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수저 생활백서-102화 (10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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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뭐가 이렇게 많아.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랙 회장이 말했다.

“난 워싱턴 포스터를 매물로 내놓은 적이 없소.”

“알고 있습니다.”

“그럼 더 질이 나쁘군. 매물로 내놓지도 않은 걸 팔라고 하다니 무례하다곤 생각하지 않소?”

그랙 회장의 딱딱한 말투에 방금 전까지 좋았던 분위기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유스티치아의 눈동자를 써서 조금 전부터 상대의 속마음을 훤히 다 들여다보던 재성이었다.

지금의 말은 그를 떠보기 위해서임을 알았기에 차분한 태도로 말을 받았다.

“글쎄요. 전 오히려 회장님께 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자 그랙 회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아직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종이 신문의 몰락이 멀지 않았다는 걸 회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랙 회장이 얼굴을 찌푸리고는 살짝 언성을 높였다.

“다른 영세한 신문사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우리 워싱턴 포스트는 끄떡없소.”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소.”

대답을 들은 재성은 노골적으로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랙 회장님께서는 사리 판단이 빠르고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잘못 판단했나 봅니다.”

“뭐요?”

그랙 회장의 눈썹이 확 치켜 올라감과 동시에 도널드 변호사도 불쾌한 듯 쳐다보았다.

“말씀이 너무 심하신 것 같군요.”

옆에서 데이비드의 걱정스런 시선 또한 느껴졌다.

하지만 재성은 아무런 동요 없이 그랙 회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난 몇 년간 거액의 적자가 계속해서 쌓이고 신문 발행부수마저 큰 폭으로 줄어들어 경영난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오래지 않아 전국에 신문을 발행하는 것조차 힘들어지실 텐데요.”

날카로운 지적에 그랙 회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야. 내부적으로 전국 발행 중단을 검토 중이란 걸 이자가 어떻게 알았지.]

그는 혹시 정보가 유출되었나 하는 의혹을 품었다.

스킬 카드의 효과로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하는 말이라는 건 당연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 동부, 거기서 더 줄어들어 워싱턴 DC와 주변 지역에만 신문이 발행된다면 과연 그때도 지금 같은 위상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요? 전 힘들 거라고 봅니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국 발행을 포기할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오.”

그랙 회장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듯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한때 매일 100만 부 이상을 찍어냈었지만 이제는 60만 부를 겨우 턱걸이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불황까지 겹쳐 돈을 내고 신문을 구독하는 가입자 숫자가 더욱 줄어들겠지요.”

“······.”

“발행부수 축소는 다시 또 광고 수익 하락이라는 악순환으로 연결돼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 겁니다.”

워싱턴 포스트 경영진들의 고민을 재성이 날카롭게 꼬집자 그랙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낮은 침음성을 내뱉었다.

“결국에는 그저 그런 지방신문사로 전락한 채 옛 영광을 추억하는 신세가 되어버리겠죠.”

그 역시 우려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약점을 찔린 듯한 기분에 그랙 회장은 일부러 비꼬는 말투로 물었다.

“그렇게 미래가 어둡다면 왜 우리 신문을 인수하려는 거요? 말만 들어보면 괜한 헛짓거리를 하려는 것 같소만.”

그럴듯한 말로 좋게 포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명분보다는 실리를 더 추구하고, 무엇보다 회사를 팔려는 의향이 있다는 걸 속마음을 통해 알았기에 직설적으로 대답하기로 했다.

그 전에 앞서 사용한 페이토 여신의 축복 스킬 카드 효과가 이미 다 사라진 상태였기에 다시 한번 꺼내 썼다.

황금색 빛무리와 함께 그랙 회장의 머리 위에 호감도 상승이라는 메시지창이 뜨는 걸 확인하곤 입을 뗐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원하는 건 워싱턴 포스트 소유주라는 간판입니다.”

“······!”

“앞으로 미국에서 활동할 일이 많은데 이런저런 제약과 불편한 것들이 많더군요.”

그랙 회장은 재성이 말하는 뜻을 바로 알아차렸다.

옆에서 도널드 변호사 역시 괜히 헛기침을 내뱉으며 슬쩍 시선을 옆으로 피하는 것이 보였다.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미국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뿌리 깊이 존재했다.

특히 상류층으로 올라갈수록 더했는데, 백인 남성으로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그랙 회장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재성은 두 사람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던 짐짓 모른 척하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차별과 배척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것이니 거기에 대해 뭐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워싱턴 포스트의 소유주가 되면 주변에서 보는 눈이 달라지겠지요.”

“아니라고 할 순 없겠군.”

그랙 회장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재성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워싱턴 포스트를 자네의 명함으로 이용하겠다, 이건가?”

“단순하게 표현하면 그렇겠군요.”

그랙 회장은 불편한 듯 몸을 뒤척였다.

무려 1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국의 대표 언론사를 순전히 명성을 위한 발판으로 사용하겠다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랙 회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미리 페이토 여신의 축복을 쓰지 않았더라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터였다.

“하지만 단순히 거기서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무슨 말이오?”

기분이 많이 상한 듯 퉁명스런 말투였다.

재성은 여유롭게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마시고는 이야기했다.

“아시다시피 전 사업가입니다. 손익에 아주 밝다는 뜻이죠.”

“······.”

“기껏 거액을 들여서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했는데 경영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위상이 추락한다면 제 명성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득보다 실이 더 많지 않겠소.”

“기대한 명성은 고사하고 워싱턴 포스트를 망친 원흉으로 불명예만 잔뜩 안게 될 테죠. 말씀하신 대로 인수하지 않은 것만 못할 겁니다.”

재성이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하면 기득권층의 불편한 시선이 따라올 것은 분명했다.

그들 입장에선 웬 동양인이 돈을 내세워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당연히 이때다 싶어 비난을 쏟아낼 것이 뻔했기에 두 사람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워싱턴 포스트에 수억 달러를 투자해 지금보다 더 높은 위상을 가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으음······.”

단순히 워싱턴 포스트의 명성을 이용만 하려는 게 아니라 거액을 투자해 발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그랙 회장의 마음이 흔들렸다.

물론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여전히 거슬리긴 했다.

그러나 스스로 언론인이라기보다 사업가라 생각하는 그랙 회장이었기에 크게 문제 될 건 아니었다.

오히려 속마음을 감추지 않고 솔직히 털어놓는 재성의 모습에 호감이 생겼다.

대화가 끊기며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쪽 팔을 들어 턱을 매만지며 고심하던 그랙 회장이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재성을 보며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를 판다면 얼마에 살 생각이오?”

숨을 죽이며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도널드 변호사와 데이비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 자리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랙 회장이 워싱턴 포스트를 팔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속마음을 훤히 다 들여다보고 있던 재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힌 쪽지를 하나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여기에 적어뒀으니 확인해 보시죠.”

미리 제시할 금액을 적어온 것에 살짝 놀란 시선으로 재성을 바라본 그랙 회장은 이내 쪽지를 집어 들었다.

쪽지를 펼쳐 액수를 확인하는 걸 보며 재성이 말했다.

“여러 사업 부분 가운데 뉴스위크를 비롯한 기존 신문출판업만 분리해서 인수하는 조건입니다.”

“정말 그것만 가져가겠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재성의 말대로라면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에서 적자가 크게 누적되고 미래 가능성도 없는 부분만 가져가겠다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제안한 매각 대금도 2억 달러.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그랙 회장은 일단 쪽지를 다시 접어두었다.

매각 쪽으로 마음이 크게 기울긴 했지만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것도 있고, 다른 매수 희망자를 찾아 협상도 해봐야 했다.

결정을 미룬 그랙 회장은 쪽지를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말했다.

“진지하게 고려해 보겠소.”

“예. 결정을 내리시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십시오.”

악수를 나눈 그랙 회장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공을 한번 치자고 하곤 도널드 변호사와 함께 클럽 하우스를 떠났다.

“맙소사.”

데이비드가 숨을 크게 내쉬며 재성을 쳐다보았다.

“시작도 못하고 판이 깨지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내가 좀 직설적이었나요?”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데이비드는 머리를 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그랙 회장이 오너 멱살을 안 잡은 게 다행입니다.”

“음. 그렇게까지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재성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저희한테 워싱턴 포스트를 팔려고 할까요?”

이제 남은 것은 그랙 회장의 결정뿐이었다.

데이비드는 아직도 긴가민가한 표정이었지만 재성은 확신했다.

“분명 내가 한 제안을 받아들일 겁니다.”

재성은 그랙 회장이 떠난 방향을 보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몰랐다.

하지만 오늘 보여준 그랙 회장의 모습을 볼 때 어쩌면 인수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거래가 성사된다면 인수 대금과 투자금까지 꽤 많은 자금이 들어가겠군요.”

그러자 재성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 인수에 필요한 돈은 따로 조달해 올 계획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요.”

의아한 표정을 짓던 데이비드는 재성이 한국의 재벌그룹 출신이라는 걸 떠올리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

***

중국 베이징.

중앙당 신문출판총서 국장 왕원빈은 개인 집무실에서 한창 업무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

쌓인 서류들을 살펴보고 별문제가 없는 것들은 옆에 따로 분류해 두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문득 노크 소리가 들렸다.

“실례합니다.”

안으로 인사하며 들어온 것은 간부 직원 중 한 명이었다.

“보고할 일이라도 있나?”

왕원빈 국장은 서류에서 눈을 떼고 굽어 있던 허리를 바로 세웠다.

그러자 간부 직원이 서류철을 하나 책상 위에 내려 놓으면서 말했다.

“결재를 받을 일이 하나 있어서 왔습니다.”

“뭔데 그러나?”

“테라노트에서 라이센스 비용 지급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그대로 승인을 해주면 될 것 아닌가.”

뭐가 문제냐는 시선에 간부 직원이 살짝 머뭇거리면서 이야기했다.

“그게 액수가 좀 많습니다.”

“얼마나 되는데 그러는 건가?”

“60억 위안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액수에 왕원빈 국장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얼마라고?”

“60억 위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미국 달러로 무려 9억 달러가 조금 안 되는 엄청난 거액이었다.

“무슨 라이센스 비용인데 그렇게나 많아?”

“던전 워라고 올 초부터 서비스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 라이센스 비용이라고 합니다.”

“게임 매출이 그렇게나 많다고는 건가.”

“예. 2분기 만에 가입자 수가 5천만 명이 넘었고 지금도 매달 수백 만 명씩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입니다.”

“5천만 명이라······. 대단하군.”

감탄을 내뱉던 왕원빈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부하 간부를 봤다.

“가만 던전 워라면······?”

“지난번에 국장님께서 판호를 내주라고 지시하셨던 그 게임입니다.”

“그래 맞아. 이제 생각이 나는군.”

중국은 외화 반출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익이 나더라도 일정 금액 이상은 외부로 송금하기 어려웠다.

다른 때 같으면 실무자 선에서 요청을 바로 반려했을 터였다.

하지만 왕원빈이 관련된 일이었기에 이렇게 직접 보고하는 것이었다.

“흐음.”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면서 잠시 고심하던 왕원빈 국장은 이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승인해 줘.”

“예? 아. 알겠습니다.”

“더 할 말 없으면 나가봐.”

“네.”

문이 닫힌 뒤, 왕원빈 국장은 서류철을 다시 한번 눈으로 슥 훑었다.

“유력한 차기 주석 후보인 화젠민 부주석의 의동생인데 괜히 불편한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겠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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