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속 엑스트라에 빙의했지만, 아비 놈에게 술병으로 머리 맞고 사흘을 기절했다. 그렇게 다시 눈을 뜬 ‘세라피’는 일단 아비를 내쫓는 후레자식부터 되기로 했다.
“신이 떠나간 땅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자연히 원작을 건드렸고.
“사업을 한번 해 볼까 하는데….”
“마탑에 들어가고 싶어요?”
“이 법안은 문제가 너무 많아요!”
“후원 한번 받아 볼래?”
“학교를 한번 세워 볼까?”
양심의 가책도 없이 계속 건드렸더니….
“아가씨! 아니, 주인님!”
“세라, 당신의 부하가 되겠어요.”
“세라가 하는 말이면 당연히 믿어야죠.”
“백작은 이 나라의 희망이야.”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그냥 저 편하려고 돈 벌고 명예를 쌓아 가는 것뿐인데, 왜들 이렇게 몰려와서 떠받들고 충성 맹세하고 난리인지, 세라피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
“세라.”
“…….”
세라피가 황급히 제 귀를 두 손으로 가렸다.
뻘게진 얼굴로 뒷걸음질 치니, 오르키스 역시 덩달아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하나 이윽고 장난기 넘치는 호선을 그렸다.
“이런, 애칭에 약했군요.”
세라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애칭에 약한 게 아니라, 갑자기 귓가에다 속삭이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세라피는 그 이유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별 감흥 없는 애칭 좀 불렸다고 이렇게 심장이 쾅쾅 뛸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저를 보며 즐거워하는 오르키스는 천진난만한 소년 같은 모습을 보였다.
늘 세상 지루하던 눈빛이 처음으로 순수하게 느껴졌다.
세라피는 괜히 코끝이 간지러웠다. 풋풋한 여름 특유의 향기가 한층 더 진해진 기분이었다.
“애칭이라면 매일 부를 수 있을 거 같은데.”
오르키스가 이제 그만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세라피가 쭈뼛거리면서도 일단은 가까이 다가갔다.
“놀릴 의도가 너무 다분해서 허락 못 하겠는데요.”
“이런 것도 연습해야 버릇이 든다고 한 건 백작입니다.”
“과거의 내 주둥이를 패고 싶네요.”
그래도 세라피는 제 애칭으로 부르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