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수저 생활백서-391화 (391/703)

391. 오늘은 축하할 일이 두 개나 되네.

[네오픽스, 올 한 해 4조 7천억 원을 벌어 역대급 실적 달성!]

[박재성 회장, 최대 실적 기록한 네오픽스에 통 큰 성과급 지급!

파이어 슈팅과 던전 워 그리고 리그 오브 히어로까지 메가 히트 게임 삼총사를 앞세운 네오픽스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결과 올해 매출액 4조 7천억 원에 영업이익 4조 1천억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이는 국내 게임 업계 2위부터 10위까지 실적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은 성적이다.

네오픽스의 실적 급상승은 월드그랑프리 대회와 네오필드로 불리는 전용 게임장을 통한 이용자 확대가 큰 역할을 했다.

세 게임 모두 1조 이상의 수익을 거둬들이는 가운데 새로 인수한 캡콤과 오랫동안 공을 들여 제작한 신작 게임이 출시를 앞두고 있어 내년에는 더 높은 실적이 기대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재성 회장은 오늘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공지를 통해 네오픽스 전 직원들에게 통 큰 성과급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기여도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눠서 최고 1억 원의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갓 회사에 들어온 신입사원은 물론이고 경비와 미화 직원까지 빼놓지 않고 모두 포함돼 기본적으로 3천만 원을 받게 됐다.

박재성 회장의 파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성과급을 현금과 일산 메가시티 입주권 중에 하나로 선택하도록 했다.

입주권을 선택하게 되면 아파트 가격 차액을 회사에서 퇴사 때까지 연장할 수 있는 장기 무이자 대출로 지원해 주기로 했다.

몇 달 전 갑자기 제일 건설로부터 메가시티 아파트 수천 세대를 매입해 의아함을 자아냈는데 이번에 의문이 풀린 것이다.

박재성 회장은 “회사가 성장해 나가면서 그 과실을 구성원들과 함께 나누는 건 직원들의 사기 진작 큰 도움이 되고 앞으로 더 나아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와……. 성과급을 아파트로 주다니 이거 실화냐?

↳정말 박 회장은 뭘 기대하던 그 이상을 보여주는 구나.

↳경비하고 미화원들까지 성과급을 주다니. 역시 내 식구 다 챙기는 박 회장이네.

↳아…… 네오픽스 신입사원이 받는 성과급이 내 연봉보다 많네…… 지금이라도 회사 때려치우고 코딩 공부해야 되는 거냐…… TT

↳난 벌써 학원 끊었음

↳캬…… 눈치 빠른 놈.

↳근데 여기 가격 더럽게 비싸서 미분양 났던 곳이잖아.

↳딱 보니까 각 나오네. 제일 건설에서 처치 곤란이던 걸 포장해서 직원들한테 떠넘기는 거네.

↳이 시비충들은 뭐냐.

↳각은 무슨 놈의 각. 최고급으로 지었으니까 비쌀 수밖에. 그리고 네오픽스 신사옥을 일산에 짓는다는 말 못 들었냐.

↳지금 찾아봤는데 메가시티하고 신사옥 부지가 걸어서 5분 거리네.

↳이거까지 계산하고 신사옥을 짓는다고 한 거였어……. 와 지리네.

↳회사까지 걸어서 5분이라니……. 이거 무조건 입주권 받아야 되는 각이잖아.

언론 기사가 쏟아지자 반응을 폭발적이었다.

성과급 액수도 컸지만 무엇보다 아파트를 준다는 것에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 역시 사람들의 관심 일순위가 부동산, 그중에서도 아파트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파격적인 성과급 지급을 단행한 재성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역시 아주 긍정적이었다.

* * *

그런 가운데 다사다난했던 2012년이 가고 2013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 어김없이 가족들이 평창동 본가에 모두 모였다.

다만 딱 한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둘째 박재민이었다.

올해도 연락도 없이 안 오는 것을 보고 어머니인 단가연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박경수 회장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없는 자식 취급을 하기로 했는지 박경수 회장의 입에서 박재민의 이름 석 자를 듣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집안은 물론이고 그룹에 끼친 피해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걸 수도 있겠지만 부자지간의 연을 단칼에 잘라 버리는 모습에서 그동안 잠시 잊고 있던 재벌 회장의 냉철함이 엿보였다.

식탁에 모여 아침을 함께 먹는 동안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단가연 여사가 그나마 자식들에게 말을 붙여가며 노력하긴 했지만 어쩐지 역부족이었다.

박경수 회장과 재성은 원래 밥 먹으면서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고 유일한 딸자식인 재경은 평생 애교라곤 부려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더 그랬다.

그때 박재현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아버지, 어머니. 실은 두 분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러자 박경수 회장이 막 갈비찜을 집어 들던 손을 멈췄다.

“뭔데 그러냐?”

박재현은 옆에 앉아 있는 아내를 한번 쳐다보았다.

안 그래도 오늘따라 유독 얌전하게 굴어서 이상하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무슨 이유가 따로 있나?’

게다가 둘이서 눈을 마주치는데 답지 않게 애틋한 분위기까지 감돌아서 소름이 돋았다.

재성은 팔을 벅벅 문지르며 궁금하단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올 여름에 두 분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실 것 같아요.”

“뭐?”

“어머!”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건 단가연 여사였다.

“큰애야. 너 정말로 아이를 가진 거니?”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단가연 여사가 묻자 장인선이 부끄러운 듯 살짝 볼을 붉히며 대답했다.

“네. 어제 남편하고 같이 병원에 갔는데 이제 4주째래요.”

“어머어머!”

단가연 여사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정말 축하한다. 새해에 이런 기쁜 소식이라니!”

옆에선 박경수 회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숟가락을 내려놨다.

너무 갑작스런 이야기다 보니 아직 실감이 안 나는 듯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언니 축하해요.”

재경도 이때만큼은 진심으로 웃는 얼굴을 보였다.

“조카가 생긴다니.”

생각만 해도 이상한 기분이었다.

재성은 어쩐지 아까부터 둘 사이가 좋아 보이던 게 이런 이유였구나 싶었다.

“축하드려요, 형수.”

“고마워요.”

장인선은 누구보다도 해맑게 웃으며 주변에서 쏟아지는 축하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아직 배가 부른 티도 안 나지만 몸속에 또 다른 생명이 있어서인지 한결 온화하고 포근해 보였다.

재성은 사람이 저렇게 인상이 바뀔 수도 있나 하고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좋아! 이거 아주 좋은 소식이로구나. 장하다.”

박경수 회장은 한쪽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감추지도 않으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후부터는 새로 태어날 아이 이야기로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하게 바뀌었다.

그렇게 식사를 끝낸 뒤엔 어김없이 박경수 회장의 호출이 기다렸다.

자식들을 서재로 불러 모은 박경수 회장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장남인 박재현을 보았다.

“이제 아이도 생겼으니 책임이 막중하구나. 더욱 열심히 일해야 되겠어.”

“예.”

손자 이야기를 들은 직후라 박경수 회장의 말투는 여느 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박재현도 첫 아이가 생겼다는 기쁨 때문인지 대답하는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재성의 제안을 받아 애플 물량을 위탁 생산 하기로 한 이후 더욱 생각이 깊어지고 듬직해진 장남이었기에 박경수 회장은 믿고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무엇보다 본인이 저렇게 의욕에 넘치니 다른 말은 필요 없을 듯했다.

사실 애플 제품 위탁 생산은 제일 전자 내부에서도 반발이 작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에 핸드폰 세계 시장 점유율 3위까지 했었던 자존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인 재현이 강하게 밀어붙여 지금은 위탁 생산을 하기로 확정 짓고 한창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박경수 회장은 고개를 돌려 왼편에 앉은 재성에게 시선의 주며 물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ST 그룹이 소유한 로지 엔터테인먼트인가 하는 곳을 인수하려고 협상 중이라면서?”

“네.”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재성이 말을 이었다.

“협의를 거의 다 끝내고 몇 가지 소소한 사항만 남아 있는 상태라 아마 이번 달 중으로 계약이 이루어질 겁니다.”

“지난번 하이닉스 인수에 실패한 것 때문에 최 회장이 너한테 감정이 별로 안 좋은데 용케 회사를 매각하기로 했구나?”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제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어쩔 수 없이 회사를 팔아야 될 상황이니,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매각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긴 최 회장이 사리 분별을 못 하는 사람은 아니지.”

이미 독립을 해서 나가 한 기업 집단의 수장이었기에 박경수 회장은 더 이상 간섭하지 않았다.

‘지금 유니콘 그룹의 몸집을 보면 제일에서 떨어져 나간 방계라고 말하기도 어색할 정도지.’

사실 제일 그룹에서 계열 분리를 해서 들고 나간 건 씨네박스와 유니콘 데이터, 병원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기에 사실상 지금의 유니콘 그룹은 오롯이 재성 혼자서 일으킨 거라고 해도 무방했다.

박경수 회장은 모여 앉아 있는 자식들을 둘러보며 본론을 꺼냈다.

“오늘은 너희들에게 알려줄 일이 한 가지 있다.”

“……?”

식사 때까지 딱히 별다른 낌새가 없었기에 다들 의아한 얼굴로 박경수 회장을 봤다.

“이제 지분 정리 작업도 어느 정도 끝났으니 3월에 있을 정기 주주총회에서 별도의 지주사를 만들어 백화점과 호텔을 그룹에서 완전히 떼어낼 생각이다.”

“……!”

다들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박경수 회장의 말이 계열 분리를 의미한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미 백화점과 호텔을 딸인 재경의 몫으로 주기로 한 상태였기에 금방 평정심을 되찾았다.

조금 갑작스럽긴 했지만 어차피 예정되어 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애써 티를 내려고 하지 않았으나 재경의 얼굴이 살짝 상기된 가운데 박경수 회장이 말을 이었다.

“새 지주사는 각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주식들을 전부 모아서 백화점과 호텔 지분을 각각 38%, 43%씩 보유하게 될 거다. 지주사를 만드는 데 네 외할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셨으니 나중에 직접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도록 해라.”

“예.”

“그리고 증여세 문제는 윤경욱 본부장이 찾아갈 테니 따로 만나서 상의하도록 해라.”

“그럴게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만 해. 그럼 너도 재성이처럼 회사를 잘 키워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제가 언제 실망시켜 드린 적 있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야무진 대답에 박경수 회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재현을 보며 말했다.

“장인어른께서 너한테도 제일 글로벌 지분 10%를 증여해 주실 거다.”

이야기를 들은 재현은 눈을 크게 뜨고 마른침을 삼켰다.

제일 글로벌은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순환출자 고리의 중심이 되는 지주회사였다.

재성이 독립해서 나가면서 넘긴 주식을 받아 현재 재현이 가진 지분은 2%였다.

그런데 여기에 외할아버지인 단청백의 지분 10%를 증여받는다면 총수인 박경수 회장을 이어 2대 주주가 되는 거였다.

이건 단순히 지분이 늘어나는 걸 넘어 그룹 후계자 자리를 더욱 확고하게 굳히게 된다는 걸 뜻했다.

“이번 주총에서 제일 글로벌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게 될 테니. 그리 알고 있도록 해라.”

“네.”

기쁨을 최대한 감추려고 했지만 목소리에서 들뜬 기색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형 축하해.”

“오늘은 축하할 일이 두 개나 되네.”

동생들의 연이은 말에 재현이 고맙다며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 다 고맙다. 그리고 재경이 너도 마침내 홀로서기를 하게 됐구나. 축하해.”

재경은 눈꼬리를 휘면서 생긋 미소 짓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다투는 대신 서로 우애 좋게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보니 박경수 회장도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골칫거리인 둘째 아들이 떠오르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 하나만 제대로 마음을 고쳐먹었으면 모든 게 다 잘되었을 텐데.’

괘씸하면서도 동시에 아쉬운 마음이 드니 참으로 기분이 복잡미묘했다.

한 번 더 기회를 줘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쳐들었지만 박경수 회장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능력은 없으면서 시기와 욕심만 많은 녀석이니 어차피 또 분란만 일어날 거야.’

모처럼 모두가 다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이제 와서 다시 분란의 씨앗을 뿌릴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엉뚱한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끊어놓는 게 맞아.’

그게 다른 자식들과 그룹을 위한 옳은 일이었다.

어차피 평생 충분히 먹고살 만한 재산을 떼어 줬으니 길거리에 나앉을 일은 없을 거다.

그만하면 부모로서 할 일은 다 했다고 박경수 회장은 스스로 마음을 다 잡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