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나 강한성, 자본에 굴복하다.
장성만 대표는 김지호를 바라보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난 왜 아직도 할아버지냐?"
"...나이 차이가 꽤 있잖아요."
지은이가 시윤이를 쳐다보았다.
"나 미운털 박혔어 어떻게 해?"
"...음."
"시윤이 똑똑해서 안 잊는다며, 뱃속에 있었을 때도 아직 기억한다면서?"
"다른 아이들이랑 다르게 잘해준 걸 더 먼저 기억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진짜지...?"
김지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삐진 시윤이의 상대법을 말해줬다.
"빨리 회복하려면, 1주일 정도 잘해줘야 돼... 근데 시윤이 자?"
"응, 숨소리가 깊은데?"
"그러면서 자는척할 때 많아."
"침 흘리는데?"
김지호는 룸미러로, 시윤이를 확인해보더니 끄덕였다.
"확실히 자는 거네... 못생긴 모습 절대로 안 보여 주려고 하거든."
"멋쟁이네~"
장성만이 대화를 듣다가, 시윤이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언제 고쳐질 거 같은데?"
어색하게 웃는 김지호,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장성만에게 말했다.
"음... 제가 말하는 거보다 직접 설득하시는 게... 좋을 걸요?"
"시윤이 뭐 좋아하냐?"
운전을 하며, 한참을 고민하던 김지호가 말했다.
"어... 음... 여자?"
""...?""
"엄마 없이 자라서 그런지, 성인 여성 품속을 좋아하더라고요."
"아..."
다들 진실은 알지 못한 채, 시윤이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시윤아~ 도착했다. 일어나!"
나는 아빠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안아 올리는 지은 이모.
"...? 이모가 날 왜 안아?"
"이모는 안으면 안 돼?"
"아니, 나 무거울 텐데?"
"13kg밖에 안되면서 무겁긴~"
"음... 이모의 1/4 아니야?"
뼈밖에 없는 이모의 팔, 아빠의 팔과 상반되어 보인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이모 뼈밖에없어서 아파, 내려줘"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지은 이모가 나를 바라보았다.
"헐... 나 상처받았어..."
"응, 그렇다면 다행이네"
"...설마 복수하는 거야?"
"응? 오... 이모 똑똑해."
내 말에 정말 삐진 지은 이모가 나를 내려주었고,
나는 아빠에게 후다닥 달려가서, 안겼다.
아빠는 매일같이 운동을 해서 그런지, 몸이 상당히 좋다.
13kg야 모래주머니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아빠, 오래 앉아있었더니 다리 아파, 주물러줘."
아빠는 남은 한 손으로, 자연스럽게 내 허벅지를 손으로 풀어주기 시작했다.
"시원하구먼! 이모는 이렇게 못하지?"
"....."
나는 편안한 승차감을 느끼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소갈비를 잘게 썰어주는 이모.
작은 손가락이지만, 그 손가락의 손톱만큼 작게 잘린 고기들.
아빠가 고기를 먹고 있는 나를 보더니, 입을 닦아주었다.
"꼭꼭 씹어서, 먹어야지."
"지은 이모는 나보다 덜 씹어서 먹는데?"
"....."
그리고 나는 장성만을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그냥 삼키는구먼..."
내 눈치를 보는 둘, 아빠 혼자만 30번은 씹어서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은 부드럽게 넘어가는 소고기를, 30번씩 턱을 움직여가며 먹기 시작했다.
"시윤이는 음식 뭐 좋아해?"
"음... 다 잘 먹는데, 아빠가 이것저것 해주질 않았어."
내가 입가심으로 오이 고추를 쌈장에 찍어서 씹고 있으니, 쳐다보는 이들.
어린 몸이라 그런지 혀가 민감해서, 맛이 더욱 잘 느껴졌다.
아빠는 김선화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예, 다연이 어머니."
누군지 궁금해 하는 이들.
"해외요?"
해외 소리가 나오자,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한동안 전화가 이어지고, 알겠다는 말로 끝내는 아빠.
내가 고기를 씹으며 쳐다보니, 말해주었다.
"다음 주에 여행을 가자는데? 다연이가 같이 가고 싶어 한다고."
"어디로?"
"호주라는데?"
"응."
다연이가 누구이며 뭐하는사람인지 물어보는 지은에게 아빠가 웃으면서 말했다.
"한성, 이진석 대표님 딸."
"...어?"
이 말로 인해 지은이는 매우 당황했지만, 옆에서 젓가락을 떨어트리는 장성만.
"진짜?"
"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양파를 먹고, 마늘을 집어서 쌈장에 찍어 먹었다가 경악했다.
타오르는 느낌의 혓바닥.
"으갹!"
"시윤아!!!"
내 비명소리에 대화는중단되었고,
고통에 민감한 이 몸 때문에, 살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
"괜찮아?"
"....."
눈물을 닦아주려는 아빠.
"안 울었어."
"응, 우리 딸 장하네."
오랜만에 보는 나의 어린 모습에 아빠는 미세하게 웃었다.
얼굴이 급격하게 뜨거워지며, 아빠 손에 있는 손수건을 밀쳤다.
"치워, 안 울었어."
아빠는 웃으면서 내 입에 있는 마늘을 손으로 받았다.
나의궁전, 타워팰리스로 이사 온 한성의 가족.
김선화의 부탁으로, 나는 이사를 끝낸 다연이의 집에 와있었다.
"시유나!"
토끼 인형을 품에 가득 안고 있는 다연.
"안녕."
다연이는 나를 말없이 보더니, 드레스를 입은 토끼 인형의 손을 흔들었다.
"그래, 비운의 안토니오, 올리비아, 마마리드 안녕."
그제서야 다연이는 만족한 듯 끄덕였다.
"시윤이 왔니?"
"네."
"혼자 온 거야?"
"네."
"어머... 웬일이야? 아빠가 우리 시윤이 혼자 보냈어?"
"...문 열면 바로 앞집인데, 같이 오는 것도 웃기지 않아요?"
"....."
이 거대한 아파트에는 층마다 두 가구씩 살고 있었다.
"하아... 하필이면 앞집이라니..."
"...시윤이는 싫은가 보구나..."
"네."
단호한 대답에, 김선화의 동공이 떨리며,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
이제 32세가 된 김선화는 아직 20대 중반이라고 해도 믿을 외모였다.
나는 어떻게 인테리어를 하면, 같은 구조의 아파트가 이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게 만드는지 감탄할 뿐이었다.
"시윤이 왔니?"
한창 바쁠 사람, 이진석이 집에 있었다.
나는 귀찮다는 듯이, 대충 손을 흔들자, 웃는 이진석.
"어머, 아저씨 안 무서워?"
옆집 아저씨 취급을 하고 있지만, 이 사람은 대한민국 재계 2위, 공룡기업 한성의 후계자다.
그리고 얼굴에 새겨진 흉터 때문에, 어른들도 이진석을 무서워하는 경우가 있었다.
"흠... 별로."
박기의 실수로 생긴 칼자국으로 인해, 험악하게 바뀐 인상이지만,
재형이의 얼굴과 비교해보면... 귀여운 수준이다.
나를 몇 번 보더니, 자신의 딸처럼 생각하는 이진석.
"다연이랑 놀러 왔어?"
"하아... 과자나 줘요."
나는 자연스럽게 의자 위로 등반하듯이 올라가서, 내 집에서 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과자를 먹었다.
다연이는 나랑 인형놀이를 하고 싶은지,품에서 비운의 안토니오, 올리비아, 마마리드를 내려놓지 않았다.
"얘넨 왜 영어 이름이야?"
"영국에서 태어났어!"
"아..."
외국 출신이라니, 할 말이 없었다.
"시윤아 우리 호주 갈 건데, 재밌겠지!?"
김선화가 내 옆에 앉아서, 내 입을 닦아주었다.
"흠... 귀찮은데."
"거기에 재밌는 거 진짜 많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는 이진석을 바라봤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내 말에 업무의 집중하던 이진석이, 움찔했다.
내가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자, 이진석이 내 눈을 피했다.
""...?""
"후후후... 5살 꼬맹이가, 본질을 먼저 파악하다니 후우."
"....."
나는 과자를 먹으면서, 김선화를 바라보았다.
집인데도 풀 메이크업에, 옷차림도 트렌디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배가 볼록 튀어나왔다는 것.
다연이에게 동생이 생긴다.
"올 블루우~"
내 말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움찔하는 이진석.
"올 블루가 뭐니?"
"해적 애니메이션에 나와요~"
"응?"
나는 우유를 마시고 난 뒤, 김선화가 들고 있는 손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영어 놀이하러갈까?"
"응!"
나는 다연이의 품에 있던 비운의 안토니오와 올리비아를 들어주었다.
자신의 부모님보다 나를 더 따르는 다연.
나와 다연이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올 블루가 뭐예요?"
"으응?"
"시윤이가 말한 거요. 왜 호주의 바다를 올 블루라 그래요?"
이진석은 자신의 아내 김선화의 시선을 피했다.
이진석의 볼을 꼬집는 김선화.
"여보. 나 삐지기 전에, 솔직하게 말하지?"
"...낚시."
"올 블루는요."
"그... 세계의 어종이 모여 있어서..."
"어휴... 낚시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진석은 부끄러운지,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자기 좋아하는 곳으로 가는 게 어때서요."
"...선화야."
김선화를 그윽하게 쳐다보는 이진석.
"지금 시윤이 있거든요?"
"...응."
대한민국을 흔드는 한성의 후계자, 집에서는 서열 최하위였다.
"시윤아 밥 먹자."
나는 김선화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정연이는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지, 김선화의 뒤에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아빠랑 먹어야 돼요."
"왜?"
"혼자 먹으면 불쌍하잖아."
"아... 그럼, 아빠 부를까?"
나는 집에서 이미 밥을 만들어 놓았을 아빠를 떠올렸다.
"이미 밥 했을걸요?"
"시유나... 가는 거야?"
내가 자신의 집을 나설 때마다 울먹거리는 다연.
"우리 집에서 밥 먹을까?"
"응!"
"다연이 데리고 가도 되죠?"
김선화는 웃으면서 끄덕였다.
"그럼~"
다연이는 빠르게 토끼 인형을 챙기려고 했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나만."
"한 명이야."
"응, 한 명만."
한참을 고민하던 다연이는 비운의 안토니오를 들었다.
"가자."
나는 다연이가 내미는 손을 잡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살짝 열려있는 문.
"아빠!"
"응! 기다려!"
아빠는 허겁지겁 달려 나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어? 다연이도 왔네?"
"네! 엄마가 놀다 오래요!"
"그래? 들어와~"
나는 다연이를 품에 안는 아빠에게 말했다.
"밥."
"알겠어, 잠시만~ 다연아 시윤이랑 재밌게 놀고 있어요~"
"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곤, 영화 리뷰를 켰다.
"시윤아, 다연이랑 놀아야지?"
나는 아빠 말을 듣고, 다연이를 쳐다보았다.
"다연아."
"응?"
"안토니오랑 노는 걸로 충분하지?"
"...시유니랑 놀고 싶은데..."
아빠가 요리를 하다가, 멀리서 힐끔 보더니 웃는다.
"시유나, 안토니오랑 가치 놀자~"
나는 아빠 방에서 자지만, 다연이를 데리고 내 방으로 향했다.
"우와! 인형 짱 많아!"
다연이의 집엔 고급진 인형들이 많았지만, 우리 집엔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한정 판매 인형들이 넘쳐났다.
JSM의 심장 중 하나, 작곡가로 알려진 아빠의 주변 인물 중, 나에게 이런 걸 선물할 사람들이 많았기에.
"이거 다연이 가질래?"
"...가져도 돼?"
"그럼~"
솔직히 나는 아이들을 싫어하지만, 다연이는 괜찮다.
한참 자기밖에 모를 나이였지만, 다연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성선설, 성악설 중 선이 맞는다는 듯이.
다리 하나가 자신의 몸만 한 토끼 인형을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던 다연.
"저거 가지고 싶어?"
"...응."
"아빠!!!"
내 고함에 아빠는 요리하다 말고, 후다닥뛰어왔다.
"불렀어?"
나는 거대한 토끼 인형을 손가락으로가리켰다.
"다연이가 가지고 싶대"
"시윤이는 필요 없는 거야?"
"응."
"그래~ 다연이 갈 때, 아저씨가 옮겨줄게요~"
"진짜!? 좋아요!!!"
나는 커다란 토끼 인형을 미소 지으며 안고 있는 다연이를 보았다.
"알파, 베타 일로와."
내 목소리를 들은 알파와 베타가 시간이 지나자, 방으로 들어왔다.
눈을 빤짝이는 다연, 알파와 베타는 다연이를 마음에 들어 했고, 나는 다연이에게 츄르를 건넸다.
"조금씩 먹이면 돼."
"응!"
비운의 토끼인형, 안토니오는 침대 위에 버려진지 오래였다.