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수저 생활백서-304화 (304/703)

304. 앞으로도 계속 얘 옆에 찰싹붙어 있어야지.

이벤트홀과 연결된 지하 주차장에 멈추어 선 차에서 재성이 내리자 허인환 네오픽스 사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맞이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여기까지 나와 있었어요?"

"회장님께서 오시는데 당연히 마중을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내가 늦게 온 건 아니겠죠?"

"딱 맞춰서 도착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결승전이 시작되니 일단 경기장으로 올라가시죠."

"그래요."

작게 머리를 끄덕인 재성은 허인환사장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재성은 옆에 나란히 선 허인환 사장을 보며 말했다.

"중국에도 생방송으로 결승전을 방영하기로 했다면서요?"

"네. 원래는 녹화 방송을 계획했는데 앞서 나간 본선 경기 시청률이 높게 나오자 중국 측에서 먼저 요청을 해왔습니다."

"시청률이 얼마나 나왔길래 그러는 거죠?"

"9%가 넘었다고 합니다."

"대단하네요."

중국에서 시청률 9%가 나왔다면 엄청난 대박이었다.

"세 종목 모두 중국팀이 결승전에 올라온 영향도 있을 겁니다."

"어찌 됐건 목표대로 게임에 대한 관심을 끌어 올리는 데에는 성공했네요."

허인환 사장이 잔뜩 고무된 얼굴로 대답했다.

"저도 이렇게까지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월드 그랑프리 대회가 시작된 이후 오늘 결승전이 열리는 리그 오브 히어로를 비롯해 세게임 모두 동시 접속자 숫자가 크게 늘어놨습니다."

"파이어 슈팅하고 던전 워는 최근 약간 정체되는 분위기였는데 그거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

그때 원하는 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좌우로 열렸다.

관계자 통로를 이용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건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는 관중들이었다.

중앙무대와 천장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서는 각국 예선과 본선을 치르면서 나온 명장면들이 나오며 분위기를 띄웠다.

사람들의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관객석의 열기도 달아올랐다.

분명 냉방장치가 가동되고 있는데도 실내가 덥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VIP석 난간 앞에 서서 화려한 레이저 조명이 번쩍거리는 경기장을 천천히 훑어본 재성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곧 결승전이 시작될 겁니다."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보시라는 말에 재성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누나인 재경이 조덕현 이사와 함께 도착했다.

"왔어?"

재경은 턱을 까딱이면서 가볍게 인사하곤 재성의 옆에 앉았다.

"사람들이 많이 몰렸네. 이 정도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정말 대단해."

칭찬에 인색한 재경치고는 매우 후한 평가였다.

"거봐. 내가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잖아."

"어련하시겠어."

잘난 척 그만하라는 것처럼 재경이 새침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속으론 재성의 수완에 새삼 감탄하는 중이었다.

'역시 아버지 말대로 막내가 사업감각은 타고났나 봐.'

솔직히 게임 대회가 이 정도로 인기 있을 줄은 몰랐다.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니까.'

특히 재성은 젊은 층들에게 먹힐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재경은 기분 좋아 보이는 재성의 옆얼굴을 곁눈질하며 재차 다짐했다.

'앞으로도 계속 얘 옆에 찰싹 붙어 있어야지.'

붙어만 있어도 콩고물이 알아서 떨어지는데 이보다 더 꿀 빠는 일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

마침 눈이 마주친 재성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누나가 봐도 잘생겨서 그래?"

이 자식이 드디어 미쳤나.

"자뻑도 그 정도면 병이야."

재경은 경멸스럽다는 눈빛과 표정을 지어 보인 뒤 고개를 즉 돌렸다.

사소한 잡담을 나누는 가운데 무대, 위에서는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화려한 레이저 조명쇼와 함께 게임캐릭터로 분장한 유명 코스프레 팀이 나와 환호성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일렉트로닉, 메탈, 힙합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밴드들이 나와서 게임에서 나온 음악을 연주하며 무대를 달궜다.

웬만한 콘서트보다 훨씬 나은 수준의 공연과 무대 연출에 재경조차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행사에 얼마를 쏟아부은 거야?"

고작해야 오프닝일 뿐인데 저렇게 혼신의 힘을 쏟을 필요까지 있나 싶었다.

"그래도 명색이 월드 대회잖아. 이정도는 해줘야지."

"어휴, 너도 참."

재경은 어이없다는 것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튼 정도를 몰라요."

게임 대회인지 콘서트를 보러 왔는지 모를 정도로 긴 30분에 걸친 오프닝 공연이 끝나자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전직 공중파 스포츠 캐스터이자 게임 방송에서 진행을 맡고 있기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지금부터 제1회 네오픽스배 리그오브 히어로 월드 그랑프리 대회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대한 함성이 쏟아져 내렸다.

VIP석에 앉아 있는데도 실내 공기가 진동하는 게 느껴지는 듯했다.

"자, 출전 선수들을 소개해 드리죠. 먼저 왼쪽 코너는 중국 예선 우승팀인 레드스타!"

전광판 한쪽에 불이 탁 들어오며 선수들의 얼굴이 비춰졌다.

"그리고 오른쪽은 한국 팀인 블랙샤크!"

양쪽 팀이 다 공개되자 화면 중간에 큰 글자로 레드스타 VS 블랙샤크라는 문구가 번쩍거렸다.

"여보! 저거 봐요. 승범이에요."

화면에 비친 아들은 제법 긴장한 기색이었다.

관객석을 살필 여유조차 없는지 바짝 마른 입술을 축이는 게 보였다.

"거 누구 아들인지 잘생겼다!"

들뜬 박철완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역시 날 닮아서 애가 어딜 가나 귀티가 난다니까요."

"뭐, 당신을 닮았다고?"

어허 이 사람이, 하고 대꾸하려던 박철완은 살벌하게 웃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마주하곤 입을 딱 다물었다.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며칠은 들볶일 거라는 유부남의 촉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여보, 핸드폰! 저기 승범이가 무대 위로 올라오잖아요. 빨리 찍어요!"

"그, 그래!"

박철완은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팔을 쭉 앞으로 내밀었다.

솔직히 아들 편을 들어주긴 했지만 한창 공부할 때 게임 대회라니 내심 탐탁지 않긴 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장에 와보니 많은 사람들의 함성을 받으며 무대 위에서 있는 아들이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왜 아들이 아내한테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게임을 하고 싶어 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선수 소개가 모두 끝나자 이제 본격적으로 결승전이 준비되었다.

무대 위에선 선수들이 긴장한 얼굴로 헤드셋을 머리에 끼고 마우스를 잡으며 게임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회자는 중계석으로 자리를 옮겨 해설자와 함께 모니터를 보면서 방송을 시작했다.

"시청자 여러분을 위해 간단하게 룰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오늘 결승전은 5판 3선승제죠?"

"예, 그렇습니다. 먼저 3승을 올리는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거죠."

약간 통통한 체구의 해설자가 마이 크 위치를 조정하면서 말했다.

"팀 다 예선과 본선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만큼 결승전에서도 멋진 경기를 펼쳐줄 걸로 기대됩니다."

"특히 이번 대회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E스포츠 전용 경기장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더욱 의미가 깊은데요."

"맞습니다. 듣기론 유니콘 그룹 회장님께서 패기 있게 밀어붙인 사업이라고 하더군요."

"아, 그 젊은 회장님 말이죠? 그분께서도 리그 오브 히어로를 하시는지 궁금해지네요."

"의외로 티어가 되게 높다거나 하면 재밌을 텐데 말이죠."

해설자가 하하 웃으며 사회자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자, 말씀드린 순간! 결승전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잔뜩 기합이 들어간 사회자가 목소리를 높이며 외쳤다.

경기는 예상대로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이며 아주 치열하게 전개됐다.

"레드스타 팀 등륜 선수가 상대 람블을 혼자서 잡아내면서 기선을 제압하는 듯했지만 블랙샤크팀이 전열을 재정비해 곧바로 반격에 나서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그라가수의 궁극기가 제대로 들어가면서 레드스타 진영을 무너뜨린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경기 내용에 MC와 해설자도 흥분했는지 목소리에 열기가 잔뜩 묻어났다.

"팽팽한 승부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제 마지막 5라운드로 우승자를 가리게 됐습니다."

"두 팀 모두 실력이 만만치 않은 만큼 어느 쪽이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승자가 결정 될 걸로 보입니다."

"5분간 휴식을 끝내고 이제 마지막 5라운드가 시작됩니다!"

5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두 팀은 중앙에서 크게 맞붙으며 난타전을 벌였다.

"온다!"

"어서 막아!"

"뚫리면 안 돼!"

레드스타 팀은 탑라이너와 정글 플레이어의 활약에 힘입어 국지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한국팀을 압박했다.

"조금만 버텨!"

그러자 미드라이너인 박승범이 마우스와 키보드를 바쁘게 움직이며 한타마다 궁극기를 기가 막히게 펼쳐 상대를 막아냈다.

"박승범 선수 또다시 슈퍼 플레이를 펼치며 대단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대로 상대편 진영을 찢어버리고 밀어붙입니다!"

"넥서스! 넥서스가 위험합니다. 여기서 게임 끝나나요, 레드스타!"

"등륜 선수 급하게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이에요!"

"아! 말씀하시는 순간 넥서스가 파괴되면서 한국팀인 블랙샤크의 우승이 결정됐습니다."

"정말 결승전다운 멋진 승부였습니다."

우승자가 확정되는 순간 꽃가루가 뿌려지며 경기장을 뒤흔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가 이겼어!"

"대박! 이거 꿈은 아니지?"

박승범은 기뻐하는 친구들과 함께 서로 부둥켜안으면서 소리 질렀다.

그런 모습이 대형 전광판을 통해 나오는 걸 보며 관중석에 있던 박철완과 나원희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여보, 우리 승범이가 1등이래요!"

"그래, 나도 봤어."

박철완은 아내의 어깨를 끌어안고 크게 외쳤다.

"장하다! 우리 아들!"

열광적인 함성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이내 무대 위에선 시상식이 준비되었다.

재성은 승리의 여운에 들뜬 박승범과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아직 앳되어 보이는데 중국팀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것이 참으로 흐뭇했다.

"멋진 경기 잘 봤습니다."

재성은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우승메달과 트로피를 수여했다.

팀원들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눈 재성은 마지막으로 우승 상금 5억이라고 적힌 커다란 팻말을 전달했다.

"사진 찍겠습니다!"

트로피가 잘 보이게 위로 들어주세요!"

재성이 옆으로 물러남과 동시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박승범과 팀원들이 우승 상금 팻말과 트로피를 들어 보이며 포즈를 취하자 플래시가 마구 터졌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조명 아래 리그오브 히어로 월드 그랑프리 첫 대회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리그 오브 히어로 월드 그랑프리 대회로 뜨거웠던 주말이 지나고 추석 연휴가 끝난 9월 셋째 주.

종료일 연장을 거듭하며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던 미국의 정부 부채 상한 증액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美, 정부 부채 상한 증액 협상안극적 타결!]

[벼랑 끝 타결에 안도하는 글로벌증시 하지만 디폴트 시계 앞에선 빚더미 제국.]

[미 정부 부채 상한 증액안 타결로 한숨 돌렸지만 아직 곳곳이 지뢰밭.]

[워싱턴에서 들린 미 정부 부채 상한 증액안 타결 소식에 비명을 지르는 국내 개미들!]

[유니콘 그룹 박재성 회장의 글로벌 증시 하락 발언에 곱버스 투자 나선 개인 투자자들 5천억 묻지마 투자!]

[개인 투자자들의 하락장 묻지 마풀베팅에 전문가들 우려 표명.]

↳미친. 정말로 5천억이나 쏜 거야?!

↳역시 야수의 심장을 가진 국민들 답네. ^^

↳어쩌냐. 미국 정부 부채 상한 증액안 타결됐다는데.

↳다들 깡통 차게 됐으니 어깨동무하고 한강 가는 거지.

↳그러게 남이 하는 말만 믿고 투자를 하면 되냐.

↳……그러지 마요. 우리 재성 형님도 700억 달러나 투자했다잖아요.

↳그 형 승률 100%인 거 몰라요?

↳윗분 곱버스 탔네.

↳더 늦기 전에 어서 손절해요.

ㄴ2222.

포브스에 실린 재성의 발언을 보고 많은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곱버스에 투자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미 정부의 부채 상한 협상이 타결되며 주춤하던 글로벌 증시가 상승으로 돌아서자 여기저기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뉴욕 맨하탄 5번가 포브스 본사.

킨슬리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근심어린 얼굴로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

모니터에는 미 정부의 부채 상한 협상 타결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흐음……."

답답한 듯 숨을 한번 내쉬었을 때 마침 동료 기자가 옆으로 와서 말을 붙였다.

"킨슬리."

"왜?"

"유니콘 그룹 박재성 회장 말이야."

아는 이름에 킨슬리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 사람이 뭐 어쨌는데?"

"최근에 S&P 500하고 유럽 증시 모두 상승세로 돌아섰잖아. 이러다가 큰 손해를 입으면 세계 부자 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거 아니야?"

재성이 글로벌 증시 하락에 크게 돈을 건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과연 그 도박이 통할 것인지 여러 말들이 오가는 중이다.

"기껏 한국까지 가서 인터뷰를 따왔는데 괜히 헛수고만 한 셈이잖아. 허탈해서 어째."

은근히 약 올리는 말에 킨슬리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럴 일 없을 테니까 안심해."

"자신만만하네."

동료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리를 떠났다.

속만 뒤집어놓고 가는 동료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킨슬리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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