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약혼자와 결혼식을 앞두고 납치를 당한 연조.
“깨어났어?”
평온하고 나른한 목소리. 발그스름하게 상기된 얼굴.
긴 시간 곪아간 사랑의 궤적‥…. 결코 낯설 수 없는 남자다.
“연조야.”
낮은 목소리가 목덜미에서 울린다.
두 눈에 깔린 음울함이 짙었다. 연조는 하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마음에 안 들어?”
“뭐, 뭐가?”
“내 키스 말이야.”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손등으로 이마와 눈을 비볐다. 다른 사람이 아니다. 한기조. 한기조가 맞다. 얼얼한 낯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별안간에 한 가지가 궁금하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뭐가 잘못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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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예전부터 사람 하나 아주 병신 만드는 데는 도가 텄어.”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데 도가 텄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을 늘 병신으로 만드는 건 그녀가 아니라 눈앞의 남자였다. 불현 듯 그가 씨근덕거리며 뇌까렸다.
“하긴 상관없으니까 다른 새끼를 만나는 거겠지?”
“…….”
“말해. 날 사랑한다고. 날 사랑해서 괴롭다고.”
개암 색 눈동자가 쓰라렸다. 울음에 혀가 아렸다. 연조는 그가 앓고 있는 것인지 제 심장이 알알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