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수저 생활백서-60화 (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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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네오픽스 (2)

“빨리도 쳐들어왔군.”

“이제 어쩔 거야?”

굳은 목소리로 묻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허인환 대표가 이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차라리 잘됐어.”

“뭐.”

“어차피 한번은 부딪쳐야 되잖아. 질질 시간을 끌며 힘만 빼는 것보다 무슨 꿍꿍이인지. 직접 만나서 확인하는 게 낫지.”

“하아······. 어차피 맞을 매라면 먼저 맞자는 건가.”

이원중은 그가 가장 믿고 신뢰하는 측근 중 하나였다.

그런 이원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자 허인환은 결정을 내리고 문 앞에 있는 비서에게 말했다.

“손님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일단 아래층 회의실로 모셨습니다.”

아직 한창 성장 중인 회사였기에 접객실이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너도 함께 갈 거지?”

“당연하지.”

한편 네오픽스사를 방문한 재성은 심플하게 꾸며진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그리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인테리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회의실이었다.

권혁재 과장은 슬쩍 바깥을 쳐다보다 재성에게 목소리를 낮춰 속닥였다.

“여기 회사 규모가 우리 씨네박스보다 훨씬 작은 것 같은데요. 그렇게 큰돈을 투자해도 괜찮을까요? 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재성은 눈을 굴리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권혁재 과장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말했다.

“회사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는 법은 없죠. 겉모습만 화려하고 속이 텅텅 비어 있는 게 더 문제 아닙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권 과장도 보는 눈을 좀 더 키울 필요가 있어요. 바깥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내실이 탄탄한 곳이 알짜배기니까. 그런 걸 잘 골라야 하거든.”

“그럼 네오픽스가 그런 알짜배기란 말씀입니까?”

재성은 웃으며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앞으로 화수분처럼 계속 내 주머니를 채워줄 겁니다. 든든한 캐시카우가 되는 거죠.”

“허어······.”

“뭐, 일단 두고 봐요. 내 말대로 될 테니까.”

자신감 충만한 재성의 말을 듣고도 권혁재 과장은 여전히 미덥지 못한 표정이었다.

제 눈으로 보기엔 그저 그런 작은 게임 개발회사에 불과한데 그렇게 확신할 만큼 돈 될 만한 걸 가지고 있는지 영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바깥이 조금 시끄러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문이 열리면서 허인환 대표 일행이 안으로 들어왔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요. 오히려 불쑥 찾아왔으니 양해를 구해야 할 쪽은 저희지요.”

재성은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허인환 대표를 맞이했다.

하지만 흠잡을 데 없이 정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허인환 대표를 비롯한 네오픽스 쪽 인사들의 얼굴엔 경계심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허인환 대표는 재성과 권혁재 과장을 슥 훑어보더니 그 옆에 이번 일을 처리하기 위해 고용한 변호사에 시선을 멈췄다.

‘그럼 그렇지.’

변호사를 대동해서 찾아왔겠다?

분명히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거란 생각에 허인환은 마음속으로 벽을 더욱 두껍게 쌓아 올렸다.

“네오픽스 대표인 허인환입니다. 이쪽은 우리 회사 재무담당인 이원중 이사입니다.”

“박재성이라고 합니다.”

이번 인수는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거였기에 의도적으로 씨네박스 부사장이라는 직책을 말하지 않았다.

재성이 그들에게 내민 명함도 회사 것이 아닌 개인 용도로 만든 거였다.

서로 인사가 끝나고 마주 보며 자리에 앉자 허인환이 안경을 고쳐 쓰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클로버사가 가지고 있던 회사 지분을 매입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솔직히 느닷없이 이런 일이 벌어져서 많이 놀라고 당황스럽군요.”

“그러셨을 겁니다.”

“인사를 나누려고 온 건 아닐 테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앞에 있는 재성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회사 지분을 매입한 목적이 뭡니까?”

시선을 받으며 재성이 여유롭게 말했다.

“거액을 들여 지분을 사들인다면 이유는 하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오자 허인환 대표와 이원중 이사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정말로 우리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른 허인환 대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고는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상대를 쏘아봤다.

“어디 마음대로 해보시오. 하지만 과반수가 넘는 주식을 우리가 쥐고 있는 이상 그쪽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겁니다!”

“많이 흥분하신 것 같은데 진정하시죠.”

“먼저 싸우자고 목에다가 칼을 들이대 놓고 그게 지금 할 소리요!”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재성이 말했다.

“정말로 지분 싸움을 벌인다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되지 않겠소.”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결국 대표님과 함께 창업하신 분들한테 남는 건 쓰라린 패배뿐이겠지요.”

“말씀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이원중이 발끈하며 나섰다.

그러나 재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히 말을 계속했다.

“현재 거래되는 가격보다 비싸게 프리미엄을 얹어서 공격적으로 주식 매집을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요?”

“······.”

“돈 싸움을 하겠다면 얼마든지 받아줄 자신이 있습니다.”

재성의 말에 그들은 분한 표정만 지은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제일 그룹이라는 뒷배경이 있었기에 단순한 협박으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만약 협상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적대적 인수합병을 벌일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어차피 결과가 뻔한테 굳이 서로 힘을 빼며 싸울 필요는 없지 않겠냐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괜히 얻어터지지 말고 순순히 회사를 내놔라 이거요?”

날을 세우며 쳐다보자 재성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러자 허인환 대표가 콧방귀를 꼈다.

“흥. 그쪽한테만 좋은 거겠지.”

“싸울 때 싸우더라도 제안은 한번 들어보시죠. 그런다고 손해 보실 일은 없지 않습니까.”

이원중하고 시선을 교환한 허인환 대표는 팔짱을 끼며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어디 한번 해보시오.”

재성이 눈짓하자 옆에 있던 권혁재 과장이 가방에서 서류를 한 장 꺼내 내밀었다.

“작년 한 해 총매출액 448억에 영업이익은 331억을 달성했더군요. 얼핏 나쁘지 않은 실적이지만 하나하나 자세히 확인해 보면 그렇지가 않죠. 기대를 걸었던 온라인 야구 게임이 후발 주자들한테 밀려 사용자가 크게 줄어든 데다가. 설상가상 일본 업체에 소송까지 걸려 있어 난감한 상황이죠.”

아픈 곳을 찌르자 두 사람은 침음성을 흘렸다.

“거기다가 새로 진행 중인 게임 개발 역시 벌써 1년 넘게 지지부진하고 말입니다. 사실상 매출 대부분을 던전 워 하나에 의존하고 있는데, 속속 경쟁 게임들이 나오고 있어 이마저도 언제 추격을 당할지 몰라 불안한 처지죠. 이런 답답한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결국 네오픽스는 경쟁 업체에 밀려 도태되고 말 겁니다.”

“으음.”

“끄으응.”

네오픽스 경영진 역시 고민하던 부분이었다.

“이대로 주저앉지 않고 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선택과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 역할을 그쪽이 할 수 있다는 겁니까?”

이원중의 물음에 재성은 기다렸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충분한 복안과 자금을 가지고 있다 자부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충분한 자금력이란 말에는 두 사람 다 반박하지 못했다.

무려 제일 그룹의 3세이니 아무렴 돈은 차고 넘치겠지.

“그리고 회사를 인수하면 소유만 할 뿐 직접 경영에 손을 대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그럼······?”

살짝 기대 섞인 시선에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능하다면 현 경영진에게 충분한 자율권을 주고 회사를 맡길 겁니다.”

회사를 집어삼키면 당연히 자신들을 쫓아낼 거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애착 어린 회사를 계속 키워가면서 지분을 판 자금으로 하고 싶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 수도 있으니. 이 정도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

이야기를 모두 들은 허인환 대표와 이원중 이사는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자신들이 창업한 회사였기에 당연히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예전 세대와 달리 회사를 끝까지 자신이 소유해야 된다고 집착하진 않았다.

이해관계만 맞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면 얼마든지 팔 수 있었다.

무엇보다 거액의 주식 매각 대금을 손에 쥐고 다른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에 솔깃해졌다.

‘실제로도 내년을 넘기지 않고 대형 게임사에 회사를 매각하지.’

그걸 알기에 더욱 과감하게 인수에 나설 수 있었다.

살짝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자 거부하기 힘든 마지막 패를 던졌다.

“지분을 판다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주당 40만 원을 쳐주도록 하죠.”

“······!”

화끈한 베팅에 두 사람 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당 40만 원이라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장외 시장에서 거래되는 네오픽스 주식의 평균 가격이 17만 원 선이었다.

그런데 40만 원이라니 무려 두 배가 훌쩍 넘는 액수였다.

허인환 대표와 나머지 주주들의 지분이 56%니까 어림잡아 3천억에 가까운 거액을 베팅하는 거였다.

매출액이 5백억도 안 되는 회사를 수천억이나 주고 사겠다니?

그들은 순간 재성이 미쳤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최고의 제안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허인환 대표는 이원중과 시선을 교환했다.

서로 눈동자에 경악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조건을 들고 나올 줄은 설마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잠시만······. 저희끼리 얘기할 시간이 필요합니다만.”

떨리는 목소리가 한심스러웠다.

허인환 대표는 혹시나 상대의 얼굴에 비웃는 표정이 떠올라 있을까 봐 두려웠으나 재성은 여전히 깍듯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이죠.”

재성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허인환 대표는 이원중과 함께 황급히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제안을 받아들일까요?”

문이 닫히자마자 숨을 죽이며 협상을 지켜보던 권혁재 과장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재성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여유롭게 대답했다.

“알려지면 호구 소리를 들을 만큼 파격적인 제안을 했으니 그걸 거부하진 못할 거예요.”

“하긴 저 같아도 눈이 돌아갈 만한 액수이긴 합니다.”

함께 있던 변호사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너무 비싸게 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금방 투자한 돈 이상으로 수익을 뽑아낼 자신이 있었기에 상관없었다.

허인환 대표가 나간 회의실 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재성이 말했다.

“만약 제안을 거절할 때는 곧장 적대적 인수합병에 들어가면 돼요.”

주당 40만 원을 내걸고 주식 공개매수에 나선다면 주주들 대부분이 가진 지분을 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과반수를 손에 넣고 경영권을 확보하면 허인환 대표도 굴복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물론 거기까지 가는 건 재성도 원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슬슬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지려고 할 때쯤 자리를 비웠던 허인환 대표와 이원중이 돌아왔다.

“결정은 내렸습니까?”

재성의 물음에 허인환 대표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시죠.”

“먼저 현 경영진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말이 정말입니까?”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고 본인이 원한다면 계속 일하게 될 겁니다.”

“따로 문서로 약속해 줄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단 임기를 명시하는 안전장치는 해둬야 되겠죠.”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었기에 허인환 대표와 이원중이 머리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지금 있는 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해 줄 수 있습니까?”

민감한 문제였지만 게임업체의 핵심은 개발 인력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3년간 고용 보장을 하고 그 이후로도 아무런 사유 없이 직원을 해고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망설임 없는 대답에 허인환 대표는 나란히 앉은 이원중과 짧게 귓속말을 나눴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인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던 대답이 나오자 재성은 상대의 손을 맞잡으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대출을 좀 받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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