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수저 생활백서-285화 (285/703)

285. 지금 불고 있는 셰일 붐이 얼마나 갈 것 같아요?

텍사스주 서부 미들랜드(Midland).

인구 15만 명의 중소 도시인 미들 랜드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석유의 도시였다.

별명처럼 미들랜드의 역사는 석유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쇠락과 번영을 함께했다.

3.2km마다 유정이 하나씩 있을 정도로 이 도시에서는 시추탑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전임 제임스 대통령의 가문도 바로 이곳에서 석유 사업을 벌여 막대한 재산을 벌어들였다.

1990~2000년대 다국적 석유 기업들이 보다 규모가 크고 생산성이 높은 심해 유전 개발에 집중하며 이곳을 떠나면서 오랫동안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수압파쇄법으로 셰일오일 채굴이 쉬워지고 고유가로 채산성이 나오면서 최근 몇 년간 미들랜드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많은 건물이 새로 지어졌는데 재성이 머물고 있는 인터내셔널 호텔 역시 그중에 한 곳이었다.

함께 헬리콥터를 타 울프 캠프 지역을 돌아보고 돌아온 허버트는 재성의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뭘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맞은편 소파에 한쪽 다리를 꼬고 앉은 재성이 얼음이 담긴 위스키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탐사를 1년 안에 끝내고 내후년 1월부터 상업 생산에 들어갔으면 해요."

이야기를 듣자마자 허버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바람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울프 캠프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무려 180만 에이커(약 72만 8,000헥타르)나 됩니다. 동부에 있는 델라웨어주보다 더 넓은 땅을 고작 1년 만에 탐사를 끝내는 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 시겠죠."

머리를 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탐사를 진행한다고 해도 2년, 어쩌면 3년을 노력해도 작업을 다 끝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재성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서 이미 기초 조사를 끝낸 자료가 있고 성공가능성이 높은 퇴적암층 네 곳으로 한정한다면 탐사 면적이 크게 줄어들지 않겠어요."

재성의 이야기에 무턱대고 꺼낸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허버트는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1년 안에 탐사를 끝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자꾸 고집을 부린다면 아깝지만 계약을 포기할 생각도 했다.

'턱도 없는 요구에 시달리는 것보단 아예 처음부터 일을 안 맡는 게 낫지.'

허버트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최근 셰일오일 열풍이 불면서 일거리가 얼마든지 널려 있기 때문이었다.

"시추공을 하나 뚫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죠?"

여차하면 그만둘 생각을 해서인지 허버트는 퉁명한 말투로 대답했다.

"15만 달러 정도입니다."

한화로 2억 원이 채 안 되는 액수였다.

그나마 작업이 쉬운 육상이라 이정도지 바다로 나가 대륙붕이나 심해 유전을 탐사할 때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뛰었다.

"그러면 200개를 뚫으려면 3천만 달러 정도가 들어가겠군요."

이렇게 돈을 들여도 상업적 생산이 가능한 유전을 찾아 낼 가능성이 5% 미만이었다.

이것만 봐도 석유 개발이 얼마나 위험성이 큰 사업인지 알 수 있었다.

"200군데를 1년 안에 다 뚫는다면 유망 지역을 모두 탐사해 볼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자 허버트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팀 하나가 시추공 한 곳을 뚫는데 많이 잡으면 한 달도 걸리는데 1년에 200개라니 절대 불가능합니다. 거기다 그런 식으로 작업한다면 시추공을 뚫는 것에만 매몰되어 제대로 된 탐사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고도의 숙련도와 지식이 필요한 탐사 작업을 재성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불쾌한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막 그만두겠다고 하려던 허버트는 재성의 말에 멈칫했다.

"그렇다면 탐사팀을 늘리면 되겠네요."

"……?"

"한 달에 시추공 한 곳을 작업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대략 17팀 정도면 200개를 작업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탐사팀을 17개 만들어서 동시에 작업시키겠다는 말씀입니까?"

허버트의 물음에 재성이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러면 탐사를 날림으로 하지 않고도 시간도 대폭 단축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이건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거하고 달라서 그렇게 하면 탐사 비용이 더 늘어날 겁니다."

탐사팀을 17개나 꾸리려면 그만큼 숙련된 기술자와 고가의 장비가 많이 필요했다.

그건 곧 비용 상승을 의미했다.

"돈 걱정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걱정이죠. 적어도 내가 일을 맡긴 이상 비용 관련해서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어리둥절해 있는 허버트에게 재성이 미소를 지었다.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면 돈은 얼마가 들든 내가 감당하죠."

재성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요구대로 1년 안에 탐사를 모두 끝내고 상업 생산이 가능한 매장지를 찾아낸다면 거기다 보너스까지 얹어주겠어요."

"보너스 말입니까."

허버트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정확하게 얼마 정도를 말씀하시는 건지?"

"천만 달러."

그러자 허버트가 놀란 얼굴로 휘파 람을 불었다.

"휘유. 배짱만큼이나 주머니도 두둑하신 모양입니다."

허버트는 어느새 모험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신난 표정이었다.

재성의 말대로 한다면 처음 기대한 것보다 계약 액수가 훨씬 더 커지는데다 보너스까지 받을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 일은 꽤 큰 건수이니만큼 개인적으로도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아까 헬리콥터 안에서 시추공 천 개를 다 채우게 해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솔직히 농담인 줄 알았죠."

그런데 진심이었다니 이런 터무니없는 인간이 있나.

어느새 회의적인 마음이 머릿속에서 사라진 허버트는 재성의 시원시원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어디 가서 이렇게 호쾌하게 돈지랄을 해대는 걸 구경하겠는가.

허버트는 깊게 고민하지 않고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까짓것 1년 안에 다 뚫어보죠."

"잘 생각했어요."

재성은 만족한 얼굴로 대꾸했다.

"내일 변호사를 불러서 구체적인 계약서를 작성하죠. 시간이 넉넉하지 않으니까 허버트 씨는 서둘러 탐사 준비를 끝내주세요."

"예. 이쪽은 제가 전문이니까요. 맡겨주십시오."

허버트가 의욕이 넘치는 말투로 주먹을 손바닥에 탁 부딪쳤다.

시스템이 말도 안 되는 퀘스트를 던져줬지만 재성에게도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현질이다.

'돈으로 때려 박는다는 게 뭔지 내가 확실하게 보여주겠어.'

평범한 게임에서도 어려운 퀘스트를 깨거나 강한 몬스터를 잡을 때 현질만큼 확실한 게 없다.

레벨 차이?

그까짓 거 돈의 힘으로 다 씹어 먹을 수 있는 게 현질이다.

재성은 어차피 돈을 쓰기로 한 거 화끈하게 질러볼 생각이었다.

어설픈 소과금은 취급 안 한다.

거기다 일본에서 벌어들인 돈이 있으니 총알도 충분했다.

'일단 탐사에 대규모 장비와 인력은 들어가야지. 그리고 시추 장비와 저유 시설들도 미리 주문해야 나중에 편할 거야. 그러면 상업 생산까지 들어가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어.'

머릿속에선 이미 한국인답게 최단 시간에 최고의 효율을 뽑을 수 있는 루트가 착착 정리되고 있었다.

재성이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충분하다 울프 캠프지구에 셰일 오일이 대규모로 묻혀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악수를 하고 허버트가 호텔 객실을 떠나자 권혁재 실장이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미적거렸다.

"왜요?"

재성이 각얼음이 담긴 술잔을 손에 들고 가볍게 흔들었다.

"외람되지만……."

"괜찮으니 말해봐요."

권혁재 실장은 주저하다 말했다.

"너무 서두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보여요?"

딱히 기분 나빠하지 않는 태도에 권혁재 실장은 용기를 내었다.

"탐사 허가 기간이 촉박한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요? 솔직히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권혁재 실장이 눈에는 재성이 쓸데없이 돈을 쓰는 것처럼 보일 터였다.

'셰일오일을 찾아내더라도 상업성이 없으면 투자금을 다 허공에 날려 버리는 거니까. 대놓고 말을 못 해도 미친 돈지랄로 보일 거야.'

언더락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재성이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불고 있는 셰일 붐이 얼마나 갈 것 같아요?"

"……예?"

"흠, 다시 묻죠. 지금까지 천대받던 셰일오일의 주가가 치솟은 원인이 뭐라고 생각해요?"

"그야 효율적인 수압파쇄법이 개발되고 고유가로 인해 셰일오일의 가격 경쟁력이 좋아졌기 때문 아닙니까."

아직은 생소한 셰일오일 산업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는 모습에 재성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많지만 셰일붐을 일으킨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고유가예요. 요즘 국제 유가가 얼마인지 알죠?"

"배럴당 106달러 안팎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생산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셰일오일의 생산 원가가 65달러 정도예요. 원가가 배럴당 10달러도 안 되는 중동산 원유에 비하면 엄청나게 비싼 석유라는 뜻이죠."

어렵게 뽑아내 봤자 비싸서 팔리지가 않으니 사람들이 외면해 온 것이었다.

"6~70달러를 유지하던 국제유가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가파르게 치솟더니 어느새 배럴당 100달러를 넘겨 버렸죠. 이제는 셰일 오일과 가스를 생산해서 팔아도 가격 경쟁력이 생겼다는 거예요."

집중해서 듣고 있는 권혁재 실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메이저 석유 회사들까지 달려들어서 엄청난 붐을 이루고 있을 때 갑자기 고유가가 끝나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

시선을 받은 권혁재 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산유국들 입장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시장을 갉아 먹는 셰일업계가 눈엣가시처럼 보이겠죠.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들겠어요."

"더 크지 못하도록 미리 싹을 잘라버리려고 들겠군요."

권혁재 실장의 대답에 그는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은 자신들이 가진 치명적인 무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증산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요. 공급을 큰 폭으로 늘려 유가를 낮춰 버린다면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운 셰일업계는 바로 말라 죽게 될 거예요."

지금의 고유가도 수익을 높이기 위해 산유국들이 인위적으로 공급량을 조절해 만들어진 것이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했고 말이야.'

지난 삶에서 중동 산유국들이 증산을 시작하자 성세를 이루던 셰일업체들이 줄도산하며 쓰러진 기억이 똑똑히 남아 있었다.

권혁재 실장이 심각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 조심스럽게 투자를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울프 캠프를 왜 샀다고 생각해요?"

"그거야 셰일오일 산업에 관심이 있으셔서 그런 것 아닙니까?"

"틀렸어요."

"그럼 왜……."

의아해하는 권혁재 실장의 시선을 받으며 그는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

"고유가로 셰일의 값어치가 꼭대기까지 치솟아 올랐을 때 비싸게 팔아 치우려는 거예요."

"……!"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말에 권혁재실장은 깜짝 놀라 크게 입을 벌렸다.

"아직은 셰일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고 산유국들도 고유가의 달콤한 과실에 빠져 있으니 이 상태가 몇 년은 더 갈 거예요."

"그 전에 몸값을 올리시려고 개발을 서두르시는 거군요."

"바로 맞췄어요."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던 권혁재 실장은 재성의 뛰어남에 새삼 감탄했다.

"그런 계획이 있으신 줄도 모르고 제가 괜한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나라고 항상 옳은 판단을 내리는 건 아니니까. 앞으로도 아니다 싶은 것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이야기하도록 해요."

"예."

헐값에 판 울프 캠프 지구에서 대규모 셰일 오일 매장이 확인돼 대박을 터뜨린다면 일본 정부에서 얼마나 배 아파할까.

재성은 언더락 잔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면서 씨익 미소 지었다.

벌써부터 통쾌한 기분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