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탐식의 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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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화 탐식의 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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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화> 탐식의 왕 (1)
2022.06.28.
“간다.”
“응.”
전력으로, 최단시간으로 대막에 도착한 천화와 설영은 지체하지 않고 단숨에 돌파하는 것을 선택했다.
오는 동안에도 주변에서 괴이로 추정되는 어떤 것들의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흑우가 워낙 빠른 통에 부딪히지 않고 지나쳐버렸기 때문이다.
뒤로는 이미 괴이들이 쫓아오는 상황이지만 아직 마라혈교의 놈들이 자신들을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속전속결.
단숨에 돌파한다.
천화와 설영은 오는 동안 고생한 흑우는 잠시 역소환을 해서 쉬게 해주고, 처음 마라혈교에 잠입할 때 사용했던 통로를 이용해 개미지옥 속으로 뛰어들었다.
“흠, 자리를 옮기지는 않은 건가?”
기감을 넓히자 내부에 있는 마라혈교의 교인들이 잡혔다.
순찰자 따위는 없는 대신, 마치 그들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피의 성배가 있는 제단에 우르르 모여있는 것이 느껴졌다.
“차라리 잘됐군. 한 번에 쓸어버리면 될 테니까.”
그리고 동시에, 제단이 이는 곳에서 괴이로 추정되는 무언가의 기운도 그득그득 느껴졌다.
두 사람의 눈빛이 동시에 스산해졌다.
강대한 기운이 모여들었고, 천화가 먼저 손짓하자 그들의 앞으로 수십 자루의 강기검이 생성되었다.
통로가 작지 않았다면 일천 자루의 강기검을 만들어냈겠지만 지금은 이걸로 충분하니까.
“뭘 준비했는지 한번 보자. 가라!”
쐐애애액-
강기검이 앞서 길을 열었다.
제단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까지 이어져 있던 괴이들을 도륙하고, 천화에게 정보를 전해주었다.
‘한 종류가 아닌가 보군.’
안에 있는 괴이들은 한 가지 종류가 아니었다.
4대 재앙이라 불리던 놈들과는 또 다른, 중원에 나타났다는 놈들과는 또 다른 괴이들이 이 안에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이다.
물론 천화의 강기검에 썰려 육편으로 변해버렸지만 그 강함만을 따지자면 최소 절정급은 될 것 같았다.
강기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기는 했으니까.
“저리 꺼져!!”
파바바방-!!
그렇게 조각난 시신의 파편 중 일부가 곁을 스치는 천화와 설영을 향해 달려들기도 했지만, 그들이 발산하는 기운에 완전히 녹아내렸다.
감히 범접치 못하고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그 후로도 수많은 괴이들이 강기검에 썰려나가고, 천화와 설영의 기파에 소멸되었지만 아직도 괴이의 숫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여차하면 신전까지 함께 날려버리면 그만이지.’
그러나 천화는 걱정하지 않았다.
착실히 길을 뚫어내었고, 제단이 있는 안쪽으로 진입했다.
“교주님!!”
“교주님께서 돌아오셨다! 모두 힘을 내라!!”
“……엥?”
그렇게 제단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천화와 설영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히 마라혈교와 괴이들이 한패라고 생각했건만, 안쪽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성배를 노리고 달려드는 괴이들과 그에 저항하며 성배를 지키는 마라혈교의 교인들.
누가 봐도 지금 상황은 둘의 대립 관계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한패가 아니라고? 오히려 괴이의 공격을 받는 중이라고?
“이게 대체…….”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천화와 설영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조차 기만전술일 수 있다는 생각에, 즉시 마라혈교의 쪽으로 이동하는 대신 덤벼드는 주변의 괴이들을 처리하며 상황을 살필 뿐이었다.
‘제어에 실패한 건가? 아니면 진짜 적?’
가만히 살펴보니 마라혈교는 피의 주술을 이용해 방어를 굳히고, 간간히 반격을 가해 괴이들을 공격할 뿐이었다.
적극적인 공세를 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볼 수도 있지만, 지금 괴이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꼭 이상한 것만도 아니다.
정면으로 붙는다면, 순수한 무력으로는 마라혈교가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선입견을 제하고 본다면 마라혈교는 괴이들에게 필사의 저항을 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알 수 없군. 일단 이 괴물들부터 처리하자구.”
“응.”
때문에 천화는 잠시 판단을 보류했다.
언제 마라혈교가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전제를 깔고, 주의를 기울이는 동시에 방 안을 가득 메운 괴이들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강하긴 하지만, 종족 또한 다양하지만 4대 재앙과 그들이 이끄는 괴이들보다는 약하다.
아마도 강력한 지도자 격의 괴이가 없기 때문이겠지.
종족의 수장은 그 개인의 강함뿐 아니라 수하들을 강화시키는 힘까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천화와 설영의 활약으로 제단의 방 내에 있는 모든 괴이가 소멸하는 데까지는 불과 이각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교주님 만세!!”
“교주님께서 우릴 구원하셨다!!”
“어떻게 된 거지?”
단 하나의 괴이조차 남지 않게 되자 마라혈교의 교인들도 지친 얼굴에 화색을 띄며 결계를 해제했다.
물론 천화라면 결계를 깨뜨리지 않고도 내부로 출입이 가능했지만 결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기운이 소모되었기에 잠시나마 숨을 돌리는 것이다.
“포달랍궁……. 그 더러운 작자들이 이계의 존재를 불러냈습니다. 얼마 전부터 이 사막의 생물들에게 괴상한 힘과 마성이 부여되었지요. 인간들 또한 괴물로 변했고 땅은 더욱 메말랐습니다.”
“포달랍궁?”
헌데, 놈들이 엉뚱한 이야기를 내놓았다.
이 모든 사단을 일으킨 것이 그들이 아닌 포달랍궁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포달랍궁 또한 마라혈교처럼 특수한 주술과 술법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집단이긴 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세외사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정파에서도 적당히 인정을 받는 곳이라, 그들의 소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확실히 그놈들도 좋은 놈들은 아니긴 한데…….’
하지만 천화는 알고 있었다.
세외사궁 중 둘인 북해빙궁과 남만야수궁은 중립적이라 할 만하지만 포달랍궁과 태양궁은 썩 좋은 놈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각자 어떤 방면으로 미쳐있는 작자들이라, 건드리지 않으면 괜찮지만 부딪히게 된다면 미쳐 날뛰는 놈들이랄까?
“왜 그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었다.
포달랍궁 역시 ‘피’를 이용한 주술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마라혈교를 용의선상에서 배제시킬 이유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사장의 역할을 맡고 있는 자를 추궁하듯 물었고, 곧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오래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라혈교는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그들의 야욕을 알고 있었고, 신탁에 따라 놈들을 저지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해왔으니까요.”
“그래서 놈들이 마라혈교를 쳤다? 자신들을 방해할 게 뻔해서?”
“아닙니다. 그건 아마도 성배의 힘을 차지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성배에 담긴 힘은 놈들을 막기 위해 안배된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놈들이 불러낸 어떤 존재의 힘을 회복시킬 수단이 되기 때문이죠.”
힐끗 성배를 돌아본 천화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설득력은 있다. 성배에 담긴 피의 힘은 괴이들이 취했을 때 엄청난 강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힘의 원천과도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다못해 설영이 상대했던 흡혈귀들의 왕이 그것을 들이키기만 했더라도 아마 설영조차 쉽게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졌을 터였다.
그리고 그 성배의 잔이 지금은 거의 꽉 채워져있다는 것도 그들의 결백을 믿어줄 만하게 만들었다.
만약 이들이 무언가 일을 저질렀다면, 저 성배의 힘을 사용해야 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성배가 비워져 있어야 할 텐데, 저렇게나 꽉 차있다는 것은 힘을 소진시키지 않았다는 뜻과 같은 것이다.
‘괴이들의 피까지 흡수하는 건가?’
방금 쓰러뜨린 괴이들의 힘까지 빨아들인 것 같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텅 비어있는 상태에서 저만큼을 채우기는 쉽지 않았을 터였다.
“그래서 성배를 지키기 위해 여기서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성배를 움직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주인님, 저거 제가 먹어도 됩니까?]
그렇다고 마냥 성배를 지키고만 있을 수는 없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천화와 설영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도록 혈마검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피의 성배에 담긴 힘을, 자신이 흡수해도 괜찮냐는 것이다.
“가능해?”
[그때는 어려웠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설영이 되물었다. 분명 붉은 머리, 자신의 대사형인 추광이 이곳에 왔을 때는 그 힘의 일부밖에 취하지 못했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많은 힘을 길렀기 때문인지 사용자가 다르기 때문인지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좋아. 해봐.”
“예? 그게 무슨 말씀…….”
천화가 고개를 끄덕이자 설영이 혈마검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라혈교의 교인들과 제사장이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는 설영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개의치 않고 힘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우우우웅-
혈마검이 힘을 일으키자 피의 성배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마치 잃어버린 가족을 만난 것처럼 구슬픈 울음을 터트리는가 싶더니, 성배 속에 찰랑거리던 액체가 허공에 떠올랐다.
혈마검의 검신을 타고 스며들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혈정이 그 농축된 생명의 기운을 들이키며 제 힘을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엄청난데.”
그저 한 잔의 핏물이 아니었다. 절정 수준의 괴이 한 마리를 짜낸다 하더라도 한 방울의 피를 겨우 모을 수 있을까 말까한 농축된 힘의 정수였기에, 혈마검에 스며드는 기운을 느낀 설영이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일부 내공으로 치환되기도 했지만 선천진기를 강화시켜주기도 했다.
생명의 근원에 가까운 힘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지만, 한편으로는 오직 설영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근원적인 생명력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중원천지에 그녀만이 유일했으니까.
더불어 사용할 수 있는 힘의 한계와 영역이 확장되는 기분까지 들었다.
보다 현경에 가까운 힘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사이, 천화는 설영이 아닌 다른 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거짓은 아닌 건가.’
만약 아까워한다거나, 초조해하는 기색이 있다면 이들을 몽땅 죽일 생각까지 하고서 말이다.
정말 설영을 교주로 생각한다면, 성배의 힘을 탐내고 있지 않다면 순수하게 기뻐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완전히 힘을 취하지 못하도록 수작을 부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놈들은 정말 순수하게 기뻐하고, 감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골칫거리였던 성배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인지는 모르겠으나, 성배를 지켜냈다는 순수한 기쁨이 천화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쩌적-
쨍그랑!
“엥?”
“서, 성배가?”
그렇게 모아두었던 모든 힘을 혈마검에 흡수당한 성배에 균열이 일어났다.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수십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져 널브러졌다.
“아, 이러려던 건 아닌데…….”
“괜찮습니다. 이 또한 예정된 수순이었겠지요. 교주님께서 그 힘을 모두 취하셨고, 그 힘으로 저 사악한 자들을 막아주실 테니 저희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설영도 당황해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두 눈에 정광을 빛내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저들과 싸우실 거라면 저희도 돕겠습니다.”
설영, 천화와 함께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들의 힘이 포달랍궁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겠지만, 확실히 적지 않은 강자들을 보유하고 있으니 도움은 되겠지.
“좋아. 지금부터 포달랍궁과 괴이들을 처단한다. 놈들의 위치는 알고 있나?”
“예! 미리 파악해두었습니다. 아직까지 그곳에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자리를 옮겼더라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잠시 눈빛을 교환하던 천화와 설영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놈들과의 결전을 준비하라. 지금 즉시 포달랍궁을, 그들이 불러들인 탐식의 왕을 처단하러 간다.”
“예!!”
그들과 함께 포달랍궁을 징벌하기 위해 지시를 내렸다.
마라혈교에서 미리 파악해둔 놈들의 본진을 향해, 빠르게 역습을 시작했다.
탐식의 왕을 향한 마지막 걸음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