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수저 생활백서-588화 (588/703)

588. 재앙이 다시 한번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

[속보! 북한 1년 만에 또 핵실험 강행!]

[전 세계 언론 북한 핵도발 긴급 타전!]

[북한 풍계리 인공지진 감지. 6차 핵실험 강행 추정.]

[북한 핵실험에 급속히 냉각된 한반도 정세!]

[北 오후에 중대발표 예고, 핵실험 성공과 핵보유국 선언 유력!]

[횟수가 거듭될수록 강력해지는 북한 핵 능력, 한국은 속수무책.]

[北 “대륙간탄도미사일용 수소탄 실험 완전 성공” 발표!

북한 당국이 사전에 예고한 대로 오늘 오후 3시 30분, 북한 조선중앙TV에서 중대 보도가 나왔다.

카메라 앞에 선 이춘희 조선중앙TV 아나운서는 “우리의 핵 과학자, 기술자들이 첫 수소탄 시험에서 얻은 귀중한 성과에 토대하여 핵 전투부로서의 수소탄의 기술적 성능을 최첨단 수준에서 보다 갱신했다”고 하면서 “핵폭탄 위력을 타격 대상에 따라 수십 kt급부터 수백 kt급에 이르기까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우리의 수소탄은 거대한 살상파괴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대한 초강력 EMP 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전투부”라고 말했다.

이번 발표로 여러 전문가들이 주장한 대로 이번 핵실험이 수소폭탄 실험이었다는 것을 북한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아울러 고공도에서 핵을 폭발시켜 모든 전자기기를 일시에 무력화시키는 EMP 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며 한층 도발 수위를 높였다.

대규모 살상과 보복을 불러올 핵공격하고 달리 EMP 공격은 미국의 핵보복을 교묘하게 피하면서 한국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단순한 위협용이 아니라 북한이 실제로 핵을 공격에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뜻해 더욱 큰 우려가 나오고 있다.

UN 안보리가 비상소집된 가운데 사토 일본 총리가 “이번 핵실험은 일본의 안전에 대한 중대하고 급박한 새로운 단계의 위협”이라고 규정하면서 “엄중 항의하고 가장 강한 말로 단호하게 비난하는 것과 동시에 평화헌법 개정의 필요성이 이번 일로 더욱 분명해졌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는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면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윗동네 애들 정말 왜 이러냐.

↳수소폭탄이라니 다 같이 죽자는 거야?

↳젠장! 내일 유학가 있는 아들 학비랑 생활비 보내줘야 되는데. 환율 날아가게 생겼네 TT

↳X팔. 오늘 100일 휴가 첫날인데 복귀 명령받고 기차 타러 가는 중.

↳그건 아니지…… TT

↳입에서 욕 나올 만하네. 군인들 개불쌍.

↳이건 인정 TT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발표로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큰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각 기업들도 비상 체제로 돌입했다.

유니콘 그룹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외할아버지의 용인 저택에 있다가 곧장 서울로 돌아온 재성은 소집 연락을 받고 모여 있던 그룹 사장단과 대책 회의를 가졌다.

“금융 상황은 어때요?”

재성의 물음에 배광석 재무이사가 심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 발표를 하면서 금융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당장 한국의 신용위험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한 번에 4bp나 뛰어올랐고 환율 역시 6원 오른 달러당 1,129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과 환율이 치솟았다는 건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독일과 영국 등 유럽 주요 증시들도 현재 0.5~0.7%가량 내림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범유럽지수인 스톡스유럽 600 지수 역시 0.6% 하락 중입니다. 여기에 아직 개장하지 않은 미국 증시 역시 S&P500 지수 선물이 0.5% 약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건 미국이 군사력을 쓸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겠죠?”

“그렇습니다. 이번에 실험한 핵폭탄의 위력이 무려 50kt급으로 무시할 수 없는 파괴력인 데다가 무엇보다 대륙간탄도탄에 탑재해 사용할 거라고 한 것이 미국의 인내력을 바닥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재성이 뒤로 몸을 기대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대륙간탄도탄은 미국을 노린다는 뜻이니 마지막 레드라인을 완전히 넘은 행동이겠죠.”

왼편에 앉은 정기석 하이닉스 사장이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며 이야기를 했다.

“맞습니다. 워싱턴 정계에서도 북한 핵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고 합니다.”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면…….”

송현준 A마켓 사장이 말끝을 흐리며 쳐다보자 정기석 사장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라크에서처럼 직접 침공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북한 핵시설을 폭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겁니다.”

순간 회의실 안이 크게 술렁였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지난번에 애런 아서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 발언을 한 걸 생각한다면 또 모르는 일일 겁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글로벌 투자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니까 지금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이겠죠.”

화염과 분노는 올해 8월,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성공 보도가 나오자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애런 아서 대통령이 “더 이상 북한의 위장 평화 전술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면서 “만약 레드라인을 넘어 미국을 계속 위협한다면 전례 없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라고 발언한 사건을 말하는 거였다.

“확실히 이번 핵실험은 아주 위험해요.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드는 행동이니까.”

“회장님도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이 자리에서 애런 아서 대통령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재성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시선을 집중하는 가운데 재성이 차분히 대답했다.

“아니. 앞으로 한동안 긴장감이 높아지겠지만 애런 아서 대통령도 마지막 선은 넘지 않을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재성의 말에 바로 물음을 던진 건 박유석 유니콘 증권 사장이었다.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증권 쪽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기에 향후 정세에 대한 재성의 의견이 궁금한 듯했다.

“이유는 간단해요. 한반도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기 때문이죠.”

의아해하는 임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재성이 말했다.

“다들 알고 있다시피 한국은 G10에 들어가는 선진국이에요.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지난 6.25하고는 차원이 다른 파장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되겠죠.”

지난 수십 년간 피땀으로 이룬 눈부신 경제 성장 덕분에 한국의 위상과 영향력이 예전과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커졌기에 다들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하이닉스와 사성전자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글로벌 D램 시장을 한국의 두 회사가 장악하고 있으니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순간 전 세계 IT업계가 마비되어 버릴걸요?”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말에 진지하게 듣고 있던 정기석 하이닉스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반도체 글로벌 공급체인에서 한국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죠.”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휴전선에서 고작 4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울이 있잖아요. 무려 천만 명의 인구가 사는 메가시티인데 대규모 인명피해를 각오하지 않는 이상 한미 양국이 섣불리 행동할 수 없어요.”

가장 연륜이 높은 안형준 유니콘 데이터 사장이 재성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말을 덧붙였다.

“굳이 핵폭탄을 쓰지 않더라도 북한이 위협을 해올 때마다 내세우는 장사장포 사거리에 서울과 수도권이 모두 들어가니까요. 전쟁이 벌어진다면 저들 말대로 불바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울이 아수라장이 될 건 분명하겠죠. 인명피해도 클 테고요.”

“그래요. 거기다 수도권까지 범위를 넓히면 북한의 공격에 노출된 인구수는 더욱 많아져요. 아무리 애런 아서 대통령이 무데뽀라도 이런 걸 전부 무시하고 일을 벌이지는 못해요.”

설사 북한의 핵 능력을 제거한다고 해도 서울과 수도권이 쑥대밭이 되고 많은 인명 피해까지 발생한 뒤에야 가능한 일이라면 한국 입장에선 너무나도 뼈아픈 손실이었다.

북한의 핵능력이 나날이 고도화되는 걸 알면서도 한미 양국이 섣불리 군사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이런 약점을 북한도 알고 툭하면 서울 불바다 이야기를 꺼내며 노골적으로 협박을 해대는 거였다.

“하지만 북한의 핵 능력이 이제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기 시작했으니 정세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요. 애런 아서 대통령과 워싱턴 정가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니까 당분간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대비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임원들의 대답을 들은 재성은 이번엔 배광석 재무이사를 향해 말했다.

“현재 그룹 전체 현금 보유액이 얼마나 되죠?”

“장기 투자로 묶인 걸 제외하고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은 960억 달러가 있습니다.”

“대부분 달러로 가지고 있죠?”

배광석 이사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결재 용도로 쓸 5조 원 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달러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이닉스와 네오픽스 등 그룹의 캐시카우가 되는 계열사들이 주로 해외에서 큰 수익을 거두다 보니 달러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에 골드원을 통해 들어오는 수익금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다고 해도 한 그룹이 한화로 무려 120조 원이 넘어가는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달러 보유량이 많은 걸 감안하면 환율 상승이 그룹 입장에서 나쁜 일은 아닐 거예요.”

“그렇습니다.”

환율이 올라가면 그만큼 달러를 비싸게 원화로 바꿀 수 있으니 환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액수가 적다면 큰 차이가 없겠지만 유니콘 그룹처럼 수백억 달러 규모로 가지고 있다면 차익이 어마어마했다.

더군다나 반도체 빅사이클로 달러를 마구 쓸어 담고 있으니 하이닉스 입장에서는 겹호재였다.

“한동안 환율이 계속 높게 유지될 테니까. 상황을 지켜보면서 보유한 달러를 적절히 매각해 환차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재성은 왼편에 앉은 권혁재 실장을 향해 손짓했다.

“권 실장. 준비한 걸 나눠주도록 해요.”

“예.”

권혁재 실장이 눈으로 신호를 보내자 비서실 직원들이 미리 준비한 얇은 서류를 참석한 임원들 앞에 한 부씩 내려놓았다.

임원들은 갑자기 웬 서류냐며 의아한 표정으로 재성을 쳐다보았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외부 요인이 그룹 경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다들 실감했을 거예요. 북한 핵 문제가 아니더라도 향후 언제든지 돌발 요인이 발생해 글로벌 경제와 그룹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요.”

재성은 방금 전 임원들에게 나눠준 서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심각하게 우려하는 건 바로 전염병에 의한 전 세계적인 팬데믹 사태예요.”

“팬데믹…….”

“전염병 말씀입니까?”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는 임원들을 보며 재성이 이야기를 했다.

“재작년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인 로빈 게이츠가 테드(TED) 연설에서 전염병 대유행을 경고했었죠. 일부 유명 인사들 가운데서는 벌써 위험성을 감지한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의학의 발전 덕분에 다들 전 세계에서 전염병이 사라진 줄 알지만, 일단 병이 유행하기 시작하면 얼마나 위험하고 치명적인 사태가 되는지 다들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TED는 미국 비영리단체에서 개최하는 강연회로 매년 각 분야의 저명인사나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룬 명사를 초대해서 18분 이내로 강연을 듣는 행사였다.

실제로 2015년 열린 강연회에서 연사로 나선 오빈 게이츠가 “전염병 확산은 전시상황이다. 앞으로 우리들이 경계해야 할 건 미사일이 아니라 미생물이다”라며 전염병 대유행, 즉 세계적 팬데믹 상황을 경고하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이거 때문에 로빈 게이츠가 코로나 팬데믹의 흑막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떠돌기도 했지.’

“지금 나눠준 건 로빈 게이츠가 TED 강연에서 한 연설 내용을 정리한 거예요. 다들 그걸 한 번씩 꼼꼼히 읽어봤으면 해요.”

“네에?”

갑자기 내려진 숙제에 임원들이 허둥거리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만약 팬데믹이 벌어졌을 경우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고 각 계열사별로 대비책을 작성해서 나한테 올려요.”

“아니, 그런…….”

“천연두나 흑사병이 난무하던 중세시대도 아니잖습니까. 회장님께서 걱정이 너무 심하신 건 아닌지.”

“그렇지요. 사스나 신종 인플루엔자 같은 것도 한때 시끄러웠지만 어떻게 잘 넘어갔고.”

다들 과민 반응이라고 생각하는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때 정기석 하이닉스 사장이 손을 들어 재성에게 말했다.

“회장님. 돌발 상황에 맞설 대비책을 세우는 건 좋은 생각입니다만, 현실적으로 글로벌 경제가 흔들릴 정도로 큰 전염병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요?”

정기석 하이닉스 사장의 의견에 다른 임원들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재성 또한 코로나 팬데믹을 겪지 않았다면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코로나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최악의 재해였으니까.

재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정기석 하이닉스 사장과 눈을 마주쳤다.

“다들 사스, 메르스를 기억하겠죠. 그때도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그런 파장을 일으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다행히 전 세계적인 확산은 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피해를 일으켰죠. 그리고 스페인 독감처럼 인류에 큰 불행을 안긴 재앙이 다시 한번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죠?”

“그건…….”

너무 비약적인 생각 같았지만 그렇다고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말문이 막힌 정기석 사장과 임원들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재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니었다.

그냥 안전 관리 차원에서 계획만 세워두는 거지 본격적으로 대비를 할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뭐, 그냥 비상 대응 능력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러시는 거겠지.’

‘회장님은 사소한 것까지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는 구석이 있으시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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