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초보아빠. (5/99)



〈 5화 〉초보아빠.

그날 이후, 아빠는 지금까지 나와 찍었던 사진들을 전부 인화해서 보관했다.
내가 모르는사이에 얼마나 찍어댔는지, 한 상자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그리고 아빠는 무언가 깨달은 건지, 그날 이후로 세상구경을 자주 시켜줬다.
오늘은 어떤 건물로 나를 데려갔다.

"짠~ 여기 아빠 작업실이다?"

최근까지 누군가 사용했는지 깨끗하다.

"지호 오빠!"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아빠가 당황해하며, 문을 살짝 열었다.

"이게 얼마만이야!?"
"그러게..."
"다시 복귀하려고?"
"아니."

불투명한 유리로 된 문밖에 있는 여성은 아빠의 말에 아쉬운지 고개만 끄덕였다.

"누구 있어?... 설마..."

아빠는 순순히 문을 열어주었고, 문밖의 여성은 아름다웠다.
내가 넋을 잃을 만큼.
뭐 그래도, 사진으로 보았던 엄마보다는 많이 못 한 외모지만.

'요즘 여성들은 대부분 아름답구먼...'

"딸...?"
"응."
"세상에... 말도 안 돼... 너무 예쁘다..."

나를 바라보는 여인, 나보다 더한 반응을 보였다.

"안녕~ 언니는 지은이 언니야~"
"... 아빠 친구면 이모 아님, 아줌만데..."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지은.
옆에서 아빠가 키득거리고 있었다.

"이... 이모로 할까? 우리?"
"응."
"휴우... 23살에 아줌마 소리 들을 뻔했어..."
'23살?'

나는 아직까지도 아빠의 나이를 몰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어려 보이긴 해도 동안이겠거니 생각했는데, 23살이라니.

"아빠 몇 살이야?"
"아빠? 우리 시윤이 아빠 나이도 모르니?"
"응."

지은이는 아빠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26살이야~"

나는 문득 내가 26살에  했는지를 떠올렸다.
우리 조직의 발전을 위해, 한창 마피아 조직에서 행동파로 용병을 뛰고 있었을 나이다.
아빠가 나를 '키우기' 시작했던 22살에, 나를 제대로 '키우기'를 원했던 조직에서 훈련을 받기 시작했을 때다.

"....."

갓 성인이 22살의 어린 아빠가 나를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시윤이는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지?"
"대충은 알아."

핸드폰을 내밀면서 나에게 아빠를 보여주려는 지은.

"이거 봐봐 본적 없지~?"

나는 힐끔 쳐다보고 내가 봤던 영상임을 확인했다.

"봤어."
"... 그... 그래? 아빠가 공연하는  본 적 있어?"
"응."
"....."

지은이 도와달라는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봤지만, 아빠는 모른 척 했다.
나는 그런 지은 이모를 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이모 이름이 지은이라고 했죠?“
"응? 맞아."
"그럼 옮긴 이모랑 엮은 이모는 어딨어?"

 한마디에 싸해지는 공간.

"".....""
"캬하핰 오우 씟"

내가 혼자 까르륵 웃고 있으니 장내가 조용해졌다.
내가 한참을 즐거워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둘이었다.
지은 이모는 나랑 놀아주다가 먹을 것을 사 온다며 밖으로 나갔다.

"어른을 놀리면  돼."
"응. 하지만 재밌었어."
"...풋 솔직히 아빠도..."
"그치? 맞다, 지은 이모한테 내가 뭐 좋아하는지 말해줬어?"
"응."

나는 이왕 달달할 거면 초콜릿처럼, '이것이 단 음식이다'라고 주장하는 듯한 맛이 아니라면 먹지 않았다.


잠시 후, 아빠는 지금까지 꼭 쓰고 싶었던 노래가 있었는지, 작업을 하면서 나에게 들려주었다.

"어때?"
"지금까지 아빠가  노래랑은 다르네?"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거 시윤이랑 같이할 거야"
"진짜?"
"재밌겠지?!"
"아니."
"....."

 단호한 대답에, 비 맞은 강아지처럼 울적한 표정을 짓는 아빠에게 웃으며 말했다.

"재밌을 거 같아~"
"그치?!"

아빠는 자신이 천재라고 불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듯,
과자를 가지러 간 지은 이모가 오기 전에, 내가  빠질만한 노래를 만들어냈다.

"오..."

그러면서 나에게 작업하는 방식을 하나하나 알려주는 아빠.

"이렇게 해서, 이건 이렇게......"

그 때 지은 이모가 양손 한가득 봉투에 과자를 담아서, 작업실로 돌아왔다.

"시윤아! 이모왔어!"

아빠는 녹음실 안에서 집중하고 있는 듯, 지은 이모를 발견하지 못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지은이는 과자 봉투를 책상에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앉으며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오빠 그 부분 다시."

아빠는 지은의 말에 끄덕였다.

"나도 이 부분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한 키 올려서 불러볼까?"

"아니, 낮춰서 해봐."
"낮춰서?"

정말 잠깐 들은 거지만, 아빠는 지은 이모를 전적으로 믿고 있는지,
지은이의 말에 따라 끄덕이며 키를 낮춰 불렀다.
공허한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

"너무 어두워진 거... 아닐까?"
"시윤이도 같이한다며, 이 어두운 감정을 메꿔주는 거지."
"아... 좋은데?"

과자를 먹으면서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니, 이 장면 또한 신선했다.
어떻게 보면 청춘을 불태우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평화로운 공간 속, 꽃을 피우고 있는 둘이다.
아빠는 작업을 끝냈는지 과자를 먹고 있는 나를 불렀다.

"시윤이 이 닦아야겠네?"
"하아... 귀찮아."
"과자 다 먹었어?"
"아니? 덜먹은 거 같은데..."

내가 귀찮음을 온몸으로 표현했지만 아빠는 무시하면서 말했다.

"이 닦고 시작할까?"
"어휴... 귀찮은데... 그래, 그럽시다..."

우리의 모습을 웃으면서 지켜보는 지은.
아빠는 가져온 가방에서 칫솔을 꺼내더니, 나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아빠에게 인사했고, 아빠는 대충 끄덕이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

아빠의 섬세한 손길을 따라 양치를 끝낸 뒤 작업실로 돌아갔다.
높은 의자 위에 나를 앉힌 아빠가, 마이크를 가능한 낮춰줬다.

"먼저 시윤이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봐."
"응."

가사를  읽듯이 읽으니 아빠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오빠 이거 괜찮은데요?"
"그치?"

나는 이왕 하는 거 대충 하고 싶지 않아서, 정확한 음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오...""

그리고 아빠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밝은 감정을 담아서도 불러보았다.
'아빠 힘내세요' 같은 감정이랄까...?
나를 보며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지는 아빠를 바라보자, 아빠가 억지로 웃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MR이 아닌 지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 시윤이 천재 아니야?!"
"나도 알아요."
-"...그...그래."

녹음을 끝낸 뒤, 노래를 처음부터 들어보니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대박인데...?"
"그러게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좋아."
"돈 냄새 찐하게 나네~"

킁킁거리는 지은, 그러더니 아빠를 쳐다보았다.

"도와줬으니까 소고기 사주는 거지?"
"그럼~"





녹음을 끝낸 뒤, 지은이와 소고기를 먹고, 집에 도착했다.
아빠는 오랜만에 컴퓨터를 켜더니, 핸드폰에 노래를 담아서 틀어줬다.

"어떻게 하는 거야?"
"궁금해?"
"응"

아빠는 컴퓨터에 앉아서 자신의 무릎에 나를 앉혔다.

"핸드폰에 이렇게 연결해서....."

한참을 설명하는 아빠.

"너무 어려웠나? 해볼래?"
"응."

나는 작은 손으로 마우스를 잡고 모니터 속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저장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아빠의 핸드폰에서 파일을 찾는 것까지.

"우리 딸 진짜 대단하네~"
"알아.  배고파 밥 줘."
"그래? 배고파? 컴퓨터 가지고 놀고 있어~ 여기 너튜브 치면 들어갈 수 있어."
"응."

나는 양손 검지를 이용해서 너튜브에 들어가 영화 리뷰를 보기 시작했다.

"캬~ 세상  좋아졌다. 영화 지리네"

그러다가 우리 가족의 사정이 궁금해져서 김지호를 검색했다.
끝없이 나오는 영상들... 직캠이라는 단어가 가득했다.

그 중 아빠가 처음 데뷔한 무대를 보게 되었다.
긴장 가득한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엄청 행복해보였다.
녹색 검색창으로 들어가 아빠를 검색해보니, 각종 뉴스들이 나왔다.
원래 집안은 요식업을 하고 있었고, 아빠는 음악을 하겠다고 가족의 품에서 일찍이 벗어났다.

그리고 아빠의 재능은 '장성만'을 만나 꽃피우기 시작하며, 자신이 속한 보이그룹의 작곡과 작사를 직접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터진 열애설, 엄마는 나를 낳기 4년 전부터 아빠와 사귀기 시작했다.
서로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악플도 많았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버티고 있다가, 누구도 초대하지 않고 작은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가정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은 엄마.
그렇게 사랑했던 아내를 나로 인해 잃은 아빠, 나를 원망할 법도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4년간 나를 보는 아빠의 표정은 웃음뿐이었다.

"딸 뭐해~ 밥 다 됐어"
"응. 지금 나가~"






나를 들어 올린 아빠가 식탁 앞에있는 내 전용 의자에 나를 앉혔다.

"컴퓨터로 뭐 했어?"
"밥."

아빠는 웃으며 나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우리 딸 컴퓨터로 뭐 봤을까? 알려주면  먹고 아이스크림 꺼내줄게."

이 상태에선 끝없이 물어볼 것이 뻔하기에, 나는 대충 둘러댔다.

"음... 솔직하게?"
"응. 솔직하게"

나는 아빠를 보며 피식 웃었다.

"영화 리뷰 봤어."
"무슨 영화?"
"에일리안."
"... 너무 잔인하지 않아?"
"안 잔인해~ 그냥, 사람 가슴에서 '뿌직'하고 아기 나오던데?"

내 표현에 아빠가 심각하게 쳐다보기 시작했고, 진지하게 말했다.

"... 그런  보면 안 돼."
"알았어~"

나는 피식 웃곤 밥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은 조금 싱겁구먼.'

아빠는 내가 다 먹는 것을 확인하고, 나에게 아이스크림과 리모컨을 넘겨주었다.

"tv 보고 있어~"
"응."




한참을 지나서야 거실로 나온, 아빠의  눈이 붉어져 있었다.
아빠가 앉아서 나를 불렀다.

"시윤아."

나는 그런 아빠를 보며 끄덕이고, tv를 끄며 말했다.

"응."
"아빠랑 2층 올라갈까?"

내가 끄덕이자, 아빠는 나를 들고 2층으로 향했다.
원래 둘이서 사용하려고 만든 방인지, 큰 침대를 기준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매일 청소라도 하는 듯이...

"여기 엄마랑 아빠 방이야."

감수성이 풍부함을 넘어 넘쳐나는 아빠, 이방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벽을 밀치니 수납공간이 나왔고, 그곳엔 내가 봤던 상자와 각종 트로피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거는 시윤이엄마 꺼"

다른 곳을 열어보니, 더 많은 트로피가 있었다.

"이거는 아빠 꺼."

아빠는 한참을 둘러보다가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엄마의 옷이 가득한 공간.
액세서리들을 보니 알 수 있었다.
'나는 확실한 금수저다.'

나는 끄덕이며 각종 액세서리들을 보았다.
'금값이 많이 싸졌나? 그래도 너무 많은데...?'

아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진지하게 나에게 물어보았다.

"시윤아."
"응?"
"엄마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아빠한테 물어봐 줘."

아무래도 내가 아빠의 컴퓨터로 검색한 기록을 본 것 같았다.

"응, 근데 나 아빠 직업도 모르는데?"
"....."
"그래서 저번에 아빠 직업 그리는 시간에, 요리하는 거 그렸어."

아빠는  책가방에서 무언가를 봤었는지 끄덕였다.

"... 그거 아빠였어?"
"응, 잘 그리지?"
"....."

내가 말을 돌리자, 아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 항상. 다음부터는 아빠한테 물어볼게"
"응... 아빠는 시윤이밖에 없어~"
"알지."
"오늘은 여기에서 잘까?"
"응."

나는 커다란 침대에 누워서, 내 팔뚝만한 리모컨으로 다큐멘터리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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