도 몰랐다.
강명구 감독은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말했다.
“이대로 아시안 게임을 망치기라도 한다면 비난을 피할 수 없을 테니. 분명 문체부나 대한 체육회에서 뭔가 대책을 세울 거야.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선수들이나 잘 챙겨.”
“하아······ 그렇겠죠? 감독님도 가뜩이나 심란하실 텐데 괜히 이야기 꺼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괜찮다는 듯이 웃으며 천용찬 코치의 어깨를 가볍게 툭 두드렸다.
잠시 담배를 피우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할 때, 실내 체육관 문을 열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재성이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강명구 감독은 화들짝 놀라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
“아니, 본부장님께서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의견을 들을 것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왔습니다. 제가 훈련에 방해가 된 건 아니지요?”
“아. 아닙니다. 마침 휴식 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시선을 돌리자 쉬고 있던 선수들이 주섬주섬 일어나 인사를 했다.
다들 표정이 어두운 것이 한눈에 봐도 대표 팀 분위기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하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할 테지.’
재성은 일부러 선수들도 들을 수 있게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알아보니 선수단 본진과 함께 출국할 예정이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실내경기라고 해도 한국하고 기후도 다른 데다가 시차까지 적응해야 되는데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더군다나 첫날부터 경기가 있지 않습니까.”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지요.”
마음 같아서는 조금이라도 일찍 도하로 가서 선수들이 현지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비행기 티켓부터 숙소까지 작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기에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협회까지 엉망인 상태라서 더욱 기대하기 힘들었다.
“혹시 비용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흐흠. 뭐. 그렇지요.”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얼마가 나오던 필요한 경비는 저희가 대도록 하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강명구 감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정말이십니까?”
황급히 되묻는 말에 재성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원하신다면 다른 나라 대표 팀과 친선 경기도 주선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아니,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머리까지 숙여 보이는 강명구 감독을 향해 웃어 보인 재성이 말했다.
“애초에 필요한 건 다 지원해 드린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입니다.”
재성의 웃는 얼굴을 본 강명구 감독은 든든한 지원군의 등장에 뜨거운 게 울컥 차올랐다.
모든 게 다 힘든 상황에서 재성은 단 하나의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강명구 감독은 진심을 담아 다시 한번 인사했다.
“아직 전해 드릴 소식이 더 남아 있는데 벌써 이러시면 안 되죠.”
입가에 미소를 지은 재성은 한쪽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선수들한테 시선을 주며 말했다.
“그룹에서 금메달을 따게 되면 대표 팀에 30억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순간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다들 눈을 크게 부릅뜬 채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강명구 감독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3······ 30억이라고 하셨습니까?”
“대표 팀 인원이 20명이 채 안 되니까 대충 한 사람 당 1억이 조금 넘게 돌아가겠군요.”
“······!”
정부 포상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상금으로 내건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아시안게임에서 4번 연속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이렇게 많은 포상금이 걸린 적은 처음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선수들이 먼저 환호성을 터트렸다.
“와아아! 30억이라니 대박!”
“역시 대기업은 클래스가 달라.”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열심히 해서 꼭 포상금······ 아니, 금메달을 따겠습니다!”
“최고!”
벌떼처럼 터져 나온 환호에 체육관이 삽시간에 시끄러워졌다.
언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냐는 듯 선수들의 얼굴에 기쁨이 넘실거렸다.
“그리고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는 김에 오늘 회식도 한번 하지요.”
“아이고, 안 그러셔도 됩니다.”
“운동선수들인데 잘 먹어야죠. 회식 메뉴는 한우 스페셜이 어떻습니까.”
“꺄아아, 한우요?”
“감독님 뭐 하세요? 얼른 가겠다고 해야죠!”
“어서요!”
강명구 감독이 입을 떼기도 전에 선수들 쪽에서 말이 쏟아졌다.
“인원이 많아서 식대가 제법 나올 텐데······.”
“하하, 제일 그룹 앞에서 돈 걱정을 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강명구 감독은 할 말이 없어졌다.
하긴 본부장쯤 되는데 법인 카드 한도가 고작 회식비 정도로 거덜이 날 리는 없었다.
물론 다른 것도 아니고 한우인 데다가 여자라도 운동하는 선수들의 먹성을 생각하면 나오는 액수가 만만치 않을 터였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잘 먹도록 하겠습니다.”
재성은 옆에 붙어 있던 권혁재 대리에게 말했다.
“아까 말했던 고깃집에 예약 잡아둬요.”
“옛.”
그날 훈련이 끝낸 대표 팀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약속받았던 대로 최고급 한우 고깃집을 통째로 전세 내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먹었다.
얼마 되지 않아 회식 자리에서 찍은 사진들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출처는 선수들이 개인 블로그나 싸이 월드에 자랑 삼아 올린 것들이었다.
[몇백 년 만에 회식 타임!! 제일 그룹 본부장님이 쏴주는 한우~ 저희 아시안 게임에서 잘하고 올게요! 기대해 주세요!]
↳박소진 선수 응원합니다!
↳와 마블링 쩌네.
↳여러모로 사정이 안 좋을 텐데 다들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여자 핸드볼은 실력이 있음. 저번에도 대회 나가는 족족 메달 따왔음. 그놈의 협회가 적폐다.
↳본부장님, 저도 고기 먹을 줄 아는데.
↳정작 선수들 챙겨야 되는 협회는 김치찌개나 먹이고 반성 좀 해라.
↳한우로 회식 쏘는 제일 그룹 클래스~~!
↳포상금이 30억이라니 통 큰 거 보소.
이걸 본 기자들도 인터넷에 기사를 써서 뿌렸다.
타이틀은 대부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자 핸드볼 대표 팀을 응원하는 거였다.
선수들은 도외시한 채 뒷주머니만 챙긴 협회와 비교되는 건 당연한 일.
비인기 종목인 여자 핸드볼 대표 팀을 후원하는 제일 그룹에 많은 찬사가 쏟아졌다.
우리 백화점도 꿀 좀 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