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수저 생활백서-312화 (312/703)

312. 놓친 게 있는지 다시 한번 찾아보고 깨끗이 처리해 둬요.

충남 천안 유니콘 데이터 센터.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하게 맑은 오후.

충남 도지사를 비롯한 많은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데이터 센터 준공식을 성대하게 가졌다.

2년간의 공사 끝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데이터 센터는 29만 4천㎡의 부지에 건축 면적 4만 9천㎡의 크기로 지어졌다.

농구장보다 더 크고 넓은 실내를 서버랙들이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모습은 절로 탄성을 자아냈다.

재성은 수행원들과 함께 그런 서버실을 둘러보며 옆에 선 한상진 제일 데이터 상무의 설명을 들었다.

"최신 냉방 기술을 적용해 12만 대의 서버를 동시에 가동하더라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대용량 비상발전기를 이중으로 갖춰 전력이 차단되더라도 문제가 없도록 했습니다."

시험 가동 중인 서버들을 보며 재성이 물었다.

"서버 용량이 240PB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정상 가동은 언제부터 이루어지는 거예요?"

"한 달간 시험 가동을 통해 안정화 작업을 모두 끝낸 뒤에 연말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데이터 저장을 맡기기로 한 곳이 제일 그룹과 우리 계열사들뿐이죠?"

그러자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안형준 사장이 대신 대답했다.

"처음에는 우려가 많았으나 네오픽스만 해도 상당히 큰 서버 용량을 사용하다 보니 운영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네오픽스에서 서비스하는 주력 3개 게임 타이틀의 동시 접속자 숫자만 전 세계적으로 무려 2천만 명을 훌쩍 넘겼다.

당연히 트래픽 역시 엄청났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 분산해서 운영하던 게임 서버들을 이번에 준공된 데이터 센터로 전부 모아 통합 운영할 계획이었다.

사실 던전 워와 파이어 슈팅 같은 경우에는 이용자의 상당수가 중국인이었다.

그래서 두 게임의 메인 서버는 중국에 두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재성의 강력한 주장에 메인 서버를 모두 천안 데이터 센터로 옮기기로 했다.

'정보 보호가 전혀 되지 않는 중국에 온갖 데이터가 들어 있는 메인 서버를 둘 수는 없지.'

앞으로도 중국에서 하는 사업이라도 민감한 설비와 데이터 자료는 전부 한국에 둘 계획이었다.

"부산에 짓기로 한 두 번째 데이터센터는 내년에 착공이죠?"

"예. 내년 1월부터 공사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매번 강조하지만 데이터 센터와 클라우드 사업은 그룹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성장 동력이에요. 그러니 차질 없이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게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해요."

"명심하겠습니다."

데이터 센터를 더 둘러보고 나온 재성은 임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대기하던 승용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고 있을 때 개인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당쉐샹입니다. 통화 괜찮으십니까?]

익숙한 목소리에 재성이 유창한 중국말로 대답했다.

"비서실장님이 어쩐 일입니까?"

[급히 전해 드릴 소식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당분간 중국에 안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재성이 미간을 찡그렸다.

직감적으로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눈치채고는 손에 든 핸드폰을 고쳐 쥐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공안에서 박 회장님을 은밀히 내사 중입니다.]

"날 왜……."

[박 회장님을 통해 부주석님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속셈으로 보입니다.]

그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중국 중앙권력 구도를 떠올리며 얼굴을 굳혔다.

"공안이라면 송첸 상임위원이 움직인 겁니까?"

[맞습니다.]

송첸이라면 오랫동안 국무원 공안부장을 역임하면서 강력한 사법기관인 공안부를 수족처럼 부리는 권력 실세였다.

그런 인물이 자신을 노린다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시노펙 싱가포르 지사에서 있었던 원유 선물 손실과 유니콘 그룹의 중국 사업들을 전부 뒤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잊고 지내던 일이 거론되자 재성의 눈동자가 깊이 가라앉았다.

[저희 쪽에서도 대응하고 있지만 박 회장님이 공안 조사를 받게 되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지니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입국을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문제될 것이 있다면 먼저 정리해 두십시오.]

"그러죠."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재성이 통화를 끝내고 핸드폰을 내려놓자 조수석에서 권혁재 실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몸을 뒤로 돌려 눈치를 살피는데, 재성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더욱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재성은 잠시 말없이 있다가 고개를 들며 입을 뗐다.

"예전에 싱가포르에서 했던 일 기억나요?"

질문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바로 시노펙 관련 일이 떠올랐다.

"예."

권혁재 실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뒤처리는 알아서 잘해놨겠죠."

"그렇습니다만…… 혹시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아직 확실한 건 아니고."

주변을 마구 들쑤신다고 해서 증거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공안의 움직임이 수상하니 주의를 기울여서 나쁠 건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그때 놓친 게 있는지 다시 한번 찾아보고 깨끗이 처리 해 둬요."

뭔가 일이 생긴 걸 알아차렸지만 권혁재 실장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재성은 푹신한 가죽시트에 몸을 파묻듯이 기댄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런 가운데 재성을 태운 승용차는 빠른 속도로 서울을 향해 올라갔다.

***

미국 워싱턴 DC 리츠칼튼 호텔레스토랑.

"어서 오게. 칼로스."

고급스럽게 꾸며진 레스토랑 안쪽 조용한 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 사내가 반가운 얼굴로 칼로스를 맞이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내가 빨리 온 거니까 신경 쓰지 말게."

중년 사내의 이름은 조슈아 할데만으로 칼로스가 예전에 일했던 AIPAC의 이사였다.

AIPAC의 공식 명칭은 '미국이스라 엘공공문제위원회'로, 미국 거주 유대인들이 만든 친이스라엘 로비 단체였다.

대통령이 되려면 반드시 AIPAC의지지를 얻어야 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미국 정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었다.

"일단 앉지."

"예."

친근하게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종업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주며 물었다.

"전 양고기 스테이크로 하겠습니다."

"그럼 나는 오랜만에 송로버섯 요리를 하나 먹어볼까."

조슈아는 손가락을 들어 돌아서려는 종업원을 불렀다.

"아, 그리고 와인도 하나 부탁하네. 이 가게에서 제일 좋은 걸로."

"알겠습니다."

잠시 후 소믈리에가 주문한 와인을 가져와 직접 병을 확인시켜 주었다.

"바타시올로 바롤로 보스까레또입니다. 짙은 장미와 시나몬 향이 일품인 멋진 와인이죠."

"하하, 그거 기대되는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코르크 마개를 따자 소믈리에의 말대로 진한 향이 느껴졌다.

두 사람의 잔에 와인을 따라준 소믈리에까지 물러나자 조슈아는 와인 잔을 들며 말했다.

"오랜만에 봤는데 건배 어떤가."

"그거 좋죠."

칼로스도 잔을 들어 서로 가볍게 부딪쳤다.

진한 붉은빛이 도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자 조슈아가 마음에 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은데."

아직 식사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조슈아는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그런데 자네. 이번에 유로화에 투자해서 큰 수익을 봤다면서?"

"그냥 다른 분들이 베팅할 때 함께 들어가서 조금 재미를 본 것뿐이 죠."

"겸손하긴."

조슈아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칼로스를 보았다.

"이번 유럽 재정 위기에서 헤지펀드계의 전설로 불리는 블론트 다음으로 많은 돈을 번 게 자네라던데. 그걸 조금 재미를 봤다는 말로 퉁치려 하다니 대단해."

그러면서 조슈아가 씩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 자신감과 욕심이 아주 마음에 들어."

"그렇습니까?"

"음. 그래도 형제지간이니 내가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순간 와인 잔을 든 칼로스의 손이 뻣뻣해졌다.

헤이든의 모든 것을 차지한 것이나다름없지만 아직도 이복형의 이름은 그에게 껄끄러운 부분이었다.

"일본에서 공매도에 손을 댔다가 크게 손실을 본 자네 형보다 투자 감각이 더 뛰어난 것 같아."

잠깐 굳었던 칼로스는 이내 신경을 누그러뜨리며 웃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두 사람은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접시가 어느 정도 비워졌을 때 조슈아 이사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아내며 물었다.

"자, 그럼 슬슬 날 보자고 한 용건이 뭔지 말해보게."

안 그래도 타이밍을 재고 있던 칼로스는 들고 온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라고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석유회사 아닌가."

"맞습니다."

세계 기업 순위 100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최근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화제가 된 회사라 조슈아도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 캐나다 에너지 기업인 넥센을 인수하려는데 컨설팅을 조슈아씨한테 부탁드렸으면 합니다."

"……나한테 말인가?"

"예."

넥센은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큰 에너지 회사였다.

미국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인 캐나다에 중국 대형 석유회사가 손을 뻗치는 것이었기에 미국 정부와 석유 업계로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말이 컨설팅이지 AIPAC의 영향력을 이용해 미국 정계에 로비를 해달라는 소리였다.

"컨설팅 금액은 1억 달러입니다."

액수를 들은 조슈아 이사가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그를 보며 말했다.

"컨설팅치고는 꽤 많은 액수군."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우호 관계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팔짱을 낀 자세로 조슈아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을 땐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백악관과 업계에서 우려하는 말이 나오고 있는 건 사실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인수를 막을 정도는 아닌 걸로 알고 있네."

팔뚝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조금 느려졌다.

"그런데도 이런 거액을 주고 컨설팅을 맡기려는 걸 보면 다른 뭔가가 있단 말인데. 그게 뭔가?"

"역시 바로 알아차리시는군요."

칼로스는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 듯 말했다.

"사실 이번 일은 양위안 충칭시 서 기의 부탁을 받은 겁니다."

"뭐?"

조슈아의 얼굴에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이 퍼져 나갔다.

대충 목적을 알아차린 조슈아가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자 칼로스는 그에게 은근한 눈짓을 보냈다.

"나중에 만나보시면 아시겠지만 야망이 아주 큰 사람입니다."

"자금성의 주인이라도 되고 싶어하는 모양이지. 하지만 거긴 이미 후계자가 정해져 있을 텐데."

"화젠민 부주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잘 알고 있군."

"다음 지도자로 화젠민 부주석이 유력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게임이든 끝날 때까지 승자를 단정지을 수는 없는 법이죠."

"틀린 이야기는 아니군."

작게 머리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정확하게 원하는 것이 뭐지?"

"중국의 차기 주자에 화젠민 부주석뿐만 아니라 양위안 충칭시 서기도 있다는 걸 알려주시는 겁니다."

"오호라. 상대적으로 약한 대외 인지도를 올리고 싶다 이거군."

"그렇습니다."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생각을 정리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 달에 APEC 고위관리회의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데 그때 참석해 라출라 대통령과 면담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면 되겠나?"

그 말에 칼로스가 씨익 웃어 보였다.

미국 대통령과 개인 면담이라니.

성사만 된다면 양위안의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칼로스의 대답에 조슈아는 지그시 미소 짓고는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봉투를 집어 들었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침묵으로 건배하며 가볍게 와인 잔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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