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수저 생활백서-292화 (292/703)

292. 지금 우주라고 하셨습니까?

협상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버니 브레이너는 대기하고 있던 에스컬레이드 뒷좌석에 올라탔다.

벤이 출발하자 차창 너머로 멀어지는 유니콘 그룹 본사 건물을 바라보며 재성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어차피 펠컨9 로켓과 엔진 모두 미완성인 상태 아닙니까.'

'공동 개발을 통해 기술을 이전받는 대신 필요한 자금과 리스크를 함께 떠안겠다는 겁니다.'

'40억 달러면 더 이상 추가 투자를 받을 필요가 없으니 경영권을 신경쓸 필요도 없겠죠.'

'원한다면 투자로 획득하는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전부 위임해 줄 수도 있습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 모두 성과를 내고 있다지만 여전히 만성 적자에서 못 헤어 나오고 있었다.

당장 스페이스X만 해도 매년 수억달러의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그냥 거절하기에는 너무나도 솔깃한 제안이었다.

더군다나 로켓 재활용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로켓이 부서지고 다시 제작될지 몰랐다.

그런 걸 생각하면 40억 달러라는 투자금을 쉽사리 포기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걸리는 건 우리 기술로 경쟁 업체를 키우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건데……."

브레이너는 이내 피식 웃으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기술을 이전받는다고 해도 발사장 하나 없을 정도로 기반이 전무한 한국이 쉽사리 격차를 좁히지는 못할 거야."

스페이스X가 지금 같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도 NASA의 협력과 지원을 받은 덕분이었다.

물론 브레이너의 열정과 멈추지 않는 추진력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렇다고 해도 스페이스X가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 속한 회사였다면 지금처럼 빠른 성과를 내는 건 힘들었을 터였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기술을 이전받는다고 해도 바로 강력한 경쟁자가 되기는 어려울 거라고 확신했다.

"힘들게 따라온다고 해도 그때쯤이면 난 더 멀리 앞서 나가고 있겠지."

만약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 같았으면 아무리 달콤한 제안이라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기술 이전을 승인해 주지 않으면 전부 없던 소리가 된다는 것인데 말이야."

스페이스X가 민간 기업이라도 로켓과 우주 기술은 국가 중요 기밀이었기에 정부 승인 없이 함부로 이전해 줄 수 없었다.

"박 회장이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무슨 방법이 있겠지."

자신이 고민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브레이너는 어깨를 으쓱이며 생각을 털어냈다.

기술 이전이 무산된다고 해도 10억 달러 지분 투자는 받았으니 최우선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

다음 날.

호출을 받고 모인 안형준 유니콘데이터 사장과 양태정 상무, 그리고 배광석 이사는 재성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인공위성 제조 회사를 인수하신다고 하셨습니까?"

"맞아요."

재성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스타 테크놀로지라고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출신들이 세운 회사가 있어요. 여길 인수해서 우주 산업에 진출할 생각이에요."

갑자기 우주 산업이라니??

다들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제일 먼저 평정심을 찾은 안형준 사장이 작게 헛기침을 하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룹하고 전혀 상관없는 분야인데, 갑자기 왜 우주 산업에 손을 대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재성이 한쪽 손가락을 들어올려 좌우로 흔들었다.

"틀렸어요."

"……?"

"기존 사업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스타 테크놀로지를 인수하려는 거예요."

"어떻게 연관이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양태정 상무와 배광석 이사 역시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천안 데이터 센터가 완공되면 바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죠."

"그렇습니다."

"다른 사용자들도 있겠지만 네오픽스와 씨네박스, A마켓, 그리고 통운까지 모든 계열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클라우드는 그룹의 핵심 사업이 될 거예요."

각 계열사들이 개별적으로 운영 중인 서버를 재성이 계획하는 대로 데이터 센터에다가 하나로 모은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데이터 센터와 클라우드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통신망이에요. 제아무리 데이터 센터를 잘 지어놔도 통신이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냥 거대한 저장 공간에 불과할 뿐이죠."

"기존 통신망이 잘 갖춰져 있어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안형준 사장의 말에 재성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렇죠. 그런데 과연 앞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

"데이터 센터와 클라우드 사업이 커지면 제일 먼저 뛰어들 회사가 어디일 것 같아요."

잠시 고심하던 안형준 사장은 이내 정답을 떠올리곤 얼굴을 굳혔다.

"기존 기간 통신 사업자들과 경쟁하게 될 가능성이 크겠군요."

"맞아요."

재성은 소파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을 둘러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인프라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이 잘 아는 분야이니 분명히 파이를 나누어 먹으려고 들 거예요. 그렇게 경쟁하게 된다면 통신망을 빌려서 써야 되는 입장에서 여러 가지로 불리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으음.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군요."

"앞으로 데이터 트래픽이 폭증하게 되면 그에 따른 분쟁 역시 커지게 될 거예요."

통신망은 한정되어 있는데 오가는 데이터가 많아진다면 과부하가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통신망 사업자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독자적인 통신망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판단이에요."

그러자 안형준 사장이 우려를 표시했다.

"필요성은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통신망이라는 것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규제가 많아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일 겁니다."

통신망을 깔려면 제일 먼저 정부 허가를 받아야 했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과 수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도 기존 사업자들과 비교해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스타 테크놀로지가 필요한 겁니다."

세 사람은 그게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상이 아니라 우주에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위성 인터넷망을 구축하려고 해요."

상상을 초월한 계획에 다들 경악하여 입을 쩍 벌렸다.

"예?"

"우, 우주에 말입니까?"

특히 IT 쪽에 지식이 있는 안형준 사장은 뒤통수를 후려 맞은 것처럼 넋이 나갔다.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잘 알기에 더욱 충격이 컸다.

"어떻게 인공위성으로 인터넷망을 구축한다는 겁니까?"

"소형 인공위성 1만 3천 개를 대기권에 띄워서 1Gbps의 속도를 내는 초고속 인터넷을 연결시키는 거예요."

"인공위성을 만 3천 개나 띄운다고 하셨습니까?"

"그래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저고도에 절반, 그리고 340km 높이의 초저고도에 나머지 위성을 배치해서 지구 전역을 커버하는 광대역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거죠. 인공위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지형과 국가에 간섭받지 않고 지구 구석구석 오지까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되겠죠. 거기다가 위성들을 레이저로 연결하기 때문에 기존의 광케이블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을 거예요."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에 안형준 사장이 바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 안 된다는 거죠?"

"천문학적인 비용은 둘째치더라도만 3천 개면 모르긴 해도 지금까지 인류가 우주에 띄운 인공위성보다 더 많은 숫자일 겁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저희가 다 쏘아 올릴 수 있단 말입니까."

옆에 있던 양태정 상무도 안형준 사장의 의견에 동조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인공위성의 수명이 무한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다고 해도 목표를 채우기도 전에 기능을 상실하는 것들이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맞습니다. 예전에 모토로라가 비슷한 이리듐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지만 큰 실패를 맛봤지 않습니까."

배광석 이사가 거론한 이리듐 프로젝트는 77개의 인공위성을 띄워서 위성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실제로 인공위성을 계획대로 쏘아올려 상용화를 진행했지만 너무나도 비싼 사용 요금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전화에서 인터넷으로 서비스 종류가 바뀌었을 뿐이지 기본 틀은 두프로젝트가 똑같기는 하지.'

모두가 반대했지만 재성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반대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목표하는 숫자만큼 인공위성을 대기권에 띄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인 거죠?"

시선을 받은 안형준 사장과 임원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인공위성 10개를 쏘아 올리는 데 천억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면 당연히 수지타산이 안 나오겠죠. 이용 료를 비싸게 받을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될 테고요."

재성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만약 발사 비용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로켓을 여러 번 재사용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

"발사 비용을 반의반값으로 줄일수 있겠죠. 거기다가 약간의 정비만 받은 뒤에 바로 다시 쏠 수 있으니 통신망 구축 시간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을 거고요."

눈을 깜박이는 세 사람을 향해 재성이 자신감을 내보였다.

"어쩌면 1년에 인공위성을 수천 개씩 우주에 쏘아 올리는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안형준 사장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죠."

그럼, 하고 대꾸하려는 안형준 사장을 재성이 손으로 막았다.

"하지만 수년 내에 반드시 실현될 겁니다."

마치 미래를 보고 온 사람처럼 확신이 넘치는 말투였다.

사실 안형준 사장이나 양태정 상무가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실제로 수년 후의 미래를 알고서 하는 말이니까.

몇 년간의 실패를 반복한 뒤 2015년 12월.

브레이너는 팰콘 9 로켓으로 인공위성을 궤도로 진입시킨 후 추진체 로켓을 해상 착륙 지점에서 회수하는 데 성공한다.

"민간우주 기업인 스페이스X에서 로켓 회수 기술을 개발 중인데 기술 이전을 조건으로 40억 달러를 투자 하기로 했어요."

벌써 거액을 투자했다는 말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언제……."

엄청난 거액을 과감하게 밀어 넣는 재성의 투자 방식은 언제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세 사람이 아연실색해하는 사이 재성은 계속 말을 이었다.

"로켓 회수에 성공한다면 더 바랄게 없겠지만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장점은 있어요. 앞으로 펼쳐질 우주 시대에 핵심 기술을 확보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까."

그러자 안형준 사장이 덥석 달려들었다.

"그럼 만약 스페이스X가 로켓 회수 기술 개발에 실패했을 땐 위성 인터넷 사업을 진행하지 않을 수도 있단 말씀이십니까?"

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 조건이 성립되질 않으니까요. 당연히 보류해야죠."

고집을 부리며 억지로 밀어붙이진 않겠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안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각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임원들은 그제야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 완시켰다.

"아, 그렇군요."

"그런 생각이시라면 찬성입니다."

세 사람 모두 하늘로 쏘아올린 로켓을 회수해서 재활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투자한 40억 달러가 아까웠지만 위성 인터넷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밑 빠진 독에 물처럼 빨려들어 갈 자금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걸로 액땜하는 것이 나았다.

재성은 그런 임원들의 속내를 훤히 알아차렸다.

'역시나.'

하긴 자신 같아도 미래의 지식이 없었다면 회의적이었을 터였다.

'나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어.'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브레이너의 도전을 할 일 없는 억만장자가 벌이는 허황된 망상으로 치부하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하지만 인류는 몇몇 천재들의 도전에 의해서 발전해 왔다.

'저러다가 나중에 다들 쓰러지는 건 아닌지 몰라.'

팰콘 9 로켓이 날아갔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는 걸 봤을 때 임원들의 반응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이걸로 재성은 큰 기회를 붙잡은 셈이었다.

원래 통신망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위성 인터넷망은 머릿속으로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브레이너와의 만남이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대화를 나누고 스페이스X에 지분투자를 하게 되면서 스타링크 프로젝트를 자신이 먼저 진행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조금 찔리긴 하지만 대신 투자를 빵빵하게 해줄 거니까. 그걸로 퉁지는 거지.'

어차피 브레이너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투자를 받아서 기쁠테고 재성도 이득을 보니 서로 윈윈아닌가.

재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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