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9. 대선 결과를 보고 많이 아쉬웠겠습니다.
[테슬라, 이스라엘 자율주행시스템 업체 모빌아이 153억 달러에 인수!]
[모빌아이 인수 자금 조달을 위해 테슬라 165억 달러 규모 유상 증자 발표!]
[무리한 인수합병과 대규모 유상증자 발표에 테슬라 주가 4% 급락!]
[골드원 글로벌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 지분 37% 손의설 펀드에 61억 달러를 받고 매각.]
[전기차를 넘어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승부수를 띄운 테슬라.
테슬라가 이스라엘 자율주행차 기술 기업 모빌아이를 인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인수금액은 오늘 종가에 프리미엄 34%를 더해 주당 63.54달러, 총 153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는데 한화로 약 17조 5,500억 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거액이다.
현재 인수 발표 전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331억 달러 남짓이었던 걸 생각하면 굉장히 큰 거래라는 걸 알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처음 설립된 모빌아이는 운전 시 속도 조절, 잠재적 충돌 위험 경고 등을 해주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낸 기업이다.
차량에 부착된 여러 개의 센서들이 물체를 인식해 위험 상황을 경고하는 장치가 바로 ADAS인데, 자율주행 차량을 개발하는 데 기본이자 핵심이 되는 기술이다.
테슬라는 이번 인수를 통해 자사의 “오토로드”와 모빌아이의 기술력을 결합해 자율주행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매분기 거액의 적자를 기록하며 현금 여력이 부족한 테슬라는 모빌아이 인수와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165억 달러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함께 발표했다.
새롭게 발행되는 주식들은 테슬라 오너인 박재성 회장이 전량 다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이렇게 되면 박재성 회장의 지분이 57.87%로 지금보다 더 늘어나게 된다.
유상 증자 물량을 오너인 박재성 회장이 전부 떠안으며 책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지분 희석과 무리한 인수가 아니냐는 우려에 기존 주주들이 주식을 매각하며 테슬라 주가는 4% 가까이 급락한 채 마감됐다.]
↳테슬라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냐?
↳안 그래도 적자 회사가 17조가 넘는 돈을 들여서 다른 회사를 인수하다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중.
↳박 회장 믿고 적금 만기된 거 넣었는데 여기서 털고 나가야 되나요?
↳탈출은 지능순. 난 이미 털었음.
↳이 사람들 아직 믿음이 부족하네. 박 회장이잖아. 그냥 믿고 가자고.
↳혹시 알아 나중에 천슬라가 될지?
↳그게 말이 되냐^^
↳님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음.
모빌아이 인수로 테슬라 주가가 출렁이는 가운데 전용기를 타고 급히 뉴욕으로 날아온 사토 총리는 인수위가 꾸려진 애런 아서 타워에서 애런 아서 당선자를 만났다.
펜트하우스는 그야말로 궁전 같았다.
고층 건물 안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LA에 있는 대저택처럼 화려한 인테리어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사토 총리는 통역을 맡은 수행원 한 명과 함께 안내를 받으며 거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반원 모양의 소파에 앉아 있던 애런 아서가 큰딸인 엘레노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 띤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사토 총리 또한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애런 아서의 손을 잡았다.
키가 크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그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듯했다.
딸인 엘레노어도 마찬가지라 의도하진 않았지만 아서 부녀가 사토 총리를 내려다보는 식이 되었다.
두 사람이 악수하자 거실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방송국 스태프가 카메라를 돌려 이 순간을 렌즈에 담았다.
동시에 뒤에선 사진 촬영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거인과 난쟁이 같은 모양일 거라고 생각하니 사토 총리는 속으로 기분이 상했다.
사토 총리도 작은 키가 아니지만 애런 아서의 덩치가 워낙 큰 데다 장신이라서 상대적으로 아주 왜소해 보일 테니까.
“일단 앉으시죠.”
어쨌든 카메라를 향해 손을 맞잡고 있는 포즈를 잠시 취해준 사토 총리는 애런 아서가 소파를 권하자 감사하다며 자리에 앉았다.
먼저 두 사람이 소파에 앉자 수행원과 엘레노어가 이어서 각자 옆자리를 차지했다.
사토 총리는 슬쩍 곁눈질을 하며 엘레노어를 쳐다보았다.
일국의 총리를 만나는 자리이니 옆에 다른 측근을 대동할 걸로 생각했는데 딸이 있어서 살짝 놀랐다.
선거 캠프에서부터 줄곧 따라다닌 건 알았지만 설마 이런 자리에서까지 옆을 차지하고 앉을 줄이야.
그래도 애런 아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걸 보고 사토 총리는 앞으로 엘레노어가 새 행정부의 문고리 역할을 하게 될 걸 직감했다.
“지금부터는 비공개 회담입니다. 다들 나가주시죠.”
경호원이 나가라고 손짓하며 카메라맨들을 밖으로 쫓아냈다.
처음부터 고지된 사항이었으므로 방송 스태프들은 군말 없이 각자 장비를 챙겨 사라졌다.
원목으로 만든 두꺼운 문이 닫히자 대번에 애런 아서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는 방금 전까진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몸을 뒤로 기대며 거만한 태도로 사토 총리를 대했다.
“이번 대선 결과를 보고 많이 아쉬웠겠습니다.”
순식간에 돌변한 애런 아서의 태도에 사토 총리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내보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애런 아서가 가늘게 뜬 눈으로 사토 총리를 쳐다봤다.
“그야 총리와 일본 정부는 제니퍼가 당선되길 바랐을 테니까요.”
“서, 설마요. 어떻게 그런.”
바로 부정하려고 했지만 저렇게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거려 봤자 설득력이 없었다.
“변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그런 트윗도 올린 거 아닙니까?”
애런 아서가 골이 잔뜩 난 표정으로 말했다.
흡사 성질 나쁜 골목대장 같은 모습이었다.
옆에서 통역을 해주던 이조차 애런 아서의 노골적인 비아냥에 깜짝 놀라 사토 총리의 눈치를 살폈다.
애런 아서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일국의 총리를 만나는 공식적인 자리였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대놓고 트윗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기에 사토 총리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총리님.”
당황해서 얼어 있는 사토 총리를 보고 통역이 재촉하듯 눈짓했다.
애런 아서가 아직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 크흠.”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토 총리는 괜히 헛기침을 하곤 황급히 머리를 굴렸다.
일본 정치판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게 헛된 일은 아니었는지 애써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 일에 대해선 깊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사토 총리는 신중하게 말을 고르며 애런 아서에게 사과했다.
여기서 자칫 실수했다가는 양국 관계가 더욱 꼬일 것 같았다.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었고, 착오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제가 다시 한번 사과하겠습니다.”
씨도 안 먹힐 어설픈 변명이었지만 애런 아서는 불쾌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 역시 노련한 사업가라 어물쩍 넘어가려는 걸 쉽게 눈치챘다.
하지만 애초에 이 자리 자체가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정치적 관계를 생각하면 더 이상 크게 화를 내지 않고 이쯤에서 넘어가는 것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따로 원하는 게 있으니 일부러라도 더 상대를 곤욕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프닝이라.”
애런 아서는 흥, 코웃음을 쳤다.
“난 기존 정치인들과 달리 동맹이라고 막 퍼주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총리나 일본 정부 입장에선 내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겠지요.”
계속해서 기분 나쁜 티를 내니 사토 총리는 더욱 안달이 났다.
어떻게 해서든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데 사과를 해도 들어먹지 않는 상대에게 도대체 무엇을 해줘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설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토 총리는 아예 납작 엎드릴 기세로 다시 한번 죄송하다며 애런 아서에게 사과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사토 총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애런 아서는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말을 입에 담았다.
“유니콘 그룹 박재성 회장을 아시지요.”
뜬금없는 이야기에 의아한 생각을 하면서 사토 총리가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애런 아서는 총리를 대할 때완 달리 얼굴에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서 말했다.
“총리하고 달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거 시작부터 끝까지 절 지지해 주고 도와준 아주 고마운 친구입니다.”
그러면서 애런 아서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일본 정부 때문에 사업을 하는 데 곤란한 일을 겪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
눈치가 빠른 사토 총리는 단번에 애런 아서가 뭘 원하는지 알아차렸다.
“도시바 반도체 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애런 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들으니 박 회장이 매우 억울한 상황이더군요. 제대로 절차를 밟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는데 중간에 일본 정부가 나서서 판을 엎다니. 그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사토 총리도 이 건에 대해선 할 말이 있었다.
“그 일은 국가 기간산업 보호를 위해 취해진 조치입니다. 돈이 있다고 뭐든지 다 사들일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물론 총리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일 때문에 한일 양국 관계에 마찰이 생긴다면 동북아시아 평화를 지키는 데 마이너스가 되겠죠.”
남의 나라 일에 왜 간섭이냐며 버럭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겨우 눌러 참았다.
사토 총리도 바보가 아닌지라 애런 아서가 무슨 뜻으로 저렇게 말을 하는지 이유를 알았다.
하지만 굳이 제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모른 척 눈을 돌렸다.
엄밀히 말해 도시바 반도체 매각에 애런 아서가 관여하는 건 명백한 월권 행위였다.
사토 총리로서는 당연히 상관하지 말라고 거부하고 싶지만 문제는 지금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는 거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급부상하는 상황에서 현재 일본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미국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럴 때 미국의 새 대통령이 될 애런 아서에게 밉보인 것이다.
미일 관계가 견고해지긴커녕 한국 다음으로 밀려나 버릴 지경이 되어 버렸으니 사토 총리가 아무 말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당연했다.
‘설마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애런 아서를 후원한 건 아니겠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사토 총리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사토 총리는 속으로 머리를 흔들며 부정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차기 대통령은 제니퍼 후보일 거라고 예상했다.
거기다 일본이 먼저 줄을 댔으니 어쩔 수 없이 고육지책으로 고른 게 애런 아서였을 뿐이다.
운이 빌어먹게 좋았을 뿐이라며 사토 총리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빠져나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결국 사토 총리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럼?”
“도시바 반도체 매각 건은 원만하게 해결이 될 수 있도록 하지요.”
아무리 평소 같은 표정을 유지하려고 해도 얼굴에 떨떠름한 기색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반면 애런 아서는 아주 만족한 듯 웃음 지었다.
“그럼 이제 주일미군 주둔 비용과 무역 적자 해소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해봅시다.”
이제야 겨우 본론으로 넘어갈 수 있겠다는 태도였다.
‘맙소사!’
여기서 끝이 아니라 아직도 더 뜯어갈 게 남았다니.
사토 총리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고 애런 아서는 먹잇감을 앞에 둔 사냥꾼처럼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다들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애런 아서는 본래 뼛속부터 사업가인 사람이다.
특히 약점을 잡은 상대를 탈탈 털어먹는 건 그가 제일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당연히 제대로 약점이 잡힌 일본을 호락호락 놔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난 뒤에 회담을 끝낸 사토 총리가 수행원들과 함께 애런 아서 타워를 나왔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국내외 기자들이 몰려와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어떤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대선 결과와 관련된 트윗에 관해 사과하셨습니까?”
거슬리는 질문을 한 미국 기사를 무시하며 사토 총리가 입을 뗐다.
“애런 아서 당선인과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유익한 만남이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흉금을 터놓고 솔직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번 대화를 통해 애런 아서가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일 미군 주둔비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그러자 사토 총리가 차분히 대답했다.
“저의 일본 정부의 기본적인 생각을 다 말했고,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번 회담은 비공식 회담이니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에 다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인터뷰를 끝낸 사토 총리는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탑승해 애런 아서 타워를 떠났다.
뉴욕 경찰 사이카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차가 출발하자 뒷좌석에 탄 사토 총리는 치욕감에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욕설을 내뱉었다.
“칙쇼!”
* * *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주기장.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용기에 탄 재성은 진동벨이 울리자 한쪽에 놔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에 애런 아서의 이름이 떠 있었다.
[날세.]
“바쁘실 텐데 어쩐 일이십니까?”
[아무리 바빠도 자네하고 통화할 시간은 있지. 아직 LA에 있나?]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전용기를 탔습니다.”
[잘됐군. 자네한테 줄 귀국 선물이 있네.]
대충 뭔지 짐작이 된 재성인 기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뭔지 기대가 되는군요.”
[지난번에 말했던 도시바 반도체 문제 말이야.]
“예.”
[조만간 일본 정부가 매각 승인을 내주고 우선협상 대상자 자격도 되돌려 줄 걸세.]
“정말입니까?”
[사토 총리가 직접 약속한 일이니 믿어도 될 거야.]
“하하하. 감사합니다.”
[이번 대선 기간 동안 자네가 해준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또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이야기하게.]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더 통화하고 싶지만 다른 일정이 있어서 어렵겠군. 나중에 또 전화하기로 하고 조심해서 돌아가게.]
통화를 끝낸 재성은 얼굴 가득 짙은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